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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용병군주-2화 (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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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은 전쟁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그 존재가 탄생된 '심부름꾼'이다.

용병들은 인적인 이득을 위해 자국 혹은 타국의 및 무장 세력간의 전쟁에 참여하는 일을 도맡아서 수행했다. 고귀하신 위정자들은 전쟁을 가장 비천한 행위로 여겼고, 전쟁에 대해서는 지방을 떠도는 용병들을 고용하여 대리전을 맡기기도 하였다. 그게 바로 용병의 시작이다.

흔히 병력은 모병제 혹은 징병제를 통해서 증강시키지만, 용병은 다르다.

통상적인 보수보다도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서 전쟁을 그 업으로 삼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전장터에서 타인을 죽이는 것 쯤은 당연하게, 그리고 그것을 허용할 수 있는 이기주의자 집단이었다.

"백작님, 아무래도 백색 장미가 물러나는 것 같은데?"

전장터에서 눈 먼 화살에 맞아 애꾸눈이 되어버린 대머리 사내가 말했다.

그의 이름은 알제스터.

단원들 사이에서도 애꾸눈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전장터에서는 나름대로 부하 단원들을 이끌고서 활약을 해주고 있었을 뿐더러, 활을 쏘는 궁술 실력도 괜찮았으므로 용병업계에서도 명사수로 그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애꾸눈이 궁병이라. 참 세상 일이라는 게 놀랍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평선 너머로 부리나케 도망치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모두 '요크 백작'의 병사들이다.

그리고 우리 용병단이 소속되어 있는 곳은 요크 공작을 적대시하는 귀족 연합이다.

귀족 연합은 수십 개에 달하는 귀족 가문들이 모여서 결성된 집단이다. 국왕은 자신의 정적인 요크 백작의 내전을 진압하고자 지방 영주들에게 병력을 이끌고 수도로 상경할 것을 명령하였고, 그 소집령에 따라서 귀족들이 참전하면서 일이 시작되었다.

물론 결과는 승리.

양 세력들이 모두 피폐한 상태에 놓였으므로 곧바로 전쟁이 다시금 벌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소강 상태로 접어들겠지. 요크 백작의 공격은 제법 완강했고, 그를 예상하지 못한 귀족 연합은 크게 고전했다.

피로 얼룩진 전장터에는 한시라도 있는 것을 꺼려하는 귀족들은 병력을 이끌고 퇴각, 결국 피투성이 전장터에 남은 것은 시체를 파먹는 까마귀만큼이나 전쟁에 그 욕심을 가지고 있는 용병들이다.

"알제스터, 죽은 병사들의 병장기와 쓸 수 있는 물건은 죄다 챙기라고 지시해."

"좋았어!"

알제스터는 내 명령에 신이 난 어조로 말하면서 부하들에게 달려갔다.

전장터에 남은 용병 세력들 중에서 우리 용병단의 규모가 가장 컸으므로, 전장터의 청소를 맡는 것은 우리들이다. 한심하게 죽어버린 놈들의 병장기는 대부분 우리들이 차지하고, 남아버린 썩은 고기는 나머지 용병들에게 던져줄 요량이다.

"오늘도 이 전쟁에서 죽지 않은 것은 신에게 기도하자고."

첫 전투였는지 구역질을 토해내면서 뱃속을 게워내고 있는 소년 병사를 보며 킬킬 웃었다.

나도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는 저렇게 비참한 모습이었으려나. 아니, 저것보다 더 처참한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의 일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때로는 마약에 취해 그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소년은 입가에 묻은 토사물의 찌꺼기를 닦아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신이 이 세상이 있나요?"

"없을 리가 있나."

그렇게 말하며 목에 매달고 있던 십자가를 꺼냈다.

나는 때로는 십자가를 보면서 그 신의 존재에 대해서 번번하게 떠올렸다.

신은 존재한다.

살점과 피로 얼룩진 이 전장터에 희망을 가져다 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연 인류는 어떻게 될까. 비참하겠지. 전쟁과 전투를 그 업으로 삼고 있는 용병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천한 용병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저 소모품으로 쓰다가 버릴 뿐이다. 용병에게 정 따위를 가져다 줄 사람은 없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기도한다.

----언젠가는 신이 우리들을 구원해주기를.

뭐, 있으면 좋겠다. 굳게 믿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해버렸다.

"전쟁 따위...."

"어이, 이 세상에 전쟁이 없으면 우리들 같은 용병 나부랭이는 죽어버린다고?"

"당신은 귀족이잖아요!"

소년 병사의 말에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이미 용병 업계에서는 자자한 소문이다. 과거에는 유서깊은 백작 가문의 자제였는데, 가문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서 몰락. 몰락한 귀족 자제는 자신이 익힌 검술에 의존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의 몸을 팔아 용병이 되었다. 이미 귀족 작위를 팔아버렸고, 브리튼 왕국의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민을 자칭했다.

작위를 판 대금으로 용병단을 조직.

지금도 아직 그 대금의 일부가 남아있었다.

그 돈으로 용병단들을 조직하였고, 그 세력을 점점 확장시키고 있었다. 우리 용병대는 어느 마을을 점거하고 있었으며, 인근 귀족에게 허락을 받아서 그 마을의 자치권까지 얻어냈다. 다시 말해서 자치권을 얻은 마을에서는 우리 용병단이 왕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귀족이고 나발이고, 권력과 영토를 잃어버린 귀족은 병신일 뿐이야. 나 귀족이야, 라고 소리를 쳐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어. 계집애처럼 우는 소리나 내면 어쩔 건데? 아무런 도리도 없는 세상이야. 할 줄 아는 게 검을 휘두르는 것 밖에 없으면 그거라도 해야지."

"과연 용병 귀족, 이라 불리는 사람답네요."

"칭찬 고마워."

그렇게 답을 내리면서 소년 병사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전쟁에 대해서 비관적인 해답을 내리고 있는 저 병사는 언젠가 다음 전쟁에 나서게 될 것이다. 요크 공작이 이대로 물러날 리가 없었으니 분명 재공세를 펼칠 것이고, 또다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과연 저 소년은 그 전쟁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으려나.

나는 저 소년이 계집애처럼 비명을 지르다가 죽어버린다에 금화 1닢을 걸었다.

전장터의 참상이 지나간 자리에는 용병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알제스터가 이끄는 용병단원들은 모두 검은색의 뱁새가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었고, 그 용병단의 마크를 본 다른 세력의 용병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우리 용병단과 조금이라도 엮였다간 사방에 쓰러진 시체와 똑같은 꼴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용병들은 시체에서 벗겨낸 갑옷과 병장기, 투구, 가죽옷과 양말에 이르기까지.

피범벅이 되어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금속과 옷들을 모두 삐걱거리는 수레에 싣고 있었다. 알제스터가 콧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아주 횡재를 했는데? 귀족 나리들이 주는 돈에 짭짤한 전리품까지! 이게 왠 떡이래?"

"그러게. 그만큼 치열했기 때문이겠지."

"고상하신 귀족 나리들의 생각이 다 그렇지. 모든 귀족들이 우리 백작님만큼만 교활했으면좋았겠는데."

"어이, 나같은 녀석이 우두머리가 되어버리면 전쟁이 그치질 않을 텐데."

내 말에 용병들은 '그러면 오히려 우리 용병들에게는 감사한 일이지!'라고 외치면서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이끄는 용병단은 모두 8백 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이었고, 이번 전투에서는 병력의 소모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장에서 몇 년 동안이나 굴러먹던 베테랑들은 모두 무사했고, 죽어버린 녀석들은 초짜 용병이었다. 그 정도는 곧바로 메울 수 있는 인원이다. 큰 돈을 벌기 위해서 용병업계에 투신하는 젊은이들은 널리고도 널렸다. 용병은 소모품이다. 그에 동의한다.

"저기 귀족들이 버리고 간 보급품도 있는 것 같은데."

"보급품까지 건드리자고?"

"누가 버리고 가랬나."

내 말에 용병들이 모두 옳다구나, 라고 외쳤다.

보급품으로 남긴 것은 건조된 빵과 감자 부류의 식재료들이다.

언제나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는 우리 용병들에게는 매우 감사한 일이다. 고상한 귀족들은 피비린내와 피에 얼룩진 참상에 기겁을 해서는 부하를 이끌고 달아나버렸고, 그들이 남긴 재산은 막대한 수준이었다.

알제스터가 말했다.

"다음에는 웨일즈 백작이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왔는데."

"아, 꽤나 대단한 양의 금화였지. 그런데 무슨 일이었지?"

"웨일즈에서 일어난 민란 진압이래."

애꾸눈 용병의 말을 들으며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나는 전쟁을 좋아한다. 그 존재의 유무조차 파악할 길이 없는 신부터 시작해서 토악질을 하는 소년 병사, 그리고 피로 얼룩진 전장의 참상까지. 모든 것들이 하나의 지옥도처럼 그려지면서 우리들 용병을 지옥의 파수꾼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세상이 만약 지옥이라면 우리 용병들은 기꺼이 이 지옥의 파수꾼이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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