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92화 (92/195)

<-- 카멜롯 연회 -->

003

모르간을 에스코트하면서 연회장에 등장했다.

당연히 수많은 귀족과 귀부인들의 이목을 끌어야 했고, 그 중심에서 당당하게 모르간은 왕비로서의 자태를 드러냈다. 가녀린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한껏 부각시키는 코르셋을 두르고서 새빨간 드레스를 입었다. 장미처럼 보이기도 하고, 핏빛으로 보이기도 한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매우 자극적인 색의 드레스. 카멜롯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은 절세미녀의 등장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사한 장미가 등장했다고 할까. 남정네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매료시키는 장미의 등장에 귀부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자신으로서는 결코 넘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여신에게 질투조차 느끼지 못하는 반응이었다.

내 아내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받기 시작하자, 남편인 나로서는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정말 예쁘네, 모르간."

"그런 말은 단 둘이 있을 때나 잘 하라고, 바보야."

"그런가. 나는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 당당하게 너를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기분인데."

"요, 요즘은 부끄러운 말도 잘 한다니까.... 정말이지 능구렁이가 다 됐어."

모르간의 말에 나 스스로도 달콤한 입발림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모르간을 만나기 전에도 여러 여인들을 만나고 동침을 가졌지만, 단 한 번도 직접적인 사탕발림을 한 적은 없엇다. 애초에 연애에 대해서는 그리 적극적인 편도 아니었고, 여러 여자를 만난 것은 순전히 성적인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일 뿐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모르간은 다르다.

내게 특별한 여성이라고 할까. 이런 서두로 이야기를 시작하니 괜히 부끄러움을 느낀다.

"흠.... 이런 자리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연회장의 가장 상석에 앉아서는 묘기를 부리는 원숭이들 같은 귀족들의 모습이 훤히 보이기만 할 뿐이다. 반대로 귀족들도 내 일거수 일투족을 항상 감시하겠지. 누가 원숭이가 된 것인지 모르겠군. 만약 내가 코라도 파는 모습을 보인다면 저 귀족들은 자신의 영토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군주가 코를 팠다면서 농담을 늘어놓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부담스럽다.

모르간과 이렇게 다정다감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까지도 모두 귀족들에게 전해진다는 뜻이 아닌가.

"그,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대화로 꺼내들자니 매번 하는 이야기인데."

"뭔가.... 좋은 수는 없어?"

나와 모르간은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들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곧장 향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뭐라고 해야하나?'라는 의문을 품었다. 우리 부부는 대외적인 관계에 익숙한 편은 아니었고, 사교적인 자리는 더욱 잼병이다. 우리들에겐 너무 허들이 높은 자리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 우리들에게, 마찬가지로 사교적인 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서 펜드레건이었다.

카멜롯의 군주이며 브리튼 왕실의 진정한 왕위 계승자. 한편으로는 나와 정치적인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세피아 색의 소녀는 프릴이 은근히 많이 달린 귀여운 소녀풍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정작 입고 있는 아서는 너무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곤혹을 겪고 있었지만 말이다.

저 드레스를 멀린이 골랐으리라 생각한다.

귀여워 보이는 프릴이 잔뜩 달렸음에도 새하얀 어깨와 허벅지를 그대로 부각시키는 노출 많은 드레스는 멀린의 악취미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성적인 측면에서 순진무구한 성격의 소녀가 골랐을 법한 취향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오라버니. 연회에 오시지 않는 줄 알았어요."

"그러려고 했는데. 부하들이 워낙 닦달을 해서."

"후후후. 오라버니의 예복 모습이 멋지세요. 오라버니가 오지 않으셨다면 저는 보지 못했겠죠."

"원래 나도 입을 생각은 없었는데."

거추장스럽고 움직이기 불편한 예복을 입는 걸 좋아하는 족속들은 대개 자신의 몸이 구속되는 걸 즐기는 변태이거나, 그도 아니면 태생적으로 귀족가에 태어난 놈들이리라.

다시 말해서 변태와 귀족은 성질상 직결되는 관계라고 할까. 아무튼 내 생각에는 그렇다. 당장에 이 예복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물론 진짜로 벗어던지면 카멜롯의 군주가 스트립쇼를 하는 광경으로 보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저와 춤 추실래요?"

아서가 새하얀 손을 내밀었다.

어이쿠, 기사왕께서는 크게 나오셨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아서의 귀여운 얼굴에서 심통으로 가득한 모르간의 얼굴로 이동한다. 내 시선을 본 모르간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내가 아서와 춤을 추는 것을 넓은 마음으로 허락했다. 예상 외다. 아서가 내게 먼저 적극적인 측면에서 춤을 권하는 것도, 그리고 모르간이 순순히 다른 여성에게 나를 넘기는 것도.

모든 것이 예상 밖이다.

모르간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아서가 뻗은 손길을 맞잡았다. 이렇게 보니 남녀 간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느낌이 든다. 아서 쪽에서 나를 에스코트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녀 역할이 바뀌지 않았을까?"

"누가 춤을 권유하고, 받아들이든. 딱히 상관 없다고 생각해요."

"나와 너는 상관 없을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을 거야."

특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귀족들이 그 좋은 예시라고 할까. 레이디에게 먼저 춤을 권유받아서 무대로 내려온 군주는 나 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 아서, 둘 다 왕실 예법에는 그리 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여성 쪽에서 먼저 춤을 권유하는 예법은 어디에도 없다. 모계 사회인 브리튼이라고는 해도, 사교적인 자리에서 여성이 먼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터부시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와 아서는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손은 아서의 손에, 그리고 나머지 손은 아서의 가녀린 허리에 얹었다. 아서의 허리는 보이는 것보다도 많이 가느다란 여성의 것이었다.

성검 칼리번을 휘두르며 전장을 누비는 전쟁의 여신은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새하얀 백옥처럼 고운 피부에 상처 하나 없는 모습까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너 엄청 서툰데?"

"오라버니도 마찬가지거든요?"

서로 발을 신명나게 밟아대면서 말했다.

왕실 예법에 어두운 것은 피차일반인가. 마치 소발굽에 짓밟히는 느낌이 든다. 겉모습은 가녀리고 순진무구한 소녀였지만 역시 기사왕. 그 신체능력이 이미 인간을 넘어서버렸다. 성검 칼리번의 힘이려나. 아니면 용의 혈족으로 알려진 브리튼 왕족만의 능력일지도 모른다.

"오라버니, 혼담을 받아들이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렇게 먼저 서두를 꺼내드는 아서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처음 접해보는 연애에 두근거린 탓일까.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있던 나는 그녀의 심장이 매우 격하게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

"저를 좋아하시나요?"

"흠..... 글쎄."

"하여간 오라버니는 어중간한 성격이시라니까요. 보통 남자들은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해줄 텐데."

"나는 거짓으로 사랑을 말하진 않아."

단호한 내 대답에 아서는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오히려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명 아서가 원한 대답은 아니겠지만, 어떤 측면으로는 마음에 든 모양이다.

"괜찮아요. 제가 더 오라버니를 좋아하면 되니까요. 언젠가 오라버니의 사랑을 얻으면 돼요."

"고마워."

"네!"

아서가 방긋 웃으면서 내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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