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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도시
007
세나 갈리카에서 동고트가 대패.
대부분의 전함이 소실하고 이탈리아 중부지역까지 모조리 내줘버린 이 상황에 브리튼 군영이 술렁이는 것은 당연했다. 로마군이 점점 압박을 가해오면서 불리함을 느끼는 병사가 있는 반면, 이제 브리튼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향수병에 걸린 병사도 있었다. 고향을 떠난지도 1년이 훌쩍 넘어버렸고, 갈리아에서 싸운 세월을 포함하면 1년 6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브리튼 병사들이 향수병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는 10만에 달하는 대군을 집정관 칼리니쿠스와 함께 시칠리아, 코르사카 방면에 배치시키고서 상륙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이번에 벌어질 이탈리아 탈환전은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직접 나선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탈환전에 투입된 로마 병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고, 그것은 곧 사실로 밝혀졌다. 로마 황제기 직접 시칠리아에 상륙하여 지중해에 집결한 로마 병력을 지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고트 녀석들도 졌는데, 우리가 여기 있을 필요가 있나?"
"퇴로가 막히기 전에 몸을 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제 약탈품도 얻었겠다, 노예도 장만했다고."
브리튼 군영에서는 이제 한 몫을 단단히도 챙겼으니 돌아가자, 라는 여론이 강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향수병이 역병처럼 번진 것이다. 브리튼 기사들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수도 로마를 함락시켰을 뿐더러, 그 일대를 모두 장악하였다. 대제국의 수도를 함락시킬 당시에만 하더라도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대단하였지만, 로마가 압박을 가해오면서 앞으로의 전황은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미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일으킨다.
명성이 높은 로마 장군들이 모두 전선에 참전하게 되면서 불안감이 강타했다. 어느 누구는 돌아가야 한다고 군사 회의에서 강하게 주장했고, 어느 누군가는 전면전을 주장해버렸다. 로마와 브리튼, 이 둘 중의 한 세력이 멸망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자는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은 그렇게 신빙성을 가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로마는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한 아시리아와 그리스 방면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영토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르만 부족들 중에서도 로마와 친분이 깊은 롬바르드족은 로마에게 보수를 받고서 용병부대를 제공했고, 다른 야만족들도 로마에 막대한 보화를 제공받으면서 용병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야만인 용병대들의 숫자가 어느덧 2만에 도달할 정도로 성장했고, 그들은 북방에서 동고트 왕국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방조차도 불안정하게 되었다.
"가웨인 경, 이제는 퇴각해야 합니다. 동고트와의 의리도 중요하지만.... 이대로는 우리도 죽습니다."
아서 휘하의 기사인 캐러독이 주장했다.
캐러독은 군략이 매우 깊은 지략가로, 비세리온 다음으로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태양의 기사에게 주청을 올릴 정도였으니 전황이 실로 위태롭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캐러독은 비세리온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서 일부러 왕의 측근인 가웨인에게 말을 건 것이다. 가웨인은 누가 뭐라해도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자였으니까. 적어도 가웨인이 설득을 해준다면 왕도 회군을 선택할 것이다.
"정말로, 방법이 없겠습니까?"
"예. 시칠리아에서는 로마 황제가, 그리고 북쪽에서는 나르세스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는 상하로 길게 찢어진 땅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포위망을 좁혀온다면 아군은 물론이고 동고트 병력도 전멸입니다."
물론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리가 없는 토틸라는 나르세스와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고 있을 테지만, 너무도 위험성이 높은 방법이다.
향수병에 걸린 브리튼군처럼 동고트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정벌에 너무 오랫동안 매달렸고, 비록 크게 성과를 거두었지만 페르시아 전선에 있던 로마의 주력 부대가 귀환하면서 병사들의 불안감이 증폭되어 갔다.
동고트 휘하에 있는 2백 여척의 전함.
물론 아직까지도 동고트는 건재하지만 자국까지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크게 당황할 것이다. 그에 반해서 로마는 수도까지 짓밟혔다는 것과, 황제가 직접 전쟁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에 고무된 상태였다. 로마 군단병들은 매서웠고, 그것을 가장 잘 알려준 사건이 바로 세나 갈리카 전투였다.
나르세스가 이끄는 병력이 토틸라를 이겨버리면서 로마의 대반격이 전개. 브리튼과 동고트 연합군이 우세하였던 전황을 단 한순간에 바꿔버렸다. 동고트는 결코 져서는 안 될 전투에서 져버린 것이다.
"전하에게는, 제가.... 제가 고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가웨인은 우선 캐러독을 달랜 다음에 비세리온에게 찾아갔다.
비세리온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앗다. 그는 이탈리아로 상륙하려는 루키우스를 감시하고자 매번 항구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세리온은 여전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고, 가웨인이 다가섰다.
가웨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비세리온이 먼저 말했다.
"회군에 대해서인가?"
".....네. 알고 계시는군요."
"나도 눈과 귀는 멀쩡하니 말이지. 요즘 눈이 침침해져서 문제이긴 하다만."
비세리온은 약간의 농담기가 섞인 말을 하고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1년 동안이나 이어진 이탈리아 쟁탈전. 로마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그 일대를 모두 약탈하면서 대활약을 펼쳤지만, 오랜 전투는 모든 이들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전쟁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는 자도 있었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 무덤덤해진 신병도 있었다.
모든 이들이 지쳐가고 있다.
물론 그들 중에는 비세리온 펜드래건도 포함되는 경우였다.
비세리온이 말했다.
"아이가 태어났겠지? 모르간을 닮았으면 좋겠는데. 나를 닮으면 성격이 개판.... 아니, 모르간을 닮아도 성격이 유순하지는 않겠어."
아이?
가웨인은 뜻밖의 말에 잠시 당황했다. 전쟁에 대해서 그 주제를 꺼내들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비세리온은 브리튼에 있을 가족에 대해서 입에 담았다. 로마를 떠났을 때 모르간이 아이를 임신한 지가 3개월. 그 뒤로 1년이 지났으니 특이한 일이 없는 이상에야 뱃속에 있을 아이는 태어났을 것이다.
비세리온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런데 정작 아빠라는 나는 태어난 아이가 아들인지도, 딸인지도 몰라. 이름도 몰라. 이름을 정하기도 전에 전쟁터로 와버렸으니까."
이탈리아로 떠나온 비세리온은 브리튼에 있을 모르간의 소식은 묻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서한조차 보내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지. 비세리온은 일반 병사들조차도 고향에 있을 가족 사정을 모르는데, 자신 혼자서 알 수는 없다면서 서한을 보내는 것을 거부했다. 그저 사무적인 내용을 적은 서한을 전령에게 전달하였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비세리온은 모르간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낳은 자신의 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아무것도 몰랐다.
혹시나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도 품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다가 사산하는 경우도 자주 벌어졌으니. 그런데도 비세리온은 모르간에게 서한을 전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탈리아 쟁탈전이 시작한 이후부터 가족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입에 담는 적이 없었다. 괜스레 부하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전쟁을 생각한다.
전쟁을 나온 지휘관은 전쟁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될 것이고, 등을 돌리면서 떠나온 고향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선 안 될 것이다. 브리튼의 모든 용사들은 고향을 등지고서 오로지 조국의 명예와 승리를 위해서 전쟁에 참전했다.
왕으로서 부하들의 안위를 무시하고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전하.... 이모님은 잘 계실 거예요."
"그렇겠지. 강한 여자니까."
모르간을 못 본지도 1년 이상이 지나버렸다.
분명 올 생각을 하지 않는 남편에게 있는 힘껏 화풀이를 하고 있으리라. 다른 남자를 끌어들여서 다른 살림을 차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전자는 가능성이 높지만, 후자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모르간은 오로지 비세리온만을 사랑하고 있었고, 다른 남정네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가웨인. 기사들을 모두 소집시켜."
"회군을 결정하신 것입니까?"
그 말에 비세리온이 얼굴을 굳히면서 고개를 저었다.
"전쟁의 시작이다. 토틸라가 나르세스와의 결전을 원하고 있듯이, 나 또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와 결판을 지어야겠어. 적어도 로마 함대들을 지중해에 쳐박지 않고서는 퇴각할 수 없어."
이탈리아 쟁탈전의 마지막을 장식할 일전.
토틸라와 비세리온. 그리고 나르세스와 루키우스. 각국을 대표하는 명장들이 일제히 마지막 일전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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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임 님, 쿠폰 13장 감사합니다.
(쿠폰을 주시면 바로 코멘트를 써주세요. 그래야 어느 독자분이 보냈는지 압니다.
쿠폰을 보낸 시각과 갯수는 뜨는데 정작 아이디가 안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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