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101화 (10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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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된 프롤은 사령관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의 최측근으로, 그 동안 서로마 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영토의 탈환전에 적극적으로 참전한 인물이다.

꽤나 키가 큰 장신의 남성은 그야말로 기사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반듯한 모습이었고, 그의 허리춤에는 서로마 제국의 황실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인 클라렌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클라렌트는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는 것의 상징이며, 나아가 갈리아 총독 프롤이 제국의 멸망에 가장 큰 기여를 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라도 프롤은 클라렌트를 곁에 항상 두고 다녔다.

"브리튼의 섭정왕, 게르만 토벌에 약간 손을 거들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만.... 아무래도 모두 끝난 모양이군요."

프롤은 대부분의 게르만 병력들이 전멸하고 이제 곧 그들의 멸망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칸트 항에 입항한 다음에서야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경계하여 직접 군사를 이끌고 온 비세리온을 바라보았다.

그 군략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전쟁 군주였다.

연이은 승리와 멸망하기 직전이었던 브리튼을 부활시킨 영웅에 대해서는 로마 제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물론 바다를 건너 로마에 그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수많은 과장이 붙었겠지만 그를 제외하고서라도 그가 대단한 명장이라는 점은 인정해야했다. 심지어 자신의 주군인 루키우스조차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누구 마음대로 브리튼 영토에 발을 디딘 건가, 로마의 총독?"

"게르만 토벌을 위해서 시급하게 시간을 다투느라 생긴 일입니다. 게르만은 결코 살려둘 수 없으니까요. 변방에서 몰래 세력을 기르는 자에 대해서는 더욱 관용을 둘 수 없고요."

갈리아 총독 프롤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서 브리튼에 상륙한 것은 명백한 내정 간섭이다.

지금까지 브리튼이 로마의 속국이었다고 해서, 지금의 로마 제국이 마음대로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과거에 브리튼이 섬겼던 로마는 멸망하기 이전의 로마였지, 지금의 로마가 아니다. 적어도 사신을 보내어 게르만 토벌령에 대해서 먼저 용의를 밝혀야만 했다.

하지만 프롤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의 로마는 멸망하기 이전의 통일 로마를 뒤를 이은 후예를 자칭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과거 로마에 편입되었던 브리튼은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병력을 이끌고 온 것도 고작해야 섬나라 촌구석의 인간들 따위가 자신의 조국인 로마에 맞설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 오만에서 찾아온 결정이다.

"가이세리크가 설마 브리튼에 상륙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서로마 제국에서도 위험한 자였으니까요. 물론 저희 루키우스 전하께서 번번히 승리를 거두셨습니다만."

"그렇다면 도망친 패잔병의 처리는 완벽하게 했어야지. 로마의 변변찮은 전후처리 때문에 브리튼만 피해를 본 셈이군."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당당하게 로마의 책임을 들추는 비세리온의 발언에 프롤은 '이것 봐라?'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대놓고 로마의 책임을 물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고작해야 속국의 왕 따위가 세계 최강국을 상대로 당당하게 말할 줄이야. 프롤은 비세리온의 주장이 게르만 패잔병을 물리치고서 기고만장한 자만심이라 생각했다. 고작 변경에서의 분란을 제압한 주제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고 있다.

"군사를 물려라. 이미 브리튼 내부의 게르만 세력은 괴멸했고, 가이세리크의 잔당은 모두 체포했다. 로마가 나설 자리는 없다."

"저희는 그저 게르만족 잔당의 토벌이 효율적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파견을 나온 것입니다. 순전히 브리튼을 위한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니 개의치 않으셔도....."

"말을 못 알아듣는군. 너희들이 필요 없으니 당장 브리튼에서 나가라는 거다."

비세리온은 프롤의 속셈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대로 게르만족 패잔병들을 토벌하는 데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브리튼을 완전한 로마의 속국으로 만들 셈이다. 물론 로마가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를 한다면, 속국이 되는 것도 수용할 수 있었다. 세계 최강국인 로마를 상대로 브리튼이 이길 수는 없었으니까. 현실적인 방법에서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군사를 몰고 와서는 감 내놔라, 배 내놔라 식으로 깡패처럼 구는 행동은 용인할 수 없었다.

이건 국가의 위신이 걸린 문제였다. 속국이 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완전히 식민지처럼 대우하는 것은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 게다가 갈리아 총독 프롤은 1만 5천에 달하는 휘하 병력을 직접 인솔하고서 칸트 항을 점령해버렸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다.

"머지 않아서 본 로마에서 외교 서한을 전해올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훗날에 다시 뵙겠습니다."

프롤은 그렇게 말하면서 우선은 병력들을 다시 갈리아로 물리기로 결정했다.

적당히 게르만족의 패잔병을 수습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브리튼의 내정에 간섭하려고 했는데, 예상한 것보다 너무도 빨리 게르만이 무너져 버렸다. 이래서는 적당히 지어둔 명분도 통하지 않는다.

로마는 과거의 영토를 되찾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까지는 추스려야 할 때였다. 국제 여론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로마에 편입된 속국들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병력을 동반한 침탈 행위를 저지른다면 속국들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

"사라져라."

"예. 그러면 안녕히."

비세리온과 프롤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은 서로 칼자루에 손을 얹으면서 대치하고 있었다.

양측의 기사들은 자신을 섬기는 주군을 목숨을 바쳐서 지키는 충견들이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분란이 벌어진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칼을 뽑아들지도 모른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갈리아 총독 프롤이 먼저 발을 뺐다.

그러던 와중에 비세리온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모르간 르 페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프롤의 발걸음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아."

갈리아 총독은 지금까지 수많은 미녀들을 만나고 그 여체를 탐해왔지만 모르간보다 빼어난 용모의 미녀를 본 적이 없다. 붉은색의 장미를 문양으로 수놓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미녀는 남성의 혼까지도 빼앗는 고혹한 아름다움을 겸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프롤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밖에 없었다.

무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간에 대해서 그 신분을 물었다.

브리튼 기사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카멜롯의 왕비님'이라고 밝혔다. 비세리온 왕의 아내이며, 정실부인이라는 말에 프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로마에서 만났다면 당장에 청혼을 하였을 것을.

무척이나 아쉽긴 하지만 로마의 총독으로서 다른 남성의 아내를 빼앗는 취미는 없었다. 적어도 도덕적인 면에서 판단을 내릴 줄은 알았다. 적어도 조국인 로마의 이미지에 피해가 가는 부도덕한 행동은 할 수 없었다. 갈리아 총독에게 있어 조국 로마야말로 가장 우선시할 대상이었으니까.

프롤의 노골적인 시선에 아발론의 붉은 마녀는 '뭘 봐? 죽을래?'라고 말하는 듯한 적의를 보냈고, 그를 알아들은 갈리아 총독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참으로 아쉽다. 이런 미녀를 두고서 등을 돌려야 하다니.

로마 병력은 칸트 항으로 회군.

1만 5천의 군사들은 아무런 교전도 없이 스스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면서도 로마의 기사가 물었다.

"총독님, 그 계집을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은데.... 나중에 제가 손을 써서...."

딴에는 갈리아 총독에게 잘 보이려고 말한 행동이겠지만 그것은 역효과였다. 프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다른 남성의 아내나 빼앗는 무뢰배로 만들어버리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프롤은 가볍게 입을 놀리는 로마 기사를 강하게 꾸짖었다.

"닥쳐라! 두 번 다시 그 입을 놀리면 혀를 뽑아버리겠다."

모든 것은 로마를 위해.

그것이 바로 프롤의 가치관이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만약에라도 가족들 중에 누군가가 반역을 꾀한다면 당장에 목을 쳐버릴 것이고, 로마를 위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부하들 전원의 목숨을 바칠 수도 있었다.

조국 로마의 명예와 긍지를 더럽히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로마의 총독으로서 언제나 로마의 모든 영광을 위해서 몸가짐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고, 적국의 왕비에게 일시적이나마 향했던 마음을 거두어야 했다.

"비세리온 왕, 싸워보고 싶다. 설마 그 많던 게르만 잔병을 모조리 쓸어버릴 줄이야. 이건 로마의 예상보다도 너무 빠르다.... 그를 토벌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병력을 뒤로 물린 것도 비세리온 왕에게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어서였다. 로마 군단의 위용은 세계 최강이지만 지금의 비세리온에게는 이기지 못한다. 겨우 1만 5천의 병력으로는 브리튼을 공격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오만한 브리튼을 정벌하기 위해서 10만 대군을 이끌고 올 것이다. 그가 로마의 속국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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