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29화 (2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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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콘월은 데번 후작령을 점령하고나서부터는 영토 전쟁을 최대한 자제하고 내정 개발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안쓰러운 것은 내정을 다스리기에 적합한 인물이 없었다는 것과 모두 내정에는 잼병이라는 점이 있었다.

"아는 것도 많은데 내정에는 잼병이라니, 특이한 케이스로구만. 아가씨는."

"시끄러워."

가웨인과 가레스에게 내정관을 맡기라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

그렇기에 우리들은 내정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를 필요로 했다. 아니, 무슨 인재라는 녀석들이 이렇게나 편파적으로 능력이 발전한 거냐. 모르간과 니무에는 철저히 공격계 마법 계통의 마법사였고, 가웨인과 가레스는 전투계의 인재였다. 내정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녀석이 이렇게나 없냐.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님."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콘월의 내정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구세주가 되어줄 새로운 인재가 도착했다.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묘령의 미소녀.

그녀의 이름은 아그라베인.

콘월 공작 틴타젤과 물방울의 귀부인 이그레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 엘레인의 딸인 그녀는 이번 지원 요청에 뒤늦게나마 합류하게 되었다. 찰랑거리는 고운 머릿결은 그녀가 본업이라 할 수 있는 기사보다는 사무직에 능한 보좌관 타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드러운 손길도 소드보다는 펜을 더 많이 잡았을 것처럼 보였다.

학자처럼 이지적인 인상과 창백하게 보이는 피부를 가진 소녀.

감정이 풍부한 가웨인과 가레스와는 달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았다. 지금 보이는 무표정만 하더라도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모르간이 물었다.

"그래서.... 그 주인님, 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호칭에 대해서 설명해."

"아, 이모님."

아그라베인이 입에 담은 호칭에 모르간의 이마에 십자마크가 새겨졌다.

가웨인과 가레스에 이어서 이번에는 아그라베인에게까지 이모님이라 불리는 걸까. 호적상으로 보면 이모님이 확실하다. 가웨인, 가레스 자매와 아그라베인의 모친은 모르간의 언니들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들하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건가. 그래도 이모님이라는 호칭 때문에 나이가 많아 보인다.

"주인님께서는 현재 이모님과 함께 콘월 공작의 대리직을 맡고 계십니다. 또한 콘월의 모든 병력을 지휘하시는 총사령관이시며, 데번 후작령까지도 점령하신 전쟁 영웅이시죠. 은혜를 입은 몸으로서, 주인님이라 호칭을 부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

아그라베인의 질서정연한 설명에 모르간은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태클을 걸고 싶은데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독설가로 유명한 모르간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줄이야.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가웨인과 가레스를 서로 쑥덕거리면서 "나도 주인님이라 불러야 해?" "언니의 몸을 보면 밤일 전문이잖아."라는 은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흐음. 금발 미녀인 가웨인이 나를 주인님이라 부른다면 그 날부로 19금 전개로 가버릴 것 같은데. 가슴도 크고 허리도 늘씬한 미녀이니 분명 나는 짐승이 되어버리겠지. 가웨인이 하면 19금 전개로, 그리고 가레스가 하면 나는 로리에게 되도 않는 짓이나 저지르는 놈팽이가 될 것이다.

무엇이든지 아웃이군.

아그라베인이 나를 주인님이라 불러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주인님께서 이 아그라베인을 보좌관으로 임명해주셨으니 성심성의껏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피부가 창백한 푸른 머리카락의 미녀는 서류뭉치를 잔뜩 가져와서는 곧바로 서류 업무를 시작했다. 곧바로 일을 시작해버리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성실한 성격이었고, 콘월 공작령을 비롯한 데번 후작령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토지의 내정을 모두 담당했다.

물론 그 업무에는 나도 끼었다.

내 옆에는 모르간과 니무에게 빤히 바라보는 가운데 일이 진행되었다. 펜을 끄적일 때마다 빤히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부담스럽다.

펜을 문득 멈추고서 모르간에게 물었다.

"뭐지, 모르간 르 페이 양은."

"당신이 아그라베인에게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을지 의심이 되잖아."

"내가 어린애한테 수작이나 부릴 녀석으로 보이냐."

"응."

흠. 아무래도 모르간은 나에 대해서 과다할 정도로 자세하게 알고 있는 듯하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더니. 나를 닮아서 의심이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구만. 이미 모르간과 부부와 비슷한 관계였고, 콘월 공작의 대리직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입장이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업무도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가웨인도 자주 나를 '이모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정작 모르간은 질색을 했지만 말이다.

"주인님, 빠른 결재를 부탁 드립니다. 업무시간 외에는 이모님과의 연애를 허용할 테니까요."

"누가 연애야! 나는 이 녀석하고 사귀는 사이도 아냐!"

모르간의 말에 아그라베인이 눈빛을 번뜩이며 물었다.

"이미 두 분끼리 약혼 이야기가 오고 갈 정도로 깊은 관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제가 늦었다고는 해도, 있는 사실을 숨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짜라니까!"

모르간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릴 줄이야.

아그라베인의 요청대로 쉴 세 없이 펜을 움직이면서도 그 둘의 관계를 바라보았다.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아그라베인의 말에 모르간이 시선을 회피했다. 결국 져버렸구만. 콘월 강의 치수 관리의 문제에 대해서 그를 결재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농삿일을 생업으로 하는 브리튼 왕국의 입장에서 볼 때, 농수를 관리하는 치수 문제는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저수지를 파서 가뭄에 대비하거나 여름 때마다 강물이 범람해서 수해를 입는 지역 같은 경우에는 그 물에 제방을 쌓아서 그를 관리해야 했다. 그래서 아그라베인인 내게 콘월의 치수 문제에 대해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추천을 해주었다.

"주인님께서 귀족들에게 뜯어낸 자금 덕분에 내정으로 투자할 수 있는 범위가 늘었습니다. 그 동안에는 거대 상단들에 의해서 관리되던 시장 경제를 일반 시민들에게도 실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거대 상단들의 횡포 때문에 지금까지는 백성들은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것조차도 금지되었으니까요."

"좋아. 마음대로 해. 귀족들의 반발이 예상되면 내게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대체로 거대 상단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이 귀족들이다.

그 귀족들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지금까지 브리튼의 시장 경제가 운영되고 있었고, 당연히 물건의 유통이 제한적이었으니 시장이 확장되는 것에도 한계가 발생했다. 아그라베인은 그 폐단을 꼬집으면서 그를 개선해야만 경제가 확장되고 재정적으로 풍족해질 거라고 확신했다.

일반 귀족이 그러한 의견을 들었다면 귀족들의 반발 때문에라도 무시를 해버렸겠지만 나는 다르다. 아그라베인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고, 그녀의 말대로 집중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문제였다.

내가 시원스럽게 그를 수락하자 도리어 놀란 사람은 내게 제안한 아그라베인이다.

"쉽게... 윤허를 해주시는군요."

"틀린 점이 없었으니까. 콘월을 위해서라도 했으니 그 말이 맞겠지. 나는 내정에 잼병이라서 잘 모르지만 네 말이 맞다는 건 알고 있어."

"예."

그렇게 말하며 무표정을 고수하던 아그라베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딱딱한 인상을 유지하던 그녀가 살포시 웃음을 지으니 화사한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이렇게 예쁜 미인이었던가. 앞으로는 자주 웃어줬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움직이는 펜은 멈추지 않았다. 서류 업무를 중단할 때마다 아그라베인에게서 서슬퍼런 눈초리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눈이 침침한데."

"괜찮습니다. 쓰러지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게다가 전시가 아니라면 딱히 할 일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너무 맞는 말이라서 반박을 못 하겠다.

옆에서 그를 듣고 있던 모르간이 키득거리며 웃었고, 니무에는 한 손으로 내 옷깃을 잡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끊임없이 모르간이 주는 과자를 우물우물 먹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인공 정령이 먹어치우는 하루 식대가 장난이 아니다. 콘월을 식량부족 사태로 만들 요량인가.

당연히 영지의 살림살이를 떠맡고 있는 아그라베인이 그녀의 식성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간식값에 놀란 아그라베인은 니무에의 식사량을 대폭 줄여버리면서 가차없이 인공 정령을 탄압했다. 귀여운 로리까지 건들 줄이야, 대단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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