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21화 (12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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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를 향해서

003

로토마구스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의 전황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브리튼군의 우세로 보였다.

엘프로 구성된 궁기병대와 함께 후방에서는 브리튼 기병대가 날뛰고 있었고, 본진에서는 멀린을 비롯한 브리튼 마법사들이 마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보병부대로 구성된 로마 군단에 비해서 그 실효성이 뛰어났다. 수많은 병종들이 혼용되고 있는 부대라면 그 명령 체계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겠지만 비세리온은 조금의 막힘도 없이 완벽하게 각 부대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군사를 뒤로 물린다."

"제 1진! 후방으로 이동한다!"

"궁병부대들은 신속하게 전선이서 이탈하라!"

브리튼의 군관들이 말을 몰고서 전선을 누비며 전군에 후퇴를 명령했다.

전면전으로 싸우기에는 로마 보병들의 위용이 너무도 강하다. 로마가 지금의 대제국을 이룩하는데 로마 군단병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그 중에서도 중갑옷을 입은 중장보병들은 상당히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고, 정면에서 그들에게 돌격하는 것은 무모했다.

브리튼군이 일시적으로 퇴각.

일부러 거리를 벌리면서 로마와의 백병전을 피했다. 그렇지 않아도 육중한 방패와 갑옷을 입고 있는 로마 보병들은 대형을 유지하면서 진군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군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대부분 경보병들이 많은 브리튼이 보기에는 거북이가 걷는 수준이다.

겁에 질리지만 않는다면 로마의 공세를 피하는 것은 간단했고, 술래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움직였다. 실제로 로마군의 공세를 피하려고 거리를 벌리고만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브리튼군은 교전을 피하면서 로마군이 지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그것을 웨이벨 총독이 모를 리가 없었다.

"기병대들을 엘프 추격에 보내라."

"알겠습니다."

로마 군단에 의해서 그나마 운용되고 있던 소규모의 기병대들이 엘프 궁기병을 상대하기 위해서 출진했다. 갈리아 기병대들은 지난 전투 당시에 참전하지 못한 병사들로 구성되었는데, 우습게도 훈련도가 미숙한 신병들이었기에 프롤 총독조차도 운용하지 않은 병종이었다.

애초에 기병대로서의 역할조차 못하는 부대였다.

웨이벨 총독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들을 전선에 참전시켰는데, 사태는 가히 절망적이었다. 적어도 보병부대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적의 기동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기병대들이 무조건적으로 함께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병대들은 현재 추격에 나선 엘프 궁기병들에게 박살이 나고 있었다.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엘프 궁기병대를 이끄는 트리스탄에 의해 적 지휘관이 사살당했고, 말을 몰면서도 두 손으로 활을 쏘아내는 엘프 궁기병들의 위력에 갈리아 기병대는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허리를 돌리면서 두 손으로 활을 쏜다.

페르시아 전선의 로마군이었다면 그에 대항할 수 있었겠지만, 갈리아 병사들에게 있어서 궁기병대는 생소한 병과였다. 모든 동물과 소통이 가능한 엘프들은 능숙하게 말을 다루면서 두 손으로 활을 쏘아냈다. 그 실력은 페르시아의 궁기병대만큼이나 뛰어났고, 그녀들이 쏘는 화살은 백발백중으로 적 기병대에게 꽂혔다.

격하게 흔들리는 말 위에서 적을 쏴맞춘다.

궁기병대를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갈리아 기병대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말을 타면서 활을 쏜다는 개념은 갈리아 병사들에게 없었다. 적어도 게르만족으로 구성된 병사들이었다면 대항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불운하게도 갈리아 기병대는 켈트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마술에 능한 기마민족인 게르만족은 로마인에 의해 차별을 받고 북방으로 쫓겨나버렸고, 갈리아에 남은 켈트인들은 보병에만 익숙할 뿐 기마에는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으아악!"

"퇴각, 퇴각하라!"

기병대를 인솔하고 있던 지휘관이 사망. 그 부관 역할을 하던 귀족들은 즉시 퇴각을 명령했다. 적어도 추격을 반복하면서 궁기병대를 견제할 수도 있었겠지만 웨이벨 총독에게 목숨을 바쳐서까지 충성을 다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기병대를 지휘하던 귀족들은 웨이벨 총독의 심복이었던 지휘관이 죽어버리자 도주를 결정해버렸다.

애초에 로마 본국에서 온 신임 총독을 신용하고 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문에서 육성한 기마병들이 손실을 보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가문의 재물을 털어서 육성한 기마대들을 모두 잃는다면 큰 손해가 아닌가.

게다가 저 냉철한 성격의 총독은 전쟁에서 손해를 본 것에 대해서 그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으리라. 갈리아 귀족들이 생각하고 있는 웨이벨 총독은 그야말로 최악의 인상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인간은 없으리라. 적어도 갈리아 귀족들은 아까운 목숨을 그에게 바칠 생각은 없었다.

"총독님! 아군 기병대가 도주하고 있습니다!"

"저, 저런...! 저들이 없으면 아군은 적 기병대에 응전할 수가 없습니다."

"막아! 나팔을 불어서 복귀를 명령해!"

"틀렸습니다.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갈리아 기병대의 도주.

귀족들이 합심하여 도주해버리자, 보병부대에 편입된 갈리아 귀족들도 골똘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리 도주한 귀족들의 판단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도 이미 이 전쟁에 승기가 없음을 알아차렸고, 슬며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로마 본국에서 온 로마병은 겨우 5천 남짓. 그에 반해서 나머지 병력들은 갈리아 현지에서 끌어모은 귀족연합군이다. 합심한다면 갈리아 총독을 고꾸라뜨리고 도주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쟁에서 패전하면 갈리아는 브리튼의 수중으로 떨어질 것이고, 갈리아에 존재하는 가문의 영토들은 브리튼에 빼앗긴다. 여러 대에 걸쳐서 가문이 소유한 영지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귀족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영토를 지켜야 했고, 갈리아의 패자가 될 브리튼이 종속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적어도 지금의 웨이벨이 브리튼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으리라.

백전노장이라 불리는 신임 총독은 돌아가는 전황에 대해서 그 어떠한 대안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갈리아 귀족들을 실망시켰다. 적어도 페르시아 전선에서 활약한 벨리사리우스의 부관 출신이라고 하기에 적어도 전쟁에서는 승리할 줄 알았는데, 돌아가는 전황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전임 총독이었던 프롤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한 것은 아니지만, 적절하게 대처를 할 줄 몰랐다. 그에게 있어서 갈리아의 지형과 환경은 생소한 것이었고, 페르시아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갈리아로 온 로마 중장보병들 역시 질척거리는 진흙밭에 박힌 두 발을 빼내면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발 좀 빼줘!"

"무거워 죽겠네... 이런 진흙밭에서 어떻게 이 무거운 방패를 들어?"

"장창도 무거워 죽겠구만."

유일하게 브리튼군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인 방패와 장창을 버리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적어도 정예병인 중장보병들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갈리아 출신의 병사들은 다르다. 최소 3미터에서 4미터에 달하는 장창을 치켜들고 있는 병사들은 이미 지쳐버렸고, 방패를 든 병사들은 아예 방패를 진흙밭에 던져버렸다.

그 때마다 군관들이 나서면서 장창과 방패를 버리는 자는 즉결 처분을 하겠다면서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를 듣는 병사들이 없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진흙밭 속에서 두 손에 들기에도 벅찬 병장기를 들고 있을 리가 없다. 병장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병력들이 연이어 발생하자, 군관들로서도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부관들이 말했다.

"총독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전투는 틀렸습니다."

"총독님이라도 무사히 퇴각하십시오."

"여기는 저희들이 맡겠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부관들은 패전을 직감하고는 서둘러 웨이벨에게 퇴각할 것을 종용했다.

여러 전투를 경험했던 부관들이지만 이렇게까지 패전이 짙은 전투는 처음이다. 대안책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굴렸지만 도저히 그 대안책에 대해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번 싸움은 틀렸다. 이미 갈리아 귀족들은 배신할 생각으로 가득했고, 그들을 강제적으로 묶어둘 수 있는 수단 또한 없었다. 켈트인으로 구성된 귀족들이 로마인의 말을 들어나 주겠는가. 적어도 갈리아 전선에 올 거였다면 더 많은 로마 병력을 대동하고서 왔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갈리아의 지형에 능한 갈리아 출신의 군인들의 말을 들어야만 하였다. 하지만 완고한 성격의 웨이벨 총독은 지난 전투에서 패전하고 도주한 겁쟁이라면서 갈리아 군인들의 주장을 모두 무시해버렸다. 그 때부터 이미 패전은 결정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고막을 찢어버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울려퍼졌다.

뿌우우우우우우우----!!

브리튼 진영에서 진군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울려퍼졌다.

말을 몰면서 브리튼 병력의 선두에 선 기사는 탁한 금발을 어깨까지 기른 작은 소녀였다. 브리튼군에서도 수색대를 맡고 있는 공주 기사는 뿔나팔을 불면서 전군에 진격을 명령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로마 병사들에게도 잘 보였다.

그리고 수색대 케이의 뿔나팔 소리에 응하면서 총 1만 5천에 달하는 브리튼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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