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68화 (168/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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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 제국

004

칸 자베르간은 정예 기병대로 브리튼의 중앙군을 돌파.

또한 슬라브족 - 튀르크족 혼성 부대들이 그에 뒤따르면서 맹공을 퍼부어버리자 브리튼의 대열은 U자로 휘어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중앙군이 패퇴하고 좌익군과 우익군이 앞으로 돌출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상태에서 훈족의 예하부대들이 좌익과 우익을 여러 방면으로 두들겨서 전멸시켰다면 브리튼은 대패하였을 것이다. 진형을 일시적으로 변형시킨다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진형을 변형시키다가 아예 붕괴당할 확률이 너무도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가 어리숙한 잡병이 아니라 초원의 악몽이라 불리는 훈족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좌익군의 아서와 우익군의 란슬롯은 뛰어난 명장이었고, 비세리온의 명령대로 현 위치를 고수하면서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적의 공세에도 훌륭하게 버텨냈고, 기회가 오자 오히려 반전하여 적을 공격. 수비에만 전념하던 브리트군이 공격을 개시하자 훈족의 후방부대는 물론 칸 자베르간이 이끄는 정예 기병대를 제외한 모든 부대가 이에 놀라서 뒤로 물러나게 된다.

"공격하라!"

"훈족 기병대의 후미가 노출되었다. 후미를 쳐라!"

"란슬롯 경, 여기는 저에게 맡기고 어서 칸 자베르간의 후미를 공격해주십시오!"

좌익군에서 참모 역할을 하던 케이와 우익군의 참모였던 캐러독은 아서와 란슬롯에게 별동대를 이끌고서 칸 자베르간의 후미를 공격할 것을 제안했다.

지금이 적기였다.

지금이 아니면 브리튼이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브리튼을 상징하는 군기들이 휘날리면서 그대로 칸 자베르간의 정예 기병대와 슬라브족 - 튀르크족 혼성 부대를 포위해버렸다.

후방에서 패주하고 있던 훈족 예하부대들이 본군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들었지만 이미 포위는 완료되었다. 케이와 캐러독이 이끄는 좌익군과 우익군이 방패와 장창으로 이루어진 장벽을 다시 전개하여 적 기병대의 공격을 차단했다.

U자로 휘어진 중앙군은 칸 자베르간의 기병 돌격을 완벽하게 막아냈고, 곧이어 아서와 란슬롯이 이끄는 별동대들이 훈족 기병대가 뚫어낸 통로를 막아버렸다. 점점 진형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브리튼 진영은 ㅁ자로 변형되면서 그 중심에 있던 훈족 기병대를 포위하여 공격했다.

"가웨인, 가레스!"

"예!"

"적을 유린하라!"

적 기병대의 공세를 막을 뿐이던 중앙군 또한 다시금 공격을 개시했다.

방패부대들이 일제히 좌우로 갈라지면서 그 후방에 숨어있던 브리튼 기병대들이 진격을 개시하였다. 가웨인과 가레스가 이끄는 기병대는 용감하게도 훈족 기병대를 격파해버렸다. 진형을 돌파하느라 체력적으로 부진하던 훈족 기병대는 스르륵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그를 뒷받침하던 슬라브 튀르크 보병부대들은 포위 공격을 중점적으로 당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포위에 갇힌 훈족 병력은 적어도 3만에 달한다.

1만은 정예 기병대. 그리고 2만은 훈족이 자랑하는 슬라브족과 튀르크족의 보병부대였다. 훈족의 주력부대들이 브리튼군에 포위. 포위망 바깥에 있는 훈족 병력과는 연락이 차단당했다.

그들은 대왕을 구하려 분전하였으나, 브리튼의 포위망을 뚫어내지는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칸 자베르간이 죽었다!"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각 부족들을 끌어모은 동맹군들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콘스탄티노플을 방어하고 있던 벨리사리우스까지 정예병을 이끌고서 훈족의 후미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훈족의 동맹 부대들이 흩어져버렸다. 훈족의 대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역병처럼 퍼지는 바람에 두려움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정예병까지 가세하자 훈족 대왕의 구출을 포기하고 10만 대군에 달하던 훈족의 동맹 부대들이 패주하기 시작했다.

"다 죽여라! 다 죽여라!!"

"훈족 놈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칸 자베르간을 잡아라!"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훈족 정예기병대들 또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두려움에 휩싸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바깥 부대들과 연락이 될 리가 없었고, 브리튼 병사들이 계속해서 "훈족이 도망친다!" "훈족이 패배하였다!"라고 고함을 내지르는 통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일종의 심리전이다. 포위당하여 다른 부대들의 소재조차 파악할 수 없는 칸 자베르간에게는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훈족 기병대는 움직임을 저지당하고 말 위에서 브리튼 보병들과 싸우다가 장창에 찔려서 죽었다. 포위당하여 돌격조차 불가능해진 기병대는 적 보병에게 죽을 수밖에 없다. 기병이라는 병과 자체가 돌격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정지하고 있을 경우에는 그저 덩치 큰 표적에 지나지 않았다.

곡선을 그리면서 날아드는 화살에 죽거나, 장창에 찔려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 신의 채찍이라 불리는 훈족 기병대도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저 잡졸에 불과했다. 너무도 약하다. 게다가 겁을 집어먹으면서 포위 공격을 뚫으려 무차별적으로 발버둥을 쳤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은 전력 감소를 일으켰다.

만약 전열을 다시 재정비하여 브리튼의 포위망을 뚫고자 하였다면 높은 확률로 성공하였을 것이다. 브리튼군 또한 진형을 변화시킨다는 전법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미숙하고 어려운 점이 많았다. 심지어 아군 부대들 간에 연계 공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공격조차 어려울 정도로 훈족부대들이 더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바깥 사정은 알 수 없었을 뿐더러, 사방에서 브리튼군이 공격을 개시하면서 점차 범위를 좁혀오자 아군끼리 밀집되면서 극한의 공포를 일으켜버린 것이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위치가 압박을 가해오면 그것이 아군이든 적군이든 공포를 느낀다. 압박되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가 사람을 자극시켰고, 스스로의 손으로 자살까지 해버릴 정도였다.

"으아아아아악!!!"

귀를 찢어발길 정도로 커다란 비명소리가 브리튼군의 포위망에 밀집되어 곤란을 겪고 있던 훈족 보병대의 중심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가 시발점이 되면서 수만 명의 훈족들이 벌벌 떨었다. 자신들은 모두 여기서 죽을 것이다. 가장 비참하고 참혹하게 죽을 것이고, 그 누구도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을 것이다. 브리튼 병력은 대군이며 우리는 여기서 죽는다. 칸 자베르간은 이미 틀렸고, 바깥에 있을 다른 부대들은 패주하여 도망쳤을 것이다.

그런 두려움이 중첩되고 쌓이면서 훈족 보병들은 제풀에 쓰러졌다.

남은 것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훈족을 학살하는 일만 남았다.

전투는 대낮에 시작되었는데, 벌써 어두컴컴한 밤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곧 새벽에 되기 시작했고, 브리튼 병력은 이미 준비하고 있던 횃불을 밝히면서 전장에 빛을 선사했다.

횃불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훈족에게 또다른 공포를 자아냈다. 횃불에서 비치는 빛이 브리튼 병력들을 더 압도적이고 무섭게 보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화공을 펼쳤다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사라지면서 어두워진 사계를 밝히기 위함이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요인이 훈족이 무너지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낮에서 밤으로, 그리고 밤에서 새벽까지.

훈족을 죽이고, 살육하고, 몰살시키는 과정은 몇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정확히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적으로 추정되는 인간이 보이면 칼로 때리고, 장창으로 때리고, 방패로 후들겼다.

시간이 너무도 많이 지났다.

칼날과 창날의 날카로움이 모두 사라지고 뭉특해지면서 둔기로 변했고, 메이스와 방패는 가장 효율이 좋은 둔기였다. 적을 칼날로 죽일 수 있는 것은 성검을 들고 있는 아서와 란슬롯이 유일할 것이다. 그를 제외한 보병들은 둔기로 변한 창검으로 적을 유린했다.

"으...으으윽!!"

"살려줘! 살려주세요!"

"항복하겠다! 항복이다---!!"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하는 훈족들의 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초원의 전사들을 자칭하는 훈족들이 목숨을 구걸하면서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위 공격은 조금도 그치질 않았고, 횃불까지 밝히면서까지 새벽녘이 다 될 때까지도 창검을 놓지 않았다. 사방에서 이어지는 살육은 단 1분만에 수백 명을 죽이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미 훈족의 대왕이라 불리던 칸 자베르간은 이름 모를 브리튼 병사에게 살해당했고, 그의 수급은 찾을 길이 없었다.

적 대장이 죽었다.

하지만 브리튼 병력은 물론 훈족 병력까지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싸움이 워낙에 수라장에 가까운 난전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적 대장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훈족의 정예 3만 명이 몰살을 당해버렸고, 그를 구원하고자 참전한 훈족의 동맹부대 3만 명이 추가적으로 몰살을 당했다. 부상자가 포함된 결과가 아니다. 오로지 순수하게 브리튼에게 살해당한 생명이 6만 명에 달하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6만 명에 달하는 목숨이 죽었다. 그 사실은 결코 누구에게 쉽게 생각될 법한 결과가 아니었고, 그를 수 시간 동안이나 지켜보던 로마 황제까지도 차마 훈족들의 비명소리를 모두 듣지 못했다.

성벽 위에 있던 로마 병사와 시민들은 그 살육을 보다가 심리적인 두려움을 느끼고는 기절해버리기까지 했다. 적이었던 훈족들이 죽는 모습을 로마 병사조차 보기 꺼려할 정도로 처참한 살육이다.

살육은 다시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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