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34화 (34/195)

<-- 호수의 요정 비비안 -->

004

'성검聖劍'을 얻는 의식은 딱히 이렇다고 할 것은 없었다.

옷을 모두 벗은 다음에 강물에 몸을 씻으면서 백은색의 빛을 띄는 칼날을 같이 씻는다. 푸르스름한 달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호광의 호수에서 몸을 담그면서 두 손으로 백은의 검을 쥐었다. 묵직한 느낌이 드는 롱소드의 형태였는데, 그 칼날에 점칠된 절삭력과 농도가 짙은 마력은 요정과 엘프, 드루이드들이 모여서 담금질한 최고의 명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차갑기 그지 없는 호수에 처량하게 알몸으로 서있던 나를 보며 모르간은 두 눈을 폭 가리고 있었고, 비비안은 처음 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낼 때와는 달리 상처가 덧씌워진 내 몸을 보고는 힐끔거렸다.

"꽤나 몸이 좋으시군요."

"요정이라는 녀석이 남정네의 몸을 함부로 보지 말라고. 추워 죽겠네. 언제 나가면 되는 거야? 어이, 모르간."

"지금 앞을 못 보니까 부르지 마, 이 바보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르간이 빽하고 소리쳤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알몸의 남성에 대해서는 면역력이 약한 모양이다. 콘월 공작가문의 공주님에게는 너무 과격한 모습이었나. 부끄러워하는 모르간을 보고 있자니 귀엽다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새벽녘에 뭐가 처량해서 혼자 알몸으로 호수에 몸을 담그고 있나, 라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젖은 몸으로 나와서는 곧바로 옷을 입었다.

축축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찝찝하다. 수려한 문양이 새겨진 칼집을 비비안이 내밀었고, 백은색을 띄는 성검을 그 안에 봉납했다.

비비안이 성검의 이름에 대해서 말했다.

"성검의 이름은 엑스칼리버(Excalibur)예요. 수많은 요정과 엘프, 드워프 그리고 드루이드들이 모두 모여서 담금질을 한 최고의 성검이니까 조심해서 다뤄주세요."

"그래. 고마워."

엑스칼리버라는 이름의 명검을 허리벨트에 차고서 그것을 점검했다.

칼집은 허리벨트에 맬 수 있도록 끈이 달려 있었고, 덕분에 백은색의 검을 휴대하기에 편리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끈이었는데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소나 말의 가죽이 아니다. 어느 짐승의 가죽이긴 한데.

모르간이 내 곁으로 다가와서 엑스칼리버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도 전설의 성검을 직접 육안으로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는 게 귀엽다. 모르간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들어올려 내 손길을 치우려고 했지만, 이내 그 손을 거두었다.

이제는 내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슬슬 그녀와 친해지고 있다는 반증일까. 어느 정도 그녀와의 관계에 진전이 있었다는 거려나.

"엑스칼리버에 비견할 수 있는 성검은 브리튼에 아마 하나 뿐이려나요."

"그게 뭔데? 론디니움에 있다는 그 선정의 검을 이야기하는 건가?"

"맞아요. 아시는군요."

"칼리번이라는 이름으로 들었는데."

"맞아요. 엑스칼리버는 저와 모르간이, 그리고 칼리번은 멀린과 니무에가 관리하고 있었죠."

나는 현재 칼리번의 행방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브리튼의 왕이 되려는 자만이 선정의 검을 뽑을 수 있다는 그 전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브리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내 아버지가 선정의 검에 관련된 전설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귀족에서 평민들에 이르기까지.

그렇기에 브리튼에서 선정의 검은 매우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누가 과연 뽑았을까. 황혼의 마법사 멀린이 관리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변수로 작용할 지가 예상할 수 없다. 그 반인반마 마법사는 종잡을 수 없는 여인이었으니까.

젖은 머리카락을 털기 시작하자, 모르간이 내 뒤로 다가와서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아주었다. 섬세한 손길에 머리를 맡기면서 비비안을 보았다. 비비안은 손수 내 머리를 닦아주는 모르간의 손길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르간이 저 남자에게 저렇게까지 대할 줄이야....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죠? 얼굴은 그렇게 생긴 주제에 여자를 홀리는 재주라도 있는 건가요?"

"어이. 내 얼굴에 대한 험담은 그만 두시지. 이 엑스칼리버의 녹이 되고 싶나."

"저기요. 제가 그 엑스칼리버를 준 요정이거든요?"

"이제는 내 소유야. 이 정도의 성검이면 요정도 원턴킬로 처리가 가능하겠지."

나를 놀리던 비비안이 그제서야 뒤로 물러났다.

모르간은 여전히 내가 최악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는 아녀자에게 칼날을 겨누더라도 조금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았다. 나는 나를 놀리는 녀석이라면 그 녀석이 여자든 남자든, 노인이든 아이든. 그것을 가리지 않고 철저히 응징하는 속 좁은 놈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나는 그렇게 관대한 성격이 아니다.

"그럼 잘 있어. 나중에 또 올게. 이제 곧 아침이 될 것 같아."

"예. 앞으로 엑스칼리버와 모르간을 잘 부탁해요, 비세리온 펜드래건."

"그래."

비비안과 헤어지고나서 모르간이 나를 데려간 곳은 카멜롯이 아니었다.

우선 외딴 숲의 중심에 버려진 오두막으로 나를 이끌었다. 사람의 온정이 미치지 않은 오두막이다. 오두막의 안에는 사람이 대충 쉴 수 있는 가구들이 놓여져 있었지만, 오랫동안 사람이 오지 않은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단 둘 뿐인 오두막에 들어와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는 휴식을 취했다.

젖은 몸에 옷을 걸쳐 입었기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렸다. 따스한 온기가 흘러나오는 벽난로 주변에 앉아서는 몸을 말리고 있었고, 모르간은 오두막 안의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법 시약을 비롯해서 그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많다.

모르간이 말하길, 비비안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면서 머물렀던 안식처라고 한다. 호수의 요정인 비비안이 카멜롯의 외곽 지역에 위치한 숲에 살고 있었기에 그녀로서도 그와 인접한 곳에 안식처를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모르간에게 있어 비비안은 제 2의 스승과 비슷한 존재라고 내게 말했다.

모르간에게 마법을 가르친 스승이 멀린과 비비안, 이 두 명의 여성이다.

뛰어난 스승을 만난 덕분에 그녀 또한 천 개의 마법을 익힌 최고의 마도사가 되었고, 지금은 그 마법 실력으로 나를 골탕 먹이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몸은 어때?"

"나쁘진 않지. 성검도 얻었고, 기분은 좋아."

"후후후. 당신도 그렇게 생긴 주제에 본업은 기사라는 건가. 검 한 자루에 흡족한 미소를 짓네."

"그런가."

아무래도 오랜 세월을 기사로서 본업을 다해왔기에 전설의 명검을 호수의 요정에서 받고서 마음이 한껏 들떠버린 모양이다. 요정에게서 전설의 성검을 받는다라. 마치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겉옷은 푹 젖었기에 벽면에 걸어두었고, 단추가 달린 와이셔츠에 가죽바지를 입은 채로 벼난로의 온기로 몸을 데웠다. 훈훈한 온기가 흘러나오면서 차갑던 피부에 혈색이 돌았다.

벽난로와 마주 보고 있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누워서는 엑스칼리버를 매고 있는 허리벨트를 벗어두었다. 슬슬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아직 새벽이라서 그런 걸까. 바깥은 아직 어둡다. 이제 곧 아침이 올 것 같았지만 지금은 어둡다.

"나참, 옷이 이렇게 다 젖어서는...."

내 겉옷을 매만지던 모르간이 투덜거렸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은 벽난로의 불빛에 반사되어 더욱 요염하게 보였고, 색기까지 흘러나왔다. 그녀의 새하얀 손목을 부여잡고서 내게 당겼고, 곧이어 모르간의 작은 몸이 내 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르간.

그녀의 당혹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놀랐어?"

"응. 당신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야."

"너무하시는구만. 이래봬도 나는 너를 열혈하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내게 그렇게 사랑을 속삭이는 남정네가 당신 뿐이라고 생각했어? 아쉽네. 무드가 느껴지는 말은 아니었어."

이미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는 큰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만. 남자의 품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두 어깨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다. 작은 동물처럼 떠는 모르간을 보며 꼭 안아버리는 손길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와 시선을 직시하면서 얼굴을 가까이 마주했다.

"콘월을 위해서 힘 냈으니까 여신의 키스 정도는 받고 싶은데."

"....으으.. 무, 무슨 헛소리를....!"

"진심이야."

"으윽."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요구했다.

부탁이 아니라 강한 진심이 담긴 요구를 그녀에게 보냈다.

그리고 붉은 머리카락의 마녀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하면서 선홍빛의 입술을 뻐끔거리더니,

곧이어 내 볼에 작게 입술을 맞추었다.

볼키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터질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

귀여워 죽겠네.

====================

마다마다마다 님, 쿠폰 20장 감사합니다.

(드디어 연참 요구가 끝났다)

=============================

원고료 쿠폰10개 = 연재 하나.

설차/아리냥의 작품 하나를 선정하면 1연재 가능.

어느 작품이든 상관 ㄴㄴ

PS. 신개념 자본주의 작가.

자낳작.

유통기한: 2018/01/13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