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월의 기사 -->
006
지원군이랍시고 중앙군을 이끌고 온 지휘관은 재상 보두앵의 사촌동생이라는 혈통빨을 가진 소년이었다. 일군을 이끄는 지휘관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보인다. 겨우 10대 중반은 되어 보일까. 아직 젖비린내조차 가시지 않은 소년 지휘관을 보면서 콘월 출신의 기사들이 수군거렸다.
"저런 애송이가 지원군 지휘관?"
"중앙 새끼들은 무슨 생각이야...."
"미쳐버리겠네."
콘월 출신의 기사들로서는 갑작스럽게 등장해버린 중앙군과 그를 이끄는 소년 지휘관의 존재에 당혹감을 숨기지 않았다. 서로 모여서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대해서 떠들었고, 그것은 콘월의 가장 큰 이슈로 발전하게 되었다.
자그마치 보두앵의 사촌동생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보두앵의 가문에서 선출된 인재라는 뜻이다. 브리튼 왕국의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1인자는 재상 보두앵이었고, 그의 심기는 건드리는 자는 브리튼 왕국에서 살 수 없다는 말까지 떠돌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다.
기사들 중에는 "이번 기회에 중앙과 관계를 맺어 볼까."라는 생각으로 중앙군에게 다리를 놓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년 지휘관은 매우 거만한 성격으로 시골 촌구석이라 할 수 있는 콘월의 기사가 만남을 요청한 것을 거절해버렸다. 심지어 바다 냄새가 진동을 한다면서 공적인 자리에서까지 무례한 발언을 일삼았다.
수려하게 생긴 귀여운 소공자는 8백 명에 달하는 중장보병을 대동하고 콘월에 입성해서는 곧바로 연회에 참석했다. 콘월 공작이 애써 환영하는 연회를 연 것이었는데, 어려보이는 소년이라 술을 못할 거라고 여겼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어린 놈의 자식이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벌써부터 술을 즐겨 마셨다.
알베르라는 이름의 소년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틴타젤에게 말했다.
"이런 싸구려 술은 취향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군. 이런 구정물이라도 마시는 수밖에."
나는 가까운 자리에서 그를 보면서 혀를 쯧쯧 찼다.
어떻게 되먹은 꼬맹이인 거냐.
내가 오래 산 축에는 속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렇게 예의가 없는 애새끼는 처음 본다. 그게 내 감상이다. 자신의 마음조차 숨기지 못하고 거만한 성격을 드러내서 주변인들을 모두 적으로 돌린다. 언젠가 아군이 될 지도 모르건만 우선은 모두를 적으로 돌려버린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이 소년은 결코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간신배의 우두머리라고 불리지만 적어도 정치 실력만큼은 출중한 제 숙부보다도 못한 녀석이군.
알베르가 친히 '구정물'이라고 표현한 술은 콘월 지방의 사람들이 가장 즐겨마시는 술이었고, 심지어 콘월 공작도 즐기는 술이었다. 당연히 그 구정물을 퍼마신 거나 마찬가지인 콘월 기사는 인상을 왈칵 찌푸렸고, 심지어 사람 좋기로 유명한 틴타젤까지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쳤군.'
구정물이라 표현한 술을 입에 털어넣으면서 생각했다.
어째서 증원군이라는 구실로 병사를 콘월까지 파견한 걸까. 그 점이 의심스럽다. 이미 노르만족은 모두 콘월에서 무너졌고, 그들이 다시 재침공을 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카멜롯에서 콘월까지 온 8백 명의 증원군은 그 쓸모조차 알 길이 없는 것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일까.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 먼 촌구석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것도 고귀하신 귀족 나리께서 몸을 움직이며 군사를 이끌고 오지도 않았을 테고.
"어이구, 여기 미인이 계셨군."
알베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장난끼가 가득한 어린아이라면 결코 짓지 않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소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물방울의 귀부인이라 불리는 이그레인이다. 딸을 셋이나 낳았음에도 결코 그 미모가 흐트러지지 않은 귀부인은 알베르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물론 콘월 기사들의 눈에서 살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연회의 흥을 돋구던 연주는 멈추고, 술잔을 부딪치며 수다를 떨던 기사들의 입이 멈췄다. 연회에 적막이 흐른다. 만약 알베르라는 소년이 적어도 눈치라도 있었다면 이변을 깨달았겠지만, 그는 너무 어리고 무능하다.
"술 좀 따라주겠나?"
"미친 놈."
너무도 뻔뻔하고 무례한 언변에 나는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작게 말한 것이었기에 알베르 쪽으로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쾌감은 숨기지 않았다. 대체 어느 정신머리를 가진 놈이기에 공작부인에게 감히 술이나 따르라고 명령하는 걸까.
그 말에 틴타젤은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설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고, 이그레인 또한 당혹스러운 모습이 역력했다. 밑자리에 앉은 기사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분노를 터트렸다. 비록 현 공작에 대해서는 그 유약함을 원망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공작의 선정과 아리따운 귀부인을 경외하는 자들 또한 많았다.
귀부인 이그레인은 모든 기사들이 주군과 서임식을 나누면서 충성과 보호를 맹세한 대상이다. 지금 재상 보두앵의 사촌동생이라는 혈통을 이용해서 안하무인처럼 구는 알베르라는 이름의 소년은 콘월 기사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콘월에 입성한 지 불과 3시간도 되지 않았건만 알베르는 제대로 벌집을 건드렸다.
하아, 한숨을 토해내면서 자리에 일어섰다.
그리고 알베르의 앞으로 다가서면서,
"제가 술을 따라도 되겠습니까?"
나를 보며 알베르가 얼굴을 찌푸린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누구냐, 네놈은."
"도체스터 백작입니다."
"도체스터? 아, 숙부께서 말씀하신 그 촌구석 귀족이로군. 용병술이 썩 괜찮다고 들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알베르의 흥미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빈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그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알베르는 한 걸음 물러서더니 이를 악 다물었다. 그저 시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걸음을 물러서버린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는 듯이.
애초에 알베르라는 소년 따위와 나는 그 격이 다르다.
나는 지금의 이 소년과 비슷한 나이였을 때부터 용병으로 활동했다. 어릴 적에 가문에 멸망하고 혼자가 되면서 그나마 남은 재산으로 용병단을 결성. 거친 성격으로 유명한 용병들을 맨주먹으로 때려눕히면서 복종시켰고, 내게 굴복한 용병들은 모두 내 부하가 되었다.
그렇게 처음을 시작했다.
소년이었을 때부터 사투를 벌였고, 언제나 목숨이 위험했다. 일거리를 두고서 다투던 상대 용병단이 보낸 암살자에게 잠자리에서 암살당할 뻔도 하였고, 전장에서 적 궁수가 쏜 화살에 맞아서 죽을 뻔한 적도 많았다.
그런 나에게 고작 중앙의 애새끼가 시선을 마주하려는 건가.
기가 막힐 지경이다. 과연 혈통빨이라는 게 그렇게나 좋은 거로군. 혈통이라도 좋지 않았다면 자신의 분수조차 모르는 애새끼는 결코 나와 마주할 수 없었을 테니까. 가장 먼저 저 건방진 무릎부터 메이스로 부숴버렸을 것이다.
"네놈이 내 일거리를 뺏었군. 내가 노르만 그 무식한 이민족을 죽이려고 했다!"
이제서야 등장한 주제에 잘도 지껄인다.
만약 지금 증원군에 도착했다면 이미 콘월의 거성까지 노르만 군세에 의해 뚫렸을 것이다. 중앙군의 대처는 너무도 늦장을 부린 선택이었고, 도체스터에서 내가 참전하지 않았다면 콘월은 잿더미가 되었을 텐데. 그걸 모르는 사람은 이 연회장에 없었다. 콘월 기사들은 알베르라는 소년과 연줄을 붙이려고 한 자신을 저주하면서도, 강한 적의를 알베르에게 보냈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은 내게 있어서 매우 유리한 상황이다.
내가 그것조차 계산하지 못하고 일어섰다고 생각하는 건가.
감히 공작부인에게 술이나 따를 것을 권유한 알베르와, 물방울의 귀부인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나 알베르의 앞을 가로막은 나. 지금의 상황만 하더라도 콘월의 인물들이 나와 알베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쉽게 파악이 가능했다. 이것으로 콘월의 영향력은 내게 향해진다. 적어도 콘월 공작령의 지배권을 빼앗으려고 등장한 알베르 따위보다는 훨씬 이로운 상황이다.
내가 계산하건데 알베르라는 소년은 콘월 공작령을 빼앗으려고 병력을 이끌고서 온 것이리라. 재상 보두앵의 혈육이라고는 하나, 무턱대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영지를 하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증원군을 구실로 내세우면서 콘월 공작령으로 병력을 이끌고 무단으로 침입. 공작령을 집어삼킬 생각으로 가득 했다.
콘월 공작령을 집어심키겠다라.
그건 안 될 말이다.
나는 모르간 르 페이의 앞에서 콘월 공작령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강탈자가 없을 경우에 한해서다. 더러운 하이에나가 나타나버렸으니 나도 오기가 생겼다.
그녀와의 약속은 잠시 접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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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비세리온 도체스터Viseryun Dorchester
소속: 브리튼 도체스터
직위: 백작
종족: 인간
무력: B+ 통솔: A 지력: B 정치: B
본연 스킬: [용병 군주]
신분이 낮은 자일수록 그 충성도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함께 싸운 전우에 대해서 충성 서약을 받아낼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하며, 등용한 무장에 대해서도 신뢰가 크게 증가한다. 아군 병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왕 살해자- 킹 슬레이어]
한 명의 주군을 섬기지 못한다.
반란이 성공할 확률이 대폭 증가한다. 반란을 실행할 경우, 무조건적으로 선제 공격권을 얻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