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의 용병군주-21화 (2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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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니무에에게는 조금 심한 짓을 해버렸다.

정신계 마법으로 중앙군 기사들을 조종해서 일부러 그 성질을 흉폭스럽게 만들었고, 그들이 일부러 흉악 범죄를 일으키도록 유도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을 선과 악의 구분조차 판별하지 못하는 인공 정령은 그런 감정조차도 가지지 못했기에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금발 금안의 소녀는 콘월성의 시녀들이 준비한 단것을 쉴 세 없이 입으로 털어넣으며 우물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로 추측되는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연신 인공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가 봐도 엄마처럼 보인다. 자신은 극렬히 거부하고 있었지만.

"귀여워, 니무에는. 어쩌다가 저런 인간을 주인으로 섬기고 된 건지는 몰라도. 멀린이 나쁜 년이지. 그래, 멀린은 나쁜 년이야."

누가 보면 멀린이라는 이름이 이혼한 전 남편으로 알겠네.

모르간 르 페이는 계속해서 멀린을 곱씹고 있었고, 영문도 모르게 황혼의 마법사는 가장 나쁜 년이 되어버렸다. 수상쩍은 웃음과 기묘할 정도로 시커먼 마음을 가진 여성 마법사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간이 저렇게 말할 정도로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멀린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어쩔 거야?"

"흠.... 글쎄. 우선 당분간은 알베르가 나서지 못할 거야. 쓴맛을 제대로 봤을 테니까."

"푸후후후! 그 시건방진 녀석이 질질 울면서 오줌을 지리는 광경은 꽤나 재밌었어. 뭐야, 당신? 의외로 쓸만한 구석이 있구나?"

모르간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웃음소리 한 번 귀엽군.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나 자신을 팔방미인 수준의 다재능한 인간으로 알고 있는데."

"응. 그건 당신만의 착각이야."

다시 말해서 한마디도 질 생각이 없다는 거로군.

기껏 나 자신을 치켜세우면서 거만을 떨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르간의 비웃음 뿐이다. 대체 저 처자를 누가 데려갈까. 적어도 어지간한 멘탈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결코 무리겠군. 같이 사흘을 살아도 정신이 무너질 테니까. 내가 데려가고 싶지만 위장약을 달고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 모든 남성들이 이런 생각을 했겠지.

손으로 따기에는 그 가시가 너무 날카로운 장미.

그게 바로 모르간 르 페이였다.

"듣자하니 네 아버지가 다른 곳에 증원군을 요청했다고 하던데."

"맞아. 스코틀랜드의 오크니 왕국. 이제 곧 오려나.... 서신을 보낸 지 꽤나 오래 지났으니까."

그 동안에 유약한 성정을 가진 틴타젤도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저겅도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나름대로 마련해두고 있었다. 우선은 카멜롯에서 감히 토벌군을 내려보내지 못하도록 '노르만족의 침공을 막는다'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스코틀랜드 오크니에 원군을 요청한 것이다.

이제 곧 오크니에서 기사단이 도착할 것이고, 콘월의 병력은 더욱 강화된다. 지휘관으로 군략에 깊은 내가 있었기에 카멜롯에서도 함부로 덤비지는 못하리라. 그들은 브리튼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란에 대해서도 경계를 해야할 테니까.

내가 앙심을 품고 도체스터 영지의 병사들을 철수시킨다면 게르만족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론디니움을 함락시킬 것이고, 브리튼 왕국은 브리튼 최고의 무역도시를 잃게 되는 격이다. 중앙 귀족들은 무역도시 론디니움에 큰 투자를 해둔 상황이었기에 그러한 경우는 결코 겪고 싶지 않을 것이고, 나름대로 융퉁성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니무에, 지금 알베르는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으으응."

내 말에 니무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보낸 사역마가 보고 있는 시야를 공유하면서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시했다.

니무에가 사역마로 삼은 것은 작은 비둘기였다. 비둘기라, 작은 소녀에게 어울릴 법한 동물이다. 그 비둘기는 난간에 서서 알베르를 관찰했고, 그 정보가 고스란히 내게 흘러 들어왔다.

니무에가 말하기를 알베르는 그저 씩씩거리면서 술을 퍼마시다가 비명과 고함을 동반한 큰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고 한다.

그저 싸움에 진 개처럼 왈왈 짖기나 하고 있다는 건가. 즉시 공세에 나설 거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바보스러워 진다. 아무래도 콘월을 지배하려고 한 야심가는 자신이 꿈꾼 야심에 집어삼켜진 한량이었을 뿐이다.

모르간과 니무에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마치 모녀처럼 보일 정도로 사이좋은 모습을 보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정신적으로 미숙한 니무에를 보살피는 모르간. 모르간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였지만 모성애가 물씬 느껴지는 웃음을 살포시 지으면서 니무에를 보살폈다. 흐음, 저 모녀 사이에 끼어들고 싶다는 마음은 과연 욕심일까.

남편 역할을 하고 싶은데.

음. 아마도 무리일 듯 싶다. 아내가 마녀에, 딸아이가 인공 정령이라는 조합은 너무 파격적이다. 어지간한 남정네는 감당할 수도 없겠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 한 기사가 들어오면서 내게 보고했다.

"백작님, 억류하고 있던 중앙군 병사들 중 일부가 소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입니다. 우선 저희 기사들이 출동하여 소란을 일으킨 주범들을 체포했습니다."

"알았다. 곧 처리하러 가지."

말을 끝내고서 자리에 일어났다.

허리벨트에 매달린 롱소드를 차고서 나설 준비를 했다. 그러자 내 뒤로 자연스럽게 니무에와 모르간이 붙었다. 그녀들을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

"딱히 좋은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닌데."

"내 고향에서 벌어진 일이야. 가만히 있긴 싫어. 그리고 당신은 외부인일 뿐이잖아. 내가 가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돼."

"내가 걱정된다거나 그런 전개인 건가. 하여간 부끄러움이 많은 마녀님이라니까."

"시끄러, 닥쳐."

진심으로 역겹다는 표정을 짓는 마녀를 보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건 과연 츤데레인가. 아니, 진짜로 싫어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콘월성의 외곽으로 향하자 소란의 양상이 들려왔다. 식량을 배급중이던 시간에 중앙군 병사들의 일부가 소란을 일으켰다. 억류 중이었지만 적어도 신체의 자유는 빼앗지 않았다. 아직 이렇다고 할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중앙군 병사를 포박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다툼의 여지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소란을 일으킨 병사는 고작해야 20여 명.

나머지는 방관하거나 이를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었다. 겨우 20여 명 밖에 되지 않는 걸로 보아하니 중앙군 병사들이 알베르를 향한 충성도는 매우 낮은 모양이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콘월 기사들의 경계에 주눅이 들어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중장보병들에게서 중장갑 갑옷과 병장기를 빼앗고나니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딴에는 최정예 병사에, 최고급의 병장기로 무장한 병과였지만 자신들이 위험한 처지에 놓였다는 걸 알게 되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소란을 일으킨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면.

"알베르 님을 만나게 해주시오!"

"우리 상관들을 모두 죽였다는 게 사실이냐!"

"대체 우리들을 어찌할 셈인가! 우리는 중앙군 소속이란 말이다!"

중앙군 병사들도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상관인 중앙군 기사들과의 연락이 끊어졌고, 그들이 콘월 기사에게 체포되어 목숨이 끊어졌다는 소식까지 들어버렸다. 심지어 대장인 알베르까지 만날 수 없게 되자 콘월성에서 억류 상태인 중앙군 병사들은 크게 동요했다. 자신들도 모두 상관처럼 목이 달아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콘월 기사를 보며 눈짓을 보냈다.

"대충 회유해서 달랜 다음에 적당히 박아둬. 8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키면 답도 없어져."

"예? 그걸 왜 저에게...."

"내가 이 짬밥에 저 말단 병사들의 비위나 맞춰주면서 달래줘야 하나?"

"그건 아닙니다만."

이 자리에서 소란을 일으킨 주범자들을 모두 처형시켰다간 대대적인 폭동이 일어날 위험의 소지가 크다.

그렇기에 우선 처벌을 내리진 않았다. 적어도 저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해버릴 경우, 콘월은 카멜롯과의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만다. 적어도 중앙군 기사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해명의 여지가 있었으니 그나마 괜찮았지만, 중앙군 모두를 몰살시키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우선 지금은 중앙군 병사들을 달래고자 콘월 공작과 상주하여 따로 친필 서한을 작성하도록 해야겠다. 콘월은 결코 중앙군 병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는 실질적인 증명서가 필요했다. 적어도 콘월 공작의 직인이 찍힌 조약이 체결된다면 중앙군 병사들을 달랠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이 방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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