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군주 -->
006
붉은 짐승의 글레이브가 휘둘러진다.
성검 칼리번이 백은색의 궤적을 그리면서 거대한 검격과 맞물린다. 시뻘겋게 섬광이 터지면서 격돌. 게르만 최고의 전사와 브리튼의 기사왕이 벌이는 전투는 그야말로 치열한 사투와도 같다. 란슬롯, 가웨인과 그 무명을 함께하는 기사왕 아서는 대등하게 샬롯트돠 격돌하면서 백졍전을 이어나갔다.
"이미 당신은 졌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네년의 목을 따버릴 수는 있지!"
"가능할 거라고, 보십니까."
이미 게르만 군세는 전멸.
브리튼 기사들이 재빠르게 추격을 개시하였고, 군마를 잃고서 맨발로 도주하고 있는 게르만 병사들이 일제히 목숨을 잃었다.
기사단 중에서도 경기병대 위주로 편성된 병력이 추격에 동원되었고, 전투에 참전하였으나 패배하고 도주하고 있는 게르만 병사들 중의 대부분이 사로잡혀서 처형되었다. 이미 비세리온 왕이 전쟁 포로를 잡지 않겠다고 명령을 내린 이상,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게르만인은 성격이 거세고 고집이 강하기에 노예로도 다룰 수 없는 잡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전장에 남은 게르만 군세는 불과 수천 남짓의 소수 병력이다.
처음에 7만 대군이 버티고 있었다면 믿겠는가. 이미 대부분의 병력이 괴멸되거나 도주. 브리튼 기사단에 살육당한 병력 또한 많았다고는 하나, 일방적인 전멸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평야전에서 상대 병력을 모두 몰살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전투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게르만 부족들이 서로에게 전장의 무게를 내던지고는 도망쳐버린 것이 가장 큰 패인이다. 그들로서는 브리튼을 잃으면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을 터인데도 살겠다고 도망쳐버렸다.
무사히 도망을 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들이 맞이하게 될 말로는 그리 좋지 못하다. 대륙으로 다시 돌아가버리면 로마의 추격군에 몰살을 당할 것이고, 브리튼에 남아버리면 브리튼 군세에 몰살을 당할 것이다. 세력을 잃은 병사들은 매우 처참하다. 어디로 의지하지 못하고 그 목숨줄을 타인에게 맡겨야하기 때문이다.
글레이브와 칼리번이 부딪친다.
서로 힘겨루기 상태에 들어섰다. 란슬롯에 맞먹는 샬롯트의 근력도 대단했지만 아서 또한 지지 않았다. 소녀의 가녀린 팔에서 나오는 근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백은색의 칼날이 춤을 추면서 글레이브를 걷어냈다.
"부하들의 구명은 원하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강합니다, 이쪽으로 투항해도...."
"전투에서 패배한 전사의 결과는 언제나 죽음. 죽어버리면 될 일이야. 브리튼 따위에는 결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아."
"그렇습니까."
아서의 칼리번이 번뜩였다.
한순간의 벼락처럼 몰아치는 검격. 그 검격은 정확하게 샬롯트의 가녀린 목을 스쳤다. 새하얀 목덜미에 혈선이 그어진다. 계속해서 공방을 펼치던 아서는 그녀의 목덜미가 무방비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일부러 난전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그녀의 글레이브가 뒤로 향해졌을 때를 노리고 빠른 참격을 날림으로서 단 한 번에 치명상을 입혔다.
게르만 여전사의 아리따웠던 얼굴이 구겨진다.
피로 범벅이 된 수급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란슬롯과 대등하게 싸웠던 여전사는 호수의 기사, 기사왕과 연이은 대치로 인해서 체력적인 소모 등의 악운이 겹치면서 패배. 그녀는 전장에서 작렬하게 전사, 라는 결과로 그 생을 마무리 지었다.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뜨거운 피를 뿜어가며 죽어가는 샬롯트의 육신을 보며 아서는 고개를 돌렸다. 적장이라고는 하나, 그녀는 게르만족의 뛰어난 전사였다. 그 육신을 더럽히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전장에 참전하는 병사들 중에는 해괴한 성벽을 가진 놈도 적지 않았다. 여성의 시체를 끌어안고서 시간을 하는 별종도 있었고, 그들을 물리치고자 근처에 서 있던 마법사에게 부탁하여 샬롯트의 사체를 불태우도록 명령했다. 어차피 화장은 게르만족의 드문 장례 방법이었다.
란슬롯이 물었다.
"대단하신 검격이었습니다, 전하."
"네. 경이 미리 상대하여 체력을 뺏지 않았다면 저도 힘들었을 거예요."
"아닙니다. 기사왕께서는 승리하셨을 겁니다."
벅스 백작령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브리튼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게르만족을 대표하는 가이세리크 왕이 병석에 누워 전선에 참전하지 못함으로서 이미 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개인적인 무용에만 의존하던 샬롯트는 훌륭하게 아군을 지휘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 카리스마가 부족하여 부족장의 단속에도 실패했다. 부족들끼리 병력을 따로 놀리느라 대군으로서 가지는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브리튼의 기사단이 가진 위력을 얕보았다.
게르만족의 군기들이 모두 꺾여나가고, 그 자리를 브리튼 왕실의 군기가 대신하였다. 벅스 백작령은 브리튼의 영토로 편입, 그리고 경기병대를 이끌고서 게르만족의 추격에 나선 케이는 내친 김에 빈 성이나 다름 없었던 론디니움까지 점령해버림으로서 브리튼 동부는 카멜롯 소속으로 들어왔다.
제레인트와 팔라메데스는 전선의 뒷처리에 일임되었고, 캐러독과 베디비어는 주변 게르만족의 토벌에 투입되었다.
비세리온은 기존의 명령을 철회하고는 게르만인이 투항할 경우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그가 갑자기 동정심이 들어서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다. 브리튼에 상륙한 게르만인의 숫자가 생각보다도 훨씬 많았던 것이다. 모두 죽이려면 그만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그들을 애써 노예로 만들어 그 생명을 유지시켜 주었다.
모르간이 물었다.
"게르만? 그냥 다 죽여버리는 게 좋잖아? 바다에 내던져버리면 되지."
자애와 헌신을 품은 귀부인만이 될 수 있는 카멜롯 왕비에 오른 모르간의 한마디였다.
그 말을 카멜롯 백성들이 들었다면 '우리 왕국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고 의문을 품었으리라. 모르간에게 타인을 향한 동정심을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에 가깝다. 부부가 서로 닮았다고 할까. 특히 적군의 처우에 대해서는 잔혹하기까지 하다.
"다 죽여버리면 곤란하지. 그렇지 않아도 브리튼에는 인구수가 적으니까. 죽일만큼 죽여서 숫자도 적당히 줄어들었겠다, 이제는 복속시켜도 좋을 거야. 전투에서 게르만족의 건장한 남성들이 모두 죽었으니 통제하기도 쉬워."
"그러면 일부러.... 전투에서는 포로를 잡지 않겠다고 말한 거야? 병장기를 쥘 수 있는 남성들의 숫자를 줄여야 할 테니까."
"맞아. 게르만인들이 모여서 무장 투쟁이라도 하면 곤란해지잖아. 남은 거라고는 남편을 잃은 과부들 뿐이겠지."
비세리온은 냉정하게 평가를 내리고는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는 이번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최전선에 나서지도 않았고, 직접 성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총지휘관이 직접 나서서 백병전에 참전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비세리온은 후방에서 전군에 명령을 내리면서 전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유도하였을 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개인적인 무력만을 추종한 샬롯트와 지휘관으로서 군략과 지도력을 행사한 비세리온의 차이점이었다.
애초에 이번 전투는 브리튼의 승리로 귀결된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지휘관으로 나선 인물의 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가이세리크가 직접 나섰다면 그럭저럭 흥미로운 전투가 되었겠지만, 그가 이탈하고 그의 손녀딸이 무지하게 군사를 이끌면서 전투를 모조리 망쳐버렸다.
조금 뒷맛이 쓰다.
게르만의 왕은 분명 다수의 게르만 부족을 제압하고 통합시킬 수 있는 영웅이었지만 그는 너무 나이가 많았다. 이미 대륙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는 노친네였기에 그 몸이 한계 이상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케이는?"
"론디니움에 있을 거야. 게르만의 잔당을 처리하고 있겠지."
"가이세리크도 론디니움에 있겠지. 만약에 죽었다면 늙은이의 사체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고 하고, 살아있다면 질병으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위장을 해버리라고 해."
적어도 가이세리크는 게르만인들에게 있어 상징적인 영웅이다.
그런 영웅을 브리튼 병사가 직접 살해한다면 반발을 크게 살 우려가 있다. 적어도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부리기 위해서는 온순한 양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사실을 위장하고 거짓을 드러내어 그들을 세뇌에 가까운 방법으로 복종시킨다. 그게 진정한 정복자로서의 행동이다. 피정복자를 적당히 구슬려서 노예로 만든다.
물론 몇 년 정도는 노예로 굴리다가 모두 평민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노예는 세금을 내지 않으니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으니까. 싱싱한 노예를 들이는 브리튼인들은 쌍수를 벌리며 환영하겠지만 말이다.
비세리온은 각 전장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보고를 받았고, 그러던 중에 론디니움의 해협에서 게르만인들이 선박을 타고 도주하는 것을 목격한 브리튼 전령이 가져온 소식을 전해들었다.
"갈리아의 총독인 프롤이 해군을 이끌고서 칸트 항에 상륙하였다는 소식입니다."
갈리아 총독 프롤이라면 로마의 속국이라 할 수 있는 갈리아 지역을 다스리는 인물이다.
특히 황제 유스티아누스의 조카딸인 루키우스의 충복으로 주로 알려져 있다. 무용이 뛰어나고 지략에도 능한 갈리아 총독이 휘하 병력을 이끌고서 브리튼에 상륙한 것이다. 그를 두고서 경계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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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신개념 자본주의 작가.
자낳작.
유통기한: 2018/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