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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침공
002
브리튼의 수도 카멜롯의 거리는 꽤나 부산스럽다
항구도시인 론디니움을 터전으로 삼는 수많은 상단들이 무조건적으로 거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법령을 만들어 론디니움에서 장사를 하는 상단들은 무조건 카멜롯을 거쳐야 한다, 라는 공표문을 내려버렸다. 상단들에게서 그렇게 많은 관세를 받지는 않았고, 그들에게 자유로운 상업을 허용함으로서 카멜롯이 번영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잘 어울리는 부부이시네요, 꽃 드릴까요?"
"어. 꽃다발로 하나만."
시골에서 상경한 소녀처럼 보이는 꽃집 점원은 새하얀 들꽃들을 꺾어서 정성스럽게 만든 꽃다발을 내밀었다.
제 값을 지불하고는 꽃다발을 받았고, 꽤나 가슴이 크고 몸매도 환상적인 시골 처녀였기에 마음이 혹해서 물었다. 아리따운 여성을 보면 추파부터 던지고 싶은 게 바로 남정네들의 슬픈 본능이 아닐까.
"너 귀엽게 생겼네."
"네, 하지만 아저씨는 연상이라서 좀 별로네요."
꽃집 처녀에게 불현듯 차여버리고는 꽃다발을 모르간에게 내밀었다.
시골티가 나는 처녀에게 추파를 던지면서 작업을 걸고 있던 나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모르간은 꽃다발만은 고맙다면서 받았다. 새하얀 들꽃들을 들고 있으니 마치 결혼식을 하는 신부처럼 보였다. 마침 하얀색의 원피스를 입은 모르간은 카멜롯의 제일가는 미녀였고, 아리따우면서도 청초한 미녀의 모습에 주변 남정네들의 시선이 그치질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내가 있었고, 무엇보다 모르간의 배는 임산부라는 것을 증명하듯 조금 솟아올라 있었다. 이제 임신 3개월 째. 그다지 배가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임산부라는 건 알 수 있다. 그녀는 태아가 소중하다는 듯이 배를 부여잡은 채로, 반대 손으로는 내 손을 맞잡았다.
"당신, 나처럼 예쁜 아내를 둔 걸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할 거야. 저런 시골 년 따위에게 시선을 줄 생각은 하지 말라고."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고 할까."
"처첩을 그렇게나 두고서는 다른 여자한테 또 눈길이 가?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모르간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카멜롯의 시가지에서 단 둘이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는데, 지금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것처럼 입가에 걸린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산들바람이 불면서 모르간의 붉은 머리카락을 간질었다. 섬세하게 만든 공예품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눈부신 미소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 소녀와 결혼을 해서 다행이라고 여러 번이고 생각한다. 내 아이를 가지게 된 이후부터 성격이 조금 유순해졌고, 업무상 다른 여성들과 접촉이 잦을 때도 작게 주의만 줄 뿐이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에 여러 번이고 죽고도 남았을 텐데.
다시 한 번 애엄마는 위대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카멜롯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달라."
모르간이 말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수도로 상경한 것은 열두 살 때였다고 한다. 어머니 이그레인의 손에 이끌려서 가문의 병사들과 함께 왔는데, 호위병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날강도와 소매치기가 극심할 정도로 치안이 개판이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간신 보두앵의 끄나풀 노릇을 하는 무장강도와 용병업체들이 카멜롯의 치안을 개판으로 만들었고, 마치 살아있는 지옥을 연상시키는 도시였다고 밝혔다. 그런 지옥 도시를 다시금 평화로운 도시로 만들어놓았다.
백아의 카멜롯.
위대한 기사들의 나라라고 불리는 브리튼의 수도로서, 수많은 인구들이 상주하고 있으면서 활발한 상업과 풍요로운 물자들이 왕래하는 브리튼 최고의 도시였다. 론디니움의 모든 상단들이 카멜롯을 거치는 터라 더 활발했고, 콘월과 웨일즈 등의 시골 지역에서도 상단들이 오면서 거래를 진행하면서 카멜롯을 번영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불야성이라 불릴 정도로 눈부신 곳이 되었다.
"어느 멋지고 완벽한 왕님 덕분에 이렇게 된 걸로 아는데."
"자기 입으로 말하면 부끄럽지 않아?"
"사실이잖아. 나는 거만한 성격이라서 내가 쌓은 공훈이라던지 공적에 대해서는 조금의 숨김도 없이 그대로 말한다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데 무슨 문제가 되겠어?"
"당신도 참 이상한 사람이야."
"부부끼리 닮는다고 하잖아."
"당신은 나 만나기 이전부터 이상했거든?"
모르간이 키득키득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아발론의 붉은 마녀라고 불리던 대마법사 멀린의 제자께서는 콘월에서 나를 처음 보자마자 적의를 가지고서 대했다. 내가 콘월의 정권을 찬탈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성격 좋은 아버지를 속이는 것은 아닐까, 그런 식으로 나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오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렸고, 서로 사랑에 빠져서 지금의 부부가 되었다.
그게 지금의 스토리가 아닐까.
조금 진부하고 크게 놀라울 것도 없는 스토리였지만 내게는 그런 스토리라도 소중하다. 나와 모르간이 단 둘이서 만든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에 첫 만남에 대해서 회상하더라도 좋았던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좋을 추억을 끝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그것은 꽤나 오만하면서도 지키기 힘든 약속일 테지만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성과 처음으로 만났던 스토리를.
"아무도 당신이 왕인 줄 모르는데? 그러게 좀 바깥에 자주 얼굴을 비추라니까."
"아니, 사흘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선식으로 떠들썩하게 얼굴을 알리고 다녔다고. 그 사흘 동안 내 얼굴을 잊어버린 건가. 대체 이 카멜롯의 백성들은 금붕어와 비교해서 나은 점이 뭐야?"
"자신이 보살피는 백성을 금붕어 취급을 해버릴 줄이야. 당신을 성군으로 모시는 백성들이 불쌍해."
"나도 금붕어 같은 백성들을 보살피는 군주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나는 내 자신을 불쌍한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어."
모르간과 팔짱을 끼고서 카멜롯의 시가지를 가로질렀다.
그 때마다 길거리를 거니는 남정네들의 이목에 이끌려야 했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용병들은 휘파람을 불면서 노골적인 시선을 받아야 했다. 물론 과거의 카멜롯이었다면 용병들은 치마를 입은 여자라면 덮치고 봤겠지만, 지금은 위병들에 의해 엄격하게 치안이 통제되고 있으므로 감히 나설 수 없었다.
브리튼의 법은 꽤나 엄격하다.
내정관 케이와 아그라베인이 머리를 맞대어서 브리튼 법전을 새로 편찬하였고, 그를 관리하였는데 그 법의 강도와 수위가 높았다. 도둑질을 여러 번 저지르는 악질은 그 손목을 자르고 노예로 삼았고, 사람을 죽인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여러 법들에 의해 그 행동에 제지를 받고 있었으므로 범죄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범죄자가 발생할 때마다 그에 대해서 일벌백게를 하고자 시가지의 중심에서 목을 쳐버리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벤트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끔찍하다. 인파들이 많은 현장의 중심에서 사람의 목을 쳐버린다니. 하지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벤트 덕분에 범죄율은 크게 내려갔으니까.
"이제 뭐부터 할까."
"원래 남자가 데이트를 리드해야 하는 거 아냐? 정말이지 분위기도 모르는 사람이야, 당신은."
"데이트를 무조건 남자가 리드해야 한다. 그런 남녀불평등한 이론은 내게 안 먹혀."
"하아.... 어쩌다가 나는 이런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건지."
모르간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도 입가에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손에 힘이 더해진다. 우선은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해주었으니 분위기 좋은 공원에 가서 로마 양식으로 지어진 분수를 감상하고, 달콤함 디저트라도 먹어야겠다. 물론 왕성에서 먹는 것보다는 하류의 음식들이겠지만 바깥에서 먹는 것은 또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화려함에 있어서는 왕성만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단 둘이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갈리아에서 연속된 전쟁으로 심신이 조금 지친 나를 달래주고자 모르간은 애써 나를 카멜롯 시가지로 끌고 나왔다. 데이트를 주장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나를 배려해주려고 업무에 치이는 왕성에서 나를 빼내준 거겠지.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여자라니까.
모르간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나와 그녀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하면 반드시 말해줘야겠다.
네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성이라고. 닭살스럽고,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고백할 자신이 없는 말이지만 나중에 반드시 해줘야지. 내 발언에 모르간이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구경해주고. 쑥쓰러워하면서도 행복하다는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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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낳작.
유통기한: 2018/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