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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52화 (52/195)

<-- 역적 토벌 -->

002

5천의 군사를 이끌고 합류한 아서가 반가운 기색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갑주를 입은 세피아 색의 기사왕.

어느 황혼 마법사가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 갑옷은 꽤나 당돌한 디자인이었다. 새하얀 어깨가 드러난 갑옷은 아서에게 가장 잘 어울렸고, 그녀의 청초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물씬 풍기게 해주었다.

물론 남성으로서 바라보는 시선일 뿐이지, 적군의 병장기를 막는 데는 가장 부적절한 디자인이라고 할까. 쏟아지는 화살에 그대로 꽂히겠군.

"오라버니, 도우러 왔습니다."

"고마워, 수고했어."

"예!"

꼬리가 있다면 아마 홱홱하고 좌우로 흔들리고 있겠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보인다. 충견에 가까운 타입의 아서는 까치발을 들면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웨일즈에서 출병한 5천의 군세가 합류. 웨일즈인과 브리튼인은 딱히 이렇다고 할 교류는 없었고, 크게 적대감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연합군을 결성하여도 눈에 띄는 분열과 마찰이 벌어지진 않았다.

"가웨인, 포위 상황은?"

"전하. 아직까지는 요크 성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현재 아군이 요크 성을 빈틈없이 포위를 결성하고 있으며, 저들은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겁니다."

"좋아."

가웨인은 나에게 브리핑을 하면서도 내 옆에 있던 아서를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적상으로 보면 아서와 가웨인은 이모와 조카딸 관계. 아서가 이그레인의 딸아이였고, 가웨인은 이그레인의 손녀딸이다. 가족 관계를 따지면 더욱 복잡해지는 게 바로 브리튼 왕실 족보이니 깊게 생각하면 머리만 아파질 뿐이겠지.

아서는 가장 확실한 정통성을 가진 공주 기사.

지금은 우서가 병에 들려서 생사조차 불분명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으로, 온전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때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서는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나 실질적인 권력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노골적으로 견제할 필요성은 없었다.

그리고 아서는 나에게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면서 내게 협력적이었기에 애써 그녀를 견제하려고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견제를 드러내면 마찰만 깊어질 뿐이니까.

"가웨인 경! 태양의 기사로 이름이 높은 귀관을 보니 감격스럽군!"

"아..... 가, 감사합니다. 아서 님."

당돌하게 자신을 향해 반가운 낯을 드러내는 아서.

그 모습에 가웨인이 당황스러운지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가웨인은 그리 싫지 않다는 표정이다.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공주기사를 보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겠지. 한 세력을 책임지고 있는 군주라고 하기에는 근엄함이 부족하다고 할까. 당돌한 귀여움을 가진 기사왕은 결코 싫어할 수 없는 인상의 소녀였다.

요크 성을 둘러싸고 있는 포위망은 완벽에 가까웠다.

요새에 가까운 방어벽을 자랑하는 요크 성에는 총 7개에 달하는 성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성문마다 모두 병력을 배치함으로서 결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둥글게 포위망을 결성해버리면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이 소요된다. 그렇기에 성문의 앞 부분에만 병력을 배치시키는 방법으로 포위망을 결성했다.

또한 그 성문에 앞에는 각 기사들을 배치함으로서 그 병력일 지휘하도록 했다.

기사단장인 베디비어와 호수의 기사 란슬롯 등의 무장들이 지휘관으로 배치, 그리고 가웨인과 가레스도 나서서 병력을 지휘했다. 카멜롯군과 웨일즈군의 네임드 인재들이 배치되었다. 몰락한 역적에 불과한 보두앵 따위는 결코 포위를 뚫지 못하리라.

각 부대들의 포위 현황을 둘러보고 오자, 아서와 모르간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목격했다. 물론 견원지간에 가까운 둘이니 정겨운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흥! 그 이와 나는 어마어마하게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신혼부부야! 너처럼 발랑까진 여동생 따위는 보지도 않을 걸?"

"윽....! 제가 먼저 오라버니를 만났다면 제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텐데."

"웃기는 소리 하지마. 내가 늦게 그 사람을 만났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거야. 어린이는 구석에 박혀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면 돼."

"마지막에는 제가 이길 겁니다!"

흠. 칼만 안 들었지 살기가 교환되고 있는 하나의 전장이로군.

이래서 여자들의 싸움은 무섭다. 결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다. 분명 내 쪽에서 피해를 입겠지.

아서와 모르간의 사이에 끼어든 소녀가 있었다.

수려한 금발을 가진 어린 소녀. 태양의 기사라 불리는 가웨인의 여동생인 가레스였다. 결코 타락하지 않는 기사라는 의미에서 부정(不淨)의 기사라고도 불린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지, 실제로 가레스를 맞이한 사람이라면 이미 그녀의 신랄한 섹드립에 부르르 떨고 있을 것이다. 주로 그 대상이 나라는 점에서 피곤해진다.

가레스가 외쳤다.

"아서 님, 이미 이모님은 이모부님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셨거든요. 건장하고 색을 밝히시는 이모부님이시니 당연히 이모님이 벌써 임신을 해버린 걸지도 몰라요. 아마 확실하겠죠. 이 가레스가 예상하기로는 반나절 넘게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 뭘 했다는 말인가... 가레스 경?"

"섹스요."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이미 나와 동침을 한 뒤라는 사실에 아서가 적지 않게 당황한다.

모르간은 가레스의 신랄한 말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를 숨기진 않았다. 오히려 마치 임산부처럼 자신의 잘록한 배를 만지면서 아서가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이미 아기씨를 자궁에 받은 것을 자랑하려는 듯하다.

아서가 파르르 떨며 외쳤다.

"아,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오라버니를 쓰러트려서....."

"누가 그렇게 놔둘까봐!"

서로를 강하게 노려보면서 아서와 모르간이 대치한다.

이미 캣 파이트가 일어나기 직전인 상황. 일부러 그 상황을 심각하게 내몰면서 과도하게 투기를 느끼는 두 여인을 보며 그 사이에 서있는 가레스가 키득키득 웃음을 지었다. 웨일즈군에 멀린이 있다면, 카멜롯군에는 가레스가 있다는 건가. 스트레스성 위장염을 유발시키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가레스에 이어서 멀린이 내 뒤로 다가와서는 부드러운 손길로 내 두 눈을 가렸다.

"누구게---? 맞추면 뜨거우 입맞춤인데?"

"반인반마의 짜증나게 생긴 마법사."

"땡! 멀린 누나랍니다~"

멀리서 아서와 모르간의 투기어린 싸움을 목격하고 있던 나를 뒤에서 잡아낸 여성은 멀린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주황색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정리한 미인은 달콤한 말로 속삭이면서 베시시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까지 남자를 홀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멀린 밖에 없군.

소악마처럼 웃음을 짓는 멀린은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엽다.

황혼의 마법사가 모르간과 맹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는 아서를 바라보더니 눈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키운 딸내미의 대견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 같다고 할까. 장난스러운 반응 밖에 보이지 않던 멀린이 처음으로 진지한 모습으로 모성애로 가득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잠깐 두근거렸다.

의도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니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이라고 할까.

"아서가 결국 우리 제자에게 선수를 빼앗긴 모양이네."

"선수고 뭐고, 애초에 나와 모르간은 결혼한 사이거든?"

"이럴 거였으면.... 아서에게 차라리 비세리온 군을 먼저 노리라고 가르쳤을 텐데."

"뭘 노리라는 건데? 내 목숨?"

내 말에 멀린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살포시 웃음을 짓는 모습이 마치 순결한 여인을 보는 듯하다. 물론 그 손동작은 요란하고 음란했지만. 손가락을 동그랗게 형태를 만든 다음에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동그라미에 쑤셔넣는다. 남녀간의 성교를 상징하는 요망한 제스처였다.

"우리 아서는 어떻게 생각해?"

"귀엽지. 사랑스럽고."

"헤에..... 우리 아서도 기회가 아주 없는 건 아니겠네. 아무리 브리튼이 모계 사회라고는 해도, 일부다처제가 기본이잖아? 게다가 비세리온 군은 브리튼의 왕이고."

"나를 왕으로 인정하는 건가? 멀린, 너는 분명 아서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고 계획을 꾸미고 있을 텐데."

"그렇지."

내 말에 멀린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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