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47화 (14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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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바다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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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나이 평원의 전투에서 동고트의 왕 토틸라가 전사.

열악한 상황 속에서 즉위하여 열세의 군대로 다수의 동로마 군을 수차례 겯파하며 동고트 왕국을 부활시켰던 명군 토틸라는 12년 간의 파란만장한 재위 기간을 장렬히 마감하였다. 용맹왕이라 불리며 로마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전쟁 군주가 전사하였다는 소식은 이탈리아를 포함하여 인근 국가를 강타하였고, 앞으로 펼쳐질 판도를 완벽하게 바꿔놓는 양상을 확산시킨다.

"토틸라가 죽었다는군."

"불사신 같았던 그 역병을 드디어 제거한 건가."

"그 시체는 찾을 길이 없다고 하니, 더 무서운 일이 아니겠나?"

"또다시 살아나서 우리를 괴롭힐지도 모르겠군."

로마 시민들에게 있어서 '토틸라'라는 인물은 그야말로 재앙이자 역병과도 같은 공포였다.

동고트의 왕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재앙에 도달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패망한 동고트를 부활시킴으로서 대제국 로마를 상대로 몇 번이고 승리를 거둔 전쟁 군주는 적국인 로마에게 있어서는 꿈에서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인물이었다.

적어도 그의 무명은 훌륭하였다며 찬사를 늘어놓는 로마 무장도 있는 반면에, 수도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에 희생된 사람들 중에 가족이 있었던 사람은 '드디어 악마가 죽었다!'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좋던 싫던, 토틸라가 인류사를 바꿔놓을 정도의 인물이었다는 것은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흡수하면서 비대하게 커진 대제국조차 긴장시켰으며, 로마가 야만족들에게 경계심을 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동방의 페르시아도 무서운 난적이었지만, 동고트는 그보다도 더한 난적이었다. 수도를 불태우고 짓밟아버린 자가 아니었던가. 그가 죽었다는 것은 로마로서는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물론 그 소식은 브리튼 진영에도 전해졌다.

브리튼군은 이탈리아 남부의 모든 항구도시를 포기하고는 군세를 이루어 북쪽 가도로 진출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남부에서 움직임이 국한된다면 나르세스의 부대에게 브리튼으로 가는 길이 막힐 우려가 있었다.

"토틸라가 죽었다라. 차라리 악몽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비세리온이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동맹국의 군주였던 토틸라가 죽었다라. 개인적으로도 그를 뛰어난 영웅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나르세스에게 패배할 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하지만 전투에서 대패하여 그 목숨까지 잃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토틸라의 죽음으로 동고트 병력들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고트 기병대의 일부는 브리튼군에 흡수되었지만, 대다수의 병력들은 사분오열로 분열되면서 로마 군세에 사냥당하거나 로마에 항복해버렸다. 이미 동고트는 끝났다. 동고트라는 왕국 자체가 토틸라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따르던 집단이었으니, 그의 패망과 함께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한 셈이다.

"전하,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무슨 기회? 이탈리아 점령은 끝났어. 고작해야 6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초반에는 5만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군사를 소집하고 동고트의 잔여 병력까지 흡수하자 6만의 병력으로 발전했다. 모두 훈련도가 높은 정예병들이지만 고향을 너무 오랫동안 비웠다는 점이 작용하면서 향수병이 찾아왔다. 당장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병사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항구도시를 포기한 뒤부터 루키우스 티베리우스가 이끄는 주력부대와 몇 번이고 교전을 벌였지만 이렇다고 할 성과는 없었다. 남부의 항구도시에서 치고 올라오는 루키우스의 주력군을 대파시키기 위해서 전면전을 유도했지만, 그를 모를 리가 없는 루키우스는 교활하게도 그 유도를 모두 피해냈다.

"수도 로마에서 벨리사리우스가 출진하였다는 정보입니다."

"루키우스 또한 북진을 개시했습니다."

"북부에서 동고트 잔병을 소탕하고 있는 나르세스도 위협적입니다."

전령들이 가져오는 소식들은 모두 긍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로마 병력들이 집결하면서 포위망을 구성하려 한다. 비세리온은 로마 포위망을 피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북쪽 가도로 북진. 포위망을 피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바로 살 길이다.

"피곤한데."

미간을 찌푸리면서 비세리온이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토틸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전해졌다. 동고트가 괴멸되었다는 것은 브리튼 세력으로만 이탈리아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숨을 크게 토해내면서 눈앞에 서 있던 가웨인을 껴안았다.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으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소녀의 달콤한 체취가 코를 자극한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볐음에도 달콤한 체취는 여전했다. 아리따운 여성의 살냄새는 남성을 자극하는 가장 훌륭한 매력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웨인의 새하얀 피부를 깨물면서 키스 마크를 남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다시금 전쟁에 나서야 한다.

지금 자신의 어깨에는 6만 명에 달하는 목숨이 달려 있었고, 이 군막 바깥을 나서면 '비세리온 펜드래건'으로서의 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가웨인의 수려한 금발을 매만지면서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파묻고 있는 얼굴을 흔들었다.

간지러웠는지 가웨인이 키득 웃었다.

그러면서도 두 팔로 비세리온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마치 오랜 격무로 지친 정인을 달래주는 애인처럼 보였다. 1년 이상이나 이어진 이탈리아 쟁탈전. 병사들은 모두 피로와 고통을 토로했지만, 그 누구보다 피로를 느끼는 것은 비세리온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스트레스와 점점 압박을 가해오는 로마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스트레스성 두통을 앓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오히려 온전하게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전하, 괜찮으세요?"

"아니. 죽을 것 같아."

"이대로 조금.... 주무세요. 많이 피곤해보여요."

"그럴 수는 없지. 바쁘니까."

벌써 사흘이 넘는 시간 동안이나 수면을 취한 적이 없다.

사태를 관망하고 예의주시를 하면서 책략을 짜내고 있었으니 쉴 틈이 없었다. 아서는 캐러독, 멀린과 함께 별동대를 이끌고서 루키우스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는 중이었고, 가레스와 팔레메데스 또한 수도에 있는 벨리사리우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브리튼의 대부분 기사들도 바쁜 것은 매한가지였고, 그만큼 브리튼은 궁지에 몰렸음을 의미했다.

"이대로 쉬고 싶은데."

가웨인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소녀의 품에서 영원한 잠에 빠지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책임과 의무. 군주로서의 당연히 가져야 할 자기희생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 가웨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나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전해졌다. 사르륵거리며 눈부신 금발이 흩날렸다. 흙먼지가 휘날리는 전장에서도 이렇게까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전하."

금발의 여성이 입술을 겹쳤다.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키스를 유도한다. 혀가 겹쳐들면서 감미로운 맛이 났다. 키스를 마치고서 거리를 벌리자 타액으로 이루어진 실타래가 펼쳐졌다. 혀를 움직이며 입술을 핥는 가웨인. 그녀는 고양이처럼 베시시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제가 전하를 먹었네요."

앙큼한 고양이 같으니.

비세리온은 너무도 귀여운 소녀의 반응에 웃음을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웃음을 지어주자 가웨인도 방긋 웃음을 짓는다. 마지막으로 웃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원정이 길어지면서 무미건조한 모습만 보였다. 가웨인이 애교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웃음을 짓진 않았겠지. 가웨인의 얼굴을 바라보자 두통이 조금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고마워, 덕분이 기운이 났어."

"후후후. 다행이네요."

"하지만 다음에는 내가 널 먹어버릴 테니까."

"예, 준비하고 있을게요."

가웨인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부터는 이탈리아라는 이름의 무대에서 퇴장할 시간이다. 동고트의 잔여 병력들 중에는 토틸라의 사망 이후로 다음 왕을 추대하여 로마에서 저항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토틸라가 이끌었던 유능한 장군들이 버티고 있으니, 그렇게 쉽게 패배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 시간을 벌고 있는 사이에 퇴각한다. 그것이 가장 훌륭한 시나리오였다.

동고트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전령이 도착했다.

토틸라가 사망하였으나 동고트와 브리튼이 맺은 동맹은 유효하며 지금이야말로 양국이 서로 협조하여 로마를 멸망시켜야 하지 않겠냐, 라는 내용이다. 물론 그대로 따라줄 생각은 없다. 브리튼이 이대로 동고트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브리튼이 동맹을 맺은 것은 '토틸라'가 있는 막강한 동고트였지, 그가 죽은 약소한 동고트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대로 버린다. 비세리온은 전군에 퇴각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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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기간 말고는 연재할 시간이 따로 없어서 조금 전개가 빠르고 서툴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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