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59화 (15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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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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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드디어 사산 페르시아와 전면전을 시작했다.

그 소식은 급보가 되어서 전해졌고, 브리튼 왕실에도 비상이 걸려왔다. 로마의 움직임은 주변 각국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언제쯤 움직일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언제 군사를 이끌고 움직여야 자국에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까, 모든 위정자들이 그것을 고려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아그라베인이 말했다.

"전쟁의 시작은 라지카 왕국이라고 합니다, 전하"

라지카 왕국은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에 위치한 왕국으로, 완충지처럼 그 어느 군대도 주둔하지 않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라지카 왕국에 로마의 세력을 확장시키고자 군 사령관을 파견하였고, 로마의 군 사령관이 라지카 왕국의 국왕 구바제 2세의 왕권을 제한하고 라지카 인의 무역 활동 역시 강제적으로 로마의 허가 하에 두었기 때문에 라지카 왕국에서 민심이 격렬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반로마의 기치를 세우기 시작하면서 라지카 왕국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로마가 지배하고 있던 안티오크가 함락. 대대적으로 라지카인들이 봉기를 일으키면서 로마는 위험을 직감하게 된다. 게다가 군 사령관에 의해 왕권을 잃고 모든 자리에서 쫓겨난 구바제 2세가 로마의 적국이라 할 수 있는 페르시아에 원병을 요청하면서 사태는 더욱 커지게 된다.

"라지카 왕국에 로마 군단이 주둔한 상황에서, 국왕이 페르시아에 원군을 요청했다. 우선 라지카 왕국은 누가 이기던지 속국 취급을 벗어나지 못하겠는데."

"예. 양측에 강대국들이 버티고 있는 만큼, 소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흠. 라지카 왕국에는 나처럼 걸출한 인물이 없으니까."

내 말에 아그라베인이 미소를 살포시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딴죽을 걸어줬으면 좋겠다만 아그라베인은 내 말에 대해서 수긍을 하는 듯했다. 오히려 그런 반응이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푸른 머리카락의 아가씨는 내 뺨이 입술을 맞추면서 웃음기를 머금었다.

"브리튼에 전하가 계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건 고마운 말인데."

라지카 전쟁이 발발.

로마에 의해 실권을 잃은 구바제 2세는 페르시아의 황제 호스로 1세에게 밀사를 보내어 원조를 요청하였고, 당당하게 라지카 왕국의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얻어버린 페르시아 황제는 덤블링을 추면서 곧바로 병력을 출격시켰다.

페르시아 군대는 토착민의 지지와 함께 동로마 군대를 격파하였고, 주요 거점인 페트라마저 함락하며 라지카를 사산 제국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정리하자면 라지카 왕국은 로마와 페르시아 사이에 끼여서 완전히 주권을 잃어버리고는 강대국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격이다. 약소국의 비애라고 할까.

구바제 2세는 늑대를 쫓으려다가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로마의 군대를 요청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페르시아 군대들은 으름장을 놓으면서 라지카 왕국을 직접적으로 지배하려 하였고, 결국 구바제 2세는 모든 것을 잃고서 강대국들의 괴뢰가 되어버린 격이다.

"전하!"

집무실을 열고서 트리스탄이 들어섰다.

옅은 갈색을 기른 엘프 여성은 급하게 로마에서 도착한 소식을 가져왔다.

로마에서 브리튼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동방의 페르시아와 라지카 왕국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라면 바로 받아들이겠지만, 북방에서 게르만족과 훈족이 내려오고 있었고, 이베리아 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단들을 서고트 왕국군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야만족들이 발호하기 시작하자, 로마는 위험을 느끼고는 곧바로 브리튼에 지원군을 요청한 것이다.

"아니, 동맹을 맺은지 사흘은 됐나?"

대체 언제 봤다고 지원군을 내어달라고 요청을 하는 걸까. 어지간히도 두려운 모양이다.

10년 전, 동고트의 국왕인 토틸라에 의해 이탈리아 전역이 잿더미가 되어버린 공포를 느낀 로마 제국은 야만족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 두려움 때문인지 야만족이라 얕보았던 브리튼에까지 도움을 요청했다.

"그 정도로 로마도 다급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원군을 내어줄 생각은 없지만."

"예. 동맹국이라고 해봤자 실제로 교분을 쌓은 적도 없는 적국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아그라베인도 냉정하게 평가를 내렸다.

로마가 멸망한다면 페르시아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계 최강국이 되어버리고 만다. 서방 문화권이 크게 위협을 받는다고 가정을 한다면 로마를 도와야하겠지만, 브리튼이 로마의 구원을 위해서 병력을 할애할 정도로 정에 깊은 민족은 아니다. 애초에 로마와 장기간 대치하고 대립하면서 두 국가 간에는 감정적인 골이 자리잡고 있었다.

브리튼 병사들 중에는 이탈리아 원정에 참전했던 자들이 많았고, 로마 군단병과 싸웠던 이들은 로마에 대해서라면 이를 박박 갈고 있을 정도였다. 로마에 패배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창검을 겨누며 싸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의 브리튼인들은 로마에 대해서는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상관없음.'이라고 못을 박아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알 바는 아니다.'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로마의 황녀님을 새로운 왕비로 들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친로마 성향을 띄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도 로마에 반발하는 브리튼 기사들이 많았다. 로마 출신의 왕비를 들였다고 해서 쉽게 변할 것 같지도 않았고, 로마를 위해서 지원군을 파견하겠다고 입장을 밝힌다면 분명 거센 반발에 휩싸이리라.

그렇지 않아도 로마와의 동맹에 대해서 의심쩍은 눈치를 보내는 이들도 많았는데, 이제와서 로마에 지원군을 파견해버린다면 그 반발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왕권이 크게 강화된 상태였기에 물리적인 반발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전하의 의중을 어떠하신지요?"

트리스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와 얼굴을 가까이 겹치게 된 엘프 아가씨는 능숙하게 내 입술을 혀로 핥으면서 색기어린 눈빛을 보였다. 이 자리에 있는 아그라베인도 나와 몸을 겹친 사이였고, 그것은 트리스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서로 애정행각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수치심이 없었다. 마이페이스로 유명한 여성들이라서 그런가. 내가 민망해질 정도로 반응이 없다.

"페르시아가 너무 압도적으로 이겨버리면 난감하지. 사레센 문화권이 로마는 물론 서방까지 확산될 테니까."

"서방 문화권의 소실. 그것을 걱정하시는군요."

"우리 브리튼은 물론 로마와 그 서방 국가들까지. 모두 기독교를 섬기고 있어. 이런 상황에 조로아스터교를 섬기는 페르시아가 천하의 패권을 쥐게 되면 어떻게 될까?"

"기독교가 멸망합니다."

토테미즘 사상에 가까운 자연물을 섬기는 엘프인 트리스탄은 잘 모르겠지만, 브리튼은 기본적으로 로마에서 전파받은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였다. 또한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교회와 성당 건축에 열성적인 면을 띌 정도로 기독교 사상에 심취한 인물이었고, 그것은 다른 로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와 사상이 확고하게 서방 국가들에 뿌리박힌 이 때에 조로아스터교를 섬기는 페르시아가 천하를 차지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분명 페르시아는 주변국에 자신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섬길 것을 강요할 것이고, 종교 전쟁에 가까운 대전이 벌어지리라. 그렇지 않아도 라지카 왕국을 점령하고 있는 페르시아 군대가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면서 전파하기 시작했고, 기독교를 믿는 라지카인들이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종교라. 지금까지는 그러한 요소로 전쟁이 벌어졌던 적이 없잖아?"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씨발. 솔직히 말해서 종교는 빌어쳐먹을 반동분자와 사기꾼, 마약꾼들이 만든 무지몽매한 잡소리에 불과해."

그 망할 종교 때문에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욕설을 내뱉었다. 페르시아가 로마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종교' 때문이리라. 국교로 섬기고 있는 조로아스터교가 세계 각지에 확산되는 것을 원할 것이고, 모든 인간들은 조로아스터교 아래에 둘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만약 종교를 건립한 인물이 죽어서 저울대에 향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지옥행 저울대가 기울어버리겠지. 종교는 대체 누가 만든 걸까.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여버려야한다. 그 망할 종교 때문에 수백만, 수천만 명이 죽게 생겼다.

"기독교 문화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로마가 방파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를 돕기에는 명분이 없잖아, 명분이. 그 누구도 말을 들어주는 일이 없을 텐데."

물론 나에게 있어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원탁의 기사단이라면 내 명령을 받들겠지만, 적어도 달갑게 명령을 수행할 인물은 많지 않으리라. 10년도 전에 치열하게 싸움박질을 한 국가인데 누가 달갑게 생각하겠는가. 원탁의 기사단 중에는 로마와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자가 드물 정도였다.

신입이라 할 수 있는 갤러헤드와 퍼시벌 정도라고 할까. 그를 제외한 기사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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