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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65화 (65/195)

<-- 북방의 패자 -->

001

브리튼 기사들을 이끌고서 던디까지 진출.

그를 가로막는 수많은 군세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을 모두 격파하고서 나아갔다. 쏟아지는 화살비는 물론, 사악한 적의 주술사들까지. 모든 난관을 극복하면서 진격을 되풀이했다. 고작 2천 밖에 되지 않는 병력이었지만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적을 교란시켰고, 혼란에 빠진 적들을 모두 분쇄해버렸다.

"가웨인! 적의 좌측을 기사단으로 돌파해!"

"하, 하지만 적의 방어선이...."

"돌파 못하면 우리가 패배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뚫어!"

다급한 어조로 외치는 내 명령에 가웨인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금발의 여기사는 치열하게 기사단들과 함께 적의 측면을 공격했다. 장창과 방패병을 내세워서 격렬하게 저항하는 적의 방어선을 몇 번이고 공격했고, 큰 피해가 발생하긴 했지만 방어선을 붕괴시키면서 그 안쪽으로 기사단을 진격시켰다. 그리고 적 군세는 측면이 공격당하면서 점차 그 대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아군 보병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케이. 적의 중앙을 공격해."

"난 사무직이란 말이야! 이 왕님아!!"

불평을 토해내면서도 가죽 갑옷을 엉성하게 입은 유녀가 롱소드를 뽑아들고서 아군 보병들과 함께 진군했다.

검술 실력은 가웨인에 비하면 턱 없이도 부족했지만 적어도 다른 기사들보다는 우수하다. 뛰어난 기사인 아버지 엑터를 둔 탓일까. 그녀의 검술 솜씨도 대단했다. 투덜거리면서 적 우두머리를 죽이고 그 정예병을 궤멸시키자 전투의 양상이 완벽하게 이 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가웨인과 케이가 전황을 지배했고, 브리튼의 승리로 끝이 났다.

두 배 많은 군세를 평지전에서 자웅을 겨루었다. 일반적으로 평지전에서는 군세가 많은 측이 유리하다. 하지만 스코트족에게는 없는 기사단을 운용하면서 그 이점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전황을 전개시켰기 때문에, 가웨인이 이끄는 기사단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태양의 기사가 이끄는 기사단의 돌파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성검 갈라틴을 휘두르며 태양의 기사가 보여준 무위와 용맹은 그녀가 최강의 기사임을 증명시켰다. 그녀가 이끌었던 기사들은 모두 피칠갑이 되어서는 전장에 복귀했다. 그들의 피칠갑 모습을 보더라도 얼마나 치열한 접전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전하, 던디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래. 이제 스코트족의 본거지까지 일직선이다."

점점 스코트족의 본거이라 할 수 있는 애버틴으로 다가갈수록 그들의 저항은 만만치가 않았다.

스코트족을 맹주로 섬기는 다른 소수 부족들이 그 상대였고, 그들은 서로 연합을 취하는 방법으로 브리튼 군세를 막아섰다. 척박한 대지에서 단련된 야만족 전사들은 꽤나 위협적인 존재들이었고, 이쪽에 기사단이 없었더라도 단번에 패배하였을 것이다.

던디에 브리튼의 군기를 꽂았다.

점점 영토가 확장될 때마다 브리튼의 군기가 꽂힌 성과 요새들이 늘어났다.

이에 동맹을 체결한 픽트족 또한 군사를 움직이면서 이쪽에 호응해주었다. 주로 숲의 요정이라 불리는 엘프들이다. 간소한 가죽 갑옷만으로 무장한 숲의 요정들은 날렵한 숏소드와 활을 다루면서 아군을 지원했다.

"이쪽도 퍼스를 점령했습니다."

잿빛 머리카락을 가진 엘프 아가씨가 말했다.

늘씬한 각선미가 눈에 띄는 미녀였다. 결코 빗나가지 않는다는 일화를 가지고 있는 페일노트를 다루는 엘프 레인저. 붉은 활을 다루면서 일방적으로 야만인 전사를 저격시킨 트리스탄이다.

그녀는 과감하게도 적 대장과 거리를 좁힌 다음에 곧바로 활시위를 당겨서 그를 저격시켰다. 트리스탄의 담대한 용기를 본 가웨인조차 그녀의 출신이 엘프였음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엘프 레인저는 백발백중의 실력을 가진 최고의 궁수였다. 어느 세력이든 엘프들이 가진 전력을 탐내리라.

"수고했다."

"가, 감사합니다. 전하!"

내 칭찬에 가웨인이 반색했다.

피칠갑을 하고 있었음에도 발랄한 웃음을 드러냈다. 설령 피로 물든 옷차림을 하고 있더라도 가웨인은 아름다웠다. 청초한 이미지가 가득했고, 그녀가 웃음을 지어주자 주변 분위기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내게 거리를 좁히며 애교를 부리는 가웨인을 보며, 케이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누가 보면 부부인 줄 알겠네."

"내가 가장 총애하는 부하 기사라고 할 수 있으니까 부부와 비슷하겠지."

일부러 가웨인을 띄워주고자 그렇게 말했다.

부부와 비슷하겠지, 라는 말에 가웨인은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이면서 내 말에 동의를 해주었다. 두 발을 동동 구르면서 행복하다는 웃음을 보일 정도로 매우 기쁜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기뻐해버리면 가웨인의 마음을 거절하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녀의 행복을 방해하지 말자.

"예! 전하의 말씀대로입니다. 전하와 저는 끊을 수 없는 관계이니까요."

"그래."

이제는 오히려 동의를 보내는 가웨인의 태도에 케이는 "염장 지르네."라고 투덜거렸다.

지금까지 가웨인의 순진한 반응을 보면서 놀리기에 바빴던 케이였는데, 이제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가웨인올 놀리는 게 케이의 취미였으니까. 성격 나쁜 꼬맹이 때문에 우리 태양의 기사가 고생이 많았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피로 물든 가웨인의 새하얀 얼굴을 닦아주었다.

갸름한 얼굴이 잘 보인다.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춰주자, 가웨인은 이번 스퀸십은 버틸 수 없었는지 화들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

내게 무한정의 사랑을 보내는 아리따운 미녀의 애정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첩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상관 없다면서 내게 고백했던 가웨인이다. 나도 이제 참는 게 힘들었다. 가웨인처럼 아리따운 처녀와 매번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데 욕정을 어떻게 참겠는가.

"트리스탄, 애버딘까지의 거리는?"

"아마도 사흘에서 나흘 정도는 거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가."

우선 아군 병력들이 크게 지쳐 있었기에 휴식을 명령했고, 엘프들과의 연합군을 다시 재정비하면서 시간을 들였다. 후방에는 드루이드와 요정들이 황급히 돌아다니면서 보급을 준비하고 있었다.

드루이드는 식물 인간처럼 보이는 종족이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식물이다. 덩굴과 풀잎을 몸에 붙이고 다니는 그들은 식재료를 몽땅 집어넣어서 정체불명의 수프를 만들어냈고, 요정들은 두 날개를 팔락거리면서 부상을 입은 아군 병사를 치유했다. 고작해야 어른 손바닥 수준의 작은 사이즈였지만 치유 마법을 다루는 솜씨가 훌륭하다.

수프를 한 숟가락 먹으면서 작전 지도를 펼쳤다.

최종 목표인 애버딘은 물론, 픽트족의 본거지인 글래스고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는 지도였다.

드루이드가 끓인 수프는 딱히 이렇다고 할 맛은 없었다. 자기네들끼리는 그 입맛이 맛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싱겁다. 국물이 맹물 수준이다. 가웨인은 음식에 투정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먹고 있었고, 케이는 있는 신경질을 죄다 부리더니 잡은 토끼를 자기가 혼자 구워먹고 있었다.

고기를 뜯고 있는 케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녀가 황급히 자신이 먹던 고기를 등으로 숨겼다.

"뭐야? 안 줄거야."

"누가 먹고 싶다고 했냐."

여전하 사교성 제로의 아가씨로구만.

이런 녀석보다는 니무에와 가레스가 훨씬 귀엽다. 물론 가레스는 섹드립이 너무 심해서 나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고는 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우리 유녀들보다는 덜 귀엽다. 무론 귀엽지 않다는 건 아니다만.

"아군에게 남은 보급품은 얼마나 남았나?"

"글쎄. 장기전은 절대적으로 무리라고 할까. 만약 애버딘에서 적들이 수성전을 준비하면서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면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어. 저 바보 같은 엘프와 요정들은 보급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새벽 이슬이나 주변 대기에 흐르는 마력만으로 허기짐을 해결할 수 있는 엘프와 요정들은 결코 인간들의 허기에 대해서 이해를 못 하겠지. 드루이드들도 그냥 식수만 존재한다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여기서 보급에 가장 큰 차질을 빗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다. 여기까지는 요행으로 돌파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슬슬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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