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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155화 (15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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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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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마와 서고트의 공방전은 더욱 가열되기 시작했다.

로마 장군 리베리우스가 이끄는 2천 명의 결사대가 이베리아에 상륙하여 내전에 개입하였다. 아나타길드가 내전을 매듭지은 후 동로마 제국의 점령지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여 몇개의 도시를 회복하였으나 그 뿐이다. 로마 병력은 지독하게도 서고트 왕국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안달루시아 일대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물론 서고트 왕국도 반격에 돌입했다.

로마의 병력은 매우 극소수였고, 친로마 성향을 가진 이베리아인도 적지 않았지만 서고트 왕국군이 강세이다보니 점령한 영토를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리베리우스가 아군 병력과 함께 철수하면서 싱겁게 이베리아 공방전이 끝마쳤다.

당연히 내전을 이용해서 국토를 무단으로 점령한 로마의 군사행동에 서고트 왕국은 분노했고, 로마의 영토 확장 정책에 대해서 비난하고 나섰다. 서고트가 노골적으로 반로마의 기치를 들기 시작하면서 반로마 포위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동고트 왕국의 멸망으로 세계는 격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를 공격함으로서 로마의 야욕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로마는 분명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욕심은 끝이 없을 겁니다."

"과거 로마의 영토를 모두 되찾겠다라, 그건 아국의 영토까지도 빼앗겠다는 것 아닙니까?"

게르만의 남하로 인해서 로마 제국이 멸망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옛 로마 영토를 되찾겠다면서 무리한 정복 정책을 펼치는 로마의 행동에 변경의 야먄족들이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물론 로마에 친선적인 속국도 있었지만, 로마에 적대하는 세력들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 중에서 브리튼 왕국이 반로마 세력의 주된 국가였다.

이탈리아 쟁탈전에서 보기 좋게 로마의 영토를 유린하면서 약탈을 일삼았고, 지금에 와서는 로마를 뒤이어 추격하기 시작한 신흥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북방의 게르만과 훈족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로마로서는 버틸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페르시아 때문에 시끄러운 잡음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더해서 외적의 압박이 가해진다면 로마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 불만을 품은 소수민족들도 기호를 엿보면서 어디에 붙을지를 고민하고 있었고, 사태를 주시하면서 저울질을 시작했다. 자국에 유리할 수 있도록 판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본다. 수천 명에 달하는 왕과 귀족들이 강대국들의 전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상이 보고입니다."

주변국에 대한 상황에 대해서 간결하게 설명한 아그라베인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주변국들은 하나같이 저울질을 하면서 로마가 가지고 있는 영토와 이권을 빼앗을 생각을 품고 있었다. 반로마의 기치를 들고 있는 주변국들은 그 세력이 약하지만, 그에 비해서 로마는 강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그 로마를 약탈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야망으로 가득한 야만족 왕들로서는 동고트 왕국의 토틸라를 흉내내어 이탈리아를 침공하고 싶어했다.

로마에 붙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민족의 자긍심이 대단한 야만족들은 로마의 속국이 되는 것을 꺼려했다. 로마는 옛적부터 점령한 속국의 문화와 주권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었지만 지금의 로마는 다르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동고트, 브리튼에 집중적으로 약탈을 당하면서 야만족에 대해서는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고, 관용과 용서에 대해서는 결여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심지어 수십 년 동안이나 자신을 섬긴 무장들까지도 가차없이 쳐내는 숙청 사업을 시작하고 있을 정도였고, 로마에서도 갖은 정책들이 모두 실패하면서 민심이 하락하고 있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시민들의 지지도를 올리기 위해서 기독교 문화를 증강시키려는 성당 건축과 함께 로마인의 자긍심을 높이려는 영토 확장, 그리고 법전 편찬까지 시도하면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까지 만들었지만 이미 로마 시민들은 부정적인 평가만 내릴 뿐이다.

"내가 부탁한 것은?"

"물론 완수하였습니다. 저는 전하의 우수한 부관이기 때문입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정리한 미녀. 아그라베인은 이지적인 시선을 내게 보이면서 당차게 대답했다.

내가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로마의 우수한 학자들이 모여서 만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다. 로마의 판례법 및 학설을 집대성하여 편찬한 법 서적인데, 정작 로마 시민들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그것의 우수함은 내게 가장 잘 알고 있다.

현존하는 법전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을 뽑는다면 나는 물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뽑을 것이다. 수백 년 동안이나 내려온 로마의 우수한 법안들을 재정비하고 고쳐서 만든 법령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기도 했다.

로마 황제가 만들고 대량으로 찍어내면서 배포하였지만 정작 로마 시민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버려졌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버린 법 서적이 브리튼으로 흘러들어왔다. 로마 상단들은 그것의 효율성조차 모르고 돈을 준다는 말에 선뜻 나서면서 법령서를 구해왔다. 참으로 기특한 녀석들이 아닐 수 없다. 로마 출신의 상인들은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브리튼에 가장 뛰어난 법전을 제공한 꼴이 되어버렸다.

"고마워."

"말 뿐으로 끝내실 생각입니까?"

그 말을 하면서 아그라베인이 입술을 내밀었다.

그녀와 입술을 겹치면서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집무실에서 즐기는 밀회도 분위기가 있어서 좋다. 코에서 풍기는 잉크 냄새와 종이 냄새. 그리고 아그라베인이 풍기는 음란한 여체의 냄새는 나를 자극시켰다. 새하얀 와이셔츠와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미녀를 당장이라도 찍어누르고 싶었다.

아그라베인은 자신이 가진 매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이지적인 매력을 가진 미녀. 자신의 직함이 내정관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집무실에서 밀회를 나누었고, 때로는 내 자지를 빨아주면서 펠라치오를 자주하기도 했다.

지난번에는 모드레드가 문을 덜컥 열고서 들어오는 바람에 들킬 뻔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녀의 말로는 언제라도 들킬 것 같아서 짜릿하다고 한다. 누구를 닮았는지 날이 가면 갈수록 변태성이 늘어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좋지만.

"로마는 이번에도 쓸데없이 움직이고, 주변국을 자극시키는군."

"로마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병세가 악화된 황제가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나랏일을 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합니다."

"온전하지 않다라.... 자신의 반려를 잃고, 자신도 전염병에 시달리고, 게다가 믿었던 신하들이 반란에 가담하면서 뒤통수까지 당했으니.... 그의 영향으로 충신들을 멀리하고 무익한 전쟁을 지속시키면서 '옛 로마 영토의 탈환'이라는 헛된 꿈을 꾸는 건가. 동정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야."

"전하는 로마 황제를 미워한다고 여겼습니다만."

"브리튼의 군주로서는 그렇지. 하지만 사람으로서는 그를 동정하고 있어. 황제는 자신의 야망을 실천하기에는 주변국들이 너무 강해."

특히 페르시아만 하더라도 수많은 명장과 정예병들이 포진하고 있는 강대국이었고, 곧이어 시리아를 사이에 두고서 전쟁이 벌어질 것 같았다. 벨리사리우스는 없다. 나르세스도 없다. 황제의 미움과 불신을 받아서 좌천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3대 명장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은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그녀는 황제의 조카딸이었기 때문에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건재할 수 있었다.

로마의 뛰어난 명장이라고 할지라도 과연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대국들의 공세를 모두 막아낼 수는 있을까? 루키우스는 한 명이고, 로마의 영토와 주권을 넘보는 적대국들은 여럿이다. 북방에서 게르만족과 훈족이 내려올 것이고, 로마의 서쪽에서는 브리튼과 서고트가 진격한다. 동쪽에서도 페르시아가 국경선을 침범하고 있었으니 로마로서는 매우 불리한 전황이다.

"전하!"

사라센 소녀가 문을 열고서 들어왔다.

갈색 피부를 가진 미녀는 기사 예복을 정갈하게 입고 있었는데, 그 얼굴을 보아하니 시급한 사안이 발생한 모양이다. 나와 아그라베인이 붙어있는 모습을 보더니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로마에서 사신단이 파견된다고 합니다. 론디니움 항에서 급한 파발이 도착했습니다."

"로마라. 무슨 용건인지는 알겠다만."

분명 양국의 친선을 요구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로마가 감당하기에는 브리튼 왕국이 너무도 크게 성장해버렸다.

갈리아의 곡창지대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자급자족이 가능해졌을 뿐더러, 남는 식량을 이용해서 북방의 민족들과도 교류를 시작했다. 서고트 왕국과도 교역을 통해서 친분을 쌓고 있었으므로, 반로마를 주장하는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강성한 세력을 자랑했다.

로마로서는 훈족과 게르만, 거기다가 페르시아에 서고트 왕국까지 상대해야 했으므로 브리튼과는 전쟁을 일으킬 형편조차 되지 않았다. 그를 위해서 평화와 친선을 요구하는 사신단을 보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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