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19/26)

5.

「 “JS유통의 범철 대표가 지분을 전량 매각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JS유통 주식인 제이에스가 오늘 12.8% 대폭 하락하며 마무리됐습니다.” 」

「 “매각 주관사로 토이치뱅크와 모긴스탠리가 선정됐는데요. 아울러 업계에서는 범철 대표가 제이에스를 통째로 매각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자회사를 쪼개서 매각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는 중이고요.” 」

「 “음, 제이에스의 마케팅에 있어서…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습니다만… 소위 말해, 젊고 잘생긴 CEO의 이미지도 한몫하지 않았습니까. 김 교수님은 향후 제이에스 주가 전망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

「 “에… 앞으로는…….” 」

띠링―

「 “신 짱 구우―! 너 어어―!” 」

채널이 돌아가는 경쾌한 효과음이 들리고 이후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성들이 사이좋게 앉아 토론을 벌이는 장면에서 별안간 엉덩이를 까뒤집은 감자 머리가 괴상한 춤을 추는 장면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다소 성격 차이가 심한 채널 변경에 당황한 서진이 홱 뒤돌아보자, 리모컨을 들고 있던 철과 눈이 마주쳤다.

“예. 고로코롬 진행하세요.”

남자는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통화 중인 채로 대수롭지 않게 다시 테이블 위에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슈트를 멀쩡하게 차려입은 걸 보면 아무래도 또 외출하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틀면서 남자의 목소리 볼륨도 점점 줄어들었다. 철컥. 나긋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현관문이 닫히는 차가운 쇳소리가 고막에 달라붙는다.

은근히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서진이 입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다시 티브이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울라 울라~ 울라 울라~” 」

띠리링.

서진은 리모컨을 틀어쥐고 느자구 없는 애새끼가 나오는 화면을 꺼버린 다음,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온 채 소파 위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딱 한 달만 같이 살기로 해놓고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막상 집에 있는 날엔 변호사나 세무사와 서재에 틀어박혀서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으니.

이건 뭐 무수리가 후궁 첩지 받자마자 뒷방으로 밀려나서 주야장천 왕만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철이 정말로 회사를 매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슨 제 신변이라도 정리하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날도 서진은 밤이 늦을 때까지 소파에 누워 만화책을 보다가 꾸벅꾸벅 선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해가 중천이 돼서 정신을 차렸을 땐, 언제나 그렇듯 넓은 침대 위로 이동해 있었다.

사실 철이 저를 이렇게 옮겨 놓는 게 좋아서 일부러 소파에서 자는 것도 없잖아 있었다. 이렇게나마 그의 손길을 느끼고 싶은 뒷방 후궁의 마음이랄까.

익숙하게 몸을 일으켜 다이닝룸으로 향한 서진은 우렁 폐하가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희미하게 사람 말소리가 새어 나오는 방을 발견했다.

‘오늘은 안 나가고 집에 있었구나…….’

냉궁에 홀로 버려진 후궁은 폐하의 숨결이라도 느끼고 싶은 것처럼 커다란 문에 귀를 갖다 붙였다. 문이 어찌나 두꺼운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한참 웅얼거리는 답답한 소음에 귀를 쫑긋하고 있을 때.

“어어…!”

별안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댐이 쏟아지듯 방 안으로 입장해 버렸다.

“선생님. 외부인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예고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 낯선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당장 꺼지라고 종용했다.

“괘안습니다.”

큰 책상 가운데 앉아 있던 철이 서진을 보더니 높은 콧대에 걸쳐놓은 안경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여 있을래?”

안경 쓴 거 잘 어울렸는데….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신 서진이 어색하게 목덜미를 긁적였다.

“아, 아니… 뭐… 그래도 되면.”

괜히 딴청 피우며 대답을 어물쩍거렸다. 그래도 딱 한 달이면 완전히 끝인데, 일주일이 넘도록 같은 집에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기여.”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탁탁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저짝 가서 계속하죠잉.”

“네. 대표님”

“옙. 대표님.”

이런 씹….

철의 한마디와 함께 우르르 몸을 일으킨 사람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책상에 놓인 서류들을 싹싹 쓸어 담더니 전광석화처럼 방을 빠져나갔다.

“…….”

순식간에 방에 홀로 남은 서진은 멍청한 얼굴로 괜히 서재에 꽂힌 책을 뒤적거리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하, 헛웃음 지었다. 차암내. 이렇게 독수공방시키려고 몸소 집까지 데려왔단 말인가.

솔직히 한 달 동안 밤낮으로 박아대서 몸이 작살나는 거 아닌가 걱정했지, 이렇게 혼자 뒹굴뒹굴하다 운동 부족으로 몸이 작살나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결국 그 상태로 또 하루가 저물었다.

여느 때와 같이 푹신한 침대 위에서 눈을 뜬 다음 날 점심이었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밝은 햇빛이 막 눈꺼풀이 열린 흐릿한 동공 위에 흩뿌려졌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햇볕을 등지고 앉은 커다란 남자의 실루엣이 마치 님부스처럼 눈부시게 느껴졌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서진은 이른 시간 폐하의 방문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내시처럼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기체후… 일향… 만강…….”

서진은 온몸에 잠기운이 가득 묻어 있는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어느새 침대에 고꾸라져 처박힌 뒤통수를 바라보던 남자의 입가에 미약한 웃음이 퍼졌다.

“서진아. 나랑 시골 갈래?”

다정한 목소리에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든 서진이 다소 어눌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일은 …다 끝났어?”

“기여.”

철이 이마에 엉망으로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힘주어 뜬 눈가를 비비적거리던 서진도 허둥지둥 몸을 일으킨 다음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땐, 이미 준비를 다 끝내 두었는지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양쪽에 끼고 서 있는 철이 따라오라는 듯 가볍게 눈짓했다.

커다란 수입 SUV 뒷좌석에 묵직한 캐리어를 던져놓고 운전석에 올라탄 철은 드물게 신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조수석에 올라탄 서진이 어린아이같이 들뜬 모습을 보고 좋냐고 묻는 말에 남자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핸들을 잡았다.

고속도로 위를 쨍하게 비추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실 무렵이었다.

수납공간을 열어 선글라스를 꺼낸 철이 서진에게 한 손으로 그것을 내밀자, 고개를 가로저은 서진이 제가 직접 가져온 선글라스를 케이스에서 꺼내 얼굴에 얹었다. 이왕이면 얼굴형에 맞는 걸 끼는 게 어울리니까.

철이 갈 곳을 잃은 선글라스를 제 콧대 위에 대신 올렸다. 선글라스를 각자 사이좋게 하나씩 끼고 햇빛이 부서지는 도로 위를 달렸다. 팝송이 흐르는 라디오를 작게 틀어놓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가사를 아는 부분을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한참 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자동차는 어느새 국도로 빠져나와 정겨운 느낌이 드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쳤다. 일기예보에선 저녁부터 폭설이 온다고 했었는데 벌써 가느다란 눈발이 살살 흩날리기 시작한다.

해가 지기 전에는 도착해야 할 텐데. 그냥 시골이라고만 들었기 때문에 목적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몰랐다. 모르는 편이 더 재밌기도 하고. 본인만 목적지를 몰랐으면 좋겠는데, 정작 운전하는 사람도 어디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게 다분히 당혹스러웠지만.

잠시 흙길 위에 차를 세워놓고 지도를 살펴보던 철이 또 한 번 눈썹을 크게 휘었다. 그 눈썹 각도에 불안해진 서진이 결국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너 어딘지 알고 가는 거 맞아?”

“…나도 안 가봐서.”

“뭐?”

“일주일 전에 샀은께.”

뒷골이 확 당기는 태평한 대답에 한겨울에도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지도 내놔. 내가 볼게.”

그의 손에서 종이를 뺏어 든 서진의 지도 편달 아래 다시 차가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한참 눈 내리는 길을 달리던 중, 지도를 거꾸로 돌렸다가 뒤집었다가 흡사 피자 도우처럼 빙글빙글 돌려대던 서진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좌회전?”

그 말에 남자가 바로 핸들을 꺾자 차가 좌측으로 돌아간다. 동시에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아니… 우, 우…회전인가…….”

“뭐?”

“…아니야. 그냥 가.”

누가 봐도 잘못 말한 사람 같았지만, 철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불안한 눈동자로 주변을 자꾸만 휘휘 둘러보는 서진의 고개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목적지 중간에 인적이 드문 어느 작은 마을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 두 사람은 곧바로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도착.”

해가 완전히 저물고 폭설로 눈이 수북이 쌓일 무렵, 지도를 대충 접어 주머니에 넣어버린 서진이 양옆으로 논밭을 끼고 있는 허허벌판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느자구 없는 소리를 뱉었다.

“……맞아?”

“아닌 것 같은디.”

당연한 것을 굳이 확인하는 사람처럼 눈발이 끊임없이 흩날리는 창밖을 바라보던 철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여기가 도착이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깜빡이기 시작한 주유 등을 확인한 서진이 다시 지도를 꺼내 들더니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럼 일단 주, 주유소 먼저 가자. 여기서 우회전.”

그땐 몰랐다. 이 커다란 SUV가 아무도 없는 흙길 위에 우두커니 멈춰 설 줄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서진이 배터리가 다한 폰의 전원 버튼을 꾹 누르다가 짧게 혀를 찼다. 잠시 우왕좌왕하던 두 사람은 일단 차에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 도움을 요청하자는 원만한 합의하에, 뒷좌석을 일자로 눕혀 자리를 만들고 누웠다.

“추워?”

긴 다리를 조금 굽히고 맞은편에 몸을 눕히던 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쪄 죽을 것 같아.”

그가 캐리어에서 꺼낸 옷으로 서진을 꽁꽁 싸매는 바람에 누에고치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흐뭇한 미소를 띤 철은 그를 재우려는 것처럼 팔을 뻗어 어깨를 간헐적인 속도로 토닥거렸다. 장시간 차를 타서 그런지 피곤에 찌든 몸이 서서히 나른해졌다.

이런 걸 차박이라고 하나. 인적이 없는 곳, 넓은 차 뒷좌석.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카섹스로 이어진다고 풍문으로 들은 것 같은데…….

카섹스는커녕 〈나 홀로 집에〉에 나오는 비둘기 아줌마처럼 옷을 껴입고 있었지만.

조금 황당한 상황에 어이가 없다가도, 나란히 누워 얼굴을 마주한 남자의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 눈에 들어와 푸스스 웃음이 새어 나온다.

넓은 뒷좌석에 옷을 감싸고 나란히 누운 두 남자와, 머리 위로 보이는 창밖에 눈발이 휘날리는 장면이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왠지 차가운 공기 속에 따뜻한 낭만이 감도는 것 같다.

그의 손길에 조금씩 감기던 눈꺼풀이 맞물렸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땐, 여전히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얼굴에 닿았다.

“철수야.”

잠깐 잠들었다 깬 것 같은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흘러나왔다.

“우리 가는 곳 좋아?”

“기냥… 조용해.”

“그래… 궁금하네.”

그의 조용한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눈을 감던 서진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질문을 건넸다.

“근데 너… 한 달 있다 어디 가냐?”

“외국 갈라고.”

“그래… 잘됐다.”

그래서 그렇게 다 정리한 거구나. 잘됐다. 그거면 정말 볼 일 없겠네. 잘 됐다…….

그렇게 또 잠이 드는가 싶더니 서진이 갑자기 게슴츠레 뜬 눈으로 묻는다.

“외국 어디 가는데?”

“남미 쪽.”

“남미 어디?”

“…섬.”

“무슨 섬?”

“……푸에르노…아스타…루에고.”

“푸에르노…아스타루에고……?”

“응.”

그의 무덤덤한 대답에 다시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과 함께 서진은 꿈결처럼 상상에 잠겼다.

푸에르노 아스타루에고…… 다분히 이국적인 이름이다.

왠지 기다란 야자수 나무가 빼곡히 줄지어 있고, 선베드에 누운 미남미녀들이 칵테일을 마시며 선탠을 하고, 투명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제 다섯 발가락이 훤히 비칠 것 같은….

온도는 늘 높은 편이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서 딱 기분 좋은 정도로만 덥겠지. 아마 크기는 작아도 바닷물이 깨끗해서 스노클링으로 유명한 데다 전 세계 다이버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일 거고. 아무튼 이름만 들으면 대충 그런 섬 같았다.

좋은 곳으로 가는구나…….

머릿속으로 남미의 환상적인 섬 이미지를 떠올리며 점점 노곤한 잠기운에 빠져들었다.

“그래… 좋아 보인다. 축하해….”

서진이 눈을 꼭 감은 채로 잠꼬대처럼 웅얼거렸다.

“……고마워.”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철이 희미하게 웃었다. 곧 빼곡한 속눈썹 위에 보드라운 입술이 가벼이 내려앉는다.

잠든 서진은 꿈을 꾸었다.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에서 서핑을 하고, 호화로운 별장에서 휴식을 즐기며 뜨거운 태양 아래 건강하게 그을린 남자를.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상 낙원 같은 섬에서, 비키니 입은 미녀도 만나고. 자신은 깨끗하게 잊고…….

그리고,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세상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라는 나라는 있어도 푸에르노 아스타루에고라는 황당한 이름을 가진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

다음 날 아침, 지나가던 행인에게 핸드폰을 빌린 다음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데는 우려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철은 정말로 남은 기간 별장에 처박힐 생각인 건지 가는 길엔 마트까지 들러서 얼마간 먹을 식량으로 트렁크를 빼곡하게 채웠다.

“……맞아?”

까만 선글라스를 콧대 아래로 살짝 내리고 눈을 드러낸 서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트렁크에서 묵직한 식량 두 봉지를 들어 올린 철은 대수롭지 않게 맞다고 대답하더니 앞에 놓인 나무 문을 뻥 걷어차고 안으로 입성했다.

사방이 대자연으로 둘러싸인 산속에 위치한 별장은 속세를 떠난 도인이나 자연인이 사는 오두막 같았다.

“직접 지은 건 아니지?”

얼마 전 대기업을 매각한 영 앤 리치의 별장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는 소탈한 크기에 감탄하며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사실 집이 좁으면 가까이에 붙어 있을 수 있다는 다소 유치한 생각에서 파생된 결과였지만, 남자는 구태여 그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크헉.”

집 안으로 발을 딛자마자 바닥과 가구 곳곳에 수북이 쌓인 먼지가 어서 오십시오 우렁차게 인사를 건넨다. 반사적으로 기침을 내뱉은 서진이 손을 허공에 휘휘 저었다.

“니는 쪼까 나가 있어 봐야.”

일주일 전에 급하게 사진만 보고 샀다더니, 아무래도 사진에 먼지까지 찍히지는 않은 모양이지. 외투를 벗어 던지고 대청소를 준비하는 철을 보던 서진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나도 같이할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결과적으로 서진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일거리만 늘려 주었다. 물을 받아놓은 양동이를 엎질러 바닥을 물바다로 만들거나, 이미 다 쓰고 버리기 위해 내버려 둔 걸레로 닦은 곳을 다시 닦는다거나 했다. 다 된 밥에 후춧가루처럼 재를 뿌려댄 꼴이다.

아무튼 가구 위에 씐 하얀 천들을 치우고 창문을 우중충하게 가로막은 어두운 커튼을 걷어내니 채광이 그득하게 차면서 나름대로 봐줄 만한 공간이 튀어나왔다.

통나무로 지어진 집이 주는 동화적인 감상과 어울리지 않게 고풍스러운 가구들은 비싸 보였고 거실 한가운데는 장작을 피우는 커다란 벽난로가 있어 낭만을 더했다.

방이나 욕실은 하나였지만 넓은 침대도 굳이 두 개나 있었고. 마치 백설 공주에 나오는 난쟁이들의 아늑한 오두막 같달까.

서진이 먼저 먼지를 뒤집어쓴 몸을 씻고 새 침대에 널브러져 쉬는 동안, 정리를 마치고 간단하게 저녁을 요리한 철이 잠시 후 그를 불러냈다.

서진이 좋아하는 것만 귀신같이 알고 채워놓은 식탁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지 가운데 놓인 작은 촛대에 불까지 붙어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들뜬 얼굴로 자리에 앉은 서진이 익숙한 버섯 수프부터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같이 살기로 한 지 2주가 다 될 무렵 드디어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남자는 왠지 별장에 도착하기 전보다 묘하게 조용해진 것 같았다.

원래부터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닌데 더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저녁 식사 내내 얼음장 같은 침묵을 견디다 못한 서진이 결국 먼저 아이스브레이킹에 나섰다.

“여기 오니까 옛날 생각난다.”

“…옛날?”

“나 사냥꾼한테 쫓기다가 잠깐 일곱 난쟁이 집에서 지냈었잖아.”

장난스럽게 건넨 말에 식사를 멈춘 철이 조용히 눈을 끔뻑거린다.

“…….”

……씹, 여기서 씹히다니.

당황한 서진이 컵에 담긴 물을 꿀꺽꿀꺽 넘기며 제발 욕이라도 해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식기류가 달그락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대답 대신 오디오를 채웠다.

이러다 진짜 왕자병처럼 보이는 거 아닌가 싶어서 괜히 헛기침을 뱉었다. 실제로 그랬기에 아무 문제 없었지만.

“설거지는 내가 할래.”

결국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식사가 끝나자마자 정리를 시작한 철을 보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여러 장 겹쳐 들었다.

“내가 할란께.”

“아, 내가 한다니까.”

이미 한 손에 접시를 수북이 들고도 기어코 철의 손에 들린 접시를 빼앗기 위해 힘을 주던 순간, 원래 들고 있던 접시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와장창! 고막을 찢는 쨍한 파열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에 튀었다.

놀란 철이 바로 접시를 내려놓고 서진의 몸을 샅샅이 살폈다.

“괘안애?”

“미안… 어, 얼른 치우면 돼.”

당황한 서진이 깨진 파편을 줍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손을 내미는 찰나, 바로 끼어든 커다란 손이 깨진 유리 조각을 손바닥으로 덮어 막았다. 베였을 게 분명한 손을 보며 황당함에 고개를 쳐들었다.

“미쳤…….”

“됐은께 들가서 쉬어.”

얼굴을 들자마자 마주친 남자의 표정이 정말 화가 나 보여서 할 말을 잃었다. 그 자리에 멈춰서 몇 번 눈을 깜빡이던 서진은 결국 그의 말대로 몸을 일으키고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곧바로 씻고 방 침대에 몸을 뉜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생각에 잠겼다.

오늘 내가 많이 잘못했나…….

계속 이렇게 어색하면 어떡하지, 이제 2주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시간이 흐른 늦은 밤, 방문이 달칵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옆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등을 돌리고 누운 서진의 눈알이 뻑뻑하게 굴러간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제 뒤통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서진아.”

뒤에서 흘러나온 부드러운 목소리가 고막을 감쌌다.

“나 좀 봐줘.”

아까 전 어색한 공기를 떠올리면서 자는 척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백설 공주님. 난쟁이 새끼도 쪼까 봐주세요.”

그의 애원에 헛웃음을 터뜨린 서진이 결국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 옆 침대를 마주 보고 돌아누웠다.

바로 옆 침대에서 자신을 향해 누워 있는 남자의 허벌라게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난쟁이라고 하기엔 심하게 큰 덩치에 우흡, 웃음이 튀어나왔다.

“프…흐….”

그 웃음이 신호탄이 됐는지 침대에 누운 두 남자는 각자 웃음 참기에 실패한 사람처럼 마주 보며 크크큭, 웃음을 터뜨렸다.

급기야 미치광이버섯이라도 먹은 것처럼 웃음이 점점 더 격해지더니, 마치 너 보라는 듯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배를 잡다가 이유 없이 낄낄거리면서 눈물까지 찔끔 흘리고 말았다.

겨우 잦아든 웃음을 꾸역꾸역 속으로 삼킨 다음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던 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수프에 미치광이버섯 넣었냐?”

“인제 알았냐잉.”

“나, 네가 왜 이렇게 웃기지.”

“……웃기기라도 해서 다행이네.”

퍼석퍼석한 웃음을 끝으로 미친 짓을 정리하며 떨리는 목을 가다듬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방 안에 약간 어색한 공기가 감돌긴 했지만 아까만큼은 아니었다.

마주 보고 누운 남자는 여전히 말없이 서진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공간에 두 침대 사이에 놓인 협탁 위의 스탠드가 은은하게 빛을 냈다. 히죽 미소를 머금은 서진이 처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근데… 갑자기 왜 같이 살자고 했어?”

“…평생 소원인께.”

“내가 싫어 죽겠다는 김철수 씨는 어디 계세요.”

“뒤져브렀어.”

또 웃긴 것도 없는데 프흡 웃음이 나올 뻔했다. 가만히 마음을 가다듬은 서진은 시선을 옮기며 앞에 있는 남자의 이목구비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린 듯한 눈썹, 잘 빚은 콧대, 시원한 눈매, 하나하나씩 뜯어보다가 도톰한 입술에서 길게 머물렀다. 이렇게 얼굴만 봐도 재밌는 남자와 함께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일분일초가 아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멀다.”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은 서진이 뒤로 꼼지락꼼지락 이동하더니 제 침대 시트를 툭툭 치며 묻는다.

“이쪽으로 올래?”

그 순간 동공이 조금 커다래진 남자는 언뜻 몇 달 만에 주인을 만난 개새끼처럼 기뻐 보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제안을 물리기도 뭐해서 다시 한번 시트를 탁탁 두드리며 그를 불렀다.

곧이어 묵직한 무게가 더해진 침대가 미세하게 삐걱거렸다.

한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운 철은 조금만 힘을 줘도 깨지는 유리 공예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진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제 손보다 반절은 더 큰 것 같은 손이 옷 위를 부드럽게 매만진다.

다정한 손길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서진이 고개를 들더니 그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난쟁이가 심하게 크네.”

올려다본 남자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특히 아래가.”

서진이 허벅지를 들어 올려 가랑이 사이에 놓인 묵직한 것을 툭 건드리자 당황한 철이 몸을 조금 뒤로 내뺀다.

솔직히 매번 그의 혈기에 놀란다. 그래봤자 잠깐 껴안았을 뿐인데. 이렇게 큰 걸 가랑이에 달고 다니면 무겁지 않을까. 원래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자주 서나.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만져줄까?”

질문을 건네면서 동시에 대답을 듣지도 않고 딱딱하고 큰 것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떼서 무게를 달아보면 몇 kg은 나오지 않을까….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얇은 천을 사이에 두고 그의 성기를 마구 주물럭거렸다.

사실 벌써 얼마나 발기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만질수록 점점 강직도가 세지는 살덩이는 한계를 모르고 자꾸 커지기만 했다.

“…암껏도 안 해줘도 돼.”

절제하는 듯한 숨을 내뱉은 철은 미친 듯이 날뛰는 아랫도리와 달리 태평한 소리를 해댔다. 그 말에 서진이 씩 미소를 머금고 손을 떼어냈다.

“고추 터지겠다.”

“터쳐도 괘안애.”

정말 밟아서 터뜨려도 괜찮다는 듯한 어투에 약간 황당해졌다.

“자지 아프잖아.”

철의 품에서 빠져나와 몸을 일으킨 서진이 그를 똑바로 눕히더니 깔고 앉았다. 이대로 두면 밤새도록 세우고 있을 게 분명한 놈이다.

어차피 같이 지낼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

“만져줄게…….”

서진이 철의 바지와 속옷을 살짝 끌어 내리자 빳빳하게 세워진 좆이 질량감을 더하며 퉁 튀어나왔다. 지난번 펠라티오 이후로 입에 넣는 게 두려워진 서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부드러운 입술 대신 두 손으로 두꺼운 좆 기둥을 잡고 천천히 쓸어올렸다. 순간 귀두 끝에서 끈적한 시럽 같은 쿠퍼액이 울컥 흘러나왔다.

“읏….”

동시에 흐트러진 신음을 내뱉은 남자가 베개에 뺨을 묻었다. 한 손으로 잡기엔 턱없이 부족한 자지를 양손으로 쥐고 흔들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 움직일 때마다 자꾸만 토해내는 쿠퍼액에 열 손가락이 젖어 점점 질척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감싸 쥔 기둥의 맥박이 쿵쿵 빨라졌다. 제 것을 만지는 것도 아닌데 온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반응에 변덕을 느낀 서진이 고개를 숙이더니 혀를 쭉 내밀어 쿠퍼액이 나오는 요도를 혓바닥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윽… 잠깐, 안 돼, 서진아.”

당황했는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는 병을 앓고 있는 서진은 개의치 않고 축축하게 젖은 귀두를 혀로 핥으며 손으로 기둥을 더 세게 주물렀다.

“아… 후읏….”

“…좋아?”

서진이 입을 떼자마자 타액과 귀두 끝에서 나온 쿠퍼액이 섞여 실처럼 혓바닥과 주욱 이어졌다. 꿈에서도 본 적 없는 선정적인 장면에 남자의 사정감이 급박하게 아래로 쏠렸다.

서진은 제 손안에서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자지를 느꼈는지 있는 힘껏 더 세게 쥐고 아래위로 탁탁탁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읏, 그만… 쌀 것 같애…….”

결국 몸을 반쯤 일으킨 남자가 그의 양 손목을 잡더니 가벼운 힘으로 제 좆 기둥에서 떼어냈다.

“…안 해도 돼.”

그 상태로 서진을 끌어당겨 폭 껴안은 철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았다. 그냥 옆 침대에 누워서 매일 밤 자는 얼굴을 훔쳐볼 수만 있어도 그걸로 충분했다.

비록 찰나일지언정 서진과 이곳에서 둘만 지낸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온종일 긴장 상태라 제가 뭘 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철아… 내 거 해줘. 나도 자지 아파… 만져줘….”

그런 마음은 개미 먹이만큼도 모르는 서진은 이미 흥분해 버렸는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야한 말을 늘어놓았다.

“하…….”

그 말에 남자가 헛웃음을 터뜨린다. 여전히 안달 난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끔뻑 녹아내린 철이 순식간에 자세를 뒤집어 그를 침대 위에 눕혔다.

예뻐도 너무 예쁘다. 예뻐서 죽을 것 같다. 바로 미친 듯이 입을 맞추며 서진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응… 해줄께, 다 해줄께….”

눈, 코, 입, 목덜미, 가리지 않고 혀로 핥고 입술로 비비며 쪽쪽 빨아 먹었다. 할 수 있다면 온몸을 다 씹어먹고 싶다.

순식간에 나신이 된 서진은 조금 수치심을 느끼고 하얀 이불을 끌어당겨 자신의 위에 자리한 남자에게 대신 간접적으로 덮어주었다.

“으응, 응…….”

예민한 유두가 쪽쪽 빨리는 쾌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미끄덩한 살덩이가 돌출된 꼭지를 집요하게 핥으며 입 안으로 강하게 빨아당겼다.

추읍, 춥, 젖은 소리가 서슴없이 흘러나왔다. 빨지 못하는 반대쪽 유두를 아쉬워하듯 대신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문지르고 괴롭혔다.

“하아…응….”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남자가 아래로 사라지더니 갑자기 매끈한 두 다리가 확 벌려졌다. 커다란 손에 잡힌 엉덩이가 제멋대로 허공에 치켜 올라간다. 이윽고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허리가 펄쩍 뛰어올랐다.

“아흐으…!”

분명 혀로 추정되는 축축한 살덩이가 은밀한 구멍을 길게 핥으며 움직였다. 급기야 입술을 갖다 붙이고 쭙쭙 소리를 내며 주변 살까지 빨아당겼다.

“아응, 읏…! 이, 이거 싫……!”

평생 누가 제 그곳을 쭙쭙 빨아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수치심을 느낀 서진이 미약하게 버둥거리며 반항하기 시작했다.

“하아… 너무 좋아, 서진아….”

남자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몽롱하게 취한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할 때마다 뱉어지는 뜨거운 숨결에 구멍이 간지럽다.

이윽고 그가 옅은 주름을 혓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며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고개를 비스듬히 꺾어 빈틈없이 훑다가 아예 혀를 딱딱하게 세우더니 오므라진 틈을 벌리고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으응…!”

조금 전보다 더한 행위에 놀란 서진이 침대 시트를 꽉 말아 쥐었다. 두 볼기짝을 양쪽으로 잡아 벌린 철은 츕춥 소리를 내며 서진의 가장 은밀한 곳에 혀를 쭉 밀어 넣었다.

구멍 안에 들어온 혀가 열렬하게 움직이며 내벽을 애무하듯 핥아댄다. 이윽고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더니 축축한 혀가 씹질하는 것처럼 좁은 구멍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응… 아앗, 흐읏……! 그만……!”

추읍, 추읍, 젖은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 빨리는, 처음 느껴보는 쾌감이 아랫배에서 끓어올랐다. 오히려 자지를 빨리는 것보다 더 큰 정신적인 쾌락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남자는 혀로 피스톤질을 하는 것처럼 무아지경으로 안팎을 왕복하며 그곳을 개처럼 빨아댔다.

“하으, 응… 제발……! 그냥, 읏! 자지로… 해줘…….”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을 빨리며 미칠 듯이 느끼는 자신이 수치스러워진 서진이 고개를 도리질하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저도 혹했는지 움직임을 멈춘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바로 넣으믄, 아플건디….”

“아읏… 그냥 넣어줘… 넣어….”

이미 쾌감으로 정신이 혼미한 서진이 간절한 목소리로 졸랐다.

아까부터 계속 좆물을 줄줄 흘리는 자지를 꺼내놓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활짝 벌려진 가랑이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바로 주먹만 한 좆대가리를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구에 맞추고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아, 으흣…….”

그저 구멍에 대고 비비는 것뿐인데 벌써 배 속을 꽉 채우는 살덩이가 주는 쾌감을 기억하는 몸이 금세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서진아…….”

철은 축축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황홀경에 흠뻑 빠졌다. 미치도록 예쁘다. 넣지 않고 보고만 있어도 당장 사정할 것 같다. 그래도 뭉툭한 귀두는 젖은 입구를 계속 찔러대며 제집이라는 듯 침입을 시도했다.

“하읏, 그냥 넣어… 빨리…….”

자꾸 감질나게 아래를 파고들었다가 다시 뒤로 빠지는 살덩이에 아랫배가 근질거렸다. 서진의 재촉에 허리를 앞으로 세게 박아 넣자 꽉 다물린 구멍이 한계까지 벌어지며 들어오는 자지를 반기듯 꾸역꾸역 삼키기 시작했다.

“아으윽…!!”

아래가 쫘아악 벌어지는 느낌과 동시에 내장이 밀려 올라갔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자지가 배 속을 꽉 채운다.

“아윽… 좁아….”

미간을 잔뜩 구긴 철이 흐트러진 신음을 내뱉었다. 쫄깃한 구멍이 자지를 오물오물 씹어먹는 것 같다. 좆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인내하며 한 번 더 내리찍듯 뿌리 끝까지 밀어 넣었다.

“아흐으으…!!”

두 사람의 목구멍에서 갈라진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안을 파고든 기둥에 빈틈없이 착 달라붙은 내벽은 두꺼운 살덩이를 한껏 조였다.

“아으응, 꽉 찼… 흣…!”

서진은 가득 찬 쾌감에 무심코 배에 손을 갖다 댔다가 자지 모양대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이 느껴져 흠칫 놀랐다. 시선을 돌려 배를 쳐다보니 육안으로도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하아… 자지 녹을 것 같애….”

철은 이미 삽입하자마자 정신이 나갔는지 눈이 잔뜩 풀려 있었다. 구멍은 쉴 새 없이 벌름거리며 뿌리를 꽉꽉 조여대는데, 착 붙은 내벽은 자지를 녹일 것처럼 뜨겁다. 남자가 한쪽 팔로 몸을 받치고 고개를 숙이면서 서진의 입술을 허겁지겁 머금었다.

“아응, 으으응…!”

동시에 꽉 들어선 자지가 내벽을 긁으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귀두에 아랫배에서 쾌감이 폭죽처럼 터졌다.

“응! 으읏! 좋아… 으응!”

치덕, 치덕…. 끈적한 점액이 마찰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철은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너무 깊거나 빠르게 처박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날 서진에게 강압적으로 펠라를 시켜놓고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게 후회를 했는지, 혹시라도 그를 다치게 할까 봐 겁이 났다. 천천히 부드럽게 자지가 드나들 길을 넓히기 위해 허리를 움직였다.

“하응, 으응, 더…! 아읏…!”

느긋한 움직임에 서서히 안달이 나기 시작한 서진이 발끝으로 그의 허리를 살살 긁으며 보챘다.

그 몸짓에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놓쳐버린 철이 상체를 일으켜 세우더니 서진의 골반을 잡고 성기를 퍽―! 깊게 박아 넣었다.

“아아응!!”

끝까지 들어왔다고 생각했던 성기는 정말 끝이 아니었는지 배 속 깊숙이 이상한 부분까지 뚫고 들어온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과 쾌락에 온몸이 흠칫흠칫 떨렸다.

철은 그 상태로 서진의 양쪽 허벅지를 더 활짝 잡아 벌리더니 허리를 빠르게 털며 정신없이 박아대기 시작했다. 두꺼운 기둥이 더할 나위 없이 재빠르게 좁은 구멍을 드나든다. 뜨거운 불쏘시개에 아랫배가 엉망진창으로 쑤셔지는 것 같다.

“아으, 응! 아! 하아! 읏!”

퍽퍽퍽퍽……!

서진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펑펑 터지는 쾌감에 휩싸여 허우적거렸다. 큼직한 귀두가 깊은 곳 어느 지점을 꽉 짓누를 때마다 눈물이 고일 정도로 차오르는 환희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심지어 남자도 그걸 잘 아는지 일부러 그곳만 퍽, 퍼억, 쑤시고 찍어댔다.

“응! 아응! 너도, 응…! 좋아…?”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 서진은 문득, 자신만큼은 아니어도 철이 조금이라도 좋은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어릴 적 품었던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자위 말고는 한 번도 앞을 써보지 않았으니 무슨 느낌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이것보단 좋을 순 없으리라.

“하아… 뭐…?”

이미 이성이 회까닥 나간 상태라 제대로 듣지 못한 철이 고개를 숙이며 급하게 입술을 맞추고 혀를 집어넣었다.

철벅 철벅! 팔뚝만 한 기둥이 팽팽하게 벌어진 구멍을 쉼 없이 드나들었다. 자지에 탄탄하게 붙은 고환이 부드러운 엉덩이에 철썩철썩 부딪치며 하모니를 만들었다.

“아! 하읏! 응! 너, 읏! 좋, 좋…아?”

서진은 원래 한번 꽂힌 데에는 좀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자신도 정신을 놓기 직전이면서 기어코 끊어진 정신 줄을 매듭지어 붙여가며 또 묻고 또 물었다.

“아아… 씨발….”

남자가 미처 속으로 삼키지 못한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두 사람 모두 쾌락에 빠져 인식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저 좋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인제 보니 굳이 한 달도 필요 없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

“하아… 당장 뒤져도 돼.”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칼에 찔리고 총에 몇 방 맞아도 쾌락에 빠져 그냥 미친 듯이 박을 수 있을 것 같다.

“미치게, 미치게, 좋아, 서진아.”

씹어먹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혀로 온몸을 핥고 쪽쪽거리며 뜨거운 살덩이로 가장 깊은 곳을 푹, 푹, 쑤셔댔다. 세게 쳐올릴수록 자꾸 위로 밀려 올라가는 몸을 고정하듯이 꽉 누르고 좆을 있는 힘껏 처박는다.

활짝 벌려진 다리 가운데 가장 은밀한 곳을 박아대는 남자의 탄탄한 엉덩이가 더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허공에서 속절없이 흔들리는 제 두 다리를 보던 서진이 조심스럽게 종아리로 그의 허리를 감았다.

“하아아…! 으으, 아앗, 응! 아!”

깊숙이 들어온 자지가 내벽을 마구잡이로 긁어대자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 자지 같은 성기가 목구멍 끝까지 닿을 것 같아 무서웠다.

대체 언제 사정했는지도 모르게 온몸이 정액 범벅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몸이 갑자기 쑤욱 들어 올려졌다.

“으읏…!”

어린아이처럼 가볍게 들어 올려 서진을 제 허벅지 위에 앉힌 철은 혀를 내밀어 그의 몸에 묻은 정액을 핥아 먹었다.

동물이 제 새끼를 핥아주는 것처럼 살뜰하게 핥은 남자는 서진의 입술에 쪽쪽, 짧게 입을 맞추더니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젖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나 없어도, 후읏… 딴 새끼는 안 돼….”

“하으응…!”

동시에 남자가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자 내벽 안에 박힌 자지가 소리 없이 안을 마구 휘저었다.

“아흐으으…!”

“안 돼… 하… 절대. 안 돼.”

철이 서진을 끌어당겨 꼭 안더니 계속 안 된다는 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이 닿은 가슴팍이 왠지 축축해졌다.

“이건 나랑만, 나랑만 해….”

고개를 들고 부드러운 몸에 쪼옥, 쪽, 입을 맞춘 남자가 또 살살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흐응, 너랑만 할, 해…! 응, 응!”

지독한 쾌감에 빠진 서진의 문장은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하으, 응! 아아! 아응…!”

“사랑해.”

이미 정신을 놓은 것 같은 서진을 붙잡고 미친 사랑을 고백했다.

아무래도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랑 제가 하는 사랑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정신과에서도 다른 사람이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을 가졌다는 걸 들은 적이 없으니까.

“사랑해….”

평생. 죽어서도. 몇 번을 다시 태어난대도.

“사랑해, 서진아…….”

나는 네가 필요로 해야만 존재해.

필요 없어지면 눈을 뽑아 주고, 팔다리를 잘라 주고, 심장을 떼어 내준 다음 나머지를 다 태워서 남은 재라도 바칠게. 영혼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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