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동거를 하기 전에 고작 청소나 빨래 따위를 걱정했던 건 정말 쓸데없는 기우였다. 요리 레시피를 펴놓고 주방을 뒤적거린다거나, 과자 부스러기에 신경 써야 한다거나, 그런 집안일은 시도해 볼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철과의 동거는 차고 넘치도록 완벽했으니까.
“아, 아아, 아…!”
지나치게.
“아흐으, 으응…! 자, 잠깐…!”
“하아…윽….”
매일매일 밥 먹고 섹스하고 또 섹스하고의 반복이었으니. 어제도 밤새도록 관계를 가지다가 까무룩 잠이 든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건 대낮인데도 짐승처럼 뒤로 남자를 받고 있었다.
“아, 아, 아흐윽…!!”
철은 온종일 박혀 벌름거리는 구멍에 성기를 맞춘 채 서진이 옴짝달싹 못 하도록 허리로 묵직하게 내리눌렀다. 밤새 정액을 쏟아내고도 여전히 터질 듯이 부푼 자지가 좁은 구멍을 질퍽질퍽 소리 내며 드나들었다.
두꺼운 기둥이 안에 치받힐 때마다 이미 여러 차례 싸지른 정액이 침대 시트 위에 질질 흘러내렸다. 맞물린 결합부 사이에서 찌걱찌걱 새어 나오는 정액은 하얀 거품이나 진득한 크림에 가까웠다.
“아아……!!”
퍽! 주먹만 한 귀두가 배 속 깊은 곳을 찍어누르자 새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쏟아지는 쾌감으로 서진의 몸이 감전되듯 부르르 떨렸다. 얼마 전부터 남자의 손에 철저하게 길든 몸은 솜털 끝까지 성감대로 변해 고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팔뚝만 한 자지가 배 속을 들쑤실 때마다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쾌락과 절정으로 눈물과 침이 흘렀다. 그럴 때마다 철은 흐르는 액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핥아 마셨다.
“아으, 으응! 아!”
“하윽, 아… 좋아….”
남자가 좆을 깊이 박은 채 허리를 살살 돌리기 시작했다. 기둥에 달라붙어 비벼지는 내벽이 미치도록 좋았다. 쫀쫀한 구멍은 쑤실 때마다 그의 성기를 꽉 물고 놔주지 않았다.
마치 속궁합이라는 단어가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서진의 내벽 주름 하나하나까지 철의 양물을 위한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이미 여러 번의 사정으로 더 뱉어낼 것도 없는 서진의 귀두 끝에서 투명한 액이 주르륵 흘러나와 시트를 적셨다. 뒤에서 천천히 허리를 돌리던 남자는 그 액을 확인하는 것처럼 밑에 손을 넣고 시트를 쓸어보았다.
점성이 거의 없는 사정액이 커다란 손에 찰박찰박 스쳤다. 서진의 것이라면 뭐가 됐든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아니 그냥 미친 게 맞을 것이다. 철은 짐승처럼 발정하며 허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퍽! 퍽…! 박혀 있던 좆기둥을 귀두 끝까지 뽑아낸 다음 다시 한 번에 결장까지 꿰뚫었다. 섹스가 아니라 두들겨 맞는 것 같은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아흐…! 그…흣… 아으응!!”
지나친 자극에 서진이 침대를 두드리며 버둥거렸다. 남자는 아예 서진의 등 뒤에 딱 달라붙은 채로 무자비한 추삽질을 이어갔다. 즈퍽즈퍽,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쩌억 쩌억 샅이 맞붙는 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후읏…!!”
철이 좆을 깊이 처박은 채 단마디 신음을 내뱉는 순간 그의 무게가 고스란히 서진에게 실렸다. 이미 남자가 싸지른 정액으로 가득 찬 배 속에 또 한 번 뜨거운 물이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철은 서진을 꽉 붙든 채 길게 사정하며 허리를 몇 번 더 쳐올렸다. 막힌 곳을 뚫고 들어가서 가장 깊은 곳에 씨물을 뿌리고 싶다는 듯, 귀두를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아…….”
빈틈없이 들어찬 구멍에서 아주 조금씩 정액이 흘러넘쳤다. 희멀건 액체는 이미 시트에 흥건한 정사 흔적과 섞였다.
“하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숨결이 서진의 귓가에 닿았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그가 행복하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구멍을 가득 채운 성기가 천천히 빠져나가자 벌어진 안쪽에서 남자의 정액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철은 황홀경에 젖은 눈빛으로 그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이쁜 거.”
남자가 서진의 머리통에 길게 입을 맞췄다.
“아, 목말라…….”
배터리가 다 된 인형처럼 방전된 서진이 중얼거렸다. 철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침대 위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그러고는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물병과 컵을 통째로 들고 나타났다.
“물 줄께.”
물을 따라서 가지고 오는 시간조차 아까웠는지 침대 앞에 서서 급하게 물병 뚜껑을 열고 컵에 물을 콸콸 따랐다.
“아.”
서진은 그대로 누워서 몸만 천장을 향해 뒤집은 채로 입을 벌렸다. 상체를 일으키는 것도 귀찮을 만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폭풍 같은 정사의 여운으로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움칠움칠 떨렸다.
철은 익숙하게 물을 머금고 몸을 낮춰 서진에게 입을 맞췄다. 버썩 마른 목구멍으로 시원한 물이 쪼르륵 흘러들어 온다. 처음엔 물을 쭙쭙 받아먹던 서진은 결국엔 또 남자와 정신없이 키스를 나눴다.
쪽, 쪽, 둘은 정신없이 뽀뽀를 나누다가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행복하게 웃었다. 그러다 문득 온종일 붙어먹고도 다시 딱딱하게 달아오른 남자의 아랫도리가 서진의 시선 끝에 닿았다. 철은 아무리 몸을 섞어도 발정기 짐승처럼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 힘들어.”
결국 서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제야 인간적인 마음이 생긴 건지, 끝을 모르던 섹스 머신이 연신 서진의 이마에 입 맞추면서 사과를 건넸다. 그러다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서진의 배를 쓱쓱 쓰다듬으며 물었다.
“배 안 고프냐잉. 뭐 맛있는 거 해줄까?”
오늘은 먹은 것도 없이 섹스만 했을 뿐인데, 아랫배를 가득 채운 정액 때문인지 정말 배가 고프지 않았다.
“글쎄….”
철과 함께 살면서 원시적인 욕구만 가득 찬 신생아가 된 느낌이었다. 밥을 먹고 에너지를 채우면 온종일 그를 받는 데 쏟아부어야 했으니. 나머지 일들은 모두 철의 몫이나 다름없었다.
“초밥…?”
서진은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떠오르는 대로 뱉었다.
“기여. 묵으러 가자.”
“……힘들어. 못 움직이겠어.”
축 늘어진 몸뚱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철의 시도가 무색하게 서진은 다시 침대 위에 늘어졌다.
“아따 회 뜨는 거 배워야겄네.”
철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얼마 전 두 사람 사이의 오해가 풀린 이후로 그는 일부러 홀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기를 쓰고 버텨봐야 서진과 떨어져 있는 건 고작 몇 시간이 한계였지만.
“싸게 사 갖꼬 올께.”
그렇게 말해놓고도 철은 또 침대에 누운 서진의 볼때기를 입에 물고 쪽쪽 거렸다.
“어어, 갔다 와….”
서진은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대충 손을 흔들며 그를 배웅했다. 몸을 일으키고 방문을 나서자마자 다시 백스텝으로 돌아온 남자는 서진을 꼭 끌어안았다.
“씻지 말구 기냥 누워 있어.”
“응, 잘 갔다 와.”
“금방 갔다 올란께.”
하지만 잠시 후.
샤워하고 옷을 챙겨 입은 철은 다시 서진이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으째 요로코롬 이쁘게 싸질러져 있냐면서 또 서진의 볼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기어코 열 손가락 손톱 끝까지 입을 맞췄다.
“진짜 마지막.”
쪽 가볍게 맞닿은 입술이 떨어지고, 철이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속삭였다.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어디 전쟁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잠깐 나갈 때마다 애틋하기가 이산가족이 따로 없다.
철이 겨우 집 밖으로 나서는 소리가 들렸을 때, 서진은 샤워라도 하고 있자는 생각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씻겨줄 때까지 기다리기엔 온몸에 정액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서진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욕실까지 걸어간 다음 흐르는 물에 대충 몸을 씻어냈다.
그러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뚱이를 보고 비명을 꽥 질렀다. 한여름에 목 폴라티를 입고 다닐 수도 없고. 목덜미를 뒤덮은 붉은 울혈을 매만지던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을 집에 묶어두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철은 소유욕이 대단했다. 그 여름 스무 살 청년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며칠 전 같이 쇼핑하러 갔던 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머 어머.”
탈의실에서 막 걸어 나오는 서진을 발견한 백화점 직원은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너무 멋지세요. 브래드 피트보다 잘 어울리시는데요?”
서진은 전신 거울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의아하게 눈썹을 구겼다.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이게 정말 맞는 건지 모르겠다. 비렁뱅이처럼 너덜너덜하게 다 찢어진 청바지라니.
“요새는 또 이렇게 허벅지까지 좍! 좍! 찢어져 있는 게 트렌드잖아요.”
직원은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커다랗게 팔을 휘두르며 과장을 보탰다.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았던 서진은 소파에 앉아 있던 철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옷 어때?”
“…….”
주르르륵. 철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주스가 다시 컵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로 철이 직접적으로 옷을 입지 말라고 하거나 불만을 표출하는 일은 없었지만, 대신 노출이 심한 민소매나 특히 요새 유행한다는 찢어진 청바지를 보면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침대 위에서는 서진의 옷을 좍좍 찢어버릴 만큼 급진적인 남자가 옷차림에는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뿐만 아니다.
며칠 전 우연히 잠에서 깼던 새벽. 부스스 몸을 일으킨 서진은 문득 허한 느낌이 들어 자신을 둘둘 감싸고 있던 이불을 치워보았다. 분명 남자가 있어야 할 옆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서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옭아맨 채로 꼭 달라붙어서 자는 그였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에 철을 찾으러 침실 밖을 나섰다. 얼마간 넓은 집 안을 휘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을 발견했다.
살짝 벌어진 문틈 사이로 어스름한 빛을 내는 모니터 앞에 앉은 남자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쿵. 내려앉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야한 동영상.
현장 검거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발소리를 죽인 서진은 목구멍 뒤로 조용히 침을 삼켰다. 고풍스러운 문양의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순간, 벌컥 소리와 동시에 문이 활짝 열렸다.
“에프비아이.”
갑작스러운 FBI에 놀란 철은 억, 소리를 내며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모니터 화면을 꺼버렸다. 전형적으로 야동 보다 걸렸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이윽고 서진의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새까만 어둠을 갈랐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해?”
“…아따 놀래라. 니는 자다 말고 왜 나왔냐.”
분명 어두워서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철의 당황한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서진은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니터 다시 켜봐.”
“뭣이?”
“셋 샌다. 하나, 둘….”
서진이 숫자를 다 세기도 전에 다급해진 철이 모니터 전원을 눌렀다. 틱, 밝아진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어두운 방을 어스름하게 비춘다.
다행히 아직 영상을 탐색 중이었는지 철은 옷을 입은 채였다. 성큼성큼 다가간 서진은 앞을 가로막은 남자를 밀어내고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곧바로 생각지도 못한 화면과 마주한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수민이 미니홈페이지…? 정수민 나랑 동창인데… 둘이 어떻게 알아?”
“기냥 뭐….”
어색하게 대답을 흐린 철이 시선을 떨구었다. 그가 보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서진의 중학교 동창 미니홈페이지였다. 서진이 오늘 이촌 신청을 받아준 다음 [담에 얼굴이나 보자~^-^]라고 이촌평까지 남긴 홈페이지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철도 미니홈페이지를 하는 줄은 몰랐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흔들리던 서진의 동공이 여러 개 켜진 인터넷 창에 꽂혔다. 그는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여 창을 바꿔보았다. 달칵, 달칵, 클릭할 때마다 아는 얼굴이 화면을 빼곡히 채운다.
“이건 미애 누나, 이건 박중구. 이건 이연지, 오지훈… 어떻게 다 내 홈피 이촌만…….”
하필이면 모두 며칠 전에 서진이 미니홈페이지 이촌 신청을 받아준 따끈따끈한 인물들이었다. 이윽고 가장 유력한 가설을 떠올린 서진이 그를 향해 물었다.
“…설마 내 홈페이지에서 파도 탄 거야?”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남자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진은 어둠 속에서도 새빨갛게 달아오른 철의 귓불을 바라보다가 부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때 보면 듬직하게 보였던 남자가 정말 귀여운 동생처럼 느껴졌다.
킥킥 웃던 서진은 참지 못하고 음흉한 스토커에게 쪽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다음은…… 그에게 붙잡혀 결국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를 떠올리며 히죽 미소 짓던 서진의 시선이 거실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언제쯤 오려나. 철이 나간 지 불과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다.
초밥이고 나발이고 집에서 대충 먹자고 할걸. 그럼 요리하는 그의 곁에서 실컷 알짱거릴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순간, 멀리서 현관문이 달그락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서진아.”
곧바로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든 남자가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띤 서진은 쏜살같이 달려가 그에게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