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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7화 (7/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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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황혼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반인반마의 마법사가 내게 고한 '새로운 왕'에 대한 요소는 크게 나를 자극시키지 못했다.

풍만한 가슴에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에로한 몸매는 다른 방향으로 나를 자극시켰지만 말이다. 스스로가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서는 노골적으로 유혹을 걸어왔고, 그것이 나를 놀리는 듯한 태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엇에 응해주진 않았다.

누구를 꼬시려는 거냐.

아마도 나를 유혹해서 적당히 구슬리기 좋은 녀석으로 만들 셈이겠지. 인큐버스의 피를 이은 몽마 마법사는 응큼한 매력을 가진 여인이었다. 주황색 눈동자를 빛내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현재 재상 보두앵을 제외하고서 가장 강성한 병력을 가진 영주들 중에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비세리온 군 밖에 없단 말이지."

"다시 말해서 브리튼이 망할 조짐이 보인다는 거로군."

"그럴지도~?"

게르만족과의 전쟁을 구실로 삼아서 주변 군벌들을 토벌해버리고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었기에 그만큼 병력은 강성했다. 특히 제 2의 수도인 론디니움의 방위를 위해서라도 중앙 정부에서는 나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고, 지방 영주들 중에서는 특이 케이스로 병력의 제한을 풀어줌으로서 사실상 고삐를 풀어주게 된 셈이다.

내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브리튼 왕국의 동쪽 지방은 이민족들에게 먹히고 만다.

특히 제 2의 수도인 론디니움은 브리튼 왕국에서도 대륙 간의 무역으로 유명한 상업적 도시였기에, 그 론디니움에서 막대한 재산을 부풀리고 있는 재상 보두앵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토였다. 그렇기에 그 영토의 방위에 나를 책임자로 임명함과 동시에 군사적인 지원은 하지 않더라도 병력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허가를 내렸다.

"하지만 내가 병력을 빼버린다면 론디니움은 사실상 함락당할 수밖에 없어."

"알아. 새로운 왕이 성장할 때까지만이라도 힘이 되어줘. 그 다음에는 왕이 알아서 할 테니까."

"아니. 나는 애초에 댁이 말하는 그 '새로운 왕'인지 뭔지를 믿을 수도, 신빙성이 가는 구석도 없어.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브리튼 왕국에서 가장 신용할 수 없는 상대를 리스트로 뽑는다면 1위가 간신 보두앵일 것이고, 2위가 바로 멀린일 것이다.

악마 인큐버스의 피를 이은 몽마 마법사는 왕국에서 매우 유명하다. 언제나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트러블 메이커라고 할까. 폭군 보티건 시절부터 마법사로 활동한 그녀는 빼어난 용모만큼이나 가시가 돋아난 성격이었고, 그 때문에 여러 남정네들이 그녀의 미모에 홀려서 인생을 탕진한 적이 있다.

그런 녀석을 과연 신용할 수 있을까?

그것도 수천 명에 달하는 백성들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영주로서.

지금이라도 당장 이 몽마를 쫓아내버린 다음에 소금이라도 뿌려버리고 싶었지만, 적어도 브리튼 왕실의 궁정 마법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니 거친 수단은 동원하고 싶지 않았다.

"흠. 새로운 왕이 성장해서 제대로 된 구실을 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데...."

도톰한 입술을 툭툭 매만지며 멀린이 말했다.

"아직 어린가. 그 새로운 왕이라는 녀석은."

"응. 내가 키우고 있어. 올해로 열두 살."

"미쳤군."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짓눌렀다.

이 망할 마법사와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머리가 자꾸 멍하게 굳어버린다. 몽마의 타고난 색기 때문에 이성이 둔해지고, 그녀가 흘리는 달콤한 체취는 코를 자극시킨다. 일부러 나를 유혹하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몽마의 핏줄을 이었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성을 유혹하는 걸 수도 있다.

열두 살에게 막연한 기대를 거는 멀린.

얼마나 천재이기에 궁정마법사가 기대를 거는 걸까. 폭군 보티건 시절부터 멀린의 재능은 익히 소문으로 들었고, 과거 나의 부친 또한 멀린이 대단한 마법사라면서 어린 나에게 말해준 기억이 난다. 그런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서는 지원을 요청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고.

그 정도로 내 세력이 넓어진 건가.

론디니움 주변에 위치한 도시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지방 군벌. 갖은 세력들을 제패하면서 육성한 병력이 1천 여명. 그들 대부분이 이민족과의 전선에 투입된 상태였기에 나로서는 따로 뺄 수 있는 병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민족과의 전선에서 병력을 일부 제외시킨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론디니움의 방위에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지방의 영주들은 자기들 영지에서 몸보신만 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지원은 기대하기도 어렵다. 흠, 망했군.

"비세리온 군에게 있어 지금이 힘든 상태라는 건 잘 알아. 주변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귀족도 없고, 오히려 게르만족을 포함한 여러 이민족들에게 벌벌 떨고만 있을 뿐이야."

"잘 아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거야. 내가 『기사들의 시대』를 열 테니까."

"기사들의 시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라고 따지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민족들의 기병대에 의해 브리튼 왕국이 육성한 기사단이 쇠퇴하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건만, 이러한 상황에서 기사들의 시대를 열겠다라. 도무지 이길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야전에서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믿기 어렵다.

오크니(가웨인)와 브르타뉴(란슬롯) 지역에서 그나마 쓸만한 녀석들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들의 영지는 너무 먼 변방이었기에 론디니움까지 병력을 지원할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한다.

"비세리온 군도 기사단을 육성하고 있잖아? 주군을 잃은 자유 기사들로 이루어진 괴짜 기사단. 꽤나 흥미로웠어."

"이민족 기병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기동력이 필요하니까. 기사단은 무거운 중장갑 때문에 속도를 안 나오지만 단거리에서는 그나마 대적할 만은 해. 게다가 이민족 궁병대의 화살 공격도 막아낼 수 있으니까."

"그거야!"

멀린이 크게 몸을 일으키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녀가 큰 움직임을 보이자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리며 흔들렸다. 엄청난 거유의 여성이니 가슴도 크게 출렁이는 모양이군. 로리 체형인 기네비어로서는 어림도 없는 현상이다. 나는 이 광경을 뇌내 속에 저장하기로 마음 먹었다.

"게르만족에게 위협적인 것은 궁병대와 기병대. 이 두 가지의 요소야. 그렇기에 브리튼은 하루라도 빨리 몰락해버린 기사단을 재건해야만 해!"

"뭘 그렇게 열불을 내고 그러시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카멜롯에서 주지육림을 즐기는 멍청이들 때문이려나."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멀린이 잔뜩 독기가 달아오른 어조로 말했다.

아마도 황혼의 마법사께서는 재상 보두앵과 그들 일파에 대해서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브리튼인들 중에서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국왕 우서 펜드래건이 병석에 누워버리면서 찾아온 정권의 공백기에 끼어들어서는 지금까지 브리튼 왕국을 망쳐버린 인간인데.

보두앵을 죽이는 것은 아마도 훗날이 되겠지.

지금은 이민족의 공세를 막는 것만으로도 벅찬 지경이며, 나를 제외한 다른 세력들은 보두앵 타도를 일으킬 배짱이 없다.

나 혼자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터이니 다른 이의 조력이 있기 전까지는 병력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나마 걸어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멀린이 입이 닳도록 칭찬을 마지 않는 '새로운 왕' 뿐인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가능성에 걸어야 하는 건가.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멀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낡은 선술집에는 적어도 술은 있었다.

낡아빠지긴 했어도 선술집은 선술집이라는 건가. 대륙에서 공수한 와인도 있었다. 딱 한 병 뿐이었는데, 황혼의 마법사가 호쾌하게도 와인의 코르크를 따서는 그대로 입안으로 넣기 시작했다.

병나발을 불기 시작한 궁정 마법사를 보며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녀석들이라 술과 담배, 이성과의 사랑을 기피하는 존재라고 들었는데, 멀린은 그 상식에 포함되지 않는 인물인 것 같았다. 술을 마셔본 솜씨를 보아하니 한두 번이 아니다. 전형적인 술꾼이다.

새하얀 로브 안에 입고 있던 옷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와인에 젖으면서 색정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옷이 젖으면서 커다란 젖가슴의 윤곽이 드러났다.

"흐응. 내 몸에 관심이 있는 거려나, 우리 비세리온 군은."

"별로, 그리고 친한 척 굴지 마라."

멀린을 강하게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베시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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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멀린Merlin.

소속: 브리튼 왕실

직위: 궁정 마법사

종족: 반인반마

무력: A  통솔: B  지력: A  정치: B+

본연 스킬: [황혼의 마법사]

아발론 연대기에 등장하는 전설의 마법사이자 현자.

아서에게 아발론에서 만든 갑옷과 방패, 창 등을 바쳐 승리에 공헌하면서, 그의 조력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아서왕의 궁정인 카멜롯을 재건축하고 원탁을 만드는 등, 아발론 연대기에 그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마법 병단의 징집 속도 40% 증가.

마도학의 발전 40% 증가.

영웅 출현.

브리튼 전역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멀린은 특출한 능력을 가진 영웅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재 등용의 성공 확률이 대폭 증가한다.

패널티: 치안 10% 하락.

종교 세력과의 관계도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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