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좌의 주인 -->
005
아서가 카멜롯에 찾아왔다.
그녀는 겨우 왕실 기사단 1백 여명만을 대동하고서 상경하였을 뿐, 다른 군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맹신하고 있다고 해야할까. 정치적으로 가장 큰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정통성과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 이해가 늦는 걸로 보인다. 만약에 내가 아서였다면 고작 1백 명을 믿고서 적지라 할 수 있는 카멜롯으로 오지는 않을 텐데.
웨일즈의 군주가 온다는 말에 왕성에서는 한껏 사치스러운 연회가 준비중에 있었고, 심지어 카멜롯의 백성들도 기사왕이 상경한다는 말에 들뜬 모습을 보였다. 기사들 중에서 가장 용맹하고 명예롭기로 유명한 기사왕이 아닌가. 역적 알베르를 처단하고 웨일즈를 평정한 소녀 기사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여론이 컸다. 게다가 그녀는 우서 펜드래건의 사생아이자 브리튼의 진정한 정통성을 가진 소녀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흥. 고작해야 시골 계집애가 오는 걸로 수선을 부리긴....."
모르간은 카멜롯 백성들의 들뜬 모습을 보고서는 코웃음을 쳐버렸다.
카멜롯의 왕비님치고는 꽤나 불만스러운 얼굴을 보인다.
대중들이 생각하고 있는 왕비님이라는 이미지는 자애롭고 따스할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우리 아내는 그런 당연한 이미지를 깨부숴버리는 여성이었다. 물론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만. 폭력과 유혈이 난무하는 왕비님이라니, 동경해버릴 것 같다.
새장 속의 카나리아가 아닌, 먹잇감을 단숨에 채가는 독수리 같은 위용을 가진 미녀다. 마녀 겸 왕비님이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지신 분으로, 카멜롯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매력 덕분에 인기가 오히려 좋았다.
"그래도 이모님, 기사왕께서 오신다는 말에 양 세력간의 친선을 바라는 백성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사왕 세력과 동맹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시끄러, 첩 주제에! 나와 말도 섞지 말고, 나와 눈도 마주치지 마. 먼저 내게 물어보고 말을 걸도록 해!"
"발언을 금지 당했는데, 어떻게 물어보라는 것인지....."
"시끄러! 나는 네가 내 남편과 살을 섞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네엣!"
전장에 서면 카멜롯 최강의 기사라 불리는 가웨인이었지만 카멜롯의 왕비이며 나의 정실부인인 모르간이 윽박 지를 때마다 어깨를 움츠렸다. 완벽하게 다람쥐과의 초식동물이 된 듯하다. 모르간의 불호령에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 고개를 두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는 금발의 소녀.
그녀를 보고서 모르간은 적의를 내비쳤다.
이번 기회에 정실부인과 첩 사이의 위계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모양이다. 물론 가웨인은 감히 왕비 자리까지는 탐내지 않았고, 청렴한 그녀의 성격에 혈연적 관계로는 이모님인 모르간에게 적의를 보일 리도 없었다.
한편 조카딸을 바라보는 모르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새빨간 눈동자는 생생하게 "나는 남편 때문에 참고 있지만, 너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모르간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그 눈빛을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그 정도로 노골적이다.
"기사왕이라. 오랜만인데?"
발코니에 기대어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왕궁 상층의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수도 카멜롯의 장경은 그야말로 눈부신 백아의 성이다. 새하얀 성벽으로 감싸고 있는 수도는 동화책에서나 나올 밥한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활기찬 모습이다.
과거의 모습과는 다르다.
식량부족과 기아 문제 때문에 해골 수준이었던 백성들이 지금은 피와 살이 적당히 붙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내 치세가 잘못 되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물론 나도 사람이기에 내 실수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종종 발코니로 나와서 카멜롯 백성들을 바라볼 때마다 내 치세는 적어도 브리튼을 빛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 기사왕을 반기는 분위기네."
"질투는 무서운데. 나는 게르만족과의 전선에서 기사왕과 그 세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어."
아서 펜드래건에게는 전력상의 이유말고는 흥미가 없었지만 멀린의 고혹적인 몸매를 생각하면 절로 얼굴이 붉어진다.
적당히 살집이 붙은 몸매에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당장이라도 보지에 페니스를 박고 싶을 정도로 야하게 생긴 연상의 대마법사는 모든 남성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경국지색의 미녀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몇 십번이고 멀린의 보지에 질내사정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어떻게 그런 미녀와 배를 맞추었을까.
적당히 분위기를 탔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우서 왕에게서 특이사항은?"
"시녀들을 통해서 바깥 사정을 듣고 있다고 합니다."
"몇 년만에 병석에서 일어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 시녀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진 않았겠지?"
"예. 삼엄하게 입단속을 시키고 있습니다."
가장 걸리는 문제는 우서 왕이 괜히 입방정을 떨어서 나와 아서 간의 관계를 뒤틀어버리는 일이다. 우서는 혈통을 중요시하게 여기고, 그 신분에 대해서 따지는 구시대적인 인물이다. 적어도 평민이라도 능력이 출중하다면 곧바로 중용해버리는 딸내미 아서와의 성격과는 정반대적인 인물이라고 할까.
설령 혈육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차이점은 서로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겠지. 적어도 아서는 내 정통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었고, 나를 브리튼의 군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웨일즈를 출병하여 카멜롯과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웨일즈에서만 머물렀고, 브리튼의 왕위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흠. 우서 왕이 내게 빠져버린 아서를 본다면 울화통이 터져서 기절이라도 해버리겠군. 늙은 왕은 자신이 쓰러지기 전의 과거의 세상과 눈을 뜨고서 펼쳐진 현재의 세상. 그 차이점에 대해서 인식 자체를 못하고 있다. 이미 브리튼에서 신분 중시의 사회는 사라지고, 능력 중시의 사회 사상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간신의 전횡과 대륙의 야만민 침공에 의해서 혼란과 난세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브리튼은 크게 뒤바뀌게 되었다. 신분제가 흔들리고 평민이라도 능력이 출중하다면 곧바로 출세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 혈통과 신분을 따지는 건 바보스러운 사상 밖에 되지 않는다.
"모르간."
"응."
"우서 주변에 사역마를 심어놓을 수 있을까? 멀린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멀린에게 들키지 않는 건 힘들어. 분하지만 멀린은 마법사들의 정점에 오른 인물이야. 수십 년이나 묵은 할망구를 속일 수는 없을 거야."
"그런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생각했다.
역시 아서 세력의 인재들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지금은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공포심은 들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조금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서 펜드래건을 정식으로 내 부하로 만들지 않는 한은 어렵게 되버렸다. 아서가 내 부하가 된다면 게르만족을 몰아내는 것은 물론 대륙을 정벌하는 것도 꿈은 아니다.
"아서를 이쪽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을까?"
"기사왕을 새로운 부인으로 들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같은 펜드래건이라고는 하나, 피가 섞인 근친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상속 문제 때문에 근친 혼인은 흔한입니다만.... 기사왕을 곁에 들이시면 자연스럽게 세력의 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웨인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금발의 여성은 자신이 말한 발언에 대해서 '내가 말했지만 정말 대단한 방법이야.'라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우수에 잠긴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태양의 기사는 기사왕이 상경하는 기회를 노려서 자연스럽게 세력 통합을 위한 혼담을 주장했다. 어차피 기사왕도 내게 높은 호감을 보이고 있었을 뿐더러, 노골적으로 연애에 대해서 아서 측이 먼저 내게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가웨인은 혼담을 제안하면 결코 아서가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모르간을 힐끗 바라보았다.
가웨인의 말에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 새빨간 눈동자만큼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의 정체는 바로 살의. 짙은 살의가 가웨인을 향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철부지 태양의 기사를 불태우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웨인을 바라보았다.
나를 생각해주는 그 지고지순한 사랑은 고맙지만, 이 녀석은 대체 목숨이 몇 개이기에 모르간 르 페이의 앞에서 저런 망발을 하는 걸까.
아서를 곁에 들이려면 무조건 왕비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데, 이미 카멜롯의 왕비는 모르간이 차지하고 있었다. 가웨인의 말에 따르자면 모르간을 왕비 자리에서 치우고 아서를 들이라는 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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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rays 님, 쿠폰 10장 감사합니다.
(쿠폰을 주시면 바로 코멘트를 써주세요. 그래야 어느 독자분이 보냈는지 압니다.
쿠폰을 보낸 시각과 갯수는 뜨는데 정작 아이디가 안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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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신개념 자본주의 작가.
자낳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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