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대륙의 패자
003
수도 카멜롯.
여전히 번화스러운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브리튼의 수도는 점차 인구가 확충되어 거주 인구만 하더라도 12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수 년간에 걸친 내정과 타국에서 유입되는 난민들을 수용한 결과, 옛 수도였던 로마에 버금가는 위세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도시의 시설은 로마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거주하고 있는 인구와 잘 정돈된 도시 환경만큼은 좋았다.
앞으로 이어지는 포장된 대로가 왕궁으로 이어진다.
타국과의 전쟁이 없었기에 방어보다는 교통에 중점을 두고 있는 수도로, 뻗어나간 가로들은 적의 침입에 치명적이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외적의 침입이 없다보니 타국의 상단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역 루트가 되어버렸다. 가로를 기점으로 큰 시장들이 들어섰고, 부유를 창출할 수 있는 황금의 땅이 되었다.
상단들은 성공을 위해서 브리튼의 카멜롯과 론디니움으로 몰려들었고, 갈리아 지역에서도 루테시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교역이 실시되고 있었다. 로마에 적대시하는 국가들은 물론, 암암리에 로마 상단들도 브리튼과 교역을 하고 있었으니 날이 갈수록 부유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아바마마, 오셨사옵니까?"
단아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잘 정돈된 옷차림을 하고서 꾸벅 인사를 했다.
일국의 왕자로서 조금의 빈틈도 없는 모습이다. 어머니를 닮아서 세피아색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인상적인 어린 소년은 "이 아이가 바로 왕자다!"라는 오오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왕족으로서의 품위와 기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왕자님은 나와 아서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아이였다.
올해로 여덟 살이다.
가정교사에게서도 줄줄이 칭찬의 말이 쏟아지고 있었고, 학자들은 백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한 수재라는 말까지 들었다.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완벽의 왕자님. 이름은 아트리 펜드래건. 브리튼 왕국의 제 1왕자로 지금은 내정관 케이의 밑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 왕자."
잘 다듬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세피아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졌지만 아트리의 얼굴에 그려진 웃음은 그치질 않았다.
귀여운 초식동물처럼 생긴 아트리는 내 손을 맞잡으면서 베시시 웃었다. 귀염성을 가진 것은 역시 아서를 닮았단 말이지. 모드레드에 비해서 나를 조금도 닮지 않았다. 나를 닮았다면 이렇게 친절하고 착하고 뛰어난 아이가 나올 리가 없다.
"야, 왕님! 론디니움에서 업무를 땡땡이 쳤다면서?!"
케이가 폴짝 뛰어내리면서 내게 달려왔다.
탁한 금발을 단발로 자른 헤어스타일의 소녀. 대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엇을 하였기에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걸까. 분명 아서의 의붓 언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아트리의 누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누나. 모르간과 아서도 그렇고, 케이도 지나칠 정도로 동안이다. 나이를 먹는 흔적이 보이는 건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모드레드가 놀아달라고 해서. 왕비와 데이트도 했고."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날짜가 조금만 늦어져도 상단들은 손익을 계산해서 자칫 계약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고."
"그래 그래. 내가 잘못한 일이지."
"누가 봐도 왕님이 잘못한 거야!"
케이의 윽박을 들으면서 집무실로 걸어나갔다.
아트리는 손을 뻗어서 내 손을 맞잡았고, 잘 꾸며진 왕자님은 나와 함께 집무실까지 걸었다.
그리고 그 뒤를 케이가 따르고 있었다. 케이는 아트리의 개인교사였고, 왕자님에게 내정에 대해서 가르치는 입장이었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브리튼 내정관으로 역임하고 있었으니 분명 케이는 최고의 천재임이 틀림없다. 그녀가 왕자를 가르치는 것에는 이론이 없었다.
"이모님, 아바마마에게 무례하십니다."
"으, 응?"
"아바마마께서는 카멜롯의 군주. 그리고 브리튼의 주인이십니다. 조금 일이 서투르게 진행되셨을 수도 있지만, 내정관이신 이모님께서 강하게 반발하실 정도의 사안은 아닙니다."
"그, 그렇지...?"
"다음 번에는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독설가로 유명한 데다가 브리튼을 침범하였던 드래곤을 말빨로 상대해서 내쫓아버렸을 정도로 입담이 대단한 내정관 케이의 말문을 닫게 만드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내 아들인, 아트리 펜드래건이리라. 단아한 왕자님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정론을 들고서 이의를 제기하자, 케이가 입을 꾹 다물면서 뒤로 물러섰다.
꽤나 귀중한 광경이다.
케이는 의붓 동생의 아들이자 브리튼의 왕자님인 아트리에게 유독 약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온 기억 탓일까. 아트리에게는 독설을 내뱉는 일이 없다.
"너, 진짜 아트리한테는 약하구나."
"시끄러."
케이가 얼굴을 붉혔다.
이건 또 귀중한 장면이다. 내정 관료들이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버릴 정도로 성격이 나쁜 케이가 얼굴을 붉힐 줄이야. 케이는 아트리를 자신의 아들처럼 여기고 있었고, 아트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는 아서만큼이나 동생의 아들인 아트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해외에서 무슨 소식이라도 들어왔어?"
집무실에 도착해서는 서류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그 말에 케이는 내게 필요한 서류를 건내주면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말했다.
"왕님. 로마가 또다시 움직였어."
"목표는?"
"이베리아."
서고트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국왕은 아길라 1세였는데, 내전이 발발하면서 지금 서고트 왕국은 말도 아닌 상황에 몰렸다고 한다.
로마의 고토를 회복하려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기회라고 여기고는 로마의 병력을 파견하여 내전에 개입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베리아의 히스파니아 남부 일대가 로마에게 점령당했고, 내전을 수습하기에도 벅찬 서고트 왕국은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케이는 브리튼 병력이 직접 이베리아로 가기에는 너무 멀고, 간접적으로라도 그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서 이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병력들을 철수시키기 위해서라도 로마가 속국으로 삼고 있는 변경 지역을 공격함으로서 로마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요즘 들어서 잠잠해졌더니 또 전쟁인가. 질리지도 않나."
이탈리아 쟁탈전 이후로 10년 동안은 큰 전쟁을 벌인 적이 없는 로마였지만 이제 전력을 회복하였는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동안에 벌어진 사건들도 많았다.
로마 군부에서 반란을 획책하면서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황제로 옹립하겠다는 사상이 확산되어 있었고, 비록 군부의 반란은 제압되었지만 로마 최고의 명장이라 평가를 받는 벨리사리우스는 모든 관직을 박탈당하고 근신에 처해졌다.
충신이라 불리었던 벨리사리우스가 다음 황제로 추대될 정도로 명성이 높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기 시작한 황제는 차례대로 유능한 로마 군인들을 처벌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총독으로 부임된 나르세스 또한 그 위치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지금 로마는 황제가 의심병이 들어버리면서 가혹하게 인사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로마 군부가 약화되면서 황권에 짓눌렸다. 살아있는 신화와도 같은 벨리사리우스가 근신에 처해지고 나르세스까지 피해를 입고 있었다. 루키우스는 페르시아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고, 지금의 로마는 그 어느 때보다 약화된 상태였다.
겉보기에는 수십만에 달하는 병력을 가진 강대국이었지만, 그 전력은 과거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적어도 나를 상대할 수 있는 장군은 루키우스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로마의 최동부에 위치한 페르시아 전선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군사를 이끌고서 이탈리아로 다시 진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군사들의 준비는?"
"충분해. 마음만 먹는다면..... 10만 대군이라도 가능하겠지. 그 동안 우리도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좋아."
로마는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은 확실하다.
로마의 3대 명장들 뿐만 아니라 그들 산하에 위치한 장수와 군관들도 모두 우수했고, 로마 군단병 또한 매서운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근 1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브리튼과 로마는 마주치지 않았다. 서로 전력을 증강시키면서 대립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평온을 깰 때가 왔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알아서 자신의 평화를 깨뜨리려고 하는데, 그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
200편으로 완결을 내고, 그 다음은 외전입니다.
스킵한 10년 동안 일어난 H씬을 쓸 겁니다.
원고료 쿠폰을 주신 독자분들에 대한 연참을 어느덧 끝났는데, 후원쿠폰이 잔뜩 남았거든요. 특히 200장을 주신 우리 '인간의무지'회장님이 계시고.
'눈동자'에 등장하는 모든 플레이를 동원해서 H씬을 쓸 생각입니다.
케이에게 개목걸이를 채우고 댕댕이 코스프레를 시킨 다음에 야외에서 섹스를 한다던지, 하드한 플레이를 여럿 생각해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