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23화 (12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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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를 향해서

005

로마군을 포위하고 있는 병력이 계속해서 포위망을 좁혀들면서 무차별적인 살육을 시작했다.

일방적인 학살. 눈으로 보기에는 처참한 상황이겠지만, 현재 승리를 이끌고내고 있는 지휘관이 보기에는 최고의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곳에서도 적이 이길 승기가 보이지 않는다.

일방적인 폭력, 조금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무자비함. 그리고 상대방을 유린하는 살육까지. 모든 것들이 전쟁이라는 과정에 의해 용인되고 허락되는 폭력이며, 나아가 그 폭력을 마음껏 행사하더라도 용서받는다. 왜냐하면 전쟁이라는 요소 자체가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승기를 잡았다. 전 부대에 명령을 넣어라. 포위망을 계속해서 좁혀라."

"알겠습니다, 전하."

전령 역할을 하고 있는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른 기사들과 함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 떠났다.

예비 병력들까지 모조리 투입시켜서 포위망을 결성했다. 창검을 치켜들면서 로마군을 위협시키며 그들의 활동 범위를 최소한으로 좁힌다. 브리튼 병사들이 내미는 날카로운 창검이 놀란 갈리아 병력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면서 크게 원을 그렸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창병과 검병으로 방진을 이루고 있는 브리튼군이 거리를 좁히면서 갈리아를 더욱 압박했다.

금속 갑옷으로 무장한 브리튼 보병대들은 자신에게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전우들을 죽인 갈리아군에 강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갈리아 따위는 단번에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며 자만했지만, 막상 갈리아와 싸우고서 깨달았다.

저 더러운 갈리아인을 결코 용서할 수 없음을.

그리고 저 끈질긴 야만인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양군 모두 크나큰 피해를 입고서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큰 피해를 통해서 전의를 잃은 갈리아군과는 달리 승기를 잡아버린 브리튼군은 승자의 권리를 마음껏 행사하면서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되었다. 물론 그 생사여탈권을 어떻게 사용할 지는 본인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적군들에게 공평한 죽음을 내린다.

수많은 전우들을 잃고서 증오심으로 불타올랐다.

"미, 밀지 마!"

"앞이 안 보여, 조금만 비켜!"

"젠장! 전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브리튼군의 포위망이 좁혀들면서 갈리아 군사들은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들게 되었다.

포위망에 밀려서 뒤로 물러나는 다급한 발걸음에 짓밟혀서 죽기 시작하는 갈리아 병사들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 호기롭게 수백 명의 병사들이 달려들었지만 결코 브리튼의 검병과 창병의 연계를 감당하지 못했다.

게다가 죽은 병사와 말의 시체 때문에 발을 디딜 공간조차 부족해졌다. 수천에 달하는 갈리아 병사들은 거친 숨을 토해내면서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그들의 위로 엘프 궁기병대가 쏘아내는 화살비까지 떨구어졌다.

"으, 으아아악!"

"물러나! 어서 뒤로 물러나!"

"물러설 공간이 없습니다!"

포위망에 갇혀서 갈 곳조차 잃은 갈리아 병력이 5천.

진흙과 피로 얼룩진 더러운 행색을 하고 있는 패잔병들은 곧바로 항복을 요청했고, 항복을 요청한 병사들의 머리 위로 화살들이 쏟아져 내렸다. 두 손을 하늘 높이 뻗으면서 관용을 베풀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수많은 전우들을 잃어버린 브리튼의 증오는 깊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고, 결코 전쟁 포로를 받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번져버리자 오히려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사납게 변해버린 브리튼 병사들을 만류한 것은 비세리온이었다.

"그만! 항복한 자는 모두 포로로 잡는다."

왕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5천에 달하는 병사들의 목숨이 날아갈 판이다.

결코 적병의 목숨까지 고려할 정도로 비세리온은 관용적인 인간은 아니었지만, 장차 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민심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항복을 요청하는 병사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린다면 분명 갈리아의 민심이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물론 로마에서 새로운 총독이 또다시 온다면 갈리아 병력들은 그의 편을 들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들을 죽일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갈리아 서부를 대대적으로 약탈하고 방화하면서 큰 문제가 생겨버렸다. 여기서 더 밀어붙인다면 갈리아 전역이 로마의 편을 들어버릴 것이다. 갈리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까지도 로마에 저항하는 도시가 있었고, 우선 그들을 포섭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다.

"로마 만세! 로마 만세!!"

"로마를 위하여!"

"브리튼의 개들아, 모조리 와라!"

갈리아 총독인 아치볼드 웨이벨을 포함하여 그들의 부관들은 끝까지 저항하면서 싸우다가 전원 전사.

아서는 그들을 베어죽이면서도 그들의 거룩한 희생과 조국을 향한 헌신에 대해서 경의를 표했다. 고결한 성품을 가진 기사왕은 설령 적장이라 할지라도 훌륭하게 싸웠다면 그 명예에 따르는 예를 보냈다. 비세리온과는 다르다. 그는 적장은 적장일 뿐, 아무런 가치조차 부여하지 않은 인간이었으니까.

"우리들의 승리다!"

"브리튼 만세!"

"비세리온 왕 만세!"

펠레노어를 비롯해서 여러 기사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아군의 승리를 자축했다.

5천에 달하는 갈리아 군사들을 포로로 잡았고, 로마 본국에서 부임한 새로운 갈리아 총독을 죽였다. 로마의 중장보병들까지 모두 살해하고서 그들의 시체로 산을 쌓았으니 그 전공을 축하할 만도 했다. 로마의 정예병들을 죽인 것이 아닌가. 이번에도 약소국이라 불리는 브리튼은 대제국 로마를 상대로 승전을 거두었다.

웨이벨 총독의 수급을 베어 부관들의 수급들과 함께 고국으로 전달했고, 나머지 전쟁 포로들은 로토마구스로 보내어 관리하도록 했다. 웨이벨이 전쟁에서 전사함에 따라서 갈리아는 공식적으로는 로마의 영토가 아닌 공백지가 되어버렸고, 브리튼이 일시적으로 그 주인이 되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는 하나, 갈리아 전역이 모두 브리튼의 수중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갈리아의 북부 도시들과 해안 지역에 늘어선 항구들만 브리튼의 소유가 되었고, 나머지는 도시에 있는 자치장들이 관리했다. 갈리아는 도시 국가처럼 서로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이고, 로마에서 부임하는 총독들은 그에 대해서 도시의 자치장들에게 그를 맡기도록 위임을 해주었다.

우선 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각 도시들의 자치장과 협의를 봐야하는데, 이미 갈리아인들에게 있어 브리튼은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협의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말이다. 브리튼은 그저 대제국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뿐, 갈리아 정복이라는 목표는 현재 없었다.

"이제 루테시아를 점령하고 갈리아 북부를 우리들이 점령한다."

"알겠습니다."

전후 처리에 대해서는 케이에게 일임하고 나머지 병력들을 루테시아 공방전에 투입시켰다.

루테시아는 로마의 관리 아래에 있는 갈리아 요충지로, 갈리아의 수도라 할 수 있다. 특히 로마는 자금을 쏟아부어서 갈리아 북부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였는데, 우습게도 그 도시들은 모두 브리튼의 수중에 떨어져 버렸다. 죽 쒀서 개 줬다고 할까. 로마 황제가 또다시 패전하였다는 소식을 들어버린다면 피를 토하면서 기절해버리리라.

"갈리아에서 또다시 승리를 거두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전하."

"이번에도 예상하고 있던 바였어."

"후후후. 예, 전하는 대단하신 분이시니까요."

가웨인이 귀여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또다시 갈리아에서 로마의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사건을 비세리온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이루어낸다. 이번의 승리 또한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고, 로마에 종속되어 속국을 자청하고 있는 지역과 도시들은 브리튼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로마를 상대로 싸움을 내건 것은 우습게도 약소국이라 놀린 브리튼이었다. 그리고 그 브리튼을 상대로 로마는 두 번이나 패전하였다. 압도적인 병력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이번의 전투로 피해를 입은 점을 상기시키면서 로마 황제가 '화친'을 제안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도 아니면 또다시 새로운 갈리아 총독을 내려보내면서 전쟁을 재개시킬지도 모른다.

그 무슨 선택이 이루어지든 브리튼은 결코 물러서지 않겠지만 말이다.

006

아치볼드 웨이벨은 브리튼의 뛰어난 계책과 전술에 아군이 참패하고 전멸하기 시작할 당시에 전장에 참전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소년기사를 불러서 로마 본국으로 자신의 서한을 전달했다. 자신이 겪는 '비세리온 펜드래건'에 대해서 그 평가를 로마 황제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는 고지식한 성격이었지만 뛰어난 군인이었고, 편협적이고 고집이 강했지만 적어도 아군에게는 친절한 신사였다. 그런 웨이벨 총독조차도 비세리온 펜드래건의 전술과 전략 앞에서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어버렸고, 아군은 모두 패주하거나 전멸했다.

그에 대해서 로마 황제에게 서한을 전달하였다.

『폐하, 로마의 악몽이었던 지긋지긋한 한니발 바르카가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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