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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138화 (138/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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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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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트의 왕 토틸라는 나르세스 측의 병력이 모두 집결하기 전에, 로마군이 상륙의 거점으로 쓸것이라 예상되던 안코나를 함락하여 교두보를 제거하기로 결심하였다.

토틸라의 주력 해군은 시칠리아를 떠나 북상하였고, 그의 군대 또한 안코나에 도달하였다. 총 5만에 달하는 대군이 몰려들었으므로 당장이라도 안코나는 함락될 것처럼 보였다. 육군이 도시를 포위하였고, 동고트 전함 47척이 해상 봉쇄에 가담하였다. 이로서 항구도시는 금방이라도 함락될 것처럼 보였다.

한편 라벤나에 거점을 잡고서 동고트에 대항하고 있던 로마의 사령관 발레리아누스는 천혜의 항구인 안코나의 함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달마티아의 살로나에서 나르세스의 본대 도착을 기다리던 장군 요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요한 또한 안코나까지 점령당한다면 로마에는 콘스탄티노플로 소식을 보낼 수 있는 길목이 모조리 막혀버린다는 중요점을 알아차리고 있었고, 위급함을 알리는 서신을 받자마자 요한은 휘하의 경험 많고 숙련된 군인들이 배치된 38척의 구원 함대를 파견하였다. 발레리아누스도 라벤나에 배치된 12척의 함대를 직접 이끌고 합세. 그리고 나르세스가 동고트 왕국을 공격하던 시기에 사용했던 대규모의 함대를 이끌고서 도착하면서 동고트 측과 호각을 이루었다.

로마는 동고트의 막강한 해상력을 궤멸시키기 위해서라도 로마 각지에서 온전하게 버티고 있던 모든 전함들을 긁어모았다. 지역들마다 그 성향과 지휘계통이 달랐으므로 연합 함대처럼 보였다. 급하게 모였기에 열악했지만 적어도 군함을 다루는 해병들의 솜씨는 뛰어났다. 모두 해상 도시 출신였기 때문이다.

"오만하구나, 나르세스! 우리를 상대로 고작해야 긁어모은 잡병으로 이길 셈이냐!"

로마의 연합 함대가 안코나에서 조금 떨어진 세나 갈리카라는 항구도시에 정박하고서 결전을 준비했다. 그 소식을 접한 토틸라는 크게 웃으며 나르세스가 전쟁을 너무 성급하게 생각한다고 여겼다.

고작해야 여러 지역에서 긁어모은 잡병으로 아군과 엇비슷한 규모의 해상력을 갖추게 되었다지만, 서로 연합 훈련조차 거치지 않은 오합지졸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에 반해서 동고트 함대들은 항해술이 서툴었지만 단결력이 좋았다.

동고트 함대를 이끌고 있는 해군 사령관 안돌프와 기발은 로마 함대 따위는 언제라도 격파할 수 있다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원래는 비잔티움 제국 출신이었던 해군 사령관들은 현 황제에 불만을 품고서 동고트 왕국으로 전향하였는데, 특히 안돌프는 직접 동고트 함대를 이끌고 몇 배가 넘는 로마 함대와 보급선들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전공을 세운 해군 사령관이었다.

"전하, 아군 함대를 즉시 세나 갈리카로 이동시켜서 그 바닷물에 로마 함대를 쳐박아버리겠습니다."

"저들에게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저리도 쉽게 항구에 군함들을 정박시켰으니 이건 아국에게 있어 기회와 같습니다."

그를 들은 토틸라는 충성스러운 해군 사령관들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시간을 저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로마 각지에서 모인 함대들이 연락 체계와 지휘 계통이 확립될 시간을 줄 수는 없다. 토틸라는 자신부터가 이미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육군에서 사용하는 지략과 전술이 해군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기발은 직접 로마 함대에게 때려박을 충선을 준비했고, 사령관 안돌프는 모든 함선을 총지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토틸라는 직접 육군을 이끌고서 북상하여 세나 갈리카에 주둔하고 있는 나르세스와 결판을 짓기로 하였다. 육군과 해군이 모두 총출동하여 육상과 해상에서 결판을 지어버린다. 로마와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계획한 수륙양용 작전이다.

"여기에서 이긴다면 이탈리아는 모두 동고트의 것이다! 다음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서 오만한 황제가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겠다! 지중해의 패자는 우리 동고트가 되어야 한다."

"그렇사옵니다. 전하께서 새로운 황제가 되셔야 합니다."

"지금은 페르시아도 군사를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니, 로마만 패망한다면 전하를 막을 세력은 아무도 없습니다."

토틸라는 로마를 밀어내고 지중해의 황제가 되고자 하였다.

브리튼과 동맹을 맺었지만, 이 세상에는 영원한 동맹은 없다. 그것은 비세리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서로의 필요성에 따라서 굳건한 동맹을 맺었지만, 그 동맹에는 의리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편의성을 위해서 정해진 동맹일 뿐이다.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브리튼의 왕 비세리온에게는 서방의 영토를 모두 떼어줘도 좋았다. 그는 군략이 출중한 인물이다. 그를 산하에 복종시킨다면 그 어떤 세력도 두렵지 않으리라. 동고트가 로마의 영토를 모두 정복하고, 브리튼에게는 갈리아와 이베리아 등의 영토를 모두 하사한다.

어차피 서방의 영토는 미개한 야만족들로 들끓는 곳이니 광대한 땅이라고 할지라도 효용성이 없다, 그에 반해서 로마의 영토들은 크게 발전한 지역으로, 인구가 많았으므로 효용성이 좋았다. 나르세스를 격멸하고 새로운 동고트의 황제를 자칭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로마에 의해 패망당한 동고트 왕국을 재건하고 부흥시킨 토틸라는 동고트인에게 있어 최고의 영웅과도 같았고,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전군 북상하라! 로마를 이 지도에서 지워버릴 날이 머지 않았다!"

토틸라가 검을 치켜들며 소리치자 모든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조국을 패망시킨 로마에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 수도를 이미 짓밟아버렸고, 로마의 심장부에서 거주하던 로마 귀족들을 모두 살해하였으며, 그들의 아내와 딸들은 모두 강간하고 죽였다. 동고트는 로마를 지배한 정복자였고,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로마를 공격하자!"

"토틸라 왕 만세!"

"드디어 우리가 로마를 멸망시킬 때가 도래하였다!"

토틸라 왕이 지휘하는 5만 명의 육군이 북상. 그리고 해로에는 수백 척에 달하는 동고트 함대들이 잇달아서 북상을 개시하였다. 육군과 해군이 동시에 이동하여 육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압박했다.

적은 도망칠 곳도 없을 것이고, 설령 도망친다고 할지라도 로마에게는 최후의 해상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세나 갈리카와 안토나. 이 두 거점을 점령하면 이탈리아에서 저항하고 있는 모든 로마 병력들은 콘스탄티노플과의 모든 연락망이 끊어진다.

"이놈! 나르세스야, 내 검을 받아보거라!"

"전군 공격하라!"

"로마를 짓밟아라!"

수천 기에 달하는 동고트 기병대들이 드디어 세나 갈리카로 진격하였다.

그리고 이에 맞서서 로마에서도 똑같은 규모로 보이는 기병대들을 출격시켰다. 양군의 기병대들이 가장 먼저 교전을 시작했고, 서로 뒤엉키면서 승패를 판단하기 어려운 난전을 만들어냈다. 나르세스와 토틸라는 선두에서 병력들을 지휘하기 시작했고, 화살이 빗발치는 두려운 전선에서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었다.

총사령관이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면 아군 병사들은 그것을 민감하게 감지해낸다. 그렇기에 총사령관들은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된다. 산처럼 무겁게 버텨야 하며, 불처럼 뜨거운 공격을 퍼부어서 적을 상대해야 했다.

나르세스는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난 파르티아 출신의 귀족 자제였다. 환관이 되어 로마 황궁으로 들어간 그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심복이 되어 재정 관리, 제국 금고 관리를 맡았고 근위대장까지 역임하였다. 늘그막에 52세의 나이로 출세 가도에 오른 그는 2년 후에 터진 니카의 반란에서 활약하며 군략에 재능을 표출하였다.

벨리사리우스만큼이나 노장인 그는 새하얀 백발을 늘어뜨린 장수였고, 무거운 중갑옷을 입고서도 굳건하게 서 있었다. 늙은 몸이라서 힘에 겨울 터인데도 치열한 전장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

"제 2진의 보병대는 적의 좌익을 공격하여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토틸라의 이목을 막아라."

"알겠습니다!"

나르세스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병대들이 진군하였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동고트의 좌익에 충돌하였다.

그를 육안으로 지켜보던 토틸라는 자신이 자주 동원하는 중장기병들을 내보냈다. 중장기병들은 보병대를 효과적으로 쓸어갈길 수 있는 최고의 전투병과였고, 로마의 보병대를 무찌를 수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예상대로 동고트의 중장기병들은 아군의 좌익을 공격하던 로마 보병대를 아작내고 있었다.

하지만 육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력부대들의 전투는 그저 조공에 불과했고, 진정한 주공은 해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함대들 간의 전투일 것이다.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로마 연합함대와 해로를 타고서 항구도시로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는 동고트 함대. 양국의 해상력이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결과야말로 전투의 진정한 승패를 결정 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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