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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98화 (98/195)

<-- 전쟁 군주 -->

004

본격적으로 공격이 시작된 것은 새벽녘이 되어서였다.

푸른 들판에서 새하얀 물안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새하얀 수증기를 뚫으면서 내달리는 게르만 기병대의 모습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 족히 1만은 되어보인다. 그를 보고서 브리튼 기사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롱소드를 쥐었고, 그 중심에는 팔라메데스가 서 있었다.

짙은 흑발을 기른 사라센 소녀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렸다. 중앙 지휘관에게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응전을 시작하리라.

게르만 기병대를 맹렬하게도 앞으로만 말머리를 향하면서 진격을 개시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속임수도 없는 정면 돌진. 마치 전차처럼 돌격하는 기병대는 게르만족이 자랑하는 최강의 군단이다. 저 기병대 군단의 맹렬한 돌격에 천년 제국이라 불리었던 로마가 무너졌다. 그걸 알기에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속국인 브리튼으로서는 공포가 들 수밖에 없었다.

"돌격! 돌격하라!"

"브리튼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자!"

"나약한 브리튼을 깨부수자!"

그리고 그에 맞서서 브리튼군의 선진을 이끄는 것은 세피아 색의 기사왕이다.

세피아 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성검 칼리번을 치켜들면서 선진에 선 모든 군단들에게 진격을 명령하였다.

게르만 기병대를 맞받아치기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똑같이 응전할 수밖에 없다. 그걸 알기에 기사왕은 정면전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가장 먼저 게르만족 기마군단에 맞서서 돌격을 감행한 것은 태양의 기사라 불리는 가웨인이다. 수려한 금발을 기른 여기사가 브리튼 기사단을 이끌고서 공격했다. 치중이 가벼운 게르만에 비해서 브리튼은 중장갑으로 무장한 기사단이다. 정면전에 있어서는 기사단을 막을 병과는 없다. 왜냐하면 평야전에 있어서 기사단은 최강의 전투병과이기 때문이다.

"화살이 날아온다!"

"막아라! 방패 들어!"

"적의 화살 공격에 대비하라!"

말을 몰면서 양손으로 활을 쏘아내는 게르만 기병대의 공격에 브리튼 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한손에 들린 방패가 위로 올린다. 마치 소낙비처럼 후들겨지는 화살의 폭풍우. 그를 무사히 뚫어내면서 게르만 기병대에 달려든 기사단도 존재했지만, 그 중 일부는 화살에 온몸이 고슴도치가 되어 죽어버렸다.

예상보다 많은 숫자의 기사들이 화살에 의해 사망.

그들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고, 후열에서 진격하던 기사단원들은 그 시체가 걸려서 낙마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본격적인 기마궁수의 화살 공격에 기사단이 무너진다. 시체가 나뒹굴면서 푸른 들판을 붉은 핏물로 물들였다.

성검 갈라틴이 휘둘러졌다.

"돌격-----! 브리튼의 기사단들이여----!!"

가웨인의 외침과 함께 시작된 기마전투.

게르만 기병대와 브리튼 기사단이 격돌했다.

가장 먼저 으깨진 것은 게르만 기병대였다. 치중을 가볍게 무장한 게르만 기병대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다. 브리튼 기사는 육중한 데미지를 입히는 바스타드 소드와 메이스 등으로 게르만족을 때려눕혔다. 주먹만한 메이스가 게르만 병사의 머리를 터뜨리면서 곤죽으로 만들었다.

마상창들이 일제히 앞으로 향해진다.

그것은 마치 사나운 맹수의 뿔처럼 게르만 기병대를 죽여나갔다.

마상창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그 후열에는 롱소드와 메이스로 무장한 기사단이 있었고, 그 뒤에는 오로지 말발굽만으로 낙마해서 바닥을 나뒹구는 게르만 병사를 짓밟아죽이는 기시단이 있었다. 각 진형의 열마다 그 역할이 다르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말발굽으로만 적병을 죽여버리는 브리튼 기사단의 행위는 매우 야만적이었고, 흉폭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기사단의 무서움이다. 마갑으로 무장한 군마는 스피드가 느리지만 파워가 매우 강하다. 말 그대로 최강의 전차. 순전히 파워만으로도 적 기병대를 압박했다.

"제레인트 대는 좌측으로 진격한다!"

"팔라메데스 대. 게르만 기병대의 공격을 정면에서 들이박는다!"

게르만 기병대가 압도적인 병력으로 밀어붙일 뿐이라면, 브리튼 기사단은 나름대로의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상대한다.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움직였기에 그 움직임은 막힐 것이 없었다. 각 부대들마다 차례대로 게르만 기병대를 두들겼고, 좌측에서는 제레인트가 이끄는 기사단이 허를 찔렀다.

까드드드드득!!

마갑으로 몸통을 덮은 브리튼 기사단의 군마는 전차와도 같다. 게르만 기병대가 거세게 몸통으로 부딪쳤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것은 게르만 쪽이다. 브리튼의 군마에 밀려나 바닥에 쓰러진 게르만 군마의 말로는 처참했다. 기사단이 다루는 군마의 말발굽에 온몸이 으스러져 죽었다.

뼈가 으스러지고 팔다리가 잘려나간다.

핏물잉 터져나오고 내장이 뱃속에서 쏟아진다.

그것이 바로 전장이다.

브리튼인과 게르만인의 전장은 유혈이 난무하는 하나의 수라장이었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푸른 초원을 뒤덮는 붉은 융단길의 범위는 더욱 깊어졌다. 죽임을 당하는 것은 게르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브리튼도 마찬가지다. 전투가 흐를수록 양자 간의 피해가 확산된다.

"아군이 우세합니다."

캐러독의 단언에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튼 기사단에게도 피해가 전가되는 것은 뼈아픈 일이지만 아군의 피해를 두려워해서는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장에서 죽음의 공포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팔라메데스도, 제레인트도. 여러 브리튼 기사들이 분전하면서 게르만 기병대를 밀어붙였고, 그들의 진격은 멈추는 듯 했다.

공격이 점점 줄어들고 그 위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자 브리튼 병사들이 쾌재를 불렀다. 게르만군의 가장 큰 무서움은 바로 기병대에 있다. 그런데 그 기병대가 브리튼 기사단에게 막혔으니 그것이야말로 승리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리라.

역병과도 같은 무서움을 가진 게르만 기병대를 무사히 막아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브리튼 기사단이 그들을 상회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아군이 이기고 있어.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일 거야."

전장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서와 캐러독 뿐만이 아니다.

후방에서 전군을 지휘하고 있는 비세리온의 곁에 있는 모르간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마리의 비둘기 사역마를 날려보내면서 전장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는 마녀는 계속해서 비세리온에게 그것을 보고했다.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아."

"무슨 예상?"

"가이세리크에게 이상이 생겼다. 다 늙은 영감탱이니까 분명 죽으르 병이라도 걸린 거겠지. 그러면 게르만 군세를 지휘하는 것은..... 모르겠군. 애초에 무식한 게르만족에게 대군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이 있었나? 보아하니 대군을 지휘하는커녕 온전하게 진형을  유지하지도 못하고 있지만."

비세리온은 이제야말로 게르만 세력을 브리튼에서 모조리 격멸할 수 있는 타이밍인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후방에 있는 보병들에게도 명령을 하달했다.

그 명령이란 바로 게르만 병사들의 완전한 죽음. 포로 따위는 필요 없다. 모조리 죽여버린다. 더러운 게르만인 따위의 목숨은 아무래도 좋다. 게르만인은 천하게 초원에서 양이나 말을 기르던 족속들로, 짐승 냄새가 풍기는 원숭이에 가깝다. 브리튼인이 가지고 있는 게르만인에 대한 이미지가 그러했다.

그렇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학살을 감행할 수 있었다.

"다 죽여라!"

"포로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상부의 명령이다. 살려달라고 비는 놈들까지 모조리 죽여!"

"더러운 게르만이다. 브리튼에 발을 디딘 것을 후회하게 해주자!"

살육 뒤에 찾아오는 광기가 브리튼 병사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지독한 광기는 전장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 감수해야 할 양심이 없어진다. 사람의 목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지워버린다. 오로지 광기만이 지배하는 전장에서 사람의 목숨은 가장 애처로운 것이 되었고, 그렇기에 마음껏 살육을 벌일 수 있었다.

병장기를 버리고 항복을 요청하는 게르만 병사에게 날카로운 스피어가 내리꽂힌다. 육중한 메이스로 머릿통을 으깨고, 전투 도끼로 두 동강을 내버렸다. 그것이 바로 전장이다. 동정심 따위는 사치에 불과한 지옥. 브리튼인과 게르만인은 그 지옥의 중심에서 살육을 반복해 나갔다.

전장에서는 가장 많이 죽이는 쪽이 이긴다.

그것을 모르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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