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회
세계의 결착
003
브리튼과 로마의 결전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외국 용병들이 잇달아 반란을 일으키면서 로마군이 일시적으로 붕괴 상태에까지 놓였지만, 그럼에도 브리튼의 공세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비세리온은 루키우스를 '사상 최강의 호적수'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모든 요소가 열악한 상황일 터인데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등하게 맞섰다. 대체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전쟁에만 매진할 수 있는 걸까. 귀신의 영역과도 같았다.
"가웨인, 브리튼의 반란을 진압해라."
"예, 맡겨주세요."
오랜 전쟁은 브리튼에서도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로마를 상대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전쟁에 지친 귀족들이 본국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장기적으로 물자를 동원해야만 하는 입장이니 세율을 무작정 올릴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기득권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리라. 물론 계획적이지 않은 우발적인 반란이므로 진압하는 것은 쉽다.
태양의 기사가 본국으로 귀환하였으니 손쉽게 진압할 수 있을 테지.
하지만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웨인에게 일임하였으니 본국에서는 큰 변란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질질 끌리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는 비세리온 또한 질린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계절이 바뀌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중해 연안에서 활동하는 서고트 함대들은 이탈리아 남부에 상륙하여 침공을 시작했고, 국경선을 넘어서 훈족과 게르만족까지도 로마를 향한 침공을 시작했다. 페르시아까지도 움직이려고 하고 있으니, 로마로서는 사면초가인 셈이다. 그런데도 루키우스는 회군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병력을 지휘하면서 브리튼 군사들을 물리치는 기염을 토해냈다.
"저 여자는 대체 뭐로 되있는 거냐? 어떻게 아직도 포기를 하지 않는 거지?!"
로마는 기존에 20만 대군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배고픔에 지친 병사들이 탈영을 반복하여 그 절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봉기를 일으킨 용병들과 내전을 벌이면서 병력을 깎아내리고 있었으니,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병력의 손실은 확충될 것이다. 그런데도 로마 병력은 물러나지 않았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가진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한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식량까지 떨어졌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로마 군단병은 공포 그 자체였다.
아그라베인이 말했다.
"이런 전황은 저희에게도 불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가 없잖아. 전 방면에서 이렇다고 할 성과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제레인트가 승리를 거두면, 팔라메데스가 패배했다.
가레스가 승기를 잡았음에도 퍼시벌이 패전해버렸다.
일전일퇴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까.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장에 쌓이는 시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벌써 10여 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었을 것이다. 가장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루테시아. 오를레앙.
이 두 개의 거점은 결코 뚫리지 않았지만 위태로운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누가 먼저 쓰러지느냐에 따라서 결정되겠지. 지구력 싸움이다. 청야전술을 동반하여 적의 보급로를 끊어버린 시점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 생각하였는데도 로마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점은 비세리온에게 있어 근심거리로 작용했다.
"로토마구스에서는?"
"우선 로마군의 공세를 격퇴했다는 보고입니다. 케이 경이 분발해준 덕분이겠지요. 하지만 케이 경의 발목이 붙잡혔습니다."
"죄다 개판이군."
비세리온이 거친 한숨을 토해내면서 체스말들을 집어던졌다.
와르륵하고 체스말들이 테이블 위에서 떨어졌다. 이런 개싸움, 전술이며 전략이고 그 무엇도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개싸움이 되어버려서야 인간으로서 품격을 가지고 전쟁을 펼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전쟁에는 명예도 긍지도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도 지독하다.
인간이 최소한적으로 갖추고 있는 윤리까지도 파괴하는 전쟁. 브리튼과 로마는 무작정 전선에 병력을 투입시켜서 희생을 반복하고 있었고, 루키우스는 그것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군 병사의 소모를 걱정하고 있는 비세리온과는 다르다.
그것이 바로 두 지휘관의 차이점이 아닐까.
비세리온은 아군의 희생에 대해서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반면, 루키우스는 조그마한 성과라도 낼 수 있다면 아낌없이 아군을 희생시켰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은발의 기사가 명령을 내리면 그 부하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는 점이다. 죽을 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병사들은 그야말로 악마에 가깝다.
"란슬롯 경이 갈리아 동부의 탈환에 성공했다는 보고입니다."
"좋아. 우선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보면 되겠군."
알자스 - 로렌 지역에서 할거하던 로마 병력들을 격파.
호수의 기사는 최대한 분전하면서 로마에게 빼앗겼던 영토들을 탈환하고 있었다.
루테시아와 오를레앙에서 병력들을 막아내면서 루키우스의 이목을 이쪽으로 몰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서 란슬롯이 로마 본영을 공격하여 그를 탈환했다. 그나마 로마 병력이 저장하고 있던 병량들이 모두 불타버렸고, 로마군이 떠안고 있는 식량 부족은 더욱 심해졌으리라.
성동격서에 가깝다.
로마군의 예봉을 중앙에 묶어두면서 동부를 공격하여 탈환했다.
알자스 - 로렌은 반드시 탈환해야 할 중요한 영토였는데, 란슬롯이 분전한 덕분에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갈리아의 서부와 남부는 로마의 지배에 있었지만, 어차피 탈환해봤자 아무런 메리트도 없는 곳이었으니 공격하지 않는 게 이롭다.
"전황이 개판이어도.... 기사회생의 기회는 있군요."
"부하들이 유능한 덕분이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전황이 한 번에 역전되는 것은 아니다.
전장을 바라보면 언제나 무채색의 세계에 핏빛이 물든 참혹한 광경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팔다리가 굴러다니고, 억울하게 죽은 병사는 두 눈조차 감지 못하고 그 머릿통이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지독한 광경이 아닌가. 지금까지 전장을 누빈 비세리온이었지만 이렇게 지독한 광경은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훈족과의 전쟁보다도 지독하다.
"폐하!"
피칠갑이 된 기사가 문을 박차고서 들어왔다.
전장에서는 예를 취할 필요는 없다. 브리튼 기사는 급한 전보를 가져온 것인지 서두르는 기색이 강했다.
"로마 본국에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황제 유스티누스 2세와 황후 소피아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황궁을 장악. 루키우스의 부하들을 모두 제거하고 황궁을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호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로마 황실의 이름으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역적으로 규정. 다시 말해서....."
"같이 루키우스를 토벌하자는 뜻이군. 그녀가 살아있으면 자신들도 당할 테니까."
역시 이런 결말인가.
브리튼 기사의 보고에 대해서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어쩌면, 하고 예상했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유스티누스 2세가 더 빨리 서둘러 주었다면 이렇게까지 병력이 손실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 무능한 자식은 황제가 되어서는 자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황궁을 점거하는 데만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벌이를 대체 얼마나 하였다고 생각하는 건가.
루테시아와 오를레앙 등지에서 계속해서 공방전을 치루었고, 전쟁의 기한만 하더라도 2개월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병력의 손실도 엄청난 수준에 이르렀다. 빌어쳐먹을 정도라고 할까. 유스티누스 2세가 좀 더 빨리 서둘렀다면 이러한 피해를 없었을지도 모른다.
"루키우스는 이제 갈 곳 없는 몸이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나마 적절한 선택지는 자신에게 충성을 보내고 있는 부하들과 함께 로마 본국으로 복귀하여 황실의 쿠데타를 진압하는 것이다. 쿠데타의 진압에 실패한다면 섭정관 루키우스는 모든 것을 잃고 패배한다. 이제는 더 이상 전쟁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쌓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게 생겼으니까.
"그러면 출진 명령을."
"당연하지. 루키우스를 얌전히 로마로 돌려보낼 수는 없지."
루테시아와 오를레앙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병력을 출진시켜서 루키우스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 발목을 잡으면 잡을수록 전황은 우리에게 유리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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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 아이디어 다 떨어졌죠?
설차: ㅇㅇ 머리가 비어버림.
전쟁물 때려치고 그냥 뽕빨물이나 쓸 걸.
솔직히 처녀보다는 유부녀가 꼴린다고 생각함.
유부녀는 마이너스 요인이 아니라 플러스 요인이다. 뭐? 딸이 있다고? 따따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