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71화 (17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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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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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가 미흐로에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기는 하였지만, 페르시아 병력들이 모두 철수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격을 노리면서 라지카 왕국에 체류했다. 페르시아 군대는 여전히 라지카 동북부의 고지대를 점령하고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라지카 왕국의 수도인 아르카에오폴리스를 굽어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루키우스로서는 방심할 수 없는 전황이었고, 페르시아의 황제 호스로 1세가 다시금 지원군을 파병하면서 미흐로에가 반격을 할 수 있는 전력을 얻게 된다. 한편 루키우스는 로마 본국에서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로마 속국에서 갖은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정작 본국에서는 어떠한 지원도 없다.

훈족을 모두 몰아내었다고는 하나 소아시아 일대는 폐허가 되어버렸고, 훈족을 두려워하여 뿔뿔히 흩어진 로마 시민들을 규합하지도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지원이 오고는 있었지만 그 물자들은 소아시아 일대의 재건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루키우스는 고립무원에서 지원도 없이 페르시아 대군과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브리튼 따위에게 과거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모두 넘기기로 합의를 봤다고요----!!"

"어떻게 폐하께서 그러한 결단을....."

"우리가 부덕한 탓이다. 일찍히 페르시아를 무찔렀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터."

"이건 국치입니다!"

대 페르시아 전선에 해당되는 라지카 왕국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단들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전해온 소식을 비교적 늦게 전해들었다. 워낙에 거리가 멀었던 탓에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늦어진 탓이다.

로마의 운명을 뒤바꿀 소식을 듣고서는 로마 장수들이 비분강개하며 항의하였고, 천하의 절반을 브리튼 따위에게 넘긴다는 것에 분노했다. 루키우스 휘하의 군관과 장교들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에 가까운 사상과 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평민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은 로마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자들로 오로지 애국심으로 움직이는 진정한 군인들이다.

로마 군인으로서 과거 로마의 영토였던 지역을 브리튼에게 넘기기로 서약을 체결하였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과거 지중해를 모두 장악하였던 로마의 위광을 되찾을 수 없게 된다. 완벽에 가까웠던 초강대국의 꿈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었다.

"교황...!!"

"교황이 뒤에서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 없습니다."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로마와 브리튼을 저울질할 셈인가."

우수한 교육을 철저히 받은 장교들은 '서로마 제국의 부활'과 관련되어 그 배후에는 교황 비길리우스가 있을 것이라 단번에 알아차렸다.

빌어쳐먹게도 신의 대리자라고 불리는 교황은 훈족에게 치명상을 입은 동로마를 등한시하고 브리튼과 손을 잡았다. 브리튼 왕국을 제국으로 격상시키고 서로마 제국의 영토와 모든 영광, 그리고 명예와 긍지까지 모조리 넘겨버릴 셈이다. 그렇게까지 브리튼의 힘을 키워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저 자신과 신의 영역을 지켜줄 수호자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리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손을 잡았던 교황이지만, 그가 병이 들고 이민족의 침입에 영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실망하여 브리튼에게 변절했다. 하지만 이것은 배반이다, 역적질이다!

애초에 비길리우스라는 자를 교황에 앉힌 것은 로마였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였다. 자신을 교황의 자리에 앉게 해준 은인을 배반하였다. 로마 군부는 교황에 대해서 이를 갈았고, 교황의 새로운 수호자가 된 브리튼을 저주했다. 당치도 않게도 그들은 나라를 도둑질했다. 황제 폐하께서 반평생에 걸쳐서 이룩한 모든 업적을 훔쳤다. 로마의 영광과 모든 위광까지도.... 모든 것을 빼앗겼다.

루키우스가 말했다.

"당장 페르시아 잡놈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콘스탄티노플로 귀환한다."

"예!"

그들은 여세를 몰아서 명장 미흐로에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로마 군관들은 지난번의 대패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던 노장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페르시아 경기병대와 궁기병대들이 사막을 뚫고서 라지카 왕국까지 강습하였고, 그들은 사막의 폭풍을 연상시킬 정도로 과감하게 텔레피스에서 로마 대군을 대패시켜버린다. 지난번에 루키우스가 동원하였던 전략과 똑같은 전법이다.

텔레피스 전투.

라지카 왕국에 잔존하고 있는 병력과 동맹을 이룬 로마 대군이 텔레피스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마침 모래 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었음으로 페르시아의 낙타 기병대가 로마의 후방을 공격하여 기습에 성공했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모래 폭풍으로 인하여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었고, 허를 찔렸다.

라지카 - 동로마 동맹군은 남부의 네소스로 퇴각.

페르시아는 단번에 라지카 왕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위성도시였던 오노구리스를 함락시킨다. 라지카의 수도 아르카에오폴리스 주변의 도시들을 모두 점령하고, 40여 개에 달하는 성까지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수도까지는 미처 함락시키지 못했다.

사태가 계속해서 악화되자 로마 황제는 어려운 사정에도 라지카 왕국에 지원군을 파병하였다. 총 1만에 달하는 지원군과 함께 그를 이끄는 지휘관은 과거 집정관이었던 게르마누스의 아들이자 로마의 명장이라 불리는 유스티누스였다.

브리튼에 사신단으로 파견된 적이 있는 유스티누스가 지원군의 지휘관으로 오자, 루키우스는 당장에 그를 호출했다.

물론 부른 이유는 명확하다.

"어째서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거야? 콘스탄티노플이라면 적어도 1년 이상은 버틸 수 있었을 텐데!"

"누님. 저희는 4개월 동안 버텼습니다."

"1년 이상을 버틸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잖아!"

"그러면 시민들은 어떻게 합니까? 굶주려서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시민들을 희생시켜야 합니까? 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명예는 과연 명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루키우스의 새파란 벽안이 살의로 번뜩였다.

브리튼에게 선수를 빼앗겨버렸다. 물론 그 과정에 유스티누스가 비세리온 왕에게 부탁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을 부채질한 것은 교황이다. 친 브리튼 성향을 가진 귀족들까지도 그에 개입하였겠지. 애초에 루키우스는 자신의 여동생인 카리나를 브리튼에 넘기는 것에도 크게 반대했다.

로마는 대제국이며, 결코 브리튼 따위에게 물러날 수 없었다.

적어도 대제국으로서의 위명과 명예를 지켜야 했다. 수많은 전투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서 얻은 긍지. 설령 수십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살해당한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대제국의 이름을 지켜야만 하였다.

그런데 겨우 10만의 훈족들에 두려움을 느끼고서 브리튼이 원군을 요청하였다.

비참하고, 추잡하게. 비굴하고 나약하게.

대제국이 서쪽 끝에 위치한 섬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노려지자 로마인들은 과거의 긍지와 명예를 망각하고 오로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야만족들에게 구원을 바랬다.

로마인들이 가진 드높은 용기와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포부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만약에 또다시 제국이 멸망할 위기에 노출된다면 로마인들은 스스로 싸우기를 주저하고, 또다시 브리튼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이미 로마인들은 타국의 조력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싸우기를 주저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구걸한다.

야만인들에게 긍지를 바치며 자비를 바란다.

지금으로부터 수백년 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제 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을 적에도 이렇게까지 비굴하지는 않았다. 설령 뛰어난 명장이 공격을 걸어온다고 할지라도 모든 로마인들이 협심하여 외세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바르카를 격파해냈다. 카르타고를 멸망시켰다.

그것들은 모두 로마인들에게 하나된 용기와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로마인들이 가지고 있던 용맹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훈족이 무섭고 두려워서 외세에 도움을 요청했다?

치욕이다.

이건 더없을 치욕이며 굴욕이다.

"예, 누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페르시아 전선은 길어지고 훈족을 내려오는데 본국으로서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속국들까지도 일제히 배반하여 지원을 끊어버리는 데 어쩌란 말입니까? 그리고.... 시민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외세의 힘을 빌려서까지 시민들을 지키고 싶었다고? 애초에 외적이 쳐들어왔는데도 손가락이나 빨면서 구경한 녀석들에게 '로마 시민'이라는 자격은 과분해. 그저 외세의 힘을 바라면서 신 따위에게 기도나 했겠지."

로마를 위해서 싸우지 않는 자들은 로마인이 아니다.

로마 시민이라고 할 자격도 없다.

진정한 로마인이라면 외세의 침공에 무기를 들고서 싸웠으리라.

군인에게만 전쟁을 맡기고 시민이라 자청하는 나약한 자들은 그저 생존만을 기도했다.

-----역겹다.

루키우스는 진심으로 콘스탄티노플의 시민들을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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