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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쟁란
004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을 자칭하기 시작한 브리튼.
이 천하이강 체제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대립 현황이라 할 수 있었다. 천하이강. 천하를 두 국가로 나눈다. 당연히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두 국가는 누가 최강대국이 될 지를 두고서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 뿐이듯이, 천하를 대표하는 국가 또한 하나여야 했다. 동로마도 브리튼도. 천하의 패권을 서로에게 양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 군주들은 양보를 모르는 탐욕스러운 성격이다.
동로마가 페르시아 제국을 격퇴.
동방 전선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단들이 일제히 서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는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보여준 맹위에 놀라서는 동로마를 향한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사방을 평정하고 대제에 자리에 오른 호스로 1세였음에도 동로마 제국은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천하는 누구의 것이 될 것인가?"
"천하의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동로마. 그리고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서로마. 이 둘의 경쟁이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수순이야."
로마 시민들은 주변 국가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루키우스가 1인자로 집권하기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브리튼과 패권을 다투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어느 시골의 범부들조차 예상할 법한 일이다. 루키우스는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조국인 로마가 2등 국가로 떨어지는 것을 치욕이라 여기는 성격이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브리튼과의 전쟁을 선포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선전포고는 하지 않았지만 페르시아 제국과 교전하면 로마 군단들이 일제히 서쪽으로 말머리를 돌리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곧, 서로마를 향한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어느 바보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수한 로마 군관들도 익히 알고 있는 문제였고, 특히 루키우스 휘하의 장수들은 브리튼과의 전쟁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이미 로마에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녀는 로마의 섭정관이었고, 지금은 정치적으로 배제된 유스티누스 2세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다.
지금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고, 동로마 제국은 철저히 루키우스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 그에 소요되는 물자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던 데다가 황후 소피아가 로마 황실의 국고에 메워둔 재물의 수 배에 달하는 양이었다. 로마 대군을 먹일 물자들을 관리하던 보급관들은 그 양을 보면서 기절초풍할 심정을 품었다.
"이렇게까지 소비되면 앞으로는 뭘 먹여?"
"가뭄이나 홍수가 벌어지거나, 제작년처럼 지진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시민들 먹일 구휼미에 대해서는 신경 쓰나."
이미 로마 관료들은 섭정관이 단단히도 브리튼에 미쳤다고 여겼다.
페르시아 제국과 전쟁이 끝난 것도 불과 한 달조차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전운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서쪽을 정벌하려는 루키우스의 행동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차라리 천하의 패권을 브리튼에게 넘겨주자, 라고 생각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오랜 전란으로 지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 대해서 반대하던 요인들은 정치적인 술수에 휘말려서 처형당하거나 유배를 떠나야만 했다. 황후 소피아를 따르던 의원들도 체포당했고, 외척 가문에게서 뇌물을 받고 유스티누스 2세의 옹립을 도운 원로원 또한 철폐당했다.
비록 원로원이 탐욕스럽다고는 하나, 그들은 귀족과 시민의 대표로서 정치인이 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일방적으로 구속하고 체포하는 것은 전대 황제가 만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루키우스는 철저히 독재를 펼치면서 전쟁을 단언했다.
------무언가에 씌였다.
10여 년 전에 브리튼과 동고트에게 패해하고난 뒤부터, 로마 제국에게 있어 브리튼이야말로 최고의 적수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루키우스만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훈족으로부터 지켜준 고마운 동맹국 정도로만 여겼고, 로마 황실의 카리나 황녀까지 브리튼의 황후가 되지 않았던가.
혼인 동맹까지 해놓고는 이제와서 전쟁을 수행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적어도 브리튼과 전쟁을 수행할 명분이 없었다. 그저 로마 시민들은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비세리온 왕을 질투하고 있다느니, 그도 아니면 애증의 감정 때문에 무리한 전쟁을 계획하였다던지 근거 없는 소문만이 나돌고 있을 뿐이다.
"아니, 진짜 전쟁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전대 황제께서는 이미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브리튼에게 주기로 했잖아."
"페르시아가 또 언제 올 지도 모르는데, 텅 비어버린 동방 전선이 신경 쓰여."
수근거리면서 온갖 의혹이 나돌았지만 정확한 사유는 아무도 모른다.
루키우스는 반 브리튼의 기치를 세웠고, 곧 로마 군부 또한 그에 찬동하여 브리튼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로마 황실의 독재를 막는 기능을 가진 원로원은 철폐. 그리고 황후 소피아까지도 구금당하면서 사실상 전쟁을 막기 어려워졌다. 괄괄한 성격의 루키우스가 전쟁을 놓칠 리가 없다. 그것도 천하의 패권을 걸 『마지막 전쟁』이라면 더더욱. 여러 명분과 이유를 가져다가 붙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루키우스는 자신이 천하의 패권이 걸린 마지막 전쟁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길 바랬다.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그 무명이 오랫동안 전해지기를 바랬다.
로마 제국을 떠올리면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며 언젠가는 정복왕의 필두로서 승리의 개선가와 함께 널리 찬양되고 싶었다.
들끓는 명예욕.
그리고 피 튀기는 전장.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언제나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치열한 수라장. 루키우스는 안락한 황궁보다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을 더 좋아하는 별종이었다. 그 별종이라는 성격 덕분에 그녀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섭정관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녀를 성공시킨 것은 '영원한 투쟁'였고, 그녀를 몰락시킬 요소 또한 '영원한 투쟁'일 것이다. 비세리온은 말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명장이며 전쟁군주라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패배가 있을 것임을. 이 세상에는 불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영원이라는 것도 없다. 영광이 있으면 몰락도 있을 것이고, 승리가 펼쳐진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패배로 종식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처럼 희대의 전쟁광이 그 주인공이라면.
그 일대기는 언제나 핏빛으로 장식될 것이고, 그 마지막 페이지는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브리튼 또한 로마 제국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서 전군에 비상령을 전파하고 갈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병력을 소집시켰다. 갈리아 지역을 비롯하여 게르마니아와 브리튼에 이르기까지.
서고트 왕국에서는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여 바다에서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베리아 반도를 다스리는 서고트 왕국으로서는 서로마 제국은 결코 무너져선 안 될 우방국이었고, 만약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다면 동로마 제국과 이베리아 반도에서 쟁탈전을 벌인 자신들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포위망을 발동할 때입니다!"
"로마 녀석들,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보라죠."
"훈족으로 가는 사신단은 제가 이끌겠습니다."
로마 제국이 그토록 등한시하였던 외교력.
브리튼은 결코 외교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로마 제국이 가차없이 버렸던 그 외교라는 것을 집어올렸다.
최대한 빨리 전령들을 파견하여 각국에 전달했다.
북방의 훈족과 게르만족. 서방의 서고트. 동방의 페르시아. 남방에서는 북아프리카에서 로마 제국의 속국 역할을 하던 소수민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루키우스가 본군을 이끌고서 갈리아 지역으로 진군한다면, 그 때야말로 로마 제국의 진정한 멸망으로 이어지리라.
물론 루키우스는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전쟁을 할 때가 아니고, 페르시아에게서 거둔 승리를 두고두고 이용해서 주변국들을 경계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그녀는 최고의 지략가였고, 세계의 흐름을 읽을 줄 하는 책사였다. 루키우스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각 주변국들의 공격에 의해 조국이 멸망당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위험성만큼이나 브리튼과 싸우고 싶다는 마음 또한 간절했다. 과연 천하의 패권을 건 마지막 전쟁은 어떠한 느낌일까. 분명 숙명을 좌우하고 각 제국과 그를 따르는 속국들의 생사까지도 결정내릴 최고의 전쟁이겠지.
가슴이 떨린다.
과연 로마 제국이 승리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브리튼일까.
-----아니면 다른 변수가 생겨날까.
그것이 너무 기대되어 참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