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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패자
002
브리튼 왕국의 제 2의 수도는 론디니움이다.
브리튼 전역에 있는 항구도시들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상업적으로 발달한 곳은 론디니움이었고, 갈리아와 이베리아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단들이 브리튼과 교역을 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적으로 찾아왔다. 심지어 브리튼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무역 제재를 걸고 있는 로마의 상단들조차도 브리튼으로 와서 교역을 펼쳤다.
강대국으로 갓 부상한 브리튼이라는 국가는 타국의 상단들이 보기에는 매우 매력적이었고, 상단의 재산을 풀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브리튼에 확장시키기를 원했다.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상단주들이 보기에는 브리튼 왕국은 결코 단기간에 망할 국가가 아니었고, 전쟁에서 매번 승전을 거두면서 승전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니 안정성도 좋았다. 그리고 타국의 상단들은 브리튼 왕실을 지원함으로서 그에 준하는 이익과 특권을 얻고 싶어했다.
"아바마마, 나랑 놀자."
"지금 아바마마는 바쁘시다. 얼른 돌아가서 소꿉장난이나 하고 놀아라."
"싫어! 난 어린애가 아냐!"
넌 충분히 어린애인 것 같다만.
투정을 부리면서 내 옷깃을 부여잡고는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 딸내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에 몇 번 만나지도 못하는 아바마마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간다만, 그 아바마마는 카멜롯의 군주이며, 브리튼의 주인이다. 지금으로서는 한가롭게 딸내미와 놀아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양탄자 위를 뒹굴거리면서 놀아달라고 떼를 쓰는 공주님을 바라보았다.
대체 애엄마는 뭘하고 있는 걸까. 이 녀석 안 데려가고.
론디니움에서 그 활동영역을 두고 있는 상단들이 보낸 서류들을 확인하면서 브리튼 왕실과 체결하려는 그 계약 내용에 대해서 살폈다. 대부분의 상단들이 브리튼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이권을 늘리기 위해서 상단 재산의 일부를 왕실에 기부했다. 그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브리튼 관세의 일부를 왕실에 상납금을 바친 상단들에 한해서 감면했다.
관세를 감면하면서 특권을 부여해주자, 상단들은 매우 만족스럽다는 서신을 내게 전달했다. 아무래도 브리튼 국경을 자주 넘어서 무역 활동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상단에 누적되는 관세는 부담스럽다. 관세를 감면해준다는 것은 그만큼 상단들에게 특권을 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다른 상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무역을 시작한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솜씨 좋은 서고트들이 만든 금 장신구들은 사치품으로 브리튼에 수입되었고, 브리튼의 칼레도니아에서 기른 가축들은 이베리아 반도로 수출되었다. 칼레도니아는 축산업을 대표적인 사업으로 뽑고 있었는데, 마침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농사에 사용할 농우를 원하고 있었고, 꽤나 적절한 거래를 성립시킬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앙!!"
계속해서 무시로 일관하자 우리 공주님이 울음을 터트렸다.
물론 관심을 가져달라는 식으로 우는 것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눈물이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내게는 모드레드가 소중하지만, 나라의 경영 사업에 대해서도 그만큼 소중하다. 이탈리아 쟁탈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승전국으로서 타국의 상단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고, 무엇보다 승전국이라는 입장에서 그들과 유리한 거래를 성사시켜야 했다.
로마에 의해 동방의 페르시아와는 무역길이 끊겼지만, 이베리아의 서고트와 무역을 성사시키면서 그들에게서 페르시아 물건을 공수받고 있었다. 이베리아는 페르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브리튼은 서고트와 페르시아와 함께 삼각 무역을 실시했다.
'문제는 로마의 적들을 늘리는 일이란 말이지.'
브리튼은 간접적으로 북방의 초원을 지배하고 있는 게르만족과 훈족을 지원하고 있었다. 갈리아 지역의 곡창지대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곡량들이 산출되었는데,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잉여 재산들을 게르만과 훈족에게 수출했다. 그들에게서는 짐승의 가죽과 우수한 품종의 준마를 받는 대신에 곡량들을 팔아넘겼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갈리아의 곡창지대에서 산출된 곡량들을 게르만과 훈족에게 넘긴다. 약탈이 아니라 정식적인 거래를 통해서 막대한 식량을 제공받은 게르만과 훈족은 점차 식량부족이라는 요소가 해결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그들과는 동맹을 맺었다.
북방에서 군림하고 있는 게르만과 훈족들이 남하하여 로마를 공격.
그리고 페르시아에서도 전염병이 해결되고 병력들이 로마 국경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베리아의 서고트 왕국 또한 이베리아로 진출하려는 로마 군단과 대립하고 있었고, 갈리아에 집결한 브리튼의 병력들도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로마 포위망.
동고트 왕국이 멸망하여 일시적으로 포위망이 붕괴되었지만 아직도 로마를 적대시하는 국가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또 우리 공주님을 울렸어? 당신, 당신 딸내미한테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문이 덜컥 열리더니 모르간이 들어왔다.
딸이 울던지 말던지 방치하고서 업무에만 매진하고 있는 나를 보던 모르간은 쌍심지를 켜더니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냈다. 대체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이러는 걸까. 나는 그저 나라를 위해서 업무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딸도 중요하고 나라도 중요하지만,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물론 나라다. 모드레드와는 나중에라도 놀아줄 수 있지만, 나랏일은 뒤로 미룰 수 없는 사안이 아닌가. 아그라베인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내 편을 들어줬겠는데. 하지만 그녀는 수도 브리튼에 있었고, 론디니움에는 우리 가족 밖에 없었다.
지금 론디니움에서는 카멜롯의 군주가 왕비와 공주님을 대동하고서 왕림하였다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며 며칠 동안이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왕의 안녕과 왕가의 평온을 위해서 축제를 벌이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것도 론디니움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축제를 계획한 것도 반가운 일이었고, 비록 왕과 공주님이 변복하고서 시가지를 둘러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우리 귀여운 공주님에게 불만을 품을 리가 없잖아. 제멋대로인 성격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고 대체 누구에게 시집을 갈 지 알 수가 없을 정도지만 불만은 없어."
"불만을 그대로 고백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야."
펜대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말했다.
나와 모르간이 말싸움을 시작하자 양탄자 위에서 뒹굴던 모드레드가 방실방실 웃음을 터트렸다. 상식대로라면 부모가 싸우기 시작하면 그 사이에 위치한 딸내미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일반사이겠으나,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는 매우 다르다. 이상하게도 부부싸움을 시작하면 딸이 가장 기뻐한다.
싸우는 경우가 워낙에 많았으니 모드레드는 오히려 부부싸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부부싸움을 보면 꽤나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였으니까.
"일 때문에 바빠."
"알아. 하지만 우리 딸한테도 조금은 신경을 써달라는 거야."
"....어제 하루종일 놀아줬잖아."
며칠 동안이나 여유가 없을 정도로 몰아치며 업무들을 완료했고, 하루 정도나 짬을 내어서 모드레드와 놀아주었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꽤나 대단했던 터라 그 다음 날부터는 업무에 곧바로 투입되어야 했다.
강대국으로 발전하면서 나라는 부강해졌지만, 그만큼 일거리는 대폭 늘어났다. 관료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해서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음에도 바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즘은 눈도 침침해지고 나이가 먹는다는 것에 실감이 난다. 이제 슬슬 30대 중반이다. 나도 이제 중년 남성으로 접어들었고, 과거처럼 전장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돌아다닐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 왜 우리 아내는 나이를 먹지 않는 걸까.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어려지는 느낌이 든다. 여전히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외모를 가지신 모르간을 보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회춘의 비약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 비약이 있다면 나에게도 나눠주면 좋을 텐데.
"저녁에는 조금 시간이 날 것 같아. 오랜만에 데이트나 할까?"
"데, 데이트? 나야 좋지만."
내 말에 모르간은 언제 화가 났냐는 듯이 베시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은 신혼 시절로 돌아가서 모르간과 사랑을 나눌 생각이다. 그녀도 오늘 밤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모르간과는 아직도 알콩달콩한 사이였다.
양탄자 위에 앉아서는 모드레드가 손을 들었다.
"아바마마, 나는?"
"궁이나 보고 있어."
집무실에서 모드레드가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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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 상단들: 어머, 브리튼이 떡상하고 있다네요.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
로마: 스텔라 루멘도 괜찮아요.
설차: 아.
-지금까지 번 원고료의 일부분을 비트코인으로 잃었다.
돈을 잃고, 성실함을 얻었다.
성실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
돈을 못 벌면 거지가 된다.
이 무슨 인과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