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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180화 (18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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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지 황제

009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유스티누스 2세에 대한 무능을 규탄하는 여론이 높아져만 갔다.

처음에는 롬바르드 족과 아바르 족에게 매년 바치던 연공을 중단하고, 로마 시민들의 세금을 깎는 등의 선정으로 초반에는 인기를 끌었지만 뒤이어 터지기 시작한 문제로 인해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롬바르드 족과 아바르 족이 반란을 일으키며 로마 변경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에 준비조차 되지 않은 로마 군단은 동요하고 있었다.

초반에 세율 인하 등의 정책에 대해서 찬성을 보내던 로마 시민들이 이제는 유스티누스 2세에 대해서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혔고, 신임 황제는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유스티누스 2세로서도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매우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로마의 국고에 대해서는 철저히 절약을 하면서 사용하였고, 그 덕분에 천문학적인 재산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10여 년 전 동고트 왕국과의 전쟁 당시에 이민족 군대를 고용하기 위해서 나르세스가 어마어마하게 사용해버렸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이탈리아를 복구하느라 물 쓰듯이 써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전염병에 걸리면서 텅텅 비어버린 국고를 충당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아니, 무슨 국고에 재물은 없고 차용증 밖에 없는 건가!"

로마 제국은 겉보기에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속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에 높은 이자로 돈을 연이어 빌리는 바람에 국고가 텅텅 비어버렸다.

매년 늘어나는 이자를 갚기에도 빠듯한 실정이었고, 최강대국을 자칭하던 로마 제국은 서서히 망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바치는 세금들이 타국의 이자를 갚는 데만 모조리 사용되니 문제가 커져버린 것이다.

또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즉위 말기에 변경 군대에게 봉급 체불을 대량으로 저질러, 그들의 인내심이 거의 폭발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봉급을 받지 못하고 가난에 빠진 군대는 무섭다. 국경선에 주둔하고 있든 군단병들은 벌써 몇 년이고 세금을 받지 못했고, 그를 떼우고자 인근 민가를 약탈하고 도시에 쳐들어가 횡포를 놓는 등 도적과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퇴화된 상태였다.

"황후, 외가에서 돈을 좀 빌려주시오. 우선 가난한 국고라도 메워야하지 않겠소?"

".....알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나라가 도탄에 빠지자 소피아 황후 또한 그를 받아들였다.

제물은 아깝지만 제국이 멸망하고나면 무용지물이 될 일이다. 그리고 소피아는 언젠가 국고를 충당하기 위해서 기부한 금액의 몇 배에 달하는 이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그 믿음이 훗날에 실천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보였지만.

우선 로마의 변경을 공격하기 시작한 아바르 족과 롬바르드족에 한해서는 근위대의 상급장교였던 티베리우스를 보내어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한편 루키우스와 나르세스는 이탈리아를 거점으로 잡고서 반란을 일으켰고, 로마의 교황은 그들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내놓아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로마를 혼란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로마 황실은 시민들의 규탄을 받고 있었는데, 막상 교황이 애매한 답변을 내놓으면서 이탈리아의 반란에 대해서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황후 소피아는 사신을 보내어 교황에게서 '신의 이름으로 반란군을 추포하기 위한 토벌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교황 비길리우스가 거절했다. 교황이 보기에는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전력이 만만치가 않아 보였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남기기 싫어서 중립을 선택한 것이다.

"브리튼으로 보낸 지원군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유스티누스 2세가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는 브리튼으로 보낸 사신단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그리 좋지 못했다. 브리튼은 우선적으로 3만의 병력을 보내어 갈리아 동부 지역에 주둔시키는 것으로 이탈리아를 견제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고,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것을 피했다. 중립을 유지하려는 로마 교황과 비슷한 모습이다. 비세리온과 비길리우스는 로마를 지원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우선 루키우스 전하와는 화친을 고려해주십시오."

"맞습니다. 루키우스 전하와 나르세스 장군을 휘하로 들인다면 적어도 이민족의 침입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마가 브리튼에게 넘어가버렸는데, 지금의 제국을 또다시 양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원로원은 외척 가문에서 뇌물을 받아먹을 때는 언제고, 제국이 또다시 위험을 겪기 시작하자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와 화친을 제의했다.

그렇지 않아도 페르시아 전선에서 이상이 감지되었음을 보고 받았다. 유스티누스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들과 맺은 화친 조약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그는 이미 죽었다.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은 장본인이 죽어버리자 그 동맹 조약은 종잇조가리에 불과하게 되었다.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에 위치한 완충지역 아르메니아에서 무언가 소란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고, 로마의 발칸반도에서는 아바르 족이,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롬바르드족이 발호했다. 황실에서는 티베리우스를 파견하여 이들을 물리치고자 하였으나, 아바르 족의 공세를 막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민족에게 지불하던 연공이 너무 과도하게 많다고 생각하여 중단해버렸는데 오히려, 야만족들이 국경선을 넘어 약탈을 저지르는 통에 연공의 수십 배에 달하는 피해가 생겼다. 그를 들은 귀족들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전대 황제께서 야만족들에게 매년 연공을 지불한 이유가 있었군."

"예, 유스티니아누스 폐하께서는 로마 군단을 재편성하기 위해서 시간을 벌고자 하셨던 겁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서거하시는 바람에.... 문제가 터진 거죠."

"이제와서 깨달아봤자 어떻게 할 거요? 무작정 연공을 중단해버린 탓에 야만족들이 쳐들어오지 않소?"

로마 황실에서 파견한 티베리우스는 유능한 장군이었지만, 현재 제국이 떠맡고 있는 병력 부족으로 인해 문제가 커졌다. 야만족을 막아내기 위한 병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능한 로마 군관들은 모두 이탈리아로 망명해버렸고, 병사들도 로마 황실에 바치던 충성을 거부하고 달아나버렸다.

그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자 로마 황실은 은괴 8만 개를 상납하는 조건으로 발칸 반도를공격하던 아바르 족과 협상에 들어갔다.

돈을 주고 평화를 산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별다를 바가 없는 정책이었지만, 그 연공에 지불되는 금액이 터무니 없이 늘어나버렸다.

적어도 전대 황제는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야만족들도 두려워하여 연공을 크게 요구하진 못했지만, 지금의 로마 제국은 몰락하기 직전인 상황이라 마음껏 요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로마 제국의 여자들을 공물로 바치라고 요구하기까지에 이르렀다.

010

로마 황실에 재기불능에까지 이르자 이탈리아에서 주둔하고 있던 루키우스가 움직였다.

이대로는 로마 제국이 진짜로 멸망하게 생겼다, 라고 판단한 루키우스는 3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로 나아가 롬바르드 족과 전쟁을 벌였고, 불과 1개월도 되지 않아서 전쟁에서 승리했다. 무례할 정도로 로마 제국에 행패를 부리던 롬바르드 족을 멸족 직전까지 만들어버리고는 그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었다.

"로마를 구하라!"

"우리끼리 내전을 벌일 때가 아니다!"

"진군하라, 로마 병사들아-----!!"

이탈리아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로마인의 긍지가 깨어났다.

도저히 내전을 벌일 때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스티누스를 처참하게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크나큰 원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대로 동로마가 둘로 나뉘어 내전을 일으킨다면 로마가 멸망하리라는 결과는 누구나 예상할 법한 일이다. 조국을 위해서라도 자존심을 억눌러야 한다.

오히려 로마 황실에 먼저 화친을 제의한 것은 루키우스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동생을 죽인 원흉에 대해서는 용서할 생각이 없었고, 우선 황후의 친부와 그와 연관된 혈족들을 모두 처형시키고 유배보내는 것으로 그 울분을 풀었다. 또한 로마 황실의 이름으로 대장군 유스티누스를 성인으로 인정하며, 유스티누스 2세에게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사죄를 하라고 요구했다.

유스티누스 2세는 궁지에 몰린 상태였기에 못할 것도 없었고, 루키우스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이행했다. 그러고 나서야 루키우스와 유스티누스 2세는 공동 전선을 맺게 되었다.

유스티누스 2세를 황제로 인정하는 대신에, 로마 군부를 총책임지는 대장군의 직위를 루키우스에게 넘겼다. 그리고 원로원을 총괄하는 집정관의 자격까지 부여했다. 무능한 황제는 뒤로 물러나 바지사장이 되어버렸고, 명실상부 루키우스가 로마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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