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69화 (16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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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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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과 훈족.

그 대전(大戰)의 결과에서 승리를 거둔 승전국은 브리튼이다.

다수의 훈족들은 중심점을 잃어버린 채로 다시 아나스타시우스 성벽을 넘어서 도주하였다. 북방의 초원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훈족은 이미 소아시아 일대를 약탈하면서 다수의 전리품을 얻었기 때문에 승리에 목말라하는 경향은 없었다.

애초에 훈족의 대왕 자베르간이 전사하고 훈족의 정예 기병대까지 몰살당한 데다가 슬라브족 - 튀르크족의 동맹군까지 전멸하였으니 이길 가망성이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훈족은 뒤늦게 자베르간의 죽음을 전해듣고는 부족들끼리 뿔뿔히 흩어졌다.

콘스탄티노플 대전.

훈족 15만과 브리튼 12만의 접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브리튼이었고, 하룻밤 사이에 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 집결하여 싸운 것치고는 단기간에 결판이 나버렸다.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이 집결하여 전쟁이 시작되면 적게는 한 달, 길게는 10여 년까지도 이어진다. 그런데도 고작 하룻밤 사이에 그 결단이 나버렸다.

훈족으로서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기 위해서라도 당장에 브리튼을 박살내고 싶었을 것이고, 브리튼으로서는 그를 막아야 했기 때문에 단기전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서로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전투가 끝났다. 훈족의 6만 대군은 몰살. 반면에 브리튼은 3만에 달하는 병력을 소실하였다.

원탁의 기사였던 펠레노어가 전사하고, 이롬 높은 기사들이 다수 사망하면서 병력의 소실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가장 치열했던 중앙군에서 그 피해가 확산되었다. 브리튼 또한 3만이라는 병력의 소실은 결코 적지 않았고, 그 치명상을 떠안고서 승리의 개선가를 불렀다.

"이겼다아아아아!!"

"그 신의 채찍을 상대로 이기다니!"

"훈족도 별거 없던 걸?"

브리튼으로서도 전멸의 위기를 겪었던 만큼이나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훈족을 격파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얻은 전리품은 적었지만, 이번 전쟁의 여파는 세계를 크게 격변시키기에 충분하다. 최종적인 승리자는 브리튼이 되었으며, 가장 강성한 전력을 가진 국가는 브리튼이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아직까지도 로마 제국은 페르시아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고, 훈족도 일시적으로 물러났다지만 언젠가는 다시금 제 2의 자베르간, 제 3의 자베르간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훈족이지만, 그들은 애초에 부족끼리 세력을 결속시키는 유목 민족에 불과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로마와 전쟁을 실시할 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루칸 경께서도 전사하였습니다."

"브루노어, 에렉, 라이오넬 경께서도 부상을 이기시지 못하시고...."

"멜리오트 경도 부상이 너무 심하여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실력 좋은 기사들을 다수 소실.

브리튼 진영은 최대한 병력의 소실을 숨기고는 싸늘하게 죽은 훈족의 시체를 불태우면서 승리자로서의 위명을 알렸다. 총 6만에 달하는 적 병력을 죽였고, 3만에 달하는 아군 병력이 소실되었다. 도합 9만 명에 달하는 병력들의 목숨이 고작 하룻밤 사이에 덧없이 사라졌다.

그 소식을 들은 로마 시민들은 "신조차 고개를 돌릴 끔찍한 전투였다." "그토록 처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비가 바다를 이루었다." 라고 평가를 내릴 정도로 콘스탄티노플에서 벌어진 전쟁은 지금까지 벌어졌던 전쟁과는 그 격을 달리하는 스케일로 이루어졌다.

물론 수십만의 대군을 동원한 전쟁은 인류사에 매번 있어왔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아군과 적군을 포함하여 9만에 달하는 병력들이 싸그리 죽어나간 적은 없었다.

"팔라메데스, 부상병은 서둘러 이송조치를 내리고, 멀쩡한 군사들을 차출하여 콘스탄티노플로 집결하도록."

"알겠습니다."

사라센 여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레인트는 부상이 심했고,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웨인과 가레스 자매는 브리튼 기사들을 선발하여 열을 맞추고 있었고, 퍼시벌은 아군 사망자를 옮기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일이 끝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바빠졌다. 이제 곧 로마와 협상에 들어가야 했고, 훈족이 다시 쳐들어오지는 않을지를 두려워해야 했다.

"콘스탄티노플로 입성한다."

"예, 따르겠습니다."

비세리온은 스스로 기사단을 지휘하면서 콘스탄티노플로 향하였고, 트리스탄이 그를 호위했다. 원탁의 기사단들이 대거 포함된 병력들이 콘스탄티노플에 입성. 그들 중에는 엘프 레인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종족까지 포함된 브리튼 정예 병력들을 보면서 로마 시민들은 그들이 보여준 용맹과 광기에 가까운 전의를 지켜보았다. 어느 시민은 로마를 구원한 동맹군에 대해서 감사를 나타냈고, 어느 시민은 이제 야만족의 시대가 되었다면서 벌벌 떨었다. 순수하게 브리튼의 참전에 대해서 감사함을 전하는 시민들은 소수였고, 대부분은 훈족을 내쫓으려고 브리튼을 불러들였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훈족과 브리튼은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야만족'일 뿐이다.

브리튼이 훈족과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것이겠지. 그리고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브리튼의 군주 비세리온은 로마의 황제와 독대를 나누었다. 독대가 펼쳐진 곳은 콘스탄티노플의 황궁이었다.

로마를 구원한 대가.

그것을 지불할 때였다.

만약에 유스티니아누스가 옛 로마 제국의 위광을 위해서 그를 거부한다면,

브리튼은 휴식을 포기하고 다시 전쟁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상대가 훈족에서 로마로 바뀌었을 뿐이다.

"황제, 서로마 제국의 황위를 넘기도록."

"빙빙 둘러서 말하지 않고, 알아듣기 쉽도록 말해서 좋군."

당당하게 서로마 제국의 황위를 주장하는 비세리온의 말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씁쓸하다는 웃음을 지었다.

평생에 걸쳐서, 죽을 힘을 다해서 옛 로마 제국의 영토를 탈환하려고 하였는데,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브리튼에게 빼앗겼다. 아마도 그 선택에는 교활한 너구리 같은 교황의 의중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교황청과 로마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친선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교권과 황권이 대립하면서 격하된 관계를 띄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로마 교황이 새로운 조력자로서, 그리고 기독교의 수호자로서 선택한 것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브리튼의 군주였다. 교황은 로마와 브리튼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고, 자신을 지켜줄 새로운 우방국으로 브리튼을 꼽은 것이리라.

"좋다. 서로마 제국의 황위를 주겠다."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동로마 제국이다.

서로마 제국의 장수였던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서로마 황제 제위를 동로마 제국 황제에게 반납한 뒤 서로마 황제를 임명하는 권한은 동로마 제국 황제에게 있었다. 그리고 유스티니아누스는 서로마 제국의 황위를 넘겨버렸고, 서로마 황제를 임명시킬 수 있는 권한까지도 넘겨야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로마의 영토다."

순리대로라면 이탈리아는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다.

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는 마지막으로 오기를 부리려는 듯이 이탈리아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비세리온은 그를 승인했다. 어차피 이탈리아는 브리튼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 수도를 약탈하고 대량학살을 일으키면서 사이가 안 좋았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스티니아누스도 오기를 부린 것이겠지.

브리튼. 갈리아. 서부 게르마니아. 알페스. 이베리아. 다뉴브 강 지역.

서방 세계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영토는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동로마 제국의 이름으로 그것을 승인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이베리아 반도를 포함해서 다수의 소국가들이 존재했지만, 십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는 브리튼에 비하면 그저 속국에 지나지 않았다.

로마 황제가 천명하였으니 그들 중 일부는 브리튼에 종속을 요청할 것이고, 일부는 저항을 펼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브리튼에 모두 종속된다. 왜냐하면 로마 제국보다도 강성한 전력을 가진 국가는 브리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전선을 도와주지 않겠는가?"

"거절이다. 브리튼이 로마를 위해 나서준 전쟁은 이번으로 끝일 테니까."

황제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로마 제국에 어울려서 도와주는 것은 이번이 끝이다. 페르시아는 로마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쭉 존재해야 할 것이며, 북방의 훈족 또한 언젠가는 힘을 결집시켜서 로마를 괴롭힐 것이다. 그 때까지 로마는 결코 브리튼을 공격할 수 없다. 앞으로도 로마는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 명맥을 이어가며 존재해야 한다. 브리튼의 입장에서 보자면 로마는 페르시아를 막아주는 방파제에 지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에 병력의 일부를 주둔시켜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

"알겠다."

어차피 거부할 권한도 없다.

지금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국은 브리튼이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그저 조금 더 명줄이 길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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