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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64화 (64/195)

<-- 엘프를 찾아서 -->

004

아무래도 에든버러의 모든 내정을 맡고 있는 내정관 케이와 자주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입담이 거칠고 욕설이 심한 소녀였지만 그래도 그 능력만큼은 뛰어나니 내정에 대해서 배울 겸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고스로리 원피스를 입은 케이는 대놓고 불쾌하다는 감정을 드러냈고, 나로서는 쫄래쫄래 작은 몸을 이끌고 돌아다니는 케이가 귀엽게만 느껴졌다. 작은 팔다리로 부지런히 일을 처리하는 모습도 기특하게 보인다.

"케이 경은 품행이 단정 맞고 입담이 험한 분이십니다. 그런 분과 가까이해서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웨인이 뿔이 나버린 모양이다.

요 근래에 들어서 케이와 시간을 자주하고, 군사 부문을 떠맡고 있는 가웨인과는 소원해졌다. 그에 대한 불만인지 금발의 처녀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팔짱을 끼꼬서 불만을 드러내는 모습이 귀엽다. 내 주변 여성들은 하나같이 모두 귀여워서 문제다. 물론 내 마누라가 가장 귀엽지만. 모르간만큼은 아니더라도 가웨인도 충분히 귀여웠다.

금발의 여기사는 평민 출신에 불과한 케이를 얕보는 성향이 강했지만, 우서 펜드레건 시절부터 용맹하고 명예롭기로 유명했던 기사 엑터의 친딸이 케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녀의 신분을 문제로 삼지 않았다.

전형적인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가웨인은 사람의 출신과 성분에 따라서 그 사람을 분별하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귀족 사회에서 그 출신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문제겠지만 그것은 고지식하고 오래 묵은 사상일 뿐이다.

아무튼 케이가 엑터의 친딸이라는 것은 곧 유서깊은 시골 기사 가문이라는 뜻이었기에 출신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우서 펜드래건 대에 유명했던 엑터의 딸이라는 성분은 가웨인으로서도 태클을 걸지 못했다.

"질투인가."

"지, 질투가 아닙니다! 저는 사적인 감정을 공무에 대입시키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질투다.

질투하는 건 고맙지만 아직 어린애로 밖에 안 보이는 케이와 함께 있다고 해서 질투를 부릴 줄이야. 물론 케이는 겉모습이 어린애일 뿐이지 실제 연령은 20대 초반이다. 아서의 의붓 언니였으니 말이다. 혼인도 가능한 연령이었고, 출신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웨인이 경계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모양이다.

우선 가웨인을 달래주기 위해서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러자 가웨인의 얼굴이 퐁하고 붉어진다. 쑥쓰러우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였음에도 내 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두 팔을 뻗어서 내 허리를 감싸안고 있었다. 금발의 처녀와 제로 거리에 가깝도록 포옹. 가웨인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흐응.... 이모님이 부럽습니다."

"왜?"

"전하와 같이 이어졌으니까요. 저도, 전하와 이어지고 싶은데."

성실한 성격의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접적인 어필.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까지 궁지로 내몬 걸까. 촉촉하게 젖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금발의 여기사. 모르간만큼이나 늘씬한 몸매를 가진 미녀는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에게 직접적인 애정을 보여달라며 갈구하고 있었다.

"저도,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음."

빠르게 머리가 회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멀린과 밀회를 즐기게 된 마당에 이 상태에서 가웨인까지 개입하면 더 복잡한 연애 문제로 발전할 것 같은데.

질투가 심한 정실부인이 계신 마당이니 여기서 더 연인이 생겨나면 곤란하다. 가웨인은 분명 이성으로서 완벽에 가까운 매력을 가진 미녀였지만 그녀를 직접 안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든다.

솔직히 말해서 처녀는 함부로 안지 않는다는 게 내 주의다.

내가 개쓰레기도 아니고 처녀를 안은 다음에 그대로 버려버리는 놈은 아닌지라. 책임도 지지 못할 여자애를 안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마침,

집무실에 케이가 들어오면서 밀애는 끝이 나버렸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지자마자 가웨인은 후닥닥거리면서 거리를 벌렸고, 나 또한 흐터러진 옷매무새를 황급히 정리했다. 탁한 금발을 가진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노골적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가웨인의 시선을 접해야 했다. 케이는 테이블 위에 서류뭉치를 가득 올리면서 말했다.

"오늘 분량. 농땡이는 그만 부리고 일이나 해, 왕님."

"내가 언제 농땡이를 부린 적이 있었나."

나는 업무적인 면에서는 농땡이를 부리지 않는다.

하루치 일과를 모두 끝내고서 연애든 뭐든 잡다한 시간을 보냈다. 적어도 카멜롯의 군주였으니 마땅힌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타의적으로 군주에 올랐지만 게으름을 부릴 생각은 없다. 내게 주어진 일은 완수한다. 그게 내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케이도 반박하지 않았고, 애꿎은 펜대를 놀리면서 다시 서류를 보고 있었다. 내 집무실에 와서도 업무를 놓지 않는다. 과연 대단한 캐리어 우먼. 무채색의 고스로리복을 입은 소녀는 붉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서류를 보고는 곧바로 서명을 해버렸다. 그녀의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보고서 같은 경우에는 곧바로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다음에 쓰레기통으로 향해졌다.

나중에 그 쓰레기통에 있는 보고서를 작성한 인원은 경고조치를 먹는다고 한다. 쓰레기만도 못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때문인지 케이에게 된통 당하기 싫은 관료들은 애써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관료들은 일부러 케이에게 체벌을 받고 싶어서 백지로 내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대체 백지로 내는 경우는 뭘까.

애초에 그건 보고서도 아니지 않나. 그에 대해서 케이는 해고 통지라는 강수를 두면서 관료들을 추방시켰다. 어쩐지 관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더라. 나는 또 토너먼트 대결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배틀 로얄 같은 건가. 최종적으로  남는 관료가 우승자가 되는 방식으로 치뤄지는 줄 알았군.

"케이, 다음 주에는 출정을 거칠 거다."

"출정? 이 빠듯빠듯한 살림에 전쟁을 벌이겠다고? 왕님, 대체 이게 뭘로 보여?"

손가락 하나를 뻗으며 케이가 물었다.

'너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지?'라는 의미의 제스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침 뻗은 손가락이 가운데 중지였다. 카멜롯의 군주에게 그 따위의 모욕을 주는 건 아무래도 케이가 유일할 것이다.

가웨인은 자신의 밀회를 방해한 것으로 모자라서 이번에는 주군을 모욕하는 고스로리의 소녀를 노려보면서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금발의 처녀가 살의를 내비치자, 케이가 비웃으며 말했다.

"나를 죽이게? 에든버러에서 너보다는 내가 더 도움이 되거든? 가슴만 큰 젖소가!"

"가슴과, 이번 일은 상관 없습니다. 케이 경, 당신은 좀 더 주군에 대한 경의를 표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아? 시골에 자란 년이라서 그런 것 따위는 몰라. 나는 그저 여동생인 아서 펜드래건을 주군으로 섬기고 있는 기사로서, 나는 그저 타세력에 지원을 온 지휘관에 불과해. 그러니까 충성이니, 경의이니. 그런 입에 발린 소리는 집어치워."

물론 기사로서의 면모를 따지면 케이보다도 가웨인이 훨씬 우월했다. 검술 실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고, 군사를 지휘하는 능력과 다수의 병력을 다스리는 카리스마 또한 가웨인이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문관으로서의 재능은 케이가 압도적이었다. 일당백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기염을 토해내면서 에든버러에서 빗발치던 민원을 단숨에 처리해버린 그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웨일즈에서도 내정관을 부임하고 있던 케이는 야만인들로 들끓는 칼레도니아에서도 그 재능과 기치가 빛났다.

그걸 알기에 가웨인도 케이를 처벌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평상시에는 케이의 능력이 더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녀가 없으면 복잡하기 그지 없는 칼레도니아의 평탄화 작업에도 차질이 벌어지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을 벌이겠다고?

"그래. 스코트족을 공격할 거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점령하고 있는 도시가 되겠군."

"이유는?"

"동맹을 맺은 픽트족에게 보여줄 생각이다. 에든버러의 브리튼인이 부리기 좋은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흐음. 기선제압인가."

내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파악한 케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그에 대해서 찬성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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