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61화 (16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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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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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카 왕국에서 전면전을 벌였으나, 라지카인들이 전적으로 페르시아 병사들의 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로마 군단병이 패퇴를 반복하다가 왕국에서 철퇴까지 하게 되었다. 로마가 패배한 것이다. 페르시아 전선에서 로마가 쫓겨났다는 소식이 울려퍼지면서 야만족들이 서서히 독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왕국을 지배하게 된 페르시아 장수들 중에서는 제국에 극단적인 충성심을 가진 자들이 적지 않았고, 암살자를 보내어 라자카의 국왕 구바제 2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구바제 2세를 목숨을 건지면서 도피를 선택했고, 그 사실이 왕국에 알려지자 대대적으로 반 페르시아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로마의 강압적인 정책에 반대하여 페르시아에 군사 요청을 한 구바제 2세는 다시금 로마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페르시아에 패퇴하여 이를 갈고 있었던 로마로서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는 급파하여 군사를 이끌도록 하였다.

"공격! 페르시아를 몰아낸다!"

7천의 로마군과 더불어 1천에 달하는 콜키스 병력을 포함하여 동맹군을 이끌게 된 루키우스는 곧바로 라지카 왕국의 국경을 넘어 페르시아를 공격했다.

전쟁은 크게 확산되면서 섬멸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로마에 대해서 우호적이냐, 페르시아에 우호적이냐에 따라서 라지카인들도 둘로 나뉘어 내전을 일으켰고, 거기에 더해서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까지 그 요소가 더해지면서 내전은 격화되기 시작했다.

"이 전쟁은 우리의 주께서 함께하신다!"

"더러운 이단아를 죽여버리자!"

"공격! 공격!"

로마는 살아있는 신으로서 '황제'를 섬기지만, 기독교가 국교로 성립되면서 황제와 주를 동시에 섬기고 있었다.

로마인들에게 있어 태어나자마자 황제와 주를 섬기게 되는데, 그에 반하는 페르시아는 반드시 멸해야 할 적이었다. 그리고 페르시아는 거짓된 신인 조로아스터교를 섬길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이 속국으로 두고 있는 나라에까지 그 종교를 전파하였으므로 암세포와 다르지 않았다.

루키우스는 페르시아 주력부대를 격파하고서 라지카의 항구도시였던 페트라를 포위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페르시아 황제는 자신이 총애하는 명장 미흐로에를 파견하여 라지카 왕국에서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전황을 끝내고자 하였다. 페르시아에서 뛰어난 명장이라 평가를 받는 미흐로에라면 분명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를 격파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페르시아 명장 미흐로에가 1만 2천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서 진격.

라지카 동부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고갯길을 지키고 있던 로마 병력을 격파하고서 루키우스가 있는 페트라로 진격하자, 미처 페르타를 점령하지 못한 루키우스는 군사를 뒤로 물리게 되었다.

자신의 조카딸이라면 라지카 왕국에서 발발한 전쟁을 단번에 이길 것이라 확신하였는데, 페르시아 쪽에서도 맹공을 펼치기 시작하자 불안감이 들었다.

"루키우스도 안 되는 건가."

아직까지는 로마로 피신하지 않고 콘스탄티노플에 체류하고 있던 유스티니아누스가 중얼거렸다. 그는 병이 들면서 의심증이 깊어져만 갔고, 유능한 군관들을 배제시키고 유배를 보내는 등의 폭정을 펼치고 있었다.

과거의 총명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지금은 오로지 아집으로 이루어진 성에서 살고 있는 군주였다. 고국 탈환이라는 기치를 걸고서 정복 사업을 펼쳤으나 주변국들은 너무도 강했고, 특히 10년 전에는 브리튼과 동고트에 의해 이탈리아 전역이 불태워지는 치욕까지 겪었다.

"폐하.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복귀시키시지요."

"맞습니다. 훈족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 밖에는 콘스탄티노플을 지킬 수 있는 장수가 없을 겁니다."

벨리사리우스는 반란 혐의로 인해서 관직이 모두 박탈당하고서 자택에 연금된 상태였다. 비록 로마 군부의 요인들이 벨리사리우스와 협의도 없이 일으킨 일이라서 벨리사리우스에게는 숙청의 칼날이 향하지 않았지만, 황제의 권위와 맞먹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벨리사리우스를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아무런 야욕이 없는 군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의심이 마음을 자극하였고, 벨리사리우스를 복권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꺼리낌이 들었다.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훈족은 계속해서 진격을 가해오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플 주변의 방어선을 담당하고 있는 사령관들로부터는 패전 소식만이 들릴 뿐이었다.

"브리튼에서의 지원군은 어찌 되었는가."

황제의 말에 로마 장수들이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브리튼 따위를 믿으시는 겁니까?"

"지금은 로마의 운명이 걸린 위기입니다! 고작해야 야만족을 믿으십니까."

"브리튼 따위의 도움을 받을 바에는 옥쇄를 각오하고 싸우겠습니다!"

제국 중심주의에 입각한 사상을 가진 로마 군부에 있어서 브리튼의 조력을 받는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굴욕적인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녀를 보내듯이 제국의 황녀를 보냈는데, 거기에 더해서 지원군까지 요청했다. 이건 마치 조카딸을 팔아서 병력을 얻으려는 꼴이 아닌가.

게다가 카리나 황녀는 로마 황실에 있어서 보석과도 같았다.

로마 황실의 보석을 타국에 팔아치웠다는 것에 대해서는 로마 군부에서 큰 반발이 뒤따랐다. 군부 요인의 일부가 반란을 일으키다가 실패하면서 그 영향력은 대폭 축소되었다지만 반황제 성향을 가진 요인들도 적지 않았다.

"벨리사리우스를 불러 오라."

결국 황제는 자신의 손으로 내쫓아버린 노장을 불러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황제가 고집을 꺾고 다시 벨리사리우스를 불러오라는 명령에 로마 군부에서는 두 팔을 벌리며 그 선택을 환영했다. 군부에 있어서 벨리사리우스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로마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벨리사리우스는 자신을 내친 황제였음에도 소환 명령에 응하여 곧바로 황궁으로 들어섰다. 모든 관직을 박탈당하고서 자택에 감금된 채로 세월을 보내던 노장은 매우 노쇠한 모습이었고, 흰머리가 성성하고 꼬부랑 허리를 가진 노인일 뿐이었다. 이제는 눈도 침침해서 앞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벨리사리우스는 훈족을 격파할 수 있다면서 호언장담을 하였다.

"훈족은 강하고 잔혹하오. 이미 벨리사리우스, 그대는 너무 늙었는데 젊은 이들에게 맡기는 것은 어떻겠소?"

유스티니아누스는 벨리사리우스의 얼굴을 보려고 불렀을 뿐, 직접적으로 노장에게 군사를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도 그렇고 벨리사리우스도 너무 늙었다. 나르세스도 손주의 재롱이나 볼 나이였고, 황제와 장수들 모두 늙어버렸다. 세대 교체를 할 나이가 이미 지나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마가 이토록 참혹하게 곤혹을 겪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10년도 전에 황후 테오도라가 세상을 떠버렸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죽었다. 황제는 어디에 기대어 행복을 누릴 곳도 없어졌고, 그토록 귀여워하였던 조카딸은 브리튼으로 시집을 가버렸다.

"폐하! 소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훈족을 격파해 보이겠습니다!"

"하아.... 군사를 주겠소. 하지만 직접 전장에 참전해서는 안 되오. 그대가 죽는다면 로마 군단의 사기가 바닥으로 꺾이지 않겠소?"

"아닙니다, 폐하. 저는 평생에 걸쳐서 전장을 누빈 몸입니다. 설령 몸이 늙었다고는 하나, 소신에게는 목숨이 붙어 있사옵니다."

자신의 주장을 결코 꺾지 않는 고집은 벨리사리우스도 지지 않았다.

적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선택이라면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하는 남자였다. 그의 드센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황제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군사권을 벨리사리우스에게 일임하고, 또한 이탈리아 총독 나르세스까지 불러들여서 그 보좌를 맡겼다.

라지카 왕국의 전선에서는 루키우스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고, 이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군단들은 모두 철수를 개시하였다. 서고트 왕국에게 이베리아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를 제외하더라도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일대의 속국에서도 반로마를 부르짖으며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로마가 어려움에 처했다.

황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혼란스러운 시대가 늙은 황제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있었다.

훈족들 중에서도 사납기로 유명한 쿠트리구르 족을 이끄는 자베르간이 이끄는 주력부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트리구르 족과 동맹을 맺은 튀르크족과 슬라브족의 대군까지도 국경을 넘으면서 로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병력은 자그마치 10만에 달하는 대군으로 불어났고, 훈족 뿐만 아니라 여러 소수민족들이 합세하면서 대병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0만에 달하는 야만족 병력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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