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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도시
002
벨리사리우스는 이탈리아 남부로 퇴각한 다음에도 결코 수도 로마를 탈환하겠다는 열의를 놓치지 않았다. 기병 1천 기를 대동한 육군을 이끌고서 직접 로마를 공격하였으나, 브리튼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브리튼이 수도 로마를 사수하고 있는 사이에 토틸라와 동고트 군세는 이탈리아의 작은 반도에 해당되는 아풀리아를 점령, 로마 측의 주요 거점이었던 페루자까지 내친 김에 모조리 함락하였다. 브리튼에 놀라 수도 로마를 빠져나온 벨리사리우스는 황제의 칙령을 받아서 루카니아로 이동, 크로토나에 주둔하였는데 갑자기 토틸라가 들이닥치자 결국 이탈리아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결코 수도를 탈환할 수 없겠구나!"
탄식을 내뱉은 벨리사리우스는 너무도 막강한 야만족들의 공세에 메디나 해협을 건너서 시칠리아 섬까지 퇴각해버렸다. 벨리사리우스까지도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지중해 섬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연이어 패배하면서 도저히 저항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전선에서 루키우스와 집정관 칼리니쿠스가 대함대를 지휘하면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상륙하려고 했고, 나르세스 또한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돌아와 수도를 탈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콘스탄티노플에 있었던 황후 테오도라가 사망해버린 것이다.
원래부터 지병을 앓고 있었는데, 브리튼과 동고트에 의해 수도까지 강탈당하고 10만 명의 로마 시민들까지 학살과 약탈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이것이 모두 야만족들의 소행이라 여기고는 분노하여 로마의 모든 사령관과 군단장들에게 명령을 내려 수도 로마의 탈환과 함께 야만족들의 토벌을 지시했다
"이 빌어먹을 야만족 놈들!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역병이 창궐하여 황제 자신조차 그 역병의 증상이 느껴지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친정을 개시했다.
콘스탄티노플을 동생 게르마누스에게 맡겼고, 자신은 직접 루키우스와 칼리니쿠스를 대동하고서 직접 대군을 이끌게 되었다. 그 수만 하더라도 12만에 달하였다. 페르시아 전선에서 단련된 최정예 군단들이 나선 것이다. 황제의 분노와 함께 시작된 전쟁은 결코 그치지 않았고, 그저 그 전쟁이 페르시아 전선에서 서부 전선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브리튼과 동고트를 죽여버리자!"
"로마의 원수다! 로마의 원수를 갚자!"
"더러운 야만족들로부터 로마를 구원해야 한다!!"
로마 군단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역병이 창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자원입대를 하는 사람이 늘었다. 또한 루키우스가 직접 징병령을 주도하면서 거센 압박이 콘스탄티노플을 강타했다.
루키우스의 명성은 로마인들 뿐만 아니라 지중해와 중동의 소수 민족들도 징병장에 몰려들었고, 테살로니카를 공격하기 위해 남하하던 슬라브 인들도 그의 임관 소식을 듣고 달마티아 방면으로 진로를 바꿔서 콘스탄티노플에 합류하였다.
수많은 인원들이 갑작스럽게 몰려들면서 역병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였지만, 역병의 기세는 불과 한 달조차도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집트에서 수입하던 밀가루 포대에 숨어든 시궁창 쥐들이 퍼뜨린 역병이었는데, 그 기세가 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그마치 20만에 달하는 대군이 콘소탄티노플에 집결.
역병을 이겨낸 로마와는 달리 페르시아는 그 역병의 위험도가 높았기 때문에 미처 전쟁을 준비할 수 없었다. 브리튼과 동고트가 로마에게 당해버리면 그 다음 차례가 자신들이 될 것이라 여겼지만, 역병 때문에 도무지 병력을 움직일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애꿎게도 역병이라는 요소는 로마보다는 페르시아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브리튼과 동고트에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수도를 탈환하라.
로마의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003
이미 이탈리아 전역은 브리튼과 동고트로 넘어가고 말았다.
로마 측의 모든 요새들이 점령당하거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이탈리아 본토의 동로마 거점은 아드리아해 연안의 안코나와 크로토네 등 위태로운 한줌의 도시들이었고, 크로토네는 포위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편, 동로마 측의 보급 기지이자 로마 제국의 건설 이후 평온을 유지하던 시칠리아 마저 토틸라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토틸라는 남은 해안 도시들의 정복과 동로마 군대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하여 4백 여척의 함대를 건조하였고, 그들을 파견하여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점령하고 시칠리아를 약탈하는 등 기세를 떨쳤다. 동고트는 해상력이 막강한 국가였고, 4백 여척으로 구성된 함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시칠리아에서 병력을 추스리고 재배치를 하던 벨리사리우스는 지중해의 섬들마저도 토틸라에게 빼앗길 판국에 놓이자, 자신이 동고트 왕국에 베풀었던 자비를 크게 후회했다. 찰나의 관용과 용서가 결국 이러한 사태까지 일으켰다. 로마는 어머니의 땅이었던 이탈리아를 잃어야 했고, 동쪽의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쫓겨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탈리아 북부에 있던 나르세스는 일리리아 지역에 있는 불가르, 헤룰리, 롬바르드족 등의 이민족으로 병력을 구성하였고, 그 병력을 합치면 적어도 5만에 달하는 대군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명장 나르세스는 진군을 개시, 이탈리아의 동고트를 상대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나르세스가 온다는 말에 토틸라는 동고트를 괴롭힌 로마 장수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나서는 병력들을 곧바로 움직였다. 10만에 달하는 병력 중에서 그 절반을 나누어서 북진을 시작했고, 나르세스와 교전을 벌이기 위해서 이동했다.
"나르세스는 내가 상대하겠소, 그러니 그대는 남부지역을 복속시켜서 로마 주력군이 상륙하지 못하도록 해주시오."
"조금 힘든 일이 되겠지만 어떻게든 해보지."
"고마운 말이군. 나르세스를 박살내고서 곧바로 이탈리아로 복귀하겠네."
브리튼과 동고트는 그 병력을 나누게 되었다.
이미 수도 로마는 약탈을 거듭하여 폐허와 같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지킬 필요성조차 없었다. 1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 중에서 대다수가 죽임을 당하였고, 그들 중 일부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수도 로마는 멸망.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명장 나르세스가,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루키우스가 직접 병력을 지휘하면서 상륙을 준비했다. 모든 것은 수도를 되찾기 위해서. 비록 폐허가 되었다고는 하나, 수도 로마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땅인 것은 틀림없다. 군사적 요충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비세리온은 브리튼 병력 5만을 이끌고서 로마 대함대들이 상륙할 수 없도록 에피로스 지방과 이오니아 제도를 연이어 공격하면서 항구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고, 대규모의 함선들이 상륙할 수 없도록 저지했다.
"로마 주력부대들이 상륙에 성공해버리면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진다. 적의 대함대를 지중해에 묶어둬야 한다."
"하지만 여기는 로마의 앞마당과 같은 곳입니다, 오라버니. 저희들로서는 막을 수 없어요. 지중해오 맞닿은 항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알아. 하지만 내륙에서 싸워버리면 답이 없다고."
아서의 말에 비세리온은 머리를 긁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무리한 일이라는 건 잘 안다. 분명 로마 측에서는 수백 척에 달하는 대규모의 함선을 지휘할 것이고, 수도 탈환이라는 명분으로 모인 군단들은 수십만 명에 달한다. 고작해야 5만 명으로 막을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야만족을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있었으니, 로마인들은 결코 그 모욕감을 견디지 않을 것이고, 로마 군단들이 상륙에 성공하면 그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줄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나르세스를 정벌하러 떠난 토틸라가 성공하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가 승기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이번 전쟁의 승기는 확고하게 브리튼과 동고트로 기울게 된다.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의 지원군을 막야아 한다. 이번 공세만 막을 수 있다면 이탈리아는 브리튼의 수중으로 떨어질 터이니.
"가웨인,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퇴각할 준비도 조금은 해둬."
"불안하신가요?"
"당연하지."
가웨인은 유독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는 비세리온을 보면서 우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기 전에 불안한 모습을 좀처럼 들어내지 않았던 비세리온이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불안감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중해에서는 수백 척에 달하는 로마 대함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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