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발론의 붉은 마녀 -->
004
아서는 내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너무 호의적이라서 오히려 당황스럽다고 할까. 경계 섞인 시선으로 강하게 아서를 노려보는 모르간. 그녀는 나를 빼앗길까 염려하면서 나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멀린은 옆에서 키득키득거리며 웃고 있었고, 아서는 모르간에게 날선 반응을 보였다.
"모르간? 저는 당신을 새언니로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나도 너 같은 시누이는 필요 없어!"
서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기에 바쁘다.
나와 모르간은 부부 관계였기에 당연히 내 의부 여동생인 아서에게 있어서는 새언니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니, 애초에 가족 관계를 따지면 개차반이 되어버리는데. 아서와 모르간은 어머니가 같은 동복 자매였기 때문이다.
어느 마법사가 개입하면서 개족보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브리튼 왕실을 개족보로 만들어버린 원흉을 바라보았다. 주황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요염한 여마법사. 몽마의 핏줄을 받은 여마법사는 아서와 모르간이 싸우는 걸 구경하며 웃음을 터트리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 아서는 비세리온 군을 평소부터 동경하고 있었거든."
"어째서?"
멀린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서 펜드래건이라는 소녀가 애초에 나를 동경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콘월에서 거병하여 지방 귀족연합군을 연이어 격퇴. 브리튼 왕국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었음에도 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역적 보두앵을 축출하고 카멜롯을 점령했다.
지금은 우서 펜드래건을 대신하여 섭정 정치를 펼쳤고, 지금에 와서는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섭정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브리튼인들부터가 이미 나를 새로운 왕으로 인정하고 있었고, 멀린이 구상했던 '새로운 왕' 아서 펜드래건은 웨일즈 촌구석에서 왕을 자칭하고 있을 뿐이다. 아서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영향권은 매우 협소하고 적었다.
아서가 세피아 눈동자를 반짝이더니,
"오라버니는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얼마 전에는 병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게르만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왕이기 이전에 기사, 브리튼에 충성을 바친 기사입니다. 그런 기사가 오라버니처럼 훌륭하고 위대한 왕을 존경하고 경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마운데."
"예! 저도 오라버니에 어울리도록 브리튼에 막대한 공헌을 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대상을 동경하고 경외하는 들뜬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순진무구한 세피아색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진짜였고,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존경하고 있었다. 아서의 반응에 오히려 모르간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국왕의 사생아와 만나고서 혹시 왕위를 두고서 다투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솔직히 왕에 어울리는 정통성은 아서에게 있었다. 왕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힘과 권력을 가장 필요로 하지만 혈통에서 비롯되는 정통성을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근본이 몰락 귀족에 불과한 나보다는 사생아라고는 해도 전 국왕의 혈통인 아서가 왕에 적합하겠지.
나 또한 그렇게 여기고 있었지만, 아서는 오히려 자신을 저자세로 표현하면서 나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을 보였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오라버니?"
세피아 색의 기사왕이 내게 물었다.
멀린과 모르간도 곁에 앉아서는 나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대답을 기다린다.
"우선 이전의 전투로 게르만족이 크게 위축되었어. 정치적인 분란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니까 빠른 시일 내로는 전쟁을 벌일 수 없겠지."
"그러면요?"
"요크 백작령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역적을 제거한다. 보두앵을 죽여버릴 거야."
권력의 대부분을 소실당하고 요크 백작령으로 쫓겨나듯이 도망친 보두앵이 아직 남아 있었다.
딴에는 웨일즈에 할거하고 있던 사촌동생 알베르와 함께 재기를 노렸을 터였지만, 이미 알베르는 아서에게 죽었다. 그가 이끌던 중앙군 2만 명 또한 몰살당하거나 아서의 휘하 병력으로 편입.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권력자였던 보두앵을 추종하는 사람은 없다.
권력을 잃은 위정자의 말로만큼 애처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보두앵은 팔다리가 모두 잘려나간 무방비한 상태였고, 비록 요크의 견고한 요새가 그의 몸을 가려준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은 적병의 칼날에 해당될 뿐이다. 권력을 잃었다. 그것은 곧 희망이 없다는 걸 의미했고, 나아가 부하들에게 살해당할 우려가 크다는 걸 의미한다.
희망이 없는 위정자를 끝까지 섬길 만큼 부하들은 머저리가 아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아서도 마찬가지다. 희망이 없는 군주는 더 이상 부하에게서 충성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권력을 포기할 수 없다. 왕좌를 노리는 자는 결코 권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게 바로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였다.
권력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아누스의 두 얼굴처럼 양면성을 가진 부하들에게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핵심이다.
"보두앵이라. 아차차, 나도 잊고 있었네. 그 교활한 너구리를."
멀린이 자신의 머리를 콩하고 장난스럽게 두드리며 말했다.
고령에 맞지 않는 귀여움에 모르간의 얼굴이 빠르게 식어간다. 아서의 눈빛도 그렇게 곱지는 않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중년 여성 주제에 어디서 귀여운 척을 하는 거지? 분명 겉외모는 피부가 탱탱한 미녀였지만 그 속내는 이미 학부보에 가깝다. 이미 슬하에 아이를 둘 이상 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애엄마 수준이다만.
내 생각을 엿보았는지 멀린이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거렸다.
자신의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든 다음에, 다른 손가락으로 그 고리 안에 쉴 세 없이 꽂아넣는다.
"어때, 우리 비세리온 군은? 이 누나의 몸에 흥미 있어? 조금 서비스를 해줘도 좋은데."
"윽."
아서에게서 좀 전에 받은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팔짱을 끼면서 풍만한 가슴골을 강조하는 멀린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당장에 두 소녀들이 보는 앞에서 반인반마의 마법사를 범해버릴 것 같았다. 이성보다도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성욕이다. 반인반마가 콧소리를 내면서 교태를 부리자 남성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본능이 우선시된다.
모르간과 아서가 발끈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팡이와 성검이 교차한다.
화염 계열의 마법이 전개되는 지팡이와 순백의 마력을 발삲는 성검. 동시에 타겟팅이 되어버린 멀린은 두 손을 들면서 항복을 선언했다. 아무리 반 세기 동안 묵은 반인반마의 대마법사라고 할지라도 기사왕과 아발론의 마녀를 상대로는 승산이 없겠지.
"후우.... 후우, 진짜 미쳐버리는 줄 알았네."
"에이, 해버려도 좋은데. 성적인 면에 대해서는 무지한 소녀들 앞에서 미녀를 범하는 야외 플레이라니... 얼마나 좋아? 이게 바로 기승전떡. 기승좆결...."
"누가 저 빌어먹을 반마 좀 죽여!"
은근슬쩍 내게 다가와서는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멀린.
황혼의 마법사 때문에 강제로 해방되려는 본능의 욕망을 참을 수가 없다. 모든 봉인들이 해제당하기 직전에 단말마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대체 머릿속이 뭐로 이루어진 녀석일까. 움직이는 음란물 같은 녀석이라고 할까. 속삭이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버티질 못한다.
당장에 멀린을 족쳐버릴 듯이 분노한 모르간이 잠시 움직임을 멈춰섰다.
그녀는 시선을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바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내 아래쪽 분신을 보고서. 죽고 싶다. 멀린을 죽이려고 나서던 마녀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서는 두 손으로 눈을 폭하고 가려버렸다.
아서는 나를 보면서 흥미롭다는 시선을 보인다.
"호수의 요정 비비안에게서 엑스칼리버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다른 성검도 있었던 모양이군요. 새로운 엑스칼리버인가요?"
"너 알고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멀린이 자주 말해주었습니다. 남자에게는 저마다 아래쪽에 숨기고 있는 칼리번과 엑스칼리버가 있다구요. 어떤 의미로는 여성을 기분 좋게 해주는 마법 지팡이라고 하더군요. 여성의 막힌 곳을 강제 개통을....."
대체 멀린이라는 존재는 아서 펜드래건에게 뭘 가르쳐주고 있는 걸까.
브리튼의 새로운 왕이 아니라, 그냥 놀잇감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은데. 제왕학에 대해서 중점으로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는 잡지식이나 불어넣고 있군. 애초에 아서를 왕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멀린이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모두 이 자리에서 섹스를 하면 되잖아? 모두가 기분 좋아지고, 혼란스러운 브리튼 왕실도 통일. 비세리온 군은 아리따운 미소녀들로 하렘 천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미래가 아닐까?"
나는 곧바로 엑스칼리버를 뽑아든 다음에 빌어먹을 몽마 마법사를 향해 휘둘렀다.
==============================
아니, 애초에 건전과는 거리가 머네.
19금으로 해도 될 것 같다.
일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섹드립이 너무 찰지다.
====================
사실남자 님, 쿠폰 13장 감사합니다.
(쿠폰을 주시면 바로 코멘트를 써주세요. 그래야 어느 독자분이 보냈는지 압니다.
쿠폰을 보낸 시각과 갯수는 뜨는데 정작 아이디가 안 뜬다.)
=============================
원고료 쿠폰10개 = 연재 하나.
설차/아리냥의 작품 하나를 선정하면 1연재 가능.
어느 작품이든 상관 ㄴㄴ
PS. 신개념 자본주의 작가.
자낳작.
유통기한: 2018/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