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부의 왕 -->
003
콘월군이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여 옆 영지였던 데번 후작령을 점령하였다는 소식이 브리튼 왕국 전역으로 알려졌다. 그 소식이 확산되자 자신의 영지가 공격받을 것을 우려한 지방 귀족들은 지금까지 카멜롯과 연계하던 관계를 철회하고는 군사를 이끌고 영지로 돌아가버렸다.
자신들은 카멜롯으로부터 명령을 받들었을 뿐이지, 결코 콘월에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다는 내용이 적힌 서한을 콘월로 보냈다. 브리튼 최고의 명장으로 이름이 높은 비세리온 도체스터가 저쪽에 붙어버렸다면 이미 승산은 없다.
아직까지 카멜롯의 중앙군 2만 명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을 믿는 귀족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이미 형세가 기울어졌음을 느끼고는 카멜롯과 콘월을 저울질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고 어느 한쪽이 승리하게 되면 뒤이어 승자의 편에 붙을 요량이다. 그게 바로 정치였고, 귀족들의 융퉁성이다. 설령 원수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가문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쪽을 택하리라.
"이러다가 콘월이 이기는 것 아니오?"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미 수만 명에 달하는 귀족 연합군이 콘월의 강물에 쳐박혔습니다."
"보두앵의 시대도 이제 끝이 나려는가 봅니다."
그 충직하던 기사단장 베디비어가 왕실 기사단과 함께 카멜롯을 이탈하였다는 소식은 들은 귀족들은 군략에 출중한 이가 보두앵의 휘하에는 없다고 판단을 내렸고, 심지어 중앙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콘월에서 수모를 겪다가 포로 신분에서 해방된 알베르에게 주어졌음을 듣고는 패배를 직감해버렸다.
정권의 운명이 걸린 건곤일척의 전투에서 그 군단을 이끌 지휘관이 알베르라니! 고작해야 10대 초중반 밖에 되지 않는 애송이가 백전노장과도 같은 노련함과 교활함을 가진 도체스터 백작을 이길 리가 없지 않은가.
소문에 의하면 알베르는 콘월에서 당한 수모를 갚고자 재상 보두앵에게 애원하여 총지휘관의 자리를 얻어냈다고 한다. 이미 그 어린 꼬맹이에게 지휘관 자리를 주었다는 것부터가 이미 보두앵으로서도 이성이 마비되었다고 밖에 볼 길이 없었다. 머릿속이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혈육이라고는 해도 꼬맹이한테 지휘관을 덥썩 준단 말인가?
그 아이가 군략에 능한 천재라면 또 모른다.
알베르는 보두앵의 가문에서도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저능아였고, 고작해야 부모 잘 만나서 성공한 금수저 케이스였다. 워낙에 우둔하여 소년을 가르친 스승들조차도 포기해버린 그 낙오자를 지휘관으로 삼았다는 것에 대해서 카멜롯 의회는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이는 가볍게 묵살되었다.
"멘체스터 백작님, 이대로는 보두앵에게 승산이 없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이 기회에 갈아타버립시다."
"그 말씀은?"
"보두앵을 버리자는 말이오. 어차피 그와 우리 사이에 우정이라고 할 것이 있었소?"
손바닥 뒤집듯이 자신의 소속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귀족들의 특성이며, 권한이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 할까. 거기다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브리튼 귀족들로 구성된 카멜롯 의회의 뜻까지도 무시하고 그를 탄압하는 보두앵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당연히 다른 마음을 먹을 수밖에.
지금까지는 지방권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했던 보두앵 덕분에 각자 자신의 영지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귀족들이었지만, 이제 보두앵에게서 받아먹을 만큼 모두 받아먹은 데다가 이제 그가 가라앉는 조각배 신세가 되기 시작했으니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는 게 옳았다. 언제까지 망설여서 가라앉는 배에 승선할 생각인가. 마음을 먹었다면 당장 그를 시행하는 게 옳다.
"꾸물거렸다간 콘월이 밉보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보두앵도 그렇게까지 밀린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에 하나라도 그가 이긴다면...."
"이길 거라고 믿나? 그 망할 애송이가 이길 거라고?"
상대는 비세리온 도체스터다.
이민족 중에서도 가장 강성하고 흉폭한 게르만족과의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알려진 불굴의 명장. 그가 브리튼 왕국의 동쪽을 지키지 않았다면 이미 옛적에 론디니움이 함락당하였을 것이고, 브리튼 왕국은 멸망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도체스터 백작이 재상 보두앵의 심복이라고 여겼지만, 콘월에 일방적으로 붙어버리면서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보두앵은 그에게 하사한 도체스터 영지를 몰수한다는 칙서를 공표하면서 그의 배신에 대해서 앙갚음을 했으나, 이미 콘월군을 이끄는 도체스터 백작을 막을 길이 없다.
그의 영토인 도체스터에 군사를 내려보내 몰살시킨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 위험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투에서 연패하고 있었는데, 그의 성질을 돋구어봤자 얻을 건 없다. 보두앵도 그것은 무리가 큰 방법이라고 여겼는지 그를 선택하진 않았다.
"크흠.... 나는 이만 영지로 돌아가 보겠소. 도적들이 창궐하였다고 하니..."
"저도 영지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서."
"병사를 준비하면 카멜롯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마치 썰물이 빠지는 것마냥 귀족들이 부리나케 도망쳤다.
보두앵이 설마 잡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최대한 서둘러서 도망치는 꼴이 우습게 보인다. 그를 보면서 보두앵은 자신이 믿을 것이라고는 카멜롯의 중앙군 2만 명 밖에 없음을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사촌인 알베르는 굳게 믿고 있었고, 콘월에서 자신의 혈육이 붙잡힌 것은 도체스터 백작이 비겁한 수작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우선 귀족의 여론을 깡끄리 말살하기 위해서 카멜롯 의회를 철폐해버리고 카멜롯의 모든 세력을 끌어모았다. 귀족들이 모두 도망가버렸으니 그들이 포기하고 가버린 모든 힘을 흡수하려는 것이다.
백아의 성이라 불리는 카멜롯은 그야말로 텅텅 비어버린 유령도시처럼 느껴졌다.
지방 귀족들은 언제부터 자기 영지를 걱정했다고 먼저 도망쳐버렸고, 그들이 카멜롯으로 데리고 온 식솔들까지 모두 떠나버렸다. 카멜롯의 백성들은 몇 배나 치솟은 세율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고, 지금의 카멜롯은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알베르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보두앵에게 말했다.
"우선 병사를 나누어 도체스터를 공격하겠습니다."
"도체스터를?"
보두앵의 물음에 알베르가 고개를 끄떡였다.
"예! 자기 영지가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버리면 분명 도체스터 백작은 동요할 겁니다. 그 때를 노려서 놈을 죽이고, 콘월도 똑같이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습니다."
조금 거친 방법이지만 들어보니 나쁜 작전도 아닌 것 같았다.
적 지휘관을 일부러 동요시켜서 그 행동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보두앵은 알베르에게서 정확한 세부사항조차 확인하지 않고는 그를 윤허했다.
알베르는 카멜롯에서 싹싹 긁어모은 2만의 중앙군을 이끌고 있다. 총지휘관이 된 소년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스스로를 으스대면서 삐까뻔쩍한 갑옷을 입은 귀족 자제 출신의 기사들을 대동하고서 다녔다.
"도체스터를 약탈하고 남은 전리품에 대해서는 모두 너희들에게 양도하마! 계집이든 재물이든 뭐든지 가져도 좋다!"
"알겠습니다."
알베르의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군 기사들도 생각은 있었다. 이미 자신의 동료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이 콘월에서 떼죽음을 당해버렸으니 살아남은 자신이라도 떡고물 정도는 챙겨야하지 않겠는가. 그들 중에서 진심으로 알베르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선 도체스터를 약탈해서 얻는 막대한 재물을 탐할 생각으로 가득 했다.
재물을 얻은 다음에 기사 작위 따위는 내던지고 어디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보기에도 이미 보두앵과 알베르는 저물어가는 해였다. 겉으로는 알베르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연기를 했지만, 그 속내는 이 망할 꼬맹이를 콘월에 팔아넘길 생각을 했다.
콘월은 부유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니 분명 그 몸값으로 거금을 줄 게 뻔하다. 적 지휘관을 잡아서 팔아버리면 거친 일이나 하는 기사 작위를 벗어던지고 콘월 공작령의 중소 귀족이라도 될 수 있으리라. 기사들은 대부분 준귀족에 해당되는 직급이었고, 매번 정식 귀족이 되고 싶어했다.
"저 망할 애새끼를 팔아버리고 기구한 인생이나 고쳐보자."
"어차피 종친 녀석들인데 팔아넘어서 이윤이나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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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yumoe 님, 쿠폰 10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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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품이든 상관 ㄴㄴ
PS. 신개념 자본주의 작가.
자낳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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