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28화 (28/195)

<-- 남부의 왕 -->

004

사방에 금화더미를 가득 쌓아두고서 그것을 계산했다.

로마 제국의 공식 화폐인 달란트였다. 브리튼 왕국은 과거 로마 제국의 속국이었기에 통용적으로 달란트를 사용했다.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금화를 계산하면서 귀족들이 몸값으로 바친 그것을 계산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전쟁 포로는 이래서 도움이 된다.

사로잡은 포로의 신분에 따라서 그 몸값이 천차만별이다.

지휘관으로 참전한 귀족이나 그 자제들이 가장 비싼 가격어 거래되고, 그 다음에는 기사, 마지막으로 병사와 노역꾼들이 그에 해당된다. 기사들은 수 년에 걸쳐서 훈련을 받은 고급 인력이고, 병사들 같은 경우에는 영지에서 농삿일을 지어야 하는 노역꾼들이다.

귀족과 그 자제가 모두 콘월에 억류된 경우에는 영지에 있는 아내가 세금을 때려박아서 모은 돈으로 몸값을 지불해야 했다. 어찌되었든 콘월은 승전국으로서 수많은 자금을 쌓고 있었고, 패전국인 브리튼 왕국의 입장에는 보두앵을 따라서 우리에게 칼날을 들이댄 죗값으로 전쟁 배상금까지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이번 몸값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승자가 패자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내는 것.

패자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것을 약탈한다. 그게 바로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국의 권리이며, 특권이다. 전쟁은 이겨야 한다. 지면 모든 것을 빼앗길 테니까.

"자. 우리 절반으로 나누자. 어때? 괜찮은 제안이지?"

"우리 콘월 병사들로 번 돈이잖아. 적어도 1할 정도는 줄게."

"깐깐하기는. 내 마누라가 될 거라고 벌써부터 돈관리를 하는 거냐."

"이익!"

모르간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비명을 질렀다.

지금으로부터 사흘 전.

콘월 공작령이 데번 후작령까지 흡수하면서 이에 부담을 느낀 틴타젤은 자신이 하야하고 그 빈자리를 나와 모르간에게 양도했다. 다시 말해서 콘월 공작을 나와 모르간이 이인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상태.

이미 콘월인들은 나와 모르간이 약혼과 비슷한 관계라고 생각했고, 그건 이미 정설로 굳어지고 있었다. 슬슬 달콤한 무드로 흘러가는 전개에 모르간은 크게 반발했지만, 모친인 이그레인이 적극적으로 우리 사이를 지지하면서 모르간은 이렇다고 할 반발도 결국 못하고 흐지부지 흘러가기 시작했다.

모르간도 겉으로는 툴툴거리지만 속으로는 딱히 싫지는 않았는지 이그레인과 대화를 나눈 뒤에는 내게 우리 관계를 부정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는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할까. 지금은 여자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고 할까. 미묘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키스는커녕 손도 못 잡았다.

이게 무슨 연인이냐.

"당신 따위의 마누라는 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내가 마누라를 하면 되겠네."

"그런 말이 아니잖아!"

현재 콘월군은 점령한 데번 후작령에서 주둔하고 있었고, 점령한 영토를 관리하고 있었다.

우선 전쟁터의 양상을 일부러 소강상태로 만들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전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재상 보두앵을 따르던 많은 귀족들이 투항을 할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지방 귀족들이 보두앵에게 가지고 있는 충성도는 현저히 낮다. 노골적으로 이해와 계산에 따라서 이루어진 집단이기에 더욱 그러한 경향이 크다.

점차 콘월인을 향한 공포가 브리튼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건 나로서는 매우 유리한 상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들이 알아서 겁을 먹어준다면야 우리는 쉽게 유리한 고지를 정복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카멜롯으로 쳐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아니지. 우리가 왜 그런 귀찮은 일을 하냐."

"무슨.... 당신이 말했잖아. 카멜롯을 정복하겠다고."

"그렇지. 하지만 그건 추후의 일이야. 지금은 콘월 공작령과 데먼 후작령. 이 영토들의 내정을 관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모르간이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녀는 나를 알아가도 모를 사람, 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금 전쟁을 일으킬 형편이 된다. 콘월 기사단은 한없이 용맹했고, 브리튼의 수도 카멜롯을 정복하자며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카멜롯을 정복하고 브리튼 왕국의 옥좌에 오른다.

모두가 그것을 바라고 있겠지만 지금은 그 타이밍이 아니다.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이지, 결코 나설 때가 아니다. 잠자코 내정에 전념하면서 추후의 시일을 논하는 쪽이 이로울 것이다.

마침 금화를 찬찬히 세고 있던 와중에 가웨인과 가레스 남매도 찾아왔다.

달란트 금화를 100개씩 나누어서 정리하고 있던 나에게 수려한 금발의 미녀가 허리를 숙이며 나에게 물었다. 가웨인은 가벼운 경장을 입고 있었는데 허리를 숙이자 천옷 사이로 꽤나 형태가 좋고 커다란 가슴의 윤곽이 비쳤다.

크흠, 하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성들은 아마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백작님, 이제 카멜롯을 공격하는 게 아니었나요?"

"맞아, 아저씨. 부하들도 모두 기대하고 있는데."

오크니 자매들의 말에 내 생각을 설명했다.

"지금은 기다려.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서 브리튼 왕국의 정권이 우리에게 넘어오지는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르간이 물었다.

"하아.... 우리 생각을 해보자. 지금은 재상 보두앵이 브리튼의 정권을 잡고 있는 쪽이 우리에게는 유리해. 재상의 밑에서 엉덩이를 핥던 귀족들이 모두 카멜롯을 떠나버렸어. 이제 재상은 뭘 할까? 뻔하지, 브리튼 왕국의 내정을 말아먹을 삽질이나 하기 시작할 거야. 자연스레 민심이 떨어지고.... 그 떨어진 민심은 보두앵을 향한 적의로, 그리고 보두앵을 적대시하는 우리 세력을 지지해주기 시작할 거야."

우선 금화 1천 개를 가죽 주머니에 담았다.

꽤나 묵직한 양이다. 지금까지 용맹하게 분투한 콘월 출신의 기사들에게 포상금으로서 충분하겠지. 포상은 중요하다. 이 금화들은 목숨을 걸고서 싸운 기사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였으니까.

눈부신 금화가 아까워서 부하들의 포상을 경시한다면 그 군주는 패망한다.

신상필벌. 그것이야말로 군단을 운용하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어느 인간이던지 돈을 싫어하는 인간은 없다. 돈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본질이라고 할까. 전쟁에서 대의라던지, 정의라던지. 그런 것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진정한 핵심은 이 금화에 있었다.

"가웨인, 가레스. 오크니에 보낼 재물에 대해서라면 만족할 정도로 보내주지."

"감사합니다.... 그, 그런데 방금 전에 하신 말씀은 뭐죠?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래. 보두앵이 더 삽질하도록 우리는 방관하자는 거지. 이건 효율에 따른 선택이야. 이의는 안 받을 거야."

"이의는 없습니다만."

전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이번 전쟁으로 상당히 많은 귀족들이 재정적으로 몰락하거나 쇠퇴하였듯이 우리 콘월 또한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수비나 공격을 따지지 않고 쌍방 세력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지금은 콘월이 패전 세력에게서 몸값을 거하게 받았지만, 그 피해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콘월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전쟁을 좋아하는 군주는 결코 좋은 군주가 될 수 없고, 전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군주는 파멸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전쟁은 해롭다.

때문에 그 전쟁은 최후의 선택지로 활용하는 것이 옳다.

전쟁을 잘하고 군략이 뛰어난 군주라고 해서 전쟁이라는 선택지만 고수한다면 분명 그 결말은 피폐한 황무지 뿐이겠지.

가웨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다음에는 여동생인 가레스가 푸른 벽안을 반짝이면서 나와 모르간을 번갈아 보더니,

"그래서 아저씨와 이모님은 언제 결혼해? 둘이 결혼하는 거 빨리 보고 싶어."

"결혼 뿐이겠냐. 조카도 곧 보여주마."

당연히 모르간이 빽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연애에 관련된 부류에 대해서라면 가장 격렬하게 거부감을 표시하는 그녀였다. 뭐랄까, 연애에 서툴러서 그런가. 가웨인이 말하기로는 모르간은 지금까지 그 어떤 이성도 가까이 한 적이 없는 순박한 성격이라고 한다. 연애에 대해서는 잼병인가.

말을 버벅거리는 모르간의 모습을 보면 아마 내 예상이 정확한 모양이다. 단 한 번도 이성과 연애를 한 적이 없다니, 조혼이 성행하고 있는 브리튼 왕국의 문화권을 보면 꽤나 희소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혼담조차 오간 적이 없다라. 아마도 가족을 제외한 인간들을 모두 경멸하고 기피하는 그녀의 성향이 크지 않았을까.

나라는 존재는 과연 그녀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모르간 르 페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나 어떻게 생각해?"

"으으으....!!"

내 물음에 모르간은 고개를 돌리기만 할 뿐, 이렇다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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