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51화 (15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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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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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트 왕국이 멸망하고 그 유민들이 로마로 흡수되거나 오스트리아로 추방된 지도 10년이 지났다.

전쟁의 최종적인 승리자였던 브리튼은 온전하게 비축하고 있던 전력을 사용하여 갈리아 북부를 완벽하게 수중에 넣었고, 곧 중부도 엿보고 있었다. 갈리아의 서부에 위치한 곡창지대를 브리튼이 손에 넣으면서 섬나라로서 가지게 되는 식량부족이라는 단점을 해결하였고, 이베리아에 위치한 서고트 왕국과 교류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서고트는 게르만족에 분열되어 이베리아 반도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동고트 왕국과는 별개의 속성을 띄고 있었으므로 동고트 왕국을 배반하고 이탈리아에서 탈출한 브리튼이라고는 해도 로마를 적대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외교 부문에서는 친밀한 성격을 가졌다. 물론 크게 신용하지는 않는다, 라는 생각을 서로 하고 있었으므로 긴밀한 협조는 어렵겠지만.

"꺄하하하하!"

여러 나라에서 온 상단들이 밀집되어 붐비는 론디니움을 천방지축처럼 가로지르며 내달리는 소녀.

친어머니를 닮아서 새빨간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기르고 있었고, 그 눈동자색은 아버지를 닮았는지 피처럼 붉다. 와인색이라고도 하는데 친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농도가 더 짙어져서 피처럼 붉게 보였다. 난폭하고 과격한 속성이 없지 않은 소녀는 단아한 드레스를 입었음에도 등 뒤에는 커다란 롱소드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에서 고풍스런 아가씨처럼 보이진 않았다.

고작해야 올해로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녀는 왜소한 몸이었음에도 항상 롱소드를 차고 다녔다. 그저 폼으로 소드를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하겠지만, 브리튼 기사를 여럿 낙마시킬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검술사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검술 실력만큼은 그 재주가 뛰어났다.

"아바마마!"

"바깥에서는 정체 밝히지 말라고 했잖아, 이 말괄량이 딸내미야!"

애아빠라고 하기에는 비교적 젊어보이는 남성이 자신의 딸내미를 번쩍 들어서는 그대로 정수리에 주먹을 박아버렸다. 제 3자가 보기에는 "아동 학대잖아."라고도 말하겠지만, 정수리에 주먹이 박혔음에도 아프다는 모습은커녕 오히려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귀족 아가씨를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대체 부모 중에서 누구를 닮았는지 신체 능력만큼은 원탁의 기사단을 초월한다. 한겨울에는 짧은 소매의 옷을 입고 돌아다니질 않나, 하루종일 빡센 훈련을 해도 그 다음 날에는 훈련을 또다시 반복한다. 대체 무슨 보약을 먹였기에 저렇게 쌩쌩한 모습을 보이는지 그녀를 키운 친부 입장에서 궁금해질 정도였다.

"이 마누라가 태교를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저런 딸이 태어날 수 있는 거지. 이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런 의문을 내던지면서도 저 딸내미를 심심하면 자신의 애검인 엑스칼리버를 붕붕 휘두르면서 놀았다. 성검을 현란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 친부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성검 엑스칼리버를 다룬다는 것은 이 딸내미에게도 왕으로서의 그릇이 있다는 것일 테니까. 왕기가 없다면 엑스칼리버는 다룰 수 없었다.

게다가 딸내미---- 모드레드는 심심하면 왕실 보물고에 박혀있는 성검 클라렌트를 가지고 놀기도 했고, 언젠가는 아서에게서 성검 칼리번을 빼앗기도 했다. 물론 다시 아서에게 돌려줬지만. 브리튼에 존재하는 모든 성검을 가지고 놀면서 자란 모드레드는 지나칠 정도로 괄괄한 성격이었고, 날붙이와 함께 자란 거나 마찬가지인 브리튼의 공주님은 교양과 예의범절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애아빠--- 비세리온은 "가정교육의 어디가 잘못 되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딸내미의 가정교사들을 모조리 해고시킬 것이라 단언했다. 대체 가정교사들을 뭘 했길래 아이를 저렇게까지 흉폭한 기사로 만들어버렸는가.

심지어 서고트 왕국으로 온 사신들은 "브리튼 공주와 우리 왕자님을 혼인시키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제안을 하러 왔다가, 모드레드가 날뛰는 모습을 보더니 그대로 돌아갔다. 성검술사에 재능을 가진 흉폭한 공주님은 나라간의 국혼조차 파쇄시킬 정도의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기저기, 거기 아저씨. 우리 왕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모드레드가 서스럼 없이 길을 걷고 있던 중년 상인에게 물음을 던졌다.

신장은 왜소하지만 어린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롱소드를 짊어지고 다니는 모드레드를 보며 의심스러운 낯을 보였지만, 중년 상인은 흐음하고 목을 가다듬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당연히 대단한 분이시지! 자랑스러운 펜드래건 왕실의 주인이라고 할까? 역적 보두앵을 몰아내고 카멜롯을 지배하시더니, 점차 세력을 모아서 대제국 로마를 상대로 연전연승. 게다가 수도까지 불태우며 기세를 높이셨지. 그 분은 브리튼인들의 자랑이며, 없어서는 안 될 군주이시지. 브리튼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할까. 아무튼 대단하신 명군인 것에는 조금의 이론도 없어. 오히려 전하를 욕보이는 놈이 있다면 이 손으로 때려눕히고 싶을 정도라고 할까."

아무래도 론디니움에서 활동하는 저 중년 상인은 브리튼의 왕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떠한지 파악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비세리온 펜드래건에 대한 평가는 괜찮은 편이다. 지지율이 상당히 높았고, 왕의 치세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철저히 왕권중심으로 왕국을 성장시킨 것에도 그 요인이 있겠지만, 10여 년에 걸쳐서 흠잡을 곳 없이 훌륭하게 나라를 통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카멜롯의 군주는 전쟁에서는 백전불패, 그리고 내정에서도 일가견이 있었으니 브리튼 왕국은 더욱 부강해지고 서방 국가들 중에서는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가난하기 짝이 없던 과거의 브리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모드레드는 중년 상인의 대답에 기분이 좋았는지 흥얼거리면서 "고마워."하고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헤어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아버지가 백성들에게서 추앙을 받는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서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그리고 뒤에서 말괄량이 딸내미를 추적하던 비세리온은 마침내 똥강아지처럼 뛰어나가던 모드레드를 붙잡을 수 있었다.

"야, 임마! 길 잃을지도 모르니까 얌전히 좀 다녀!"

"아바마마가 길을 잃어버려?"

"미아는 너다."

"난 어리지 않아. 길도 다 알고."

고작해야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주제에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람. 대체 누구를 닮았기에 이렇게 말괄량이인 건지.

비세리온은 오늘로 몇 번인지 모를 한숨을 또다시 내쉬면서 유일하게 카멜롯의 군주를 속 썩이는 딸내미를 바라보았다. 분명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생긴 매력을 가진 딸인 것은 인정하지만 성격이 너무 거칠다. 모르간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비세리온의 시름은 가면 갈수록 깊어진다.

"그래서, 바깥 세상은 재밌니?"

모드레드를 목마 태우면서 비세리온이 물었다.

애아빠와 딸내미의 용모가 뛰어나다라는 것 말고는 평범한 부녀처럼 보인다. 모드레드는 비세리온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면서 당찬 어조로 말했다.

"멋있어. 항상 화려하고 아름다워."

"당연하지. 이 아바마마가 만든 세상인데."

딸내미의 앞에서도 으름장을 놓으면서 스스로를 과다하게 칭찬하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는 찬양하기 주저하지 않는 비세리온다운 모습이다. 브리튼 왕국의 역대 군주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고 있었으니 으름장을 놓을 만도 하다. 그것을 연이어 듣는 입장에서는 질리겠지만.

비세리온은 현재 공주와 함께 론디니움으로 친히 행차한 상태였다. 원래대로라면 국왕을 위해서 마련된 객궁에 머물기로 하였지만, 딸내미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서 변복을 하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그저 중소 귀족처럼 보인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백성들 중에 '비세리온 국왕이다!'하고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의 얼굴을 모든 백성들이 알 리가 없다.

비세리온을 본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브리튼의 전체 인구에 비례해보면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일부분은 수도 카멜롯에 거주하는 백성들이었고, 론디니움에서는 비세리온 펜드래건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바마마."

"그래, 우리 딸."

목마를 타고 있던 모드레드가 말했다.

"브리튼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화려하고 활력이 넘치는 브리튼을 바라본 어린아이의 감상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그것을 들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리고 국왕의 입장에서는 가장 황송스러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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