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27화 (12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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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침공

003

"다녀올게."

브리튼에서 또다시 사흘 동안이나 있었고, 그 때마다 모르간과 데이트를 보냈다.

그녀와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위함일까. 모르간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카멜롯에서 체류하는 동안은 업무를 모두 포기하고 모르간을 상대하는 일이만 전념했다. 나의 그런 모습을 알고 있는 모르간으로서는 내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잘 다녀와'라는 말을 건넸다. 적어도 그녀는 싸우기 위해서 떠나는 남자를 끝까지 막아설 정도로 연약한 여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응원의 말을 던졌다.

"잘 싸우고, 꼭 이겨.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녀는 강인한 여성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준다.

그에 따르는 책임과 함께 막아서는 안 될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보내야 할 것이라면, 웃는 얼굴로 보내준다. 그게 바로 모르간 르 페이다운 선택이 아닐까.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게 훤하다. 뺨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다. 모르간의 오랜 버릇 중 하나였다. 지금의 마음으로는 결코 나를 보내고 싶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준다. 거짓말에 너무도 서툰 아내를 보며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알아, 당신을 보내야 하는 건."

상대는 대제국 로마. 그것도 적 지휘관은 왕제 게르마누스.

지금까지의 상대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분명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군을 이끌고 올 것이다. 로마 본국에서 단련된 정예병들과 로마의 속국에 해당되는 각 지역에서 몰려든 거인 군단, 주술사 군단, 그리고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용병들까지. 로마 본국에서 공수하여 오는 정예병들은 갈리아에서 징발한 병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르간도 그것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고, 이번 전쟁은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 손을 흔들며 보내주었다.

"우리 마누라, 웃어. 돌아올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불안해지는 대사이긴 해."

모르간의 부드러운 뺨을 매만지면서 양손으로 매만지면서 말했다. 내 말에 모르간이 애써 웃음을 보인다. 눈물에 젖은 그녀의 새빨간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길 것만 같았다.

004

카멜롯에서의 휴식을 끝내고 곧바로 갈리아에 도착했다.

과연 카멜롯이 내 본거지일까, 아니면 갈리아가 내 본거지일까.

지금은 갈리아 전선을 유지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니, 지금 내 신경은 모두 갈리아 전선에 쏘여져 있었다.

전쟁의 상황은 비교적 심플하다.

로마의 대군은 현재 치중의 준비를 어느덧 마치고서 군사들의 출진 날짜를 잡고 있었다. 로마 본국에서 주둔하고 있는 예비 병력들을 투입시키는 일이기에 다른 병력들에 비해 그 준비의 기간이 길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왕제 게르마누스의 명령을 받고 있으며, 각종 뛰어난 정예 부대들이 참전을 예상하고 있었다.

"가웨인, 자세한 보고를."

"알겠습니다, 전하."

갈리아의 수도인 루테시아에 입성하여 태양의 기사에게 자세한 브리핑을 받았다.

가웨인은 역시나 똑 부러지는 브리핑으로 내게 정보를 전달해주었고, 아군 병력의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갈리아에서 두 번이나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이번에는 황제의 동생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서 온다는 말에 다소 공포스러운 기색을 자아내고 있었다.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겠지. 천하의 모르간 르 페이도 이번 전쟁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무수히도 많은 대군과 뛰어난 지휘관.

제 아무리 갈리아에서 날뛰며 활약을 하더라도 대제국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소소한 피해일 뿐이다. 로마에 충성하는 속국들은 얼마든지 있었고, 브리튼은 그 속국들 중에서도 가장 약소하고 나약한 국가였다.

그런 국가를 상대로 로마가 진심을 다한다면 옛적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로마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세 명의 사령관들이 투입되었다면 결코 갈리아에서의 승리는 없었을 것이고, 그들을 전선에서 따로 빼내어 갈리아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브리튼을 국가의 운명을 흔들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지금까지 사력을 다해서 싸운 입장에서 보면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로마에 반해서 브리튼은 규모가 너무도 작다. 한 번에 뽑아낼 수 있는 병력도 적었고, 물자 또한 미비하다. 연이어 패배하였음에도 로마는 대군을 원정길에 파병시킬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이 있었다. 그에 반해서 브리튼은 한 번이라도 패배하면 그걸로 끝이다.

"아군의 상태는 그렇게 나쁜가?"

"아닙니다. 전선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연이은 전쟁으로 사기는 올랐지만 그만큼 병사들의 피로가 상당합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에 이길 수만 있다면 로마에서도 쉽사리 병력을 또다시 파병시킬 수는 없을 거야."

가웨인에게는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것은 내 희망사항일 뿐이다.

로마가 마음을 먹는다면 다른 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여 갈리아로 보낼 수 있다. 대제국의 저력을 얕보아서는 곤란하다. 그들은 본국에서 운용하고 있는 병력들이 적을 뿐이지, 속국이 관리하고 있는 병력들까지 합쳐버리면 어마어마한 대군으로 발전한다. 특히 로마는 곤단병 체계를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평시에는 농업에 투입된 건장한 청년들을 곧바로 병력으로 차출이 가능했다.

그게 바로 브리튼과의 차이점이다.

브리튼에 그 군단병 체계를 도입하려고 해도, 애초에 로마와는 인구부터 차이가 심했기 때문에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로마처럼 농업에 투입된 젊은이들을 빼낼 수가 없었다. 브리튼에서 농부를 빼내어 병력으로 사용하면 그 다음 계절에 먹을 식량부터가 부족하게 될 테니까.

식량난은 전쟁에서 패전한 것보다도 더한 피해를 낳는다.

적어도 다른 속국에서 막대한 식량을 수송할 수 있는 로마와는 달랐다.

브리튼은 자급자족을 우선 원칙으로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마와 적대 관계를 선언하면서 브리튼에 식량을 수입하던 국가들이 단절을 선언해버렸으니 사태는 악화되기만 했다.

"로토마구스로 여기 루테시아에 있는 란슬롯과 그들 부대를 이동시키고, 브리튼의 전 병력에 비상 소집령을 내린다. 그리고 본국에서도 병력이 추가적으로 파병될 예정이니 그들과 합류하여 로마의 대군을 상대한다."

"본국에서 지원군이 파병되는 겁니까?"

"본국에는 조금 무리가 가는 이야기지만 어쩔 수 없어. 로마 대군은 갈리아 현지에 있는 브리튼 병력으로 감당하기 벅차니까."

"알겠습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그 지원군 병력들과 함께 갈리아로 상륙할 예정이었지만, 집정관 게르마누스가 이끄는 대병력이 곧 수도 로마에서 출병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단독으로 갈리아에 왔다. 지금 쯤이면 브리튼의 병력 또한 전함을 이용하여 갈리아로 상륙하리라. 그들과 합류한다면 적어도 로마 군단에 맞설 수 있는 규모 정도까지는 생긴다.

물론 브리튼에서 지원군까지 수송하였는데도 패전을 해버린다면 모든 것들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겠지만. 지금 브리튼은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려고 하는 것이다. 적어도 다음 기회가 있는 로마와는 다르다. 브리튼은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다음의 전투를 기약할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다.

"오라버니, 병력들의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좋아."

세피아 색의 기사왕이 달려오면서 말했다.

내게 시선을 향하고 있는 작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서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내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배시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순진무구한 미소를 보니 적어도 답답했던 마음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아서를 보고서 단언했다.

이렇게 전전긍긍하면서 고민을 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모든 힘을 다해서 적과 부딪칠 뿐이다. 그를 위해서 대제국 로마와 전쟁을 일으켰고, 갈리아에서도 두 번이나 대승을 거두었다. 모든 이들이 불가능이라고 말하였을 때, 가능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지휘관 혼자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

브리튼의 모든 병사들이 힘을 합쳐서 싸워준 덕분일 것이고, 병력들을 지휘하는 군관과 기사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 결과이리라.

그들이 있기에 싸울 수 있다.

군관가 기사, 그리고 이름 없는 보병들까지. 모든 요소들이 힘을 합쳐야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단결력에 있어서만큼은 브리튼군은 그 어느 부대에게도 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아군 부대가 강하다고 믿고 싶어서 자신을 세뇌시키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은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굳게 믿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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