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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110화 (110/195)

<-- 로마 쟁란 -->

009

갈리아 총독 프롤의 전사.

앞서 선봉대 역할을 하던 기마부대들이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 엘프 레인저에게 된통 당하고서 패주. 그 뒤를 이어서 진격하던 보병부대들과도 뒤섞이면서 전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갈리아 기사단들은 칼레에서 푸아티에, 아키텐으로 오느라 지쳤을 뿐더러 온갖 화살세례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은 버틸수가 없었다. 다른 병과와 상호 협동 체제를 제대로 구축한 것도 아니어서 화살비에 큰 손실을 입고 잉글랜드군과 변변한 교전도 못한 채 재편성을 위해 퇴각했다.

"퇴각, 퇴각하라!"

"총독이 죽었다. 퇴각하라!"

화살들이 쏟아지는 위험에 갈리아 기사단들이 공포를 확산시켰고, 뒤이어 전장에 참전한 보병들도 우왕좌왕하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두 배에 달하는 숫자로 밀어붙이면 이길 거라고 확신했는데, 그토록 믿었던 기사단들은 패주를 하지 않나 총지휘관이라는 젊은 애송이는 닥치고 돌격을 때렸다가 브리튼 기사단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죽어버렸다. 최악의 여건들이 연이어서 겹치자 로마 군단들은 더 이상 부대를 운용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해졌다.

"브리튼 기사단! 공격!"

"이 때를 놓쳐선 안 된다!"

제레인트와 팔라메데스가 이끄는 병력들이 드디어 반격을 개시했다.

풀밭에서 매복하고 있던 엘프 레인저와 궁수부대를 뛰어넘으면서 브리튼의 기병대와 보병부대들이 진격을 시작하였고, 곧이어 우왕좌왕하며 당황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던 로마 군단들을 휩쓸었다. 로마로 치우쳐진 전황이 곧바로 브리튼 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로마 군단은 그야말로 총붕괴 상태.

기병대는 이미 대부분이 전멸하여 패주를 시작했고, 보병들은 아군 기병대에게 짓밟혀서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었다가 브리튼군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대부분은 항복하거나 도망쳐버렸고,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격! 우리는 대제국 로마의 병사들이다!"

"응전하라! 응전하라!"

그들 중에는 용감한 로마 부관도 있었고, 그들은 반격을 꾀하기 위해서 주변 병사들을 끌어모았지만 전황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후방에 위치하고 있던 궁병대들이 브리튼 진영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퇴각하는 기병부대를 보고는 자신들이 전멸하였다고 판단, 공황에 빠져 통제불능에 가까운 상태로 퇴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그 궁병대들은 궁병을 보호하기 위한 카이트 실드, 석궁 볼트, 화살 등 여러 물자들을 내던지고 도망쳐버렸기 때문에 퇴각로가 일시적으로 막혀버렸다.

로마 궁병대들이 워낙에 난동을 치며 퇴각한 탓에, 총독 프롤로부터 아무런 명령조차 받지 못하고 중앙부에서 대기만 하고 있던 중보병대까지 움직임이 묶여버렸다. 중보병대들은 그 어떤 싸움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접전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멍 때리고 있다가 전멸할 위험을 겪고서 퇴각을 시작하였는데, 궁병들이 물자를 버리고 도망치는 바람에 퇴각조차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거리다가 브리튼군의 역공을 받아 참패했다.

전장은 대부분 브리튼의 승리로 끝나버렸다. 로마는 그토록 자랑했던 기사단들이 크나큰 피해를 입고서 패주해버렸고, 보병들은 퇴각해버린 궁병대들이 싸질러놓은 실수 때문에 퇴각조차 어렵게 되면서 대다수가 포로로 잡히거나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번에는 위험했는데."

전장의 중심을 바라보면서 비세리온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는 갈리아 총독 프롤이 로마 황실에서 하사받았다는 보검 클라렌트를 쥐고 있었다. 적장에게서 당당하게 얻어낸 전리품이다. 물론 프롤을 꾀어내어 죽이는 전략은 비겁하고 치졸스러운 방법이었지만, 원래 전술과 전략이라는 것은 적을 속이고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세리온은 훌륭한 전략가였다.

"꽤나 좋은 명검이네."

주황색 머리카락의 아가씨가 말했다.

멀린의 말대로 클라렌트라는 이름의 명검은 룬 문양이 검신에 새겨져 있는 마법검이었고, 분명 드래곤의 뼈나 요정들의 마법을 동원하여 제련한 것이리라. 비세리온은 지금까지 이긴 전투마다 노획한 전리품들 중에서 클라렌트라는 이름의 명검이야말로 최고의 전리품이라고 확신했다.

"내게는 엑스칼리버가 있으니 상관은 없어. 대충 왕궁으로 돌아가면 보물고에 박아둬야지."

"비비안이 기뻐할 말이네."

"호수의 요정 말인가. 흐음, 그 처자를 본 지도 꽤나 오래 됐는데."

두 자루의 검을 동시에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번거롭게 이도류라면서 설치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성검 엑스칼리버와 보검 클라렌트. 비세리온에게는 두 자루의 명검이 주어졌다. 갈리아 총독 프롤이 소유하던 지고의 명검은 카멜롯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서방님, 진짜로 함선들이 우리를 배반하고 도망친 거야?"

"무슨 소리야."

"아니.... 너무 상황이 적절해서 말이야. 오히려 퇴각로가 끊어지고 적군의 추격을 받기 시작하면서 브리튼 병사들이 대동단결에서 그 저력을 보여줬잖아. 대승을 거두기에 너무도 완벽하고 적절한 상황이라서 조금 의문을 가졌을 뿐이야."

"시끄러워. 나는 눈치 빠른 할망구는 싫어해."

물론 그 전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비세리온 뿐일 것이다.

비세리온은 승리를 거둔 병사들과 함께 승전을 통해서 거둔 막대한 전리품들을 수송하면서 다시금 아르플뢰르 항으로 향했다. 갈리아 전역을 약탈하면서 벌어들인 전리품들과 프롤이 이끌던 대군이 운용하고 있던 전리품들까지 해서 어마어마한 양으로 불어났고, 그것은 모두 카멜롯의 것이 되었다.

아마도 브리튼에 있는 함선을 모두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부족하겠지. 몇 번은 더 왕복해야 할 것이다. 그 정도로 전리품의 양이 많았다. 거창하게 거둔 전리품에 대해서는 브리튼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스스로를 축하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으리라. 전리품의 일부분은 전장에 참전한 모든 병사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군주가 모든 전리품을 독식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비세리온이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르플뢰르로 퇴각하자. 함선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후후후. 병사들이 과연 함선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설마 군주인 나를 패죽이기까지야 하겠냐."

멀린은 자신의 예상대로 아군 모두를 속여넘긴 교활한 지휘관을 보며 쿡쿡 웃음을 지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아군조차도 속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비세리온 펜드래건의 방식이다. 지휘관이란 전쟁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주저도 해서는 안 될 것이고, 전쟁에서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된다. 승리를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전쟁은 승리를 해야만 그 가치를 지닌다.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패배자의 말로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나는 알고 있었지. 우리 서방님이 모두를 속일 거라는 것도."

"그런데 왜 다물고 있었냐."

"알고 있었으니까. 서방님이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 이유로 거짓말을 하진 않을 테니까."

멀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도둑 고양이처럼 앙큼한 미소였다. 그 눈웃음을 보면서 비세리온은 한숨을 내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대마법사를 속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멀린에 대해서는 감사함을 느꼈다. 그녀가 만약 사실을 밝혀버렸다면 단기간에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전법을 사용할 수 없었으리라.

아르플뢰르 항에 도착하고나서 함선을 다루는 선장들과 병사들간에 마찰이 크게 벌어졌지만 폭력 사태로까지 벌어지진 않았다. 병사들은 씨발씨발거리면서도 전쟁을 통하여 얻은 전리품들을 모두 함선 위에 싣었고, 진귀한 보물과 값비싼 갑옷들까지도 남김없이 수송해버렸다.

가웨인이 짐칫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이 가웨인까지 속이신 겁니까!"

"그렇지."

"항의하겠습니다. 이건 너무해요! 어떻게 저를 속이실 수 있습니까?!"

"흐음, 그런가. 내게 속아넘어가도 내가 아는 긍지 높은 태양의 기사라면 나를 충실하게 따라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에 퉁퉁거리는 표정을 짓던 가웨인의 얼굴이 풀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긍지 높은 태양의 기사라는 호칭을 말해주자 가웨인은 새하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참 쉬운 여자다. 내 칭찬 한 번에 곧바로 고집을 풀어버리다니.

칭찬에 너무도 약한 가웨인의 반응에 가레스가 피식 웃었다.

"언니는 역시 전하에게 푹 빠진 모양이네요."

"내가 마성의 남자이긴 하지."

"뭐, 이번에는 그렇다고 해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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