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48화 (148/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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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바다 위에서

005

동고트의 패잔병들이 다음 국왕으로 추대한 사람은 토틸라의 혈족인 테이아였다.

테이아는 용맹스러웠지만 토틸라에 비하면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토틸라 사후에 모여든 동고트 부하들은 그를 국왕으로 추대하면서도 개인적인 성격대로 움직이려는 습성이 강했다. 동고트 병력은 패전하면서 흩어진 잔여병력을 수습했다. 토틸라의 부장들인 스키푸아르, 안돌프,라그나리스 등과 합세하면서부터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스키푸아르가 간언했다.

"브리튼을 끌어들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들은 우리와 동맹을 맺은 국가입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브리튼의 힘이 절실합니다."

"그들이 합류해준다면야 다시금 일전을 벌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각 부장들도 그에 거들었다.

지금은 동고트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으니, 브리튼의 전력으로 비어버린 곳을 보강하겠다는 뜻이다. 그들은 브리튼을 신용한다기보다는 반드시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였기에 절실히 매달렸다. 브리튼 진영으로 연이어 전령을 파견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였고, 브리튼 측에서는 대답을 며칠 동안이나 미루다가 겨우 승인을 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토틸라가 사망하면서 동고트 진영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새롭게 왕으로 즉위한 테이아의 능력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자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는 변절하여 로마에 귀순을 시도한 자들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전처럼 동고트 병사들이 용맹스럽지는 않았다. 토틸라가 죽으면서 발생한 문제였다. 타카나이 전투에서 토틸라 왕이 사망. 그 때부터 동고트의 멸망은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보고드립니다! 로마 병력이 캄파니아 지역의 아군 요새를 공격하려고 진군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급하게 소식을 전한 전령의 보고를 들은 테이아는 당장에 모든 병력들을 대동하고서 아군 요새를 돕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지금이야말로 로마와의 전쟁에서 승전을 거두어 뒤숭숭한 아군 병력들을 다독이고, 다시금 동고트 왕국의 부활을 논하여야 할 때였다. 테이아는 자신의 혈족이었으며 전대 왕이었던 토틸라가 그리하였듯이,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높혔다.

로마의 명장 나르세스는 이탈리아에 얼마 안남은 동고트 거점이자, 토틸라가 이탈리아 전역을 약탈하면서 얻은 전리품들을 모두 숨긴 곳으로 알려진 캄파니아의 쿠마이를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쿠마이는 난공불락에 가까운 요새 중의 요새였고, 토틸라가 최후의 보루로서 마련한 곳이었기에 쉽게 함락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르세스는 쿠마이에서 진군이 중지.

한편 동고트의 테아이는 쿠마이를 사수하고 있는 아군을 구원하고자 직접 군사를 이끌고서 출정하였다.

"우리들의 전우들을 구출하자! 로마를 쳐부수자!"

"토틸라 왕의 원수를 갚아줄 때다!"

"왕의 원수를 갚자!"

동고트의 병력은 자그마치 3만에 달하였다.

처음에 10만 대군을 이끌었던 위용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이지만 동고트의 사정을 따지자면 3만이라는 병력도 꽤나 대단하게 모인 것이나 같았다. 토틸라를 따랐던 부장들은 적어도 테이아에게는 적극적으로 충성을 바치고 있는 입장이었고, 동고트 병력들도 왕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걸자 용맹왕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그를 죽인 로마 병사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한편 브리튼 측에서는 군사를 지원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정확한 군사 이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테이아는 불안감이 크게 들었으나 불리한 상황 속에서 브리튼의 심기를 건들 수는 없었으므로 강제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토틸라의 부장들은 브리튼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탈리아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덕분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토틸라 왕은 브리튼의 왕에게 약탈한 전리품을 브리튼으로 수송할 수 있도록 전함도 제공해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베푼 은혜가 얼마인데 조금 불리해졌다고 이렇게 나오다니요!"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물리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단이 없었기에 동고트 병력 3만은 즉시 캄파니아 지역으로 이동하여 쿠마이를 포위하고 있는 로마 병력과 대치했다. 나르세스가 이끄는 병력이었다. 동고트 군사들은 토틸라가 죽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건만, 그를 죽인 원흉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006

브리튼은 가도를 따라서 계속해서 북상.

캄파니아 지역의 쿠마이를 포위하고 있는 로마 병력을 격퇴하기 위해서 북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은 사실상 고국 브리튼을 향해서 퇴각을 결행하고 있었다. 캄파니아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북상을 한 다음에 바로 동쪽으로 말머리를 꺾어야 했는데, 브리튼은 그와는 반대쪽인 서쪽으로 말머리를 꺾어버렸다.

기사도를 들먹이는 브리튼 기사들이 반박할 만도 했지만, 그들조차 입을 다물었다. 이미 동고트를 구원하기에는 전황의 균형이 너무 치우쳐졌고, 동고트의 테아이로서는 결코 나르세스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기지 못할 전쟁에, 그것도 동맹에 지나지 않는 동고트를 돕기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브리튼 기사들은 동고트 병력들이 로마와 일전을 벌이고 있음에도 그것을 철저히 무시했다.

"오라버니, 그래도 동맹국....."

"조용히 해."

세피아 색의 기사왕이 입을 열면서 발언하려고 했지만, 비세리온이 곧이어 차가운 대답을 해버리자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아서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 동고트를 구원하기 위해서 캄파니아 지역으로 향한다는 것은 브리튼도 그들과 함께 공멸하는 것을 의미했고, 이탈리아 남부에서 올라오는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에게 따라잡힐 우려가 있었다.

지금은 가까스로 루키우스가 이끄는 추격군을 따돌리는 상황이었는데, 캄파니아 지역으로 이동해버리면 로마의 주력부대에게 노려지게 될 것이다. 6만에 달하는 군대였지만 향수병이 지독하게 걸려 있었고, 용맹왕 토틸라가 패전하고 전사하면서 사기도 낮았다. 지금은 피할 때였지, 싸울 때가 아니다.

어차피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서 얻을 것은 모두 얻었다.

지금까지 약탈한 전리품들은 동고트의 전함들을 빌려서 고국으로 수송하였고, 이제는 몸을 내뺄 차례였다. 동고트에게 미안하다는 감정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이 6만에 달하는 브리튼 병력들의 목숨보다 무겁지는 않았다.

"팔라메데스, 파사를 공격해."

"알겠습니다."

비세리온은 애초에 가장 험난하기로 유명한 알프스 산맥을 넘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산맥의 하단부에 위치한 평탄한 지형인 파사로 이동하여 갈리아까지 장거리의 행군을 할 것이다. 파사는 원래 로마의 영토였지만, 오랫동안 브리튼과 동고트에 의해 이탈리아가 유린당하면서 로마와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 누구의 세력권도 아니었다.

파사에는 그 어떠한 병력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사를 거쳐서 이동하는 것도 가능했다.

과거 로마를 토벌하려 하였던 한니발 바르카는 지금 브리튼이 향하려는 파사에 대규모의 로마군이 있었기 때문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야 했던 것이다. 지금은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 파사에는 그 어떠한 로마 병력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방법이 가능했다.

"아서,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해? 나는 아국의 병력을 살릴 수 있다면야 명예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의 심정도."

"지금은 어쩔 수 없어. 그래서 내린 결단이야."

현재 캄파니아 지역에는 3만에 달하는 동고트 병력들이 로마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전역에 있는 동고트 병력들을 합친다면 더 많을 것이다. 브리튼은 그들의 목숨을 모두 경시하고서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비겁하다고 여겨도 좋다. 브리튼은 결코 지는 싸움에는 참전하지 않는다. 적어도 비세리온에게는 동고트보다는 브리튼이 더 중요했다.

아서가 말하는 것에도 일리는 있었지만, 명예로운 헛된 전투에는 흥미가 없다. 아무런 실리조차 없는 전쟁은 괜스레 아군 병력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탈리아 퇴각전을 결행하는 것에 죄책감이 없었다.

"아서, 기억해 둬. 쓸데없는 전투는 피하는 게 상책이야. 전쟁을 하기 전에는 기억해. 그 전쟁을 시작함으로서 과연 아군 병사들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네, 미안해요. 쓸데없는 말을 해서."

"아니, 괜찮아."

아서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세피아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자신의 머리를 짓누르는 비세리온의 손길을 맞잡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퇴각.

어쩔 수 없는 배신.

그리고 어쩔 수 없었던 선택.

6만에 달하는 브리튼 병력은 동고트의 지원 요청을 무시하고서 퇴각을 선택했다. 이탈리아 북부를 건너서 파사로 진출. 파사에서부터 이제 갈리아로 이동하는 장거리 행군을 시작한다. 갈리아에서 선박을 타고 브리튼으로 돌아갈 것이다.

브리튼은 대국에서 물러났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는 동고트의 잔당들을 소탕하면서 브리튼을 놓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시했고, 벨리사리우스는 폐허가 되어버린 수도를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르세스는 동고트의 테이아를 상대로 계책을 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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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세리온: 기억 안 난다니까 다시 한 번 말할게요. 저 진짜 누나 좋아해요.

멀린: 왜 이래? 너 눈치없는 애 아니잖아.

비세리온: 그 사람말고 전 안 돼요? 전 진짜 잘해줄 자신 있어요. 내가 속상하게 하면 헤어져도 돼!

멀린: .....병신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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