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64화 (16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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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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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콘스탄티노플에서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도시와 접하고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에서는 계속해서 로마 군함들이 들락날락거리면서 군량을 보충하고 있었고, 육지와 접하고 있는 방면에서는 야만족들이 공성병기를 앞세우면서 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의 숫자는 15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대군이었지만, 테오도시우스의 삼중 성벽에 막혀서 진군조차 할 수 없었다.

기껏 내세운 공성병기들로는 삼중 성벽을 무너뜨릴 수조차 없었고, 공성전에 있어서 훈족이 자랑하는 기병대는 쓸모없는 전투병과와 같았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육군이 필수였지만, 로마 군함이 지키고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공격할 수 있는  해상 병력 또한 필요했다.

하지만 훈족은 전함을 보유하지 못했고, 로마 군함들은 육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훈족들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유히 콘스탄티노플로 상륙하여 군량을 전달했다. 아직 소아시아 일대 전체가 훈족에게 함락당한 것은 아니었고, 도시 국가들 중의 일부는 훈족의 공세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었으므로 언제나 훈족의 후방을 위협하고 나섰다.

또한 아르메니아에 있는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페르시아를 상대로 승리. 아직 페르시아 대군은 남아 있었지만,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로마에게는 하나의 희망과도 같았다. 북아프리카의 국가들 또한 로마와 페르시아, 이 두 제국을 번갈아보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이 먹을 식량만큼은 제공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속국들이 식량을 제공할 것인지 그것은 미지수입니다."

벨리사리우스가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서 거론했다.

그에 대해서는 황제 또한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식량을 원조하고 있는 북아프리카가 언제까지 보급을 해줄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배반할 여지가 없지는 않았고, 그것은 다른 속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메니아에서 루키우스가 활약해주고 있었지만 페르시아를 상대로 언제까지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로마 군단이 철수하면서 숨통이 트인 서고트 왕국은 왕국이 자랑하는 함대를 파견하여 로마 함대를 공격할 가능성이 컸고, 애초에 훈족과 서고트 왕국이 동맹이라도 맺는다면 로마로서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육지에서는 훈족의 15만 대군이, 그리고 바다에서는 서고트 왕국의 함대들이 날뛰어버리면 콘스탄티노플이라 할 지라도 버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바닷길을 통해서 식량을 원조받고 있는데, 서고트 왕국의 함대에 바닷길이 끊어진다면 삼중 성벽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로마 군단병들은 모두 아사할 것이고, 시민들 또한 굶어죽게 될 것이다.

성벽은 견고하고 모든 공성병기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었지만, 반대로 로마 시민들을 가로막는 울타리와도 같았다. 식량이 끊어진다면 여기서 모든 이들이 싸우지도 못하고 굶어죽게 될 테니까.

"브리튼은 아직입니까?"

"그들이 개입해준다면야 아국은 살 수 있습니다."

"적어도 갈리아의 식량을 제공해달라고 요청을 해보는 편이....."

원로원 의원들이 '브리튼의 참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황제가 카리나 황녀를 브리튼으로 시집보낼 적에는 그토록 반대하던 여론들이 막상 궁지에 몰리자 브리튼의 참전을 희망했다.

위기에 몰리자 한낱 야만족으로 치부하였든 브리튼이 아쉬워졌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갈리아 지역의 막대한 식량에 대해서 탐을 내게 되었다. 브리튼이 직접적인 군사 원조를 하지 않더라도 바닷길을 통해서 식량이라도 팔아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의원들이 심정이다.

콘스탄티노플에는 아직도 막대한 황금들이 저장되어 있었고, 한 줌의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면 황금과 보물들을 모두 제공할 의향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적에게 포위당하자 황금보다도 값싼 귀리와 콩이 더 귀해졌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식량값이 수백 배는 뛰어올랐고, 그럼에도 공급보다도 수요가 많았기에 값이 더 오르는 중이었다. 이런 아비규환의 지옥에 놓여버리자 식량 부족이라는 문제점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폐하께서는 앞을 내다보시어 황녀 전하를 브리튼으로 보내셨소. 그런데 그대들 의원들은 뭘 했단 말이오? 매번 브리튼을 업신 여기고 비판하지 않았소?"

식량 부족에 극심화되자 벨리사리우스가 참지 못하고 원로원으로 나아가 일갈했다. 의원들은 나라의 존망을 위협하는 사태까지 들이닥치자 차마 입을 열지 못했고, 그들의 한심한 모습을 바라보던 벨리사리우스는 성벽으로 나아가 직접 적병들을 공격했다.

적어도 성벽 위에는 적지 않은 로마 궁병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어떤 공성병기라 할지라도 결코 삼중 성벽을 파괴할 수는 없었고, 성벽을 뛰어넘기 위해서 달려들던 훈족 보병들은 날카로운 화살 공격을 받아 물러나야 했다.

공방전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장장 4개월이라는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훈족에게는 장기전은 오히려 원하는 바였다. 소아시아 전역을 약탈하면서 모든 식량을 거두어들이고 있었고, 훈족의 편을 들기 시작한 로마의 옛 속국들은 자청하여 훈족 병력들에게 식량을 제공했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 이어지면서 로마의 편에 섰던 속국들이 훈족에게 돌아서버렸고, 바닷길을 통해서 들락날락거리던 보급선들의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 지역에 건국된 나라들도 점점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고서는 로마가 이기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연히 제공하던 식량을 점점 줄였고, 그것은 노골적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로마가 멸망한다면 훈족의 세상이 될 것인데 우리가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페르시아가 이겨버려도 우리가 곤란해지지 않겠소?"

"로마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페르시아에 알려지면 우리나라도 끝장입니다."

"로마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는 없지."

로마에 종속되었던 수백 개의 속국들이 잇달아서 돌아서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로마에 충성을 다하는 속국도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이 직접 보급선을 차출하여 보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콘스탄티노플에 현재 상주하고 있는 인구만 하더라도 20만 명 이상이다. 그들을 모두 먹이기 위해서는 막대한 식량이 필요한데, 날이 흐르면 흐를수록 식량 보급이 늦어지고 그 양도 줄어들고 있었으니 막심한 피해가 나기 시작했다.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미 황제와 벨리사리우스는 예견하고 있던 문제였다.

속국의 왕들은 종주국으로 섬기고 있는 로마보다도 자신의 국가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안위와 조국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의 목숨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외교적 이치였고, 외교라는 것은 타국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국이 얼마나 이득을 거둘 수 있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렇게 계산기를 두들겨본다면 로마는 저무는 해였고, 훈족과 페르시아는 뜨는 해였다. 속국들은 저무는 해보다도 뜨기 시작하는 해를 선택했고, 빛을 뿜어내지 못하는 태양은 이용가치가 없는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왕가의 대를 이어서 로마를 섬기면서 충성을 다하였지만, 막상 로마가 멸망의 위기를 겪어버리자 모든 속국들이 돌아서버렸다. 로마보다 자신의 조국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테오도시우스의 삼중 성벽은 아직도 건재하고 그 위의 병사들도 용감하게 훈족의 공세를 4개월 이상이나 막아냈지만 가장 중요한 식량의 배급이 늦어졌다. 절충안을 내어서 절약하는 쪽으로 방법을 생각했지만, 그런 미봉책이 언제까지 버팊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입'을 덜어야 한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에 기존부터 거주하던 인구가 아니라 소아시아에서 훈족의 공세를 피해서 도망친 피난민들이 그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들에게는 식량 배급을 적게 해주기 시작했고, 점차 폭동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굶기 시작하자 로마 시민들은 훈족보다도 황실을 미워하게 되었고, 안쪽에서 불협화음이 벌이지자 훈족을 경계하던 병력들 중의 일부를 차출하여 그를 막아야 했다.

성벽 위의 병력들이 줄어들자 훈족은 기회라고 여기고는 공세를 시작했다.

수백 개에 달하는 공성병기들이 잇달아 진격하면서 보병들이 벌떼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그 위에 화살들이 쏟아져 내렸다. 훈족의 본군은 적극적인 공격의 여파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병력에는 큰 손실이 없었다.

왜냐하면 주변 속국들이 지원군을 파병하면서 그 손실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죽여도 죽여도 훈족 병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죽은 목숨보다도 더 많은 병력들이 보충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로마도 끝이구나."

황제는 한탄하면서 피난민들이 조직을 이루어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벽을 수호하고 있던 벨리사리우스는 피난민들을 다독이기 위해서 떠난 상태였고, 삼중 성벽에 의존하여 싸우는 로마 군단병들이 패퇴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큰 피해를 입을 것은 틀림없다. 훈족의 활은 높은 성벽에까지 닿기 때문이다.

그런 황제에게 급보가 도착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서 전령선 역할을 하는 배가 급히 콘스탄티노플 항구에 상륙하면서 급보를 전달하였다.

-------브리튼에서 비세리온 펜드래건이 이끄는 십만 대군이 4개월에 걸친 강행군 끝에 다키아 방면까지 진출하였다는 급보였다. 다키아라면 콘스탄티노플을 직접적으로 원조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고, 브리튼의 군주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서 오고 있다는 소식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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