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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88화 (88/195)

<-- 왕좌의 주인 -->

008

아서와의 만찬이 끝난 다음에는 브리튼 출신의 귀족과 기사들이 나를 찾았다.

그들의 목적은 듣지 않아도 뻔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우선 그들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왕이 해야할 일이었으니까. 꽤나 늦은 밤이었는데도 나를 알현하려고 한다면 분명 그들로서는 시급한 논제일 것이다. 내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겠지만 말이다.

"아서 왕과의 혼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분을 왕비로 들인다면 웨일즈와의 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통성 또한 확실하고요."

또 그 소리다.

콘월 출신들을 철저히 제외하고서 브리튼 출신들만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아서냐 모르간이냐를 두고서 브리튼과 콘월 사이에 묘한 지역 감정이 생겨났다.

브리튼의 입장에서는 콘월 출신은 군주를 잘 만나서 출세했을 뿐인 무능력한 시골 벼락부자였고, 콘월의 입장에서는 브리튼 출신은 역적 보두앵의 꼭두각시 역할이나 하던 얼간이였다. 서로가 서로를 욕하고 있으니 나랏꼴이 잘 돌아갈 리가 없다.

지역 감정은 무섭다.

분명 같은 국적이건만 서로를 적국으로 취급해버리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지역 감정은 흔히들 일어나지만 서로 칼날을 겨눌 정도로 사태가 악화되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의 악감정을 되돌리는 것까지는 군주로서도 불가능할 테니까.

"이 나라에 왕비는 이미 존재한다."

내 말에 브리튼 귀족들이 벌떡 일어섰다.

역적 보두앵을 버리고 곧바로 내게 전향한 귀족들로, 지금은 게르만족을 격파하고 그 일대의 영토를 하사해버리자 충실한 개가 되어 나를 따르고 있었다. 브리튼 출신인 그들이 설마 게르만에게 마음을 줄 리는 없었고, 다른 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철저히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들은 현실적인 효율과 그 방안점을 두고서 논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전하, 모르간 님을 택하셔서 작은 콘월을 얻는 것보다 아서 님을 택하시어 수많은 이득을 얻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브리튼 왕실의 정통성은 물론 웨일즈의 드넓은 영토까지 얻으실 수 있습니다."

"칼레도니아까지 점령해버린 이상, 웨일즈를 복속시키시고 아일랜드까지 얻으신다면 브리튼의 완벽한 통일을 이룩하실 수 있을 텐데요."

그들은 귀족 출신답게 철저히 세력의 이익을 두고서 그에 대해서 제안했다. 분명 그들의 말은 옳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콘월의 적은 인구에 비해서 웨일즈에는 콘월의 몇 배가 넘는 인구가 상주하고 있었고, 콘월만큼이나 물자가 넉넉한 풍요로운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물자가 풍부한 콘월을 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콘월에는 변변찮은 병력들 밖에 없었기에 그들이 반란을 일으켜버리면 사흘 내로 진압해버릴 수 있었다. 콘월은 수도 카멜롯과는 가깝지만 그 지역의 위치가 너무 협소한 변방에 속한다. 변방의 낙후된 지역 따위가 반란을 일으켜봤자 곧바로 제압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브리튼 출신들은 콘월 출신을 깔보면서 언제라도 제압이 가능한 시골뜨기로 여겼다. 브리튼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적어도 기사도에 일관된 브리튼 왕실을 향한 충성심이 있었고, 그를 이유로 들면서 브리튼 왕실의 정통 계승자인 아서 펜드래건을 왕비로 들일 것을 제안했다. 브리튼 왕실의 정통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다운 의견이다.

"생각 없다."

"하지만 전하!"

"생각 없다고. 왕비는 모르간으로 충분해."

"그러면 왕비님을 한 명을 더 들이는 쪽이 어떻습니까? 제 1왕비의 자리를 아서 님에게, 제 2왕비의 자리에 모르간 님을 고쳐서 봉하시지요! 그렇게라도 안 하시면 웨일즈와의 통합은 어림도 없습니다!"

어느 귀족이 그런 주장을 펼쳤다.

그러자 귀족과 기사들이 즉시 입을 다물었다.

왕비를 한 명 더 들인다.

적어도 브리튼 왕실의 정통 계승자인 아서 펜드래건의 체면을 고려하여 제 1왕비의 자리를 줘버리고, 콘월 출신들의 거센 반대를 미봉책으로라도 막기 위해서 제 2왕비로 고쳐서 봉해버린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그럴 듯하게 여겨지지만,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에는 무리가 컸다.

두 명을 모두 택하려다가 콘월과 브리튼 세력 모두에게서 거센 규탄을 받을 우려가 크다. 지지하고 있는 세력은 가웨인의 지지층인 오크니 같은 소국가가 아니다. 오크니 왕국은 칼레도니아의 최북방에 속한 소국이었고, 콘월은 브리튼의 최남단에 위치한 풍요로운 시골이다. 콘월인들의 고향으로 그들은 자존심이 억센 것으로 유명했기에 오히려 반발을 살 우려가 있었다.

그들은 연이어 내게 강하게 의견을 표출했지만 그것들을 모두 무시해버렸다.

아서가 수도 카멜롯으로 오자마자 혼담을 주장하고 나서는 꼴이라니. 물론 이러한 모습은 웨일즈 측에서도 이루어지고 있겠지. 케이가 말하지 않았던가. 웨일즈에서도 아서에게 혼담을 제의하고 있다고. 분명 아서도 부하들의 끈질긴 주장을 받고 있으리라.

모두 물러나게 한 다음에 집무실의 의자에 기대어서는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머리가 아프다. 차라리 전쟁이라도 하고 싶다. 이 정도로까지 머리가 아프진 않을 테니까.

정치는 귀찮다.

정치에는 막연하게나마 보이는 승리와 패배의 이분법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승리이고, 무엇이 패배인지.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전쟁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전쟁 군주에 속하는 나로서는 정치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모르간, 거기 있지?"

집무실과 연결된 발코니를 보며 말했다.

이미 그녀의 기척을 중간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부터 말을 걸어야 할 지를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지. 그녀의 존재를 드러낼 수는 없었기에 귀족들이 떠드는 앞에서도 말할 수 없었다.

분명 아서 펜드래건을 왕비로 들이자는 귀족들의 주장을 들은 모르간이 집무실에 난입해서 모두 불태워버릴 거라고 생각하고 엑스칼리버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모르간에게도 인내심이라는 게 생긴 걸까.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해버리는 기분파라고 생각해왔는데.

발코니의 창문을 열고서 들어오는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새하얀 뺨을 타고서 세차게 흘러내리는 그녀의 눈물을 봐버리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드센 성격의 모르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약하고 슬픈 모습을 보였다.

"....아서, 그 계집애를 왕비로 들일, 거야?"

"아니. 내가 당당하게 거부하는 걸 들었잖아. 나에게는 너 뿐이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알아, 들었어. 하지만 외로워. 당신이 나를 버릴까봐."

"너를 버리면 나를 죽여버릴 거잖아. 무서워서라도 우리 아내를 버릴 수가 없겠는데?"

내 농담에 모르간이 그제서야 웃음기를 입가에 띄웠다.

붉은 머리카락의 마녀는 나와의 거리를 좁히면서 왜소한 몸을 내 품으로 넣었다. 그녀를 두 팔로 안아주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서에 대한 건은 알아서 해결할게."

"하지만 반대가 심하잖아. 정치에 관심이 없는 나라도 알 수 있어. 저들의 주장은 진심이라는 걸.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왕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만약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아서와의 혼담을 주장하는 것이었다면 모르간은 당장이 집무실에 난입해서 탐욕스러운 귀족들을 모두 불태워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귀족들도 그들 나름대로 충성심의 표현으로서 혼담을 주장하고 있었다. 아서를 왕비로 들임으로서 브리튼의 통합을 이루어내고, 그 단결된 힘으로 브리튼 동부의 게르만을 몰아내버린다.

오로지 브리튼을 위해서.

모든 것은 브리튼를 위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걸 알기에 모르간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브리튼 전부를 적으로 돌려버린다면 이 나라는 멸망하고 만다. 카멜롯의 군주로서 귀족들의 여론을 분열시킬 수는 없었고, 그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함으로서 반발을 살 수는 없었다. 그녀도 그걸 알고 있었다.

"당신이 원하면 아서를 왕비로 들여도 괜찮아."

"....뭐?"

"기사왕 따위보다도, 내가 당신을 더 좋아할 테니까. 그런 딱딱한 계집보다야 나를 더 좋아해줄 거잖아, 당신도."

"우리 아내가 뒤늦게 사춘기에 들어가셨나. 사람이 갑자기 변해버리면 죽을 때가 다 된 거래."

"시끄러, 닥쳐. 당장에 기사왕 년이고 그 귀족들도 모조리 다 태워죽이고 싶은 것을 참고서 말하는 거란 말이야. 바보야, 당신의 아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배려를 해주고 있는 거라고! 바보 바보!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도 변해버렸단 말이야. 나는 나 자신보다도, 당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버리게 되었단 말이야.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당신의 곁에 계속 남고 싶어.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어. 나도 내 고집을 계속 주장할 수 없다는 건 잘 안단 말이야. 당신에게 폐가 되어버릴 테니까."

모르간이 울음기를 띈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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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간이 최고.

정실부인의 힘.

3P가 답이다...!

멀린 씨, 특제 미약 곱배기로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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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작가님, 어떻게 독자들의 뭘 원하는지 훤히 아시나요?

A: 눈동자 속으로 들어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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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민팽이 님, 쿠폰 27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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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2018/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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