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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174화 (17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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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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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다.

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모여든 각국의 사신단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브리튼의 사신단을 대표하는 케이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의라고는 전혀 모르는 이 소녀를 사신단의 대표로 보낸 비세리온도 어지간히 미쳐버린 군주였지만, 지금 로마에서 돌아가는 정세를 보면 더 미쳐버린 것이 틀림없다.

로마 황실은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는지 각국의 사신단과 회합을 가지기로 한 행사조차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리고는 원로원 회의를 열어서 뒤숭숭한 정국을 헤쳐나가려고 하였는데, 매번 옥좌의 주인을 가려내는 선별 작업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로마가 단단히도 미쳐버린 게 확실해. 루니어라는 새끼는 대체 누구야?"

"저희 브리튼에서도..... 전혀 정보가 없는 인물입니다."

"만약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하는 잠룡이라면 웃기는 이야기겠지만.... 만약 진짜로 얼간이에다가 반푼이라서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면.... 로마는 끝장이야."

"그렇군요. 하지만 그런 반푼이가 황제로 즉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로마에는 유스티누스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

그는 황제로 역임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을 뿐더러, 귀족과 시민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인기도 높았다. 문무양도의 천재. 그런 인재를 황제로 추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실책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얼간이 황자라고 불리는 루니어를 대신하여 그의 아내였던 소피아가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한다. 대장군 유스티누스와 그의 누이인 루키우스, 그리고 수많은 로마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역사가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루니어 황자의 아내인 소피아는 외척이 보유하고 있던 막대한 재산을 풀어서 원로원을 설득시켰다. 소피아의 가문은 고리대금을 생업으로 삼는 대귀족 가문으로, 동고트 전쟁 시절부터 부족해진 곡물의 값을 수십 배나 인상시키면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었다. 셈에 능하고 기회를 노릴 줄 안다. 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것에 두려움이 없으며, 황실을 농단하고 귀족들을 구슬릴 줄도 알았다.

현명하고 이지적인 재녀의 활약으로 원로원들이 곧바로 유스티누스를 버리고 루니어의 편을 들었다. 물론 자신의 소신을 지킬 줄 아는 의원들은 그 행태에 반박하면서 유스티누스를 지원하였지만, 황제의 유언을 받들었다는 칼리니쿠스의 주장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그 의지까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임종 직전에 자신의 조카인 루니어 황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고 유언을 남긴 것이라면 명분만큼은 저쪽에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유언을 발표한 집정관 칼리니쿠스의 주장에 유스티누스 또한 망설이고 있었다. 만약 집정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음 황제에 올라야하는 것은 루니어가 아닐까. 지금은 죽고 사라진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였던 장군이었기에 망설이는 것은 당연했다.

루키우스가 반박했다.

"현명하셨던 폐하께서 저런 얼간이를 다음 황제로 지목할 리가 없잖아! 이 어리석은 녀석아!"

"하지만..... 로마에 수십 년 간에 걸쳐서 봉사하였던 칼리니쿠스 집정관이 거짓을 논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 게르마누스와 함께 집정관 2인 체제를 맡고 있었던 인물이 바로 칼리니쿠스였다.

그 대귀족이 설마 황제의 유언을 거짓으로 발표했을 리도 없다. 애석한 것은 황제의 유언을 지척에서 들은 사람이 집정관 칼리니쿠스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황자비 소피아가 뇌물공세를 펼치면서 원로원을 구워삼기 시작했고, 근위대 중에서도 상급장교 티베리우스라는 자 또한 부하들과 함께 루니어 황자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유스티누스가 흔들렸다.

"그래서 이대로 발을 뺄 셈이야? 황제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너야. 루니어 따위가 만약 황제에 오른다면 네 운명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넌 진짜로 죽어."

"저 따위보다 루니어 황자가 황제에 오른다면.... 피폐해진 로마를 재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얼간이에게 그런 대업이 가능하겠어?!"

하지만 원로원들의 대다수가 루니어 황자를 지목하며 황제로 추대하였고, 고작 뇌물공세에 의해서 유스티누스를 지지하던 성명을 철회하고 루니어를 선택한 것이다. 피폐해진 소아시아 일대에 영토를 두고 있는 귀족들은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재물이 없었고, 황자비 소피아는 귀족들의 가난을 이용하여 그들에게서 충성을 얻어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로 벌어졌다.

원로원들이 하루 아침에 자신의 의견을 철회해버린 것이다. 그 선택에 루키우스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바깥의 시민들은 유스티누스가 황제가 되는 줄로만 알고 축제를 벌이고 있었고, 타국에서도 사신단들이 와서는 유스티누스의 즉위를 축하하고 있었다.

잠정적인 적국인 페르시아와 브리튼, 서고트에서도 유스티누스의 즉위를 환영한다는 각 국가원수들의 친서까지 도착하는 마당에 갑자기 황위 계승자를 바꾼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적어도 타국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 루키우스였지만, 그녀조차도 타국의 눈치를 보게 될 정도로 이번 황위 계승권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반푼이 따위에게 황좌를 빼앗기겠어."

유스티누스는 회의감에 젖어서 아무런 반응조차 취하지 않았고, 결국 루키우스 독단으로 자신이 페르시아 전선에서 복무하던 당시에 이끌었던 병단들을 이끌고서 황궁으로 나아갔다.

무력으로라도 황위를 빼앗기는 것을 막아설 셈이다. 그 병력은 적었다. 수도 방위 사령관을 맡고 있는 유스티누스가 병력을 일으킨다면 곧바로 해결될 문제였지만, 유스티누스는 원로원의 지지 성명에 루니어에게 황위를 넘겨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인재였지만 욕심이 없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황제가 될 수 있었음에도 로마에서 내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루키우스는 다르다.

얼간이가 옥좌의 주인이 된다면 로마는 파멸할지도 모른다. 그런 꼴을 볼 바에야 차라리 얼간이 황제를 죽여버리고 자신도 역적의 주범으로 몰려서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지금부터 원로원을 쳐부수고 돈에 눈이 멀어버린 로마 의원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예. 황녀 전하."

"황녀 전하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은발의 여기사를 따라서 원로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이미 황실 근위대를 이끄는 티베리우스가 버티고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황자비 소피아와 내통하고 있는 근위장으로, 상급 장교에 해당되는 장수였기에 이끌고 있는 근위병들이 많았다.

"여기는 원로원입니다. 무장을 해제하십시오, 황녀 전하."

"닥쳐라. 그 망할 애새끼를 죽여버리고 황위 계승을 막아버릴 테니까."

루키우스가 뽑아든 플로렌트에서 푸른 전격이 넘실거렸다.

오로지 로마의 직계 황족만이 다룰 수 있다고 여겨지는 성검 플로렌트. 그를 보고서 티베리우스가 뒤로 물러섰다. 지금 피바람이 몰아친다면 원로원은 지키는 근위대는 물론 그 안에 있는 귀족들까지 모두 도륙당하고 말 것이다. 적어도 루키우스는 일당백에 해당되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 휘하의 장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제적으로 밀어붙이려 하자, 티베리우스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여기서 루키우스가 피바람을 일으킨다면 로마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루키우스가 일으킨 쿠데타로 인해서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페르시아와 브리튼이 된다.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루키우스를 막아선 것은 유스티누스였다.

수도 방위 사령관을 맡고 있는 그는 누이 루키우스를 막아섰고, 그녀를 설득하여 쿠데타를 막고자 했다. 자신을 황위로 올리기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그런 방법으로 로마에 피해를 줄 수는 없다. 내전이 발발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고, 로마는 다시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된다.

그것을 두려워 한 유스티누스는 결국 황위 계승권을 포기.

루니어 황자는 원로원들의 추대를 받아서 '유스티누스 2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얼간이에다가 직계 황족인 주제에 겁쟁이라서 전쟁 경험조차 없는 머저리가 황좌의 주인이 된 것이다. 명군이자 대제로까지 추앙을 받았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든 업적과 영토 확장 정책까지도 송두리 째로 날려먹는 '실지 황제'의 등장을 알렸다.

유스티누스 2세는 가장 먼저 황족들을 모두 불러모은 다음에 사령관 유스티누스에게 대장군의 직함을 내리면서 로마 군부를 맡겼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적어도 신임 황제는 유스티누스의 위명을 두려워하여 로마의 2인자 자리를 준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날에 반역죄로 물려서 지하감옥에 갇혔고, 또 그 다음날에는 반역죄를 용서하는 척을 하면서 이집트의 총독으로 보내버렸다. 유스티누스는 이집트 총독으로서 알렌산드리아에서 업무를 본 지 이틀만에 암살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면서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말았다.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았던 천재가 죽었다.

이름 없는 암살자들에게 목이 잘려서 콘스탄티노플에 전시되었다. 모든 것은 황후 소피아의 계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의 분노가 폭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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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에이 로마가 병신도 아니고 왜 저런 병크를 저질러요?

A: 실제로 저랬다.

유스티누스 2세는 삼촌 유스티니아누스가 반평생에 걸쳐서 쌓은 업적을 싹싹 긁어서 말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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