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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쟁란
003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아르메니아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되었다. 당연히 조로아스터교를 숭상하는 페르시아 제국으로서는 선전포고와 다름 없었다. 아르메니아가 로마 제국의 속국이라서 기독교도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조로아스터교를 섬기는 귀족과 시민들도 충분히 많았다.
하지만 아르메니아는 그들을 모두 처형하거나 추방시키면서 사태를 확산시킨다. 페르시아 제국은 황실부터 시작해서 귀족과 신자들부터가 모두 조로아스터교를 섬겼을 뿐더러, 페르시아의 중추 조직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황제 호스로 1세조차도 두려워할 정도의 종교적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메니아를 공격하라!"
"조로아스터 교를 구하라!"
"로마를 이번에야말로 멸망시키자----!!"
질리지도 않은 것인지 페르시아 제국은 또다시 동로마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내리고는 아르메니아로 진격하였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를 선포하면서 당연히 동로마 제국에 도움을 요청, 동방 전선에 미리 로마 군단을 주둔시키고 있던 집정관 루키우스가 지휘권을 잡으면서 페르시아의 공격에 반격을 날려버렸다. 마치 페르시아가 공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였다. 실제로 루키우스는 미리 예상하고 있었고, 페르시아의 공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한편 브리튼은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황궁에서 하는 것도 없이 펜 세우기를 반복. 무능한 정치가가 과연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었다.
애초에 브리튼- 서로마 제국에서는 그 어떠한 전쟁 사업도 없었고, 그저 게르마니아 지역과 갈리아 지역에서 소규모적인 집단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군주인 내가 신경쓸 건 아닌 사이즈라고 할까.
그저 부족들끼리 싸우는 전투에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지.
부족들을 강제적으로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일 뿐이다.
수도를 갈리아 지역의 루테시아로 천도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루테시아에서는 거대한 규모의 황궁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물론 몇 개월 내로 완공될 사업은 아니다. 언제 쯤이면 완공되려나. 적어도 4년 이상은 걸릴 거라고 하던데. 그 기간 전까지는 카멜롯이 수도로 남아있을 것이다.
"우와, 심심하다. 대체 나는 뭘 위해서 황제가 된 걸까."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관료로 삼았고, 아그라베인과 케이가 워낙에 열심히 해주고 있는 탓에 황제는 마냥 손에 잡을 업무가 없었다. 조금 남아있던 업무들은 오전이 모두 지나기 전에 끝내버렸고, 막상 할 일이 없어지니 집무실에서 시간만 축내고 있었다. 너무 부지런해서 과로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던 과거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아바마마, 이제 진짜 백수가 된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우리 딸, 오늘도 아바마마랑 놀까."
"싫어. 나도 바쁘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브리튼의 제일가는 바보였던 모드레드가 나가버렸다.
이미 브리튼 기사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실력을 가지게 된 서로마 제국의 황녀님은 1인분을 하기 시작했고, 딸내미가 바빠지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어졌다. 모르간도 마법 공방에 틀어박혀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고. 나는 누구하고 지내야 하나.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
이걸 두고서 갱년기라고 부르는 건가.
갱년기는 여자만 걸리는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남자도 앓기 시작한 걸까. 인생의 허망함이 든다. 브리튼을 통일할 당시에 마음껏 싸우러 돌아다니는 편이 훨씬 재밌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전쟁을 즐기게 된 모양이다. 전쟁을 즐겨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아무래도 전쟁광의 모습을 가지게 된 걸까.
"폐하, 여기 결재를 해주셔야 할 서류입니다."
집무실에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들어왔다.
아그라베인이다.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소녀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 미녀였다. 브리튼의 내정관을 맡고 있는 소녀는 집무실의 문을 열면서 들어와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별다른 일은 아니다. 그녀는 종종 황제의 직인을 필요로 하면 내 집무실로 자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에 손을 얹었다.
마치 변태스러운 주인다운 모습이다.
"오늘 나는 적적한데."
"저는 바쁩니다."
탁, 하고 내 손길을 쳐냈다.
아그라베인의 직설적인 모습에 멋쩍인 심정이 들었다. 과거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매력이 사라진 건가. 빨리 멀린을 호출해야 하겠는데.
004
예상대로 미리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동로마 제국은 페르시아의 전력을 가볍게 꺾어내면서 아르메니아를 침입한 외적에 대해서 훌륭하게 대처했다. 아르메니아를 포함해서 시리아 등의 중동 국가들은 동로마 덕분에 구사일생의 심정으로 페르시아로부터 영토를 지킬 수 있었고, 다시 한 번 동로마는 페르시아를 쓰러트림으로서 강건함을 인정해냈다.
"페르시아도 별것 없구만!"
"우리가 이길 줄 알았다니까?"
"하하핫! 우리 로마는 지지 않는다고."
동로마 병사들도 강국 페르시아로부터 거둔 값진 승리에 크게 고무되어 만세를 불렀다.
황제 유스티누스 2세가 무능하여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였지만,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가진 용맹과 귀신같은 지략은 페르시아조차 굴복시켰다. 정작 동로마 황제는 정신병에 걸린 환자처럼 페르시아의 호스로 1세가 온다는 말에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고, 외침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이 바로 루키우스였다.
그렇기 극명적인 반응을 보이자 로마 군부에서는 서서히 반란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무능한 황제 따위는 필요없다. 애초에 로마 제국은 무능한 황제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용도 없었다. 황제를 지키는 근위병이 나서서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일이 잦았고, 지금이 바로 그 때였다.
유스티누스 2세를 퇴위시키고,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자.
근위병을 포함해서 여러 로마 군관들이 그렇게 다짐하며 서로 약속했다.
동로마 제국의 군단들은 대부분 동방 전선에 투입된 상태였거, 그 전선을 총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루키우스였다. 로마의 8할에 달하는 군단들이 모두 그녀의 휘하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병력을 이끄는 군단장들 또한 루키우스와 함께 10여 년 동안이나 함께한 부하들이었다.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되자 황후 소피아는 유스티누스 2세의 모든 직권을 빼앗아버리고는, 황제의 모든 직권을 루키우스에게 주며, 그녀를 섭정관으로 임명해버렸다. 황족 일가를 모두 죽이는 것을 피하는 대신에, 그녀에게 모든 권력을 주었다. 황후 소피아로서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일지도 모른다.
루키우스로서도 과도하게 극단적인 '반란'보다는 황실로부터 공식적인 섭정의 자리를 받는 것이 이득이다. 분명 쿠데타를 일으켜버린다면 원로원은 크게 반대할 것이고, 로마 시민들의 민심이 흔들릴 우려가 있었다.
"루키우스 전하. 노리시는 것은....."
"역시 브리튼이시옵니까?"
"하지만 페르시아를 물리친 직후인데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무리합니다."
루키우스 휘하의 장수들은 '브리튼'을 결코 '서로마 제국'이라 부르지 않았다.
로마의 군부 요인들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훈족을 막기 위해서 브리튼과 체결한 조약에 대해서 거부했고, 그것은 야만족의 침입으로 정신이 혼란스러워진 황제가 내린 실수였을 뿐이라며 브리튼과의 조약은 무효라고 주장해버렸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결코 로마의 반쪽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적어도 로마 통일제국의 옛 영토를 모두 점령하여 지중해의 대제국으로 거듭나고자 하였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유지를 지켜야 했다. 그것이 바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의 야망이자 목표였다. 그녀에게 있어 진정한 적은 페르시아 제국이 아니라 브리튼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녀는 직접적으로 비세리온과 싸워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 차 있었다. 브리튼을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제 페르시아는 설치지 못 해. 북방 초원의 야만족들도 마찬가지겠지. 이미 솎아낼 만큼 모조리 솎아냈어."
"브리튼과 전쟁이군요!"
로마 군부는 브리튼 침공에 대해서는 찬성했다.
원로원과 귀족들은 형편이 어려운 로마 제국의 실상을 두고서 전쟁에 반대했지만, 이미 로마의 최고 권력자에 올라버린 루키우스를 막을 수는 없었다. 로마 황실은 이미 모든 전권을 내려놓아버렸고, 루키우스가 모든 전권을 쥐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루키우스의 의지가 바로 로마의 의지였고, 그녀가 결단을 내렸다는 것은 로마 제국이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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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결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