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56화 (156/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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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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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사신으로 온 인물은 집정관 게르마누스의 아들인 유스티누스였다.

사신으로 온 유스티누스의 친부인 게르마누스와는 트라비아 전투에서 싸운 적이 있었다. 게르마누스는 황제의 동생이었고, 그 아들인 유스티누스는 황제의 조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황제는 브리튼에 보낼 사신으로 황족을 선택한 것이다. 로마가 브리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맹건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로마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 그것이 브리튼이다.

"로마와 동맹을 맺어주십시오. 갈리아 전역은 물론 게르마니아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드리는 것은 물론, 서방 영토를 모두 다스리는 대왕으로 봉하겠습니다. 또한 로마는 동맹을 맺는 시점부터 영원히 귀국의 영토를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호오."

옥좌에 앉아서 로마 사신의 말을 들으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완고한 성격을 가진 로마 황제가 옛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갈리아까지 공식적으로 넘겨준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게르마니아 지역은 넓게 뻗어지는 광대한 영토였지만, 기후가 습하고 농사를 짓기에 어려운 데다가 게르만족들이 들끓고 있으므로 얻어봤자 필요성은 없다. 하지만 갈리아는 다르다. 수많은 곡창지대들이 있기 때문에 서방에 존재하는 국가들의 식량사정을 모두 부여잡을 수 있게 된다.

갈리아 남부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프랑크족이야 알아서 내쫓으면 되는 문제였고, 갈리아 전역을 장악하게 된다면 브리튼은 가장 강성한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대제국 로마가 그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공식 약조를 한다면 아무런 불안거리도 없이 세력 확장에 모든 것을 쏟을 수 있으리라.

"또한 브리튼의 군주께서 바라신다면 로마 황실의 종친 중에서 공주를 뽑아서 동맹의 조건으로 드리겠습니다."

로마는 또다시 폭탄 발언을 내놓았다.

브리튼에서 바란다면 로마의 황녀까지도 동맹의 증거로서 바치겠다, 로마는 지극히 저자세로 나오면서 동맹에 대해서 말했다. 그렇게까지 로마 황제가 브리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건가. 어지간히 브리튼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유스티누스가 물러간 이후, 카멜롯 조정은 반으로 나뉘어져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번져나갔다.

로마와 동맹을 맺어서 이제 그만 로마와의 전쟁을 중단하자는 온건파와 먼저 싸움을 건 대제국 로마를 아예 멸망시키자는 강경파. 원탁의 기사단까지도 나뉘어져 대립하는 광경을 보아하니 역시 로마 사신이 건낸 제안은 '폭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로마와 전쟁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전쟁을 되풀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원탁에서 가장 먼저 발언을 한 것은 아서였다.

로마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과도하게 징발한 병력들을 문제점으로 뽑아들었다. 건장한 남성들은 농기구를 자주 들어야 하지, 병장기를 자주 들어버리면 나라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라는 원칙적인 주제를 내세웠다. 물론 아서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수많은 전투에 참전한 기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즐기는 쪽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전주의자에 가깝다.

시민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잊게 하고, 이제 그만 평화를 지속할 떄도 되지 않았냐는 아서의 주장에 많은 기사들이 찬성했다. 이탈리아까지 원정길을 떠나면서 1년이라는 시간 동안이나 싸워야 했던 브리튼 기사들은 또다시 그런 고생을 해야한다는 것에는 회의적이었고, 무엇보다 평화를 통한 안정을 선택했다.

지금은 기사의 명예이니 브리튼의 영광이니 헛된 것들을 추구할 때가 아니다.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와 갈리아에 있는 광대하게 넓은 영토. 이들을 중점으로 관리하고 보살피면서 선정을 펼칠 때였다. 물론 브리튼에 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자주 일으키는 것은 나라에 무리가 가는 일이다.

"하지만 왕비님, 언젠가 로마는 브리튼을 공격할 것입니다. 로마의 야욕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로마를 멸망시키는 쪽이 우리 후손들에게 이롭습니다."

강경노선을 타고 있는 펠레노어 왕과 여러 브리튼 기사들이 전쟁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 기회에 로마를 멸망시키고 세계 최강대국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지금까지 세계사는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것은 로마인에게 있어 최고의 명예였고, 최고의 긍지였다. 그런 로마인에게 명예와 긍지를 동시에 빼앗아 브리튼인에게 나누어준다.

로마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또한 훈족과 게르만족, 서고트 왕국, 페르시아 등 로마에게는 상대해야 하는 적국들이 많았으니 침공하기에는 지금이 최고의 적기였다. 그걸 로마 측에서도 알고 있기에 브리튼에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로마의 거짓부렁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다른 세력들을 모두 무너뜨린 다음에 브리튼을 노릴 겁니다!"

"이미 황제는 병들어 죽을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벨리사리우스, 나르세스도 이미 은퇴했고요. 그런 상황인데 브리튼으로 침공을 하겠습니까?"

"아직 로마에는 명장들이 많소. 브리튼을 공격할 여력은 충분하오."

"로마는 수많은 적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공격할 여력이 없다니까요."

좌우로 나뉘어져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버리고 평화를 택하자는 쪽과 평화를 일시적으로 미루고 전쟁을 수행하자는 쪽. 브리튼인은 로마를 이기면서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적 보두앵 시절부터 이어진 전화를 끝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했다. 언제까지 싸울 수 있겠는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매번 승전을 거두었을지라도 사람은 지치고 병이 든다. 이탈리아까지 먼 원정을 떠나서 장기적인 전쟁을 연이어 치를 수는 없으리라.

"......"

수많은 기사들이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 모습을 옥좌에 앉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전쟁을 즐기고 있는 건가?

지금까지 패배한 전투도, 전쟁도 없었다. 언제나 승리를 거두었고, 승전가를 부르면서 당당하게 카멜롯에서 위용을 뽐내었다. 로마의 속국에 불과하였던 브리튼인들에게 명예와 긍지를 주었고, 약소국이었던 브리튼을 강대국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그 뒤편으로는 여러 문제들이 남아있었다. 칼레도니아, 아일랜드, 웨일즈 등의 영토를 온전하게 산하에 두지 못했고, 갈리아 지역 또한 브리튼에 대한 적개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선정을 펼쳐야 하는 곳이었다. 과거 갈리아 전역을 돌면서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브리튼에 대한 불만으로 넘쳐났다.

아서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전쟁을 버리고 평화를 택하여야 한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심으로는 또다시 이탈리아로 나아가 수도를 불태우고 이탈리아 전역을 짓밟아버리고 싶다는 야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전투와 전쟁에서 매번 승리를 거둔 지휘관은 다음에 펼쳐진 전투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사랑하는 아내들이 있고, 귀여운 아들딸이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잘 살고 있는데 또다시 가족을 두고 전쟁터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처자식이 생겨버리니 망설임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전쟁은 최후의 방법이다.

매번 병장기를 들고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지극히 하책의 방법이며, 백성들에게 무리를 입힌다. 전쟁에서 비록 승리를 거두었을지라도 그 이면에는 전장에서 죽은 병사와 그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오만하게도 옥좌에 앉은 왕은 일반 병사의 죽음을 숫자로 재단할 뿐이지, 직접적으로 감정을 통해서 느끼진 못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과정이다.

병사들의 죽음을 감정이 아닌 숫자를 통해서 나누고 계산한다. 과거 이탈리아 쟁탈전에서 먼 이국의 땅에서 죽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시체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급하게 떠나야 했고, 그들의 시체는 아마 백골이 되어 썩고 있으리라.

".....전쟁이라."

나는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더라.

모르간에게 말한 적이 있다. 가족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과연 가족을 위한 일일까? 가족보다는 헛된 야욕과 명예욕 때문에 일으키는 전쟁이 아닐까. 자신의 군략과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 병사들을 희생시키는 작업이 아닐까.

여러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런 의문이 든 적은 없었다. 언제나 적을 생각했고, 적에게서 이길 방책을 궁리했다.

처자식이 생긴 것이 원인일까.

망설이는 마음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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