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07화 (10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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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갈리아 총독은 3만의 병력을 다섯 방향으로 소산하여 진격하도록 명령했다.

물론 군단을 이끄는 지휘관들은 각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다. 적어도 프롤 휘하의 부관들 중에 무능력한 이들은 없다. 모두 실력이 출중하고 그것이 증명된 이들로, 갈리아 현지에서 차출하였기 때문에 지리와 지형에 능하다. 자신의 부관들을 믿고 있기에 일부러 병력을 나누다는 모험을 걸었다.

"최대한 빠르게 푸아티에로 간다! 비세리온 왕을 죽이자!"

프롤은 기사도를 숭상하는 충실한 기사로서 자신의 영지를 초토화시키고 백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는 브리튼군에 대해서 강한 증오심을 품었다. 매사에 충실하고 백성을 아낀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참기사였기에 그 행동 패턴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반드시 자신의 영토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강행군으로 달려올 것이다.

갈리아의 최북단에 위치한 칼레 항에서 푸아티에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강행군으로는 도저히 횡단할 수 없는 장거리였고, 설사 강행군으로 건넌다고 할지라도 엄청난 체력 소모가 따를 것이다.

칼레에서 아르플뢰르까지만 해도 거리가 상당한데, 이제는 푸아티에까지 간다니. 갈리아 부관들은 병사들의 체력을 이유로 들어서 강행군을 만류했지만 프롤은 무도한 브리튼군에 의해 백성들이 살육당한다는 도덕적인 이유를 들어서 거부했다.

"총독님, 하지만 아군이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무방비하게 노출된 백성들이 살육당하는 것을 보기만 해야 합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전쟁에서 패배하면 모든 걸 잃습니다."

"모두를 구해야 합니다. 백성을 구하는 것은 기사들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입에 바른 소리를 하는 프롤.

분명 기사로서 하는 말이었다면 그는 동화책에서 등장하는 백기사와 같았겠지만, 불운하게도 그는 갈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군단을 이끄는 총독이다.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민족들이 거주하는 갈리아 전역을 다스리는 대귀족. 그런 인물이 자신의 신분을 총독이 아닌 기사로 생각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였다.

결국 프롤의 강경한 명령을 이기지 못한 부관들은 서로 군단들을 나누어서 진격해야만 했다. 작게는 3천에서 많게는 5천에 달하는 병력으로 잘게 나누어 진격루트를 잡았다. 너무 잘게 쪼갰다는 군관들의 주장이 곳곳에서 나왔지만 프롤은 그 주장을 모두 무시했다. 대군을 한꺼번에 운용하면 행군 속도가 크게 줄어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세리온 왕을 죽여야 한다!"

아르플뢰르에 도착한 프롤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전함의 파편들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가 이끄는 본군은 아직 아르플뢰르에 있었고, 부관들이 이끄는 선봉대가 푸아티에로 먼저 향했다. 특히 기병대 위주로 선봉대를 꾸렸다.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대를 보내었고, 그들은 끈질긴 추격을 하여 푸아티에 근처까지 진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잘게 병력을 나눈 소규모 병력들이 브리튼군의 역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은 푸아티에로 곧장 향하지 않고 아키텐으로 은밀하게 이동. 장거리 강행군으로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로마 군사들을 공격했다.

"브리튼을 위하여!"

"로마의 잔적들이다! 모두 토벌하라!"

사방에서 8천에 달하는 브리튼군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로마군들에게 있어 최악의 공포와도 같았다.

브리튼군의 치중은 기병대가 아닌 보병대 위주였다. 왜냐하면 무역선을 이용하여 바다를 횡단하였기 때문에 군마를 나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플뢰르에서 푸아티에, 아키텐까지 진군하면서 다수의 군마 사육장을 습격, 그를 통해서 다수의 군마를 획득할 수는 있었지만 기병대의 치중은 여전히 적었다.

하지만 그를 뒤덮는 용맹이 있었다.

태양의 기사 가웨인를 비롯한 다수의 브리튼 기사들이 용맹스럽게도 로마군의 중심을 돌파, 그들이 뚫어놓은 길을 통해서 브리튼 보병들이 진각하며 로마군의 진형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최강국을 자칭하는 군단치고는 너무도 연약한 모습이다. 강행군으로 체력이 빠진 약졸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크하하하! 로마의 엉덩이를 걷어차주자!"

"갈리아 총독 나오라고 해!"

강행군으로 연약해진 로마 병사들을 죄다 베어가르면서 브리튼 병사들이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자기 딴에는 혼자서 수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거끈하게 베어넘기는 행동은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약자를 짓밟는 행동은 언제라도 즐겁다.

전쟁은 폭력이 정당화되는 과정으로, 그 폭력의 가해자가 된 브리튼 병사들은 상대를 짓밟고 죽이는 행동에서 쾌락을 느꼈다. 브리튼에 있을 가족과 집안을 모두 포기하고 대제국 로마와의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이었기에 전쟁을 가장 큰 오락으로 여겼다.

"푸아티에로 몰려오는 로마 놈들을 각개격파로 그 숫자를 줄여나간다."

비세리온이 선택한 전략에 약탈과 방화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 알아서 자멸의 길을 걷도록 프롤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프롤이라는 젊은 청년은 기사도를 너무 맹신하는 인물로, 성실하고 정직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성실하고 정직한 것은 바른 남자가 되기 위한 덕목일 테지만, 군단을 지휘하는 사령관으로서는 불필요한 덕목이다.

상대방을 속이고 또 속이는 것이 전술이며 전략이다.

그 전술과 전략의 기본조차 되지 않은 것이 지금의 프롤이었다. 애시당초 프롤이 갈리아 총독으로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무용이 뛰어나고 토너먼트에서 연이어 승리한 용맹스러운 기사였기 때문이다.

결코 군략이 뛰어나서는 아니다. 몇 번 정도는 전쟁에 참전해본 경험이 있지만 그것은 일반 장수로서 참전하여 공을 세운 것이지, 지휘관으로 나서진 않았다. 장수가 되어 적장의 목을 베고 온갖 영광스러운 공헌을 세웠지만 불행하게도 전쟁을 이끌어 본 경험은 없다.

그것이 바로 그의 가장 큰 결점이었다.

스스로를 기사라고 여기지, 지휘관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주제조차 파악하지 못한 인간이다.

"몰아쳐라! 브리튼의 장병들이여!"

"잡병들 따위 모조리 죽여라!"

"우리들을 막진 못한다."

푸아티에를 향해서 접근하는 로마의 소규모 병력들은 마치 모닥불 속으로 현혹되어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았다. 자기들이 죽을 자리라는 것을 예상하지도 못하고 달려드는 꼴은 너무도 우습다. 푸아티에 인근의 지역에 로마 병사들의 시체로 가득 쌓이기 시작했고, 이 지역은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수라장이었다.

그리고 로마 병력들이 오지 않는 날에는 푸아티에 주변으로 병력들이 보내어 식량을 약탈하도록 지시했다. 이미 아르플뢰르 항에서 빼앗은 보급품은 동이 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아군 병력들을 먹일 식량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약탈 행위를 자처하였는데 푸아티에는 갈리아의 손 꼽히는 곡창지대였기에 약탈품이 두둑했다.

"자,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푸아티에 근처에서 죽인 로마 병사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1만 여명에 달했다. 1만에 달하는 아까운 목숨들이 죽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물품들은 모두 전리품이 되어 브리튼에게 주어졌다. 브리튼 병사들은 이제 로마 병사들의 추격이 뜸해지자 다시 진군을 시작하여 푸아티에 인근의 해안지역에 도착했다.

아군 병력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안지역에 도착한 가웨인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군 함선이..... 한 척도 없습니다!"

분명 푸아티에로 향하도록 지시를 내렸건만 아르플뢰르까지 수송한 무역선들이 한 척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충격적인 사실은 곧 비세리온에게도 전해졌다. 로마 병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서 전리품을 다수 다수 노획하고 심지어 곡창지대의 민가에서 대량의 식량까지도 손에 넣었다.

그런데 그것을 수송할 함선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8천 명의 병력이 대규모로 수영을 해서 해협을 넘을 것도 아니고, 무조건적으로 아군을 수송할 수 있는 함선이 필요했다.

가레스가 소리쳤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까요?"

"그럴 리가 없지. 우리보다 함선이 더 빠를 테니까."

비세리온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 빌어쳐먹을 상황에 대해서 잠시 동안의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도 전에 멀린이 난감하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도망친 거야. 우리가 로마와 싸워서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해버렸다.

비세리온은 짜쯩스럽게 뒷머리를 긁으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가장 신용할 수 없는 놈들에게 맡겨버렸다. 선박을 몰던 선원들은 병사가 아니었다. 그저 돈을 받고 고용된 인간에 불과했고, 그들에게는 왕을 섬길 만한 충성심이 없다. 그들로서는 브리튼에 있을 가족들을 대동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면 그만일 텐데.

갈리아 총독 프롤이 본군을 이끌고서 점차 다가오고 있는 마당에, 아군은 유일한 퇴각로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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