191회
세계의 결착
004
콘스탄티노플 황궁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은 황제 유스티누스 2세와 황후 소피아.
황후는 막대한 재물을 풀어서 용병들을 고용하였고, 용병들은 훌륭하게도 황궁의 근위병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루키우스 휘하의 장수들을 모두 체포했다. 황제와 황후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원로원 귀족들은 섭정관 루키우스에게 체포당하여 구금까지 당했다는 것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았고, 브리튼과의 전쟁을 크게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 루키우스 파벌을 결성하여 황제와 황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섭정관은 미쳤다!"
"전쟁은 지긋지긋하다. 전쟁에 미친 계집을 죽여라!"
"우리들은 전쟁을 반대한다."
황제와 황후.
원로원.
로마의 핵심세력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해버렸다.
루키우스는 신임하는 부하들에게 수도의 경비를 맡겼지만 그들은 실패했다. 무력한 황제가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 여긴 탓일까. 일시적으로 방심해버렸고, 그 방심은 크나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루키우스의 부하들은 모두 체포되었고, 다음 날을 넘기지 못하고 역적죄를 물어 처형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원로원 귀족들은 황제 유스티누스 2세를 접견하였다.
"폐하, 서둘러 루키우스를 체포하라는 격문을 써주십시오."
"황명으로 명령을 내리신다면 뜻을 모아 응징하겠습니다."
"전란으로 지쳐있습니다. 전쟁의 주범을 멸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셔야 합니다."
귀족들은 반전주의자에 가까웠다.
로마 제국은 원래부터 전쟁을 즐기는 민족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라가 다 무너지게 생겼는데 전쟁을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루키우스 파벌이 아니었던 중립 파벌의 군인들은 반전주의에 대해서 찬성했다. 대다수의 군인들은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서 루키우스를 따르던 요인들을 처형. 빠르게 루키우스의 세력을 몰아내려 했다.
우선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했고, 그 다음에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요인들을 불러모아서 타국에 사신단으로 파견했다.
페르시아로 사신을 보내어 과거에 맺은 평화 조약을 들먹이며 전쟁 반대를 외쳤고, 그 다음에는 서고트 왕국과도 협상을 주도했다. 서고트 왕국은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크게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녀를 알아서 처리해준다는 로마 황실의 말을 듣고는 그것이 옳다고 여기면서 이탈리아 남부의 약탈을 중단했다. 물론 브리튼 전선으로 향하는 보급선에 대한 공격은 멈추지 않았지만 말이다.
브리튼 본국으로도 사신을 보내어 이번 전쟁은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원흉이며, 로마 황실은 전쟁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루키우스에게 돌리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루키우스를 역적으로 규정하면서 추포령을 내렸으니 브리튼 황실은 그를 의심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루키우스 누이는 황실의 수호자가 아니오?"
물러터진 황제의 말에 소피아의 쌍심지가 올라가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이미 그 은발의 계집년에게 가문의 일족들이 모두 몰살당하고 멸문지화까지 당해버린 황후로서는 당연히 루키우스를 죽이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도 루키우스를 죽여버리려 했고, 장차 로마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루키우스는 죽어야 했다. 그녀가 로마 제국에 어떠한 입장을 가진 인물이든, 지금은 그저 방해꾼에 지나지 않았다.
"폐하! 루키우스는 전대 황제의 조카딸이며, 총사령관이라는 직명을 가지고서 황실을 기만하고 국정을 함부로 움직였습니다. 무리한 전쟁으로 제국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심지어 타국들은 그녀의 과격한 행동으로 사납게 변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도 아니면 사납게 변한 야만족들의 분노를 누가 책임진단 말입니까? 폐하께서는 친히 군사를 몰고서 야만족들을 막을 수 있으십니까?!"
황후 소피아의 과격한 외침에 유스티누스 2세가 고개를 홱홱 내저었다.
새하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는 부들부들 떨었다. 유약한 황제에게 있어 끔찍할 정도로 흉폭한 훈족과 게르만, 페르시아를 역병보다도 무서운 저주에 가까웠다. 전쟁 군주로 이름 높았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조차도 굴복시키지 못한 야만족들이 아닌가.
유스티누스 2세는 적어도 자신의 그릇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황후와 집정관 칼리니쿠스에게 강요당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로마 황족이라면 누구나가 전장에 직접 나설 법도 한 데도, 유스티누스 2세는 전장으로 직접 나서본 적이 없었다. 전쟁 경험이 없는 로마 황제는 유스티누스 2세가 처음일지도 모른다. 유약하고 겁이 많다. 전쟁을 싫어하며, 과격한 패기가 없다. 로마인들은 결코 겁쟁이 황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맞습니다, 폐하. 우선은 루키우스 전하를 제물로 삼아서 야만족들의 분노를 진정시키는 것이 순리입니다."
"모두 황녀가 저지른 일이니 자업자득이 아닙니까?"
"이건 모두 제국을 위해서입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꾸물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원로원 귀족들도 벌떼처럼 일어나 주저하기 시작하는 황제를 다그쳤다.
여러 사람들이 몰려 와서는 소리를 내지르자, 그를 두려워한 황제는 곧바로 그들이 시키는대로 행동했다. 반평생을 로마 제국의 영토 확장에 바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보았더라면 피눈물을 흘렸을 장면이다. 명군으로 불리었던 황제와 여러 충신들이 만든 대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었다.
"알겠소.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에게 체포령을.... 그리고 본국으로 오는 즉시 처형시키겠소."
물론 루키우스가 로마 본국으로 돌아올 리는 없었다.
황후 소피아는 은밀하게 사자를 파견하여 브리튼으로 보냈다. 브리튼의 황제인 비세리온 펜드래건에게는 로마의 역적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처리해달라는 밀서를 넘겼고, 서로마의 황제는 훗날에 생길 우환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루키우스를 처리해줄 것이다.
현재 루키우스는 브리튼 전선에서 피곤에 찌든 병사들을 다그치면서 지휘하고 있었다.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었다. 로마 본국에서 전해지던 보급을 모조리 끊어버렸고, 현지조달조차 불가능해진 로마 대군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먹지 않고서는 싸울 수 없다. 로마 황제는 모든 관문을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전선으로 향해지던 보급을 모두 끊었다.
"루키우스를 죽이자!"
"그 마녀를 결코 로마로 들여서는 안 됩니다!"
"전쟁광을 원하지 않는다! 로마에서 물러나라!"
전쟁에 사용되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섭정관 루키우스는 로마 전역에서 거두는 세율을 몇 배로 올렸는데, 그를 부담하기 벅찬 시민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황제와 원로원이 권력을 잡게되자 전쟁 반대를 외치면서 루키우스를 죽여야한다며 주장했다. 물론 그 시위들은 황제의 지지율을 높여주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중립을 유지하고 있던 군인들조차도 전쟁을 반대.
루키우스가 본국으로 귀환하지 못하도록 각 요새에 병력을 배치시키면서 브리튼 전선으로 도망친 탈영병만은 받아주되, 루키우스 휘하의 장수들은 모두 체포하여 처형시켰다. 루키우스를 포함해서 그녀를 따르던 부하들은 결코 살려둘 수 없었다.
"황제는 너무 나약하고 무능해요. 우선 제가 정권을 잡도록 하죠."
황후 소피아는 황제의 정신병과 유약한 성정을 이유로 들어서 황제에게 집중되었던 모든 권력을 이어받았다. 루키우스가 역적으로 규정되면서 섭정관에서 제외되었고, 그 빈자리를 황후가 차지해버린 것이다. 황실의 친위대들이 모두 황후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권을 잡는 것은 수월했다.
원로원은 황제가 유약하다는 것을 알고, 루키우스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황후 밖에 없다면서 황후의 치마폭에 기대었다. 루키우스는 무섭다. 성격이 거칠고 사나워서 로마 본국으로 돌아온다면 분명 자신들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라도 우선 황후에게 충성을 바쳐야 했다.
"서로마의 황제에게서 답변이 왔습니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제거하는데 동참하겠다고 합니다."
"좋아요. 본국과 함께 협조해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붙잡기 위한 포위망을 결성합니다."
"예!"
서쪽에서는 루키우스를 추격하기 위한 브리튼의 군단들이 진군.
그리고 동쪽에서는 역적을 척살하기 위한 로마 제국의 군단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서쪽과 동쪽에서 진군하는 병력들에 의해서 포위망이 형성되었고, 루키우스의 종말은 더욱 빨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