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군주 -->
005
전체적으로 전황은 브리튼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게르만 7만과 브리튼 5만 병력의 격돌.
대부분 병력의 격차에 따라서 그 승패가 결정되는 평야전이었지만 병력이 소수인 브리튼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체계적인 전투 진형에서 비릇된 단결력으로 지구전으로 몰고 가자, 개인적인 전투력에만 국한된 전투 방식을 가진 게르만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두꺼운 마갑으로 무장한 브리튼 기사가 정면에서 게르만 기병대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하면서부터 승패는 결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브리튼 기사들 중에서도 태양의 기사 가웨인과 호수의 기사 란슬롯이 쌍벽으로 그 위용을 보이면서 게르만의 이름 높은 전사들을 대부분 낙마시키면서 전장을 지배했다.
"호수의 기사 란슬롯, 내게 덤비려는 자는 모조리 와라!"
성검 아론다이트를 휘두르며 전장을 종횡무진으로 누볐고, 그를 저지하기 위해서 용맹스러운 전사들이 달려들었지만 그 누구도 호수의 기사를 이길 수 없었다.
일기당천의 무장. 그를 쓰러트릴 수 있는 자는 태양의 기사 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가웨인은 란슬롯과 같은 진영의 기사였고, 그 때문에 게르만에는 란슬롯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없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붉은 짐승이 달려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건장한 남성조차 다루기 어려운 거대한 글레이브를 휘두르는 소녀. 붉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소녀의 이름은 샬롯트. 야만인들의 왕을 자칭한 가이세리크의 손녀딸이자, 게르만족 최고의 전사라고 이름이 높은 무장이다.
그녀가 글레이브를 크게 휘두르자, 란슬롯은 아론다이트를 치켜들고서 그것을 막아냈다.
"큭!"
가녀린 두 손으로 휘두르는 글레이브의 위력은 상당했다.
아론다이트를 쥐고 있는 손이 떨린다.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버거운 상대인 것은 확실했다. 그녀의 일격을 정면에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신과 가웨인, 기사왕 아서 정도겠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카멜롯 군주인 비세리온의 용력도 만만치는 않다고 들었다.
"브리튼 이 개새끼들아!"
"입이 험하신 분이군요."
"이런 빌어쳐먹을 상황 속에서 격식이나 차분히 차리겠냐, 이 범생이 자식!"
곱상하게 생긴 외모의 란슬롯을 보고서 샬롯트가 내린 평가를 그러했다.
게르만 최고의 전사라고는 하나, 이미 그녀의 주변에는 게르만 전사가 얼마 남지 않았고, 브리튼 기사의 난입으로 여러 갈래로 흩어진 게르만 전사들이 사냥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용맹한 전사라고는 해도, 수십 명의 브리튼 기사들이 달려들어 공격하면 무기력하게 사냥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전장의 규칙이다.
다굴에는 장사 없다. 단순히 병력의 격차를 두고서 하는 말은 아니다. 적은 병력이라도 진형이나 전략 등을 이용해 최대한의 효율로 운영한다면 많은 병력의 적군도 능히 이길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그러했다.
현재 게르만 대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은 샬롯트였는데 그녀는 용맹한 전사였지, 뛰어난 지휘관은 아니었다. 군략을 모르고 병력을 지휘하는 용병술에도 약하다. 오로지 무예에만 능한 용장은 모든 지휘권을 내던져버리고는 자신이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서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당연히 게르만 진영은 혼란 상태였다.
게르만족의 부족장들은 자신의 부족 병력만을 동원해서 각개전투를 시작할 뿐이고, 다른 부족과의 연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부족이 이끄는 병력이 어림 잡아서 3천 정도. 다시 말해서 3천의 병력이 따로 움직이면서 전투를 벌였고, 브리튼 기사단에 일제히 무너지면서 부족 전체가 몰살당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붉은 이빨 부족은 계속해서 싸운다! 미련한 브리튼에게 질 수 없다!"
"우리 초원 늑대는 퇴각하겠소! 더 이상 공투할 이유가 없소."
"젠장! 우리 부족은 이미 전멸을 면하기 어려우니 물러날 것이오."
계속해서 이어지는 진형의 붕괴.
아니, 전장에서 고작해야 부족 규모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진형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서로마 제국이 형성된 시기에는 게르만족도 서로 공투하여 체계적인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국이 멸망하고 부족 규모로 흩어지면서 그 누구도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가이세리크 왕이 유일하게 여러 부족들을 결집시키면서 숙청이나 포상을 반복하여 국가의 기틀을 닦았지만, 정작 그를 이끌어야 할 왕은 고령으로 접어들면서 병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서 흩어진 잔병들을 규합하느라 늙은 몸에 무리를 계속해서 가하였기에 그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적들이 도망친다! 쫓아가서 모조리 죽여라!"
"지금이야말로 브리튼의 모든 영토를 탈환할 때다."
"론디니움까지 멀지 않았다."
브리튼 기사들이 게르만 본진까지 들이닥치면서 진격.
도망치기 시작하는 게르만 병사들을 뒤쫓으면서 학살을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에 고결한 기사도를 입에 담은 브리튼 기사는 없었다. 게르만은 아직까지도 미신에 가까운 자연신앙을 섬긴다. 당연히 기독교 사상이 로마를 건너서 받아들인 브리튼인으로서는 게르만인들이 문명도 뒤떨어지는 야만인에, 미신을 섬기는 이교도였다.
당연히 브리튼 기사로서는 게르만인들을 살려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여야 할 이유로 가득 했다. 이교도를 죽이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섬기는 기사로서 당연한 본분이었고, 자신의 기사도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희생양이 필요했다.
물론 그 희생양은 게르만족이었다. 그들을 죽이고 죽임으로서 자신의 투철한 신앙심과 기사로서의 용맹을 뽐낼 필요성이 있다. 자신의 명예와 긍지를 드높히기 위해서라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교도를 죽여야 한다.
"다 죽여라!"
"이교도 놈들!"
광기에 물든 브리튼 기사들을 제쳐두고서, 란슬롯과 사투를 벌이는 게르만 최고의 전사는 용맹스럽게 글레이브를 휘두르면서 타고난 무력을 뽐냈다.
란슬롯과 샬롯트가 싸우는 중심에서는 브리튼 기사들이 감히 난입할 수 없었다. 몰아치는 검격의 폭풍우. 주변에 다가서기만 해도 어지간한 일반인은 곧바로 죽는다. 서로 검격을 뒤섞으면서 만들어내는 충격파는 결코 범인이 버틸 만한 부류가 아니다.
란슬롯은 아론다이트를 휘두르면서도 자신의 검격에 맞대응을 해내는 샬롯트의 무용에 게르만에도 역시 뛰어난 전사는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자신의 실력에 지나치게 과신을 했다고 할까. 이대로는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 같았고, 샬롯트는 가벼히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하 기사들에게 이 야만인 전사를 떠넘길 수는 없었다.
여인이라고는 하나, 그녀가 가진 무력은 상당히 강하다. 보아하니 게르만 진영에서도 꽤나 신분이 높은 전사로 보인다.
붉은색 머리카락에 주렁주렁 달린 장신구와 아슬아슬하게 몸매를 가리고 있는 가죽옷. 다 큰 처자가 입을 차림새는 아니었지만 그녀에게서는 강한 투기가 느껴졌다. 로마의 검투사처럼 위용이 넘친다. 전공을 탐하여 달려들던 브리튼 기사 수 명을 단숨에 썰어버렸다. 피로 흥건한 글레이브가 휘둘러졌다.
"브리튼 새끼들아, 모조리 덤벼라----!!"
붉은 사자가 포효한다.
글레이브가 휘둘러질 때마다 브리튼 기사들이 죽어나간다.
이미 전황은 브리튼에 쏠려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병력에 손실이 전해지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은 호수의 기사라 불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란슬롯으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아론다이트를 고쳐 쥐었다.
제레인트와 팔라메데스, 베디비어는 대충 마무리가 되어가는 전황을 정리하고 있었고, 케이는 기사단을 이끌고서 게르만족의 추격에 나섰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모든 기사들은 샬롯트를 죽이기 위해서 포위망을 구성했다. 이제 전장에 남은 것이라고는 그녀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기사왕 아서와 태양의 기사 가웨인.
성검을 치켜든 공주 기사들이 샬롯트와 대치했다. 이대로 란슬롯과 협공을 가하여 게르만 최고의 전사를 죽일 심산이다. 비겁한 방법이라고 하겠지만 병력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여러 전투가 벌어질 것인데 여기서 병력을 잃는 것은 좋지 않다.
또한 샬롯트라는 최고의 전사를 살려둘 수가 없었다. 여기서 놓친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호수의 기사 란슬롯과 대등한 무력을 가진 게르만 전사. 너무도 위험하다.
"네년이 아서냐!!"
샬롯트가 두 손으로 글레이브를 쥐고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서가 성검 칼리번을 앞으로 향하면서 응전을 시작했다. 세피아 색의 기사왕과 붉은 짐승의 싸움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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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트 님, 쿠폰 27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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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신개념 자본주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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