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U 외전. 용사와 고양이 (1) (88/112)

AU 외전. 용사와 고양이 (1)

세상 참 말세다. 이대로 가다간 인간의 손에 요국이 망하고 말 거야.

혀를 내두르며 제 신장만 한 빗자루 솔을 나르는 그의 이름은 렌 지미. 옅은 주근깨가 매력적인 단모 소묘족에 레라바시아 온천장(溫泉場) 가장 작은 객실 8호 담당 관리인이다.

오늘도 늦은 밤까지 손님을 받지 못해 이번 달 대금 지불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그가 크게 하품했다.

요즘 온천장의 손님이라곤 거족만 발에 채였다. 특히 2층에서 발을 굴리며 거대한 뿔을 자랑하는 검은 털의 거우족은 3미터 가까이 몸집이 커서 그의 객실에는 허리를 숙여도 들어가지 못했다.

오만한 거족은 손님으로 받기 싫었지만 최근엔 ‘어떻게든 구겨 넣으면 들어가지 않을까?’라며 눈길이 갈 정도로 그는 돈이 급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이만큼 소족 손님이 부족하진 않았다. 레라바시아 온천장은 본디 종족에 상관없이 위대한 정왕도 방문할 만큼 유명한 데다 하루라도 소란이 끊이지 않는 떠들썩한 장소였다.

유황 내음이 나는 노천을 둘러싼 만 평이 넘는 부지에 열다섯 층의 거대한 목조 건물, 처마 밑 꺼지지 않는 등롱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이 나라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뭐라더라? 옆 나라 못된 인간들이 정왕을 토벌하겠다 무엄하게 나섰다는 소문이 돈 후였던가.

처음에는 다들 호들갑을 떠는 거라며 무시했지만 두 달쯤 전, 사막의 고대 거룡족이 고작 다섯 인간의 무리에게 쓰러졌다는 첩보가 나돌았다. 뒤이은 요국인들의 피해가 점점 정왕의 성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정왕의 왕도와 가까워지는 습격이 두려웠던 소족들 대부분이 고향으로 도망가서 온천장에 남은 소족은 렌 지미를 비롯한 몇몇 오갈 곳이 없는 일꾼들뿐이다.

특히나 요즘엔 정왕님을 지키겠다고 전국에서 올라온 거족의 족장들이 객실을 차지해 그처럼 작은 종족은 이리 치였다, 저리 치였다 밟히지 않게 도망가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삐죽 나온 귀와 꼬리를 부풀이며 주변을 경계하던 그는 사이가 좋지 못한 위층 관리인에게 하악질을 해준 다음 공용 목욕탕을 청소하러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게 다 망할 인간들 때문이다. 소족 손님은 씨가 말랐지, 동지들도 몸 사린답시고 사라졌지.

우락부락한 근육밖에 없는 멍청이들만 우후죽순 모여 늪지대의 더러움을 씻고 가는데 규모가 다른 오물 덩어리 때문에 틈만 나면 수도관이 막혔다.

다들 손님 받느라 바빠서 객실이 빈 관리인들이 나서서 청소를 담당하는데 이럴 때마다 곧잘 불려나가는 렌 지미만 아주 고역이었다.

“제길! 젠장! 이럴 거면! 돈을! 더 많이! 주든가! 왜! 나만! 고생하냐고!”

마르면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 겔박 특유의 진흙을 단단한 솔로 문지른 그는 나무 진액처럼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고서야 부탁받은 욕탕 청소를 끝낼 수 있었다.

끝으로 뜨거운 물을 받은 후 씨앗이 옮아 이끼가 생기지 않게끔 약초를 푼 그는 욕탕 앞에 ‘소독 중’ 팻말을 걸었다.

차라리 제 객실에 거족 손님을 받는 게 수지타산이 맞았다. 일단 손님이 들어와야 대금을 낼 수 있는데 이런 잡일로는 생계유지도 힘들다.

이게 다 망할 인간 때문이야. 이 유구하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왕의 나라에 쳐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거기에 뭐? 뭐어어? 마왕? 왜 우리 임금님한테 이상한 별명을 붙여가며 시비를 걸어? 세상이 말세다!

“이봐, 8번 객실 관리인! 중앙에서 찾는다.”

“네, 네. 갑니다! 또 왜 부르는 거야.”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솔을 빨던 그가 걷어붙인 소매를 풀고 후다닥 달려나갔다. 항상 신경질을 부리는 중앙은 호출한 관리인이 1분이라도 늦으면 무지막지하게 잔소리를 쏘아댔다.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슨 허드렛일을 시키려는 걸까. 작은 몸으로 거족들의 틈바구니를 피한 렌 지미는 객실 관리인을 감독하고 물품을 내어주는 중앙 카운터로 향했다.

“뭡니까? 막혔다던 난초탕 청소 끝났는데요.”

“손님이다.”

손님? 예상치 못한 행운을 들은 고양이 귀가 쫑긋거렸다. 이런 시국에 소족이 레라바시아 온천장을 방문하다니 담이 큰 녀석이다.

여하튼 덕분에 살았다. 돈을 원했던 렌 지미는 그 손님의 골수까지 빨아먹을 속셈으로 차올랐다.

“소족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거족이라기엔 많이 작아. 지금 빈방이 너밖에 없으니 네 손님으로 배정했다. 그리 알아.”

“그것참 다행이네요.”

“확인하고 안 되겠다 싶으면 알아서 거절하고.”

“왜 거절해요? 내 돈줄을.”

이게 얼마 만에 손님인데. 하도 손님을 못 받아서 객실에 먼지가 쌓일까 걱정되던 참이다. 침을 질질 흘리며 탐욕을 부리는 렌을 본 중앙 관리인은 안절부절못한 낌새를 숨겼다.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허드렛일 차림으로 정문까지 버선발로 뛰어간 렌은 어떤 거대한… 아니 거족보다는 작지만 소족치곤 덩치가 큰 손님이 온몸이 검은 진흙에 절어서 진흙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고 눈썹을 까딱거렸다. 저게 바로 중앙이 지정한 그의 손님일 것이다.

“에또…….”

왜 거절하라고 말한 건지 이제야 알겠네. 겔박의 피해자인가. 귀찮은 걸 나한테 미룬다 이거지. 제발 저 손님이 내 손님이 아니길. 제발 저 손님이 내 손님이 아니길. 제발 저 손님이 내 손님이 아니길!

이라고 바랐지만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았다. 갑옷으로 추정되는 껍데기에서 뚝뚝 흘러나오는 새까만 진흙은 물론이고 딱딱하게 굳은 피부에 들러붙은 곰보 자국, 투구 안 가려져 보이지 않는 얼굴이 무서웠다.

어두운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센시티브한 묘족에는 그 꾸리꾸리한 기운이 읽혔다.

하지만 이 렌 지미가 누구신가. 손님이 누구라도 프로페셔널한 대접을 앞세우는 꼼꼼함의 대명사가 아니신가.

레라바시아를 위해 먼 길까지 걸음하신 손님이야 당연히 돈과 팁을 받아낼 수 있으면 겔박의 피해자든 아니든 아무렴 상관없었다.

“아이고, 수고하십니다요. 8번 객실에 묵을 손님이갑시…이시죠?”

오랜만에 손님을 받으려니 말이 다 꼬인다. 존댓말이 서툰 렌이 물어보아도 유령 갑옷처럼 선 손님은 귀신에 홀린 양반처럼 멍청하게 진흙만 떨구었다.

다른 손님을 대접 중인 타 객실 관리인들이 손님에게 실례라고 눈치를 주자 그가 실례를 무릅쓰고 손님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고생을 많이 하셨나 벌써부터 피로해지시면 어떻게 하십니까요. 일단 욕탕에서 푸욱 몸을 풀고 갑옷도 깨끗하게 씻지 말입니다요! 자, 자. 어서 오세요!”

물론 욕탕에 쓰는 약초에 따라 팁의 액수가 커졌다. 갑옷 세척 서비스도 추가 금액이 있다.

“으윽……! 이… 이쪽입니다요, 손님.”

꿈쩍도 안 하는 유령 갑옷을 있는 힘껏 밀치니 손에 끈적끈적한 진흙이 묻었다. 렌은 불쾌해서 꼬리가 바싹 부풀었지만 전문가답게 꾹 참고 손님을 객실까지 인도했다.

걸음을 따라 진흙이 길을 만들자 바쁜 와중에 일이 늘어난 허드레 일꾼들의 눈길이 사나웠다. 아니, 내 잘못이야?

“동쪽 겔박을 제대로 지나오셨나 보네. 요즘 비가 많이 와서 늪이 불었다고 하던데. 조심 좀 하지 말입니다요.”

그럼에도 손님은 답이 없었다. 더러운 진흙 때문에 기분이 말이 아닌 건가. 몇몇 깔끔 떠는 린족이 떠날 만큼 겔박은 크게 오염되긴 했다. 단모족에게는 최악의 땅이라서 잘 알았다.

목에 건 열쇠로 담당 8번 객실의 문을 여니 그 같은 소족이 쓰기에는 적당히 넓은 침대가 하나, 개인 욕탕이 하나 있는 방이 나왔다.

바깥 분합문을 열면 노천탕이 바로 있는 썩 괜찮은 자리였지만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라바시아 온천장에서 저렴한 축에 속했다.

“목욕부터 하시겠습니까요?”

진득한 썩은 내 때문에 코가 아프니 일단 그래 주기를 바랐다. 손님도 그걸 바랐는지 갑옷을 벗기는 관리인의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축 처져 보이는 어깨도 그렇고, 겔박을 가로질러 급하게 왕도로 올 만큼 위대한 정왕님을 인간에게서 지키고 싶은 걸까. 그 충성심만큼 처지가 불쌍했다.

“으윽, 진흙이 굳어서 잘 안 떨어지구만요. 조금만 더 세게 움직이겠습니다요.”

천으로 코를 가린 렌이 간신히 끈을 풀자 손님의 흉갑이 오래된 접착제에서 분리되듯 바닥에 떨어졌다. 흉갑 안에 고였던 진흙이 튀어 객실이 엉망이 되었다.

“끼약!”

하얀 벽지에 후두둑 튀어 붙은 검은 점을 본 렌이 비명을 질렀다. 매일 하는 청소가 보람차게 손님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이런 식으로 더럽혀지는 건 싫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런 더러운 손님이라도 받아야지 생계가 유지되는데.

“뭔 짓거리를 했길래 이 모양 이 꼴일깝쇼.”

“늪에 사는 괴물이 우릴 방해했거든. 꼬리를 쳐대는 바람에 별수 없이 입수했지.”

손님이 처음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를 들은 렌 지미의 귀가 팔락거렸다. 거족들은 말할 때 그르렁거리거나 쇠가 긁는 소리가 나서 호감이 아니지만 이자는 같은 소족이라서인지 듣기 편안했다.

“겔박에 몬스터도 살았습니까요? 갈가만티가 사는 동네인데. 나중에 만나면 주의해 줘야겠네요.”

“갈가만티?”

“아, 옛날에 같이 일했던 놈인데 린족의 어린놈이라 키가 저와 고만고만했죠. 소족인 줄 알았는데 한번은 그놈의 부모님을 봤는데 집채만 해서 놀라고 말았지 뭡니까.”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해버린 렌은 남자가 입을 다물자 전전긍긍했다. 그는 입이 사나워서 스스로 화를 부르곤 했다. 혹시 린족을 괴물이라고 착각한 건가 정정해 준 건데 기분 나빴나 그가 지레 반성했다.

오물을 뒤집어쓰고 사는 사람들이란 단모족으로서는 이해가 안 가지만 겔박에서 사는 린족을 처음 봤었던 렌도 몬스터로 착각한 적이 있었다.

“나리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요? 사막에서 오셨습니까요?”

“왜 물어보지? 목욕탕을 쓰는데 그게 중요하나?”

“손님도 정왕님을 지키겠다고 오신 건가 했습죠. 젊은 나이에 용기 있지 않습니까요.”

적당히 비위를 맞춰준 렌은 갑옷을 다 벗긴 손님을 욕탕으로 데려갔다. 선반에 가득 쌓인 약초들은 중앙 몰래 빼돌린 만큼 넘쳐나도록 있었다.

특히 못 쓰고 남은 귀한 약초들이 있어서 지금은 다른 객실보다는 좋은 탕을 만들 수 있었다. 저 손님도 단골로 만들어 골수까지 빨아먹을 생각에 렌 지미가 침을 꿀떡 삼켰다.

“하여튼 온 나라가 인간 때문에 난리입니다요. 가만히 있는 우리 요국에 왜 시비인 건지. 인간은 참 무섭습니다요.”

“나라 정세를 잘 아나 보네.”

“잘은 모르지만 옆에서 떠드는 것만 들어도 뭐. 인간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으면 절대 용서 못 할 거지 말입니다요.”

인간과 하프라고는 하지만 렌 지미는 한 번도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딱히 친하지도 않은 인간들 편에는 안 서게 되고, 사람들이 인간이 요국에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니 그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렌 지미는 굉장히 단순한 고양이었다.

“아이고 손님, 겔박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입수하셨나 봅니다요.”

투구마저 벗기자 정수리서부터 퐁듀처럼 주르르 진흙이 흘러나왔다. 그 기분을 상상하자니 오싹해진 렌이 털을 바싹 세웠다. 장모족인가 싶을 정도의 긴 머리칼과 수염이 검은 오물 사이로 보였다.

“이러고 여기까지 왔다니 대단하십니다요. 린족이 아닌 자들에겐 겔박의 흙이 좋지 못하니 좋은 약초를 써드리겠습니다요.”

“그걸 쓰면 피부병이 나아지나?”

“아주 끝내주는 놈으로 쓰면 피부 껍질이 하루 만에 벗겨져서 싹 낫습니다요. 근데 가격이 좀 나가는데…….”

말을 흐린 그가 힐끗 손님의 기분을 살폈다. 거짓말이고 별로 비싸진 않다.

몇 개 꿍쳐둔 걸 쓰는 거라 잘만 속이면 이 온천장 물정 모르는 손님을 잘 빨아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손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좋다며 뜨거운 물을 틀었다.

“약초가 우러나오는 동안 걸쭉한 것 먼저 씻겠지 말입니다요.”

렌은 판금 갑옷을 벗은 손님에게 물을 부었다. 어차피 갑옷 안에 입은 옷도 다 빨아야 할 텐데 손님도 그편이 나을 것이다.

그동안 손님은 언더아머를 벗었다. 갑옷 때문에 더 커 보였는데 맨살이 드러나도 손님은 소족치고는 몸이 두껍고 컸다. 멀리서 보면 거족하고도 헷갈릴 덩치다.

요국에는 다양한 종족이 섞여 산다지만 이 손님은 종족을 잘 모르겠다. 진흙 때문에 종족을 판별할 귀도 잘 안 보였다.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울 테니 눈 꼭 감으십쇼.”

렌이 적당히 달궈진 물을 바가지에 퍼서 손님에게 살살 흘렸다. 진흙이 덮인 머리를 씻기니 굳지 않은 오물이 폭포처럼 흘렀다.

하수도가 막히는 건 싫지만 그만큼 돈을 뜯어내면 되니 렌은 쌓이는 오물을 애써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살 진흙을 털어내니 검은 머리칼과 거친 피부가 조금씩 드러났다. 맨 살갗이 있는 걸 보면 나랑 같은 단모족인가. 어린 랑족? 덩치를 보니 그런 느낌인데.

사사로운 궁금증을 해소할 겸 살살 물로 씻어가며 귀를 찾아보는데 굳은 진흙 때문에 만져지지 않았다. 고통스러울 법도 하지만 차분한 걸 보니 어려도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인가 보다.

“손톱 정리도 해드릴깝쇼?”

“그런 것도 해주나?”

“예, 예. 부탁하시면 뭐든 해드립니다. 수염도 정리해 드리고, 저 갑옷도, 검도 새것처럼 만들어드립죠. 대신…….”

그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실실 웃었다. 손님은 저래 보여도 돈이 꽤 많은지 별반 반응이 없었다.

히죽거린 그는 땡잡았다며 손님의 몸을 뒤덮은 진흙들을 열심히 씻어냈다. 그러니 둥그런 오물 공 같던 손님이 좀 사람다운 모양새가 나왔다.

“들어오십죠. 온도가 딱 좋습니다요.”

적당히 진흙을 덜어내자 렌은 굳은 겔박의 진흙을 녹이고 피부병을 치료하는 영초 탕을 소개했다.

밀도와 점도가 높은 탕이 처음인지 머뭇거리던 손님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과 손짓하는 렌을 번갈아 흘겼다. 렌이 기다리고 있으려니 손님이 결국 탕에 몸을 뉘었다.

“이상한 촉감이네. 그 겔박이라는 곳의 늪 같아.”

“전혀 다릅니다요. 푹 몸을 누이면 박피가 될 겁니다요. 개운하니 피부가 매끈해져서 기분이 좋습죠. 손님처럼 단모 손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탕입니다요.”

그동안 손님이 흘려놓은 진흙들을 하수구로 죄다 밀어 넣은 렌은 갑옷도 물로 쓸어내 한편에 세워두었다.

진흙 때문에 몰랐는데 갑옷도 꽤 좋은 놈이었다. 가볍고 단단해 보인다. 구하기 힘든 금속으로 만든 듯한데 저 손님은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임에 틀림없었다.

손님은 오랜만에 하는 목욕이 좋은지 약초탕에 얼굴까지 푹 담갔다가 꺼냈다.

“이 여관은 큰 괴무… 덩치들이 많군. 너처럼 작은 애가 잘도 다니네.”

“묘족은 소족이니까요. 손님도 소족 아닙니까?”

“난 평범해.”

손에 가득 약초물을 받아 세수하는 손님은 슬슬 떨어져 나가는 굳은 진흙을 살폈다. 뭐든 별난 손님을 본 렌은 진흙 박탈을 도와주기 위해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걷어 욕탕으로 들어왔다.

“손님은 정왕님께 가려는 겁니까요?”

“내 행적을 알아서 뭐 하게.”

“에이, 심심한데 말상대나 좀 해줍쇼. 요즘 그 문제로 난리인 건 저도 압니다요. 아니, 온 요국이 난리지 않습니까요.”

일단 손님의 다리부터 들어 올린 렌은 거친 천으로 거뭇거뭇한 것들을 먼저 벗겨냈다. 조심스레 딱딱한 진흙을 뜯어내니 단모족 특유의 맨들맨들한 피부가 드러났다.

지금은 이 약탕에 힘입어 굳은 진흙의 큰 부분만 떼어내고 다음 약탕으로 박피할 것이다.

발부터 시작해서 진흙을 떨어뜨리던 렌은 시선이 느껴지자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은 가면처럼 얼굴에 진흙이 들러붙어 있었다.

“아이고야, 내 정신 좀 봐. 답답하셨겠네. 제가 깜박했습니다요.”

손님의 검은 머리를 뒤로 넘겨준 렌은 눈이 잘 보이게끔 천으로 살살 얼굴을 닦아냈다. 상처가 날까 싶었는지 손님이 못마땅하게 물었다.

“잘되는 거 맞겠지?”

“에이, 제가 몇 번 겔박에 발 잘못 디딘 단모족 손님을 받아봤는데 깨끗하게 씻겼습니다. 걱정도 팔자셔라.”

머리도 약탕을 적셔가며 진흙을 떨쳐내는데 어째 이만큼 했으면 귀가 보일 법도 하지만 랑족의 귀가 솟아날 기미가 없었다.

모족은 귀에 진흙이 들어가면 염증이 생겼다. 그걸 핑계로 손님의 정수리 부분을 찾아 귀를 먼저 씻기려던 렌은 아까부터 뭔가 이상했다.

“머리도 감겨주나?”

“물론 돈을 주신다면야 해드립니다만. 손님, 귀가 어디에 있는 겁니까요?”

귀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만져지지 않았다. 당황한 렌이 더듬거리다 점점 두개골 옆쪽으로 손이 내려왔다. 사람이 이 정도로 귀가 아래에 있을 수 있나?

어리둥절한데 그곳에 우둘투둘한 뭔가가 만져졌다. 두 눈으로 확인해 보니 진흙이 씻긴 귀가 머리칼에 가려져 있었다.

“손님 귀가 좀 많이 아래에 있…는데……?”

작고 털이 없는 귀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사고가 마비되었다. 동그란 귓바퀴가 털이 없이 매끈했다. 설마.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이 귀가 시사하는 의미가 뇌리를 번뜩 스친 렌이 벌벌 떨며 뒤로 물러섰다. 끈적끈적한 약탕이 뒷걸음을 방해했다.

“이… 인간… 인간이다! 인간이― 읍!”

“조용히 해.”

소란이 일기 전 잽싸게 렌의 입을 막은 손님은 약탕이 코로 들어갈 만큼 아래로 그를 억눌렀다. 드디어 진흙이 떨어진 얼굴을 보자니 이제야 알겠다.

둥그런 동공도 그렇고, 뾰족하지 않은 송곳니도 그렇고 냄새가, 가까이 다가가니 약탕과 겔박의 늪 냄새에 가려졌던 인간 냄새가 났다.

아뿔싸. 세상에 저자는 정왕을 죽이러 왔다던 인간 무리 중 하나임에 틀림없었다! 돈 벌겠다고 인간을 요국의 자랑 레라바시아에 끌어들이다니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도 그렇지 미치고 말았구나, 렌 지미!

“몰래 지나가려고 했건만.”

요국의 왕과 관련한 의뢰 때문에 이 땅을 밟았던 인간 류제 신리는 문 하나만 열면 거족 요국인들 천지인 이곳에서 인간임을 들키기엔 곤란했다.

마왕성에 향하는 임무도 완수하기 전이다. 이번 의뢰에 얼마가 걸려 있는데 그걸 이 작은 고양이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다.

어렵사리 구한 요국의 지도로 지름길을 통과한다고 겔박인지 뭔지를 건너려던 그는 늪에서 튀어나온 거대 도롱뇽이 꼬리를 쳐대는 바람에 더러운 늪에 떨어지고 말았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로 간신히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왔지만 동료들은 보이지 않고 늪지대는 계속되었다. 날이 갈수록 흙이 점점 굳어가 몸이 가렵고 아파서 망할 요국까지의 의뢰를 후회하던 참이었다.

씻을 곳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고, 동료와 합류할 방법은 생각 안 나고. 고통과 후회 끝에 걷던 류제는 돌연 펄럭이는 오색의 천이 화려한 온천장을 발견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거족들의 틈바구니인지도 모르고 바람에 날리는 등롱의 행렬에 홀린 그를 손님으로 착각한 건지 들키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끝까지 숨길 수 있을 거라 자만하지는 않았지만 이 조그마한 고양이의 입을 막아내는 건 쉬웠다.

이놈만 닥치고 있다면 조용히 몸을 씻고 하룻밤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 아닌가. 임무의 한계로 인해 몇 달간 잠자리가 험했는데 손에 잡히는 기회를 쓰지 않는 놈이 머저리였다.

“난 말썽을 일으키러 온 게 아니야. 너도 귀찮아지는 건 싫지? 돈이 필요하지 않아?”

인간이 살랑살랑 먹이를 던져 유혹했다. 그야 당연히 렌에겐 돈이 필요하다. 저 손님이 그걸 눈치챌 만큼 수전노처럼 보였다니 렌은 자신의 행태가 부끄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을 위해서 요국을 배신하라는 말인가?

“날 숨겨준다면―”

하지만 여기서 인간을 내쫓는다면 이번 달 객실 대금은 절대 못 냈다. 렌 지미는 요국인의 자긍심과 돈 사이에서 고민했다.

“값의 배를 쳐줄게.”

그렇다면 고민할 게 뭐 있나. 홀라당 낚인 렌 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웃은 류제는 약탕에 가라앉은 고양이의 숨이 간당간당할 것 같자 친절하게 손을 떼어주었다.

“푸하! 켈록, 켈록! 이 무자비한 인간 같으니!”

약탕이 코에 들어가 매콤함을 느낀 렌이 푸르르 털었다. 찡한 코를 붙들고 인간을 노려보자니 인간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떨어지다 만 진흙을 강제로 뜯어냈다. 렌은 굉장히 못마땅했다.

딱딱한 진흙을 저런 식으로 벗겨내면 피부에 상처가 나곤 했다. 드문드문 올라온 피부병이 거슬렸던 류제는 가려움을 참고자 연거푸 세수를 했다.

저 요국인 왈, 이게 피부병에 좋다고 했으니 많이 문지르면 효과가 클 것 같았다.

“정왕님에게 해를 끼칠 인간을 숨겨주다니. 제길! 요국인으로서 수치야!”

“싫으면 발설해도 돼. 대신 내가 여길 좀 들쑤시게 되겠지. 난 태연자약하게 도망갈 거고, 돈은 안 낼 거야. 손해 보는 게 누굴까 생각해 보라고. 귀여운 고양이 양반.”

진흙이 거의 떨어진 얼굴을 대충 닦은 류제가 고양이 귀 수인을 품으로 끌었다. 두꺼운 팔에 목이 갇힌 렌이 버둥거렸다.

코가 가슴팍에 박히니 인간 냄새가 심하게 났다. 음험한 기운이 난다 싶더니 인간이라니. 역시 묘족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 내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마땅한 보답을 약속하지.”

태평하게 말한 류제는 욕탕에 푹 몸을 뉘었다. 관리인인데 손님과 목욕을 하게 된 렌은 뭐 이런 게 다 있나 싫다고 발버둥을 쳤다.

귀를 붙잡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소름이 끼친다. 인간 주제에 묘족의 귀를 잡는 건 상대에게 수치를 주는 행위라는 걸 모르는 건가!

“안 해. 발설 안 한다고! 네가 레라바시아에 왔다는 걸 입 다문다고 약속하면!”

“내가 거짓말쟁이를 싫어한다는 걸 말해줬나?”

낚시를 하듯 손가락을 고양이 입에 걸어 주욱 낚은 류제가 키득거렸다. 반대로 렌은 사색이 되었다.

정왕님의 말이 맞았다. 미지 속에 있던 인간은 이토록 잔인한 존재였단 말인가. 상황을 타파하고 싶었던 렌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까 놔!”

“고마워. 8번 객실 렌 지미 관리인은 거짓말을 안 한다고 알고 있을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류제가 손을 놓았다. 이름을 들키자 렌이 후다닥 도망갔다. 독심술사에게 꼬리를 부풀던 그는 목에 건 명찰을 확인하고 이마를 쳤다.

서비스에 감동해서 재방문하는 손님이 지명하기 편하게끔 달고 있는 거지만 이런 식으로 이름이 알려질 줄은 몰랐다.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말하는데, 정왕에게 해를 끼치러 가는 건 아냐. 부탁받은 일을 하러 가는 거라 걱정할 일은 없어.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

“하지만… 사람들은… 저… 정말이지? 너야말로 거짓말하는 거 아냐?”

“요국인들의 기발한 상상력은 알 바 아니지만 내가 받은 의뢰는 다른 거야.”

대충 남은 진흙을 문댄 류제가 탕에서 나왔다. 질척한 약탕물이 슬라임처럼 살에 붙었다가 흘러내렸다. 아직 굳은 진흙이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거면 족한 건지 인간은 욕탕 한쪽에 있던 잠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했다.

“자… 잠깐!”

하얀 도화지에 티끌이 하나 거슬리듯, 이 일에 몸담은 지 오래인 렌은 손님이 저대로 옷을 갈아입는 게 성에 안 찼다.

지저분하게 자라난 수염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관리하지 못한 손톱은 어떤가. 발바닥 굳은살은 어떻고. 어디서 레라바시아 온천장 8번 객실 렌 지미의 서비스를 받았다고 말도 못 할 만큼 부끄러웠다.

지금은 소족 손님 부족 현상으로 통계에도 들지 못하지만 잘나갔을 때 렌은 완벽한 서비스와 손님 관리로 소문나 레라바시아 매출 상위권을 유지했다.

긴 여정으로 지친 이들의 모든 피로를 달래주고 털과 비늘을 대신 가다듬는 온천장의 직원으로서 저런 되다 만 상태는 양심에 찔렸다. 렌 지미는 직업에 자부심이 큰 프로페셔널한 온천지기였다.

“아직 안 끝났으니까 기다려.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

인간임을 알자마자 접대용 이상한 존대어에서 반말로 돌아섰지만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게 웃기다.

류제는 용건이 뭐냐며 알몸으로 서있는데 그때다 싶어 욕탕의 물을 뺀 렌은 떨어져 나간 진흙들을 퍼 나르더니 금세 다른 약탕을 준비했다.

“최고의 온천지기 렌 지미 님의 풀코스는 지금부터 시작이거든. 일확천금이나 준비하셔. 인간 돈은 안 받으니까 그렇게 알고.”

정왕님께 해를 안 끼친다고 한다면 인간이든 말든 돈만 최대로 뽑아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금액을 두 배로 쳐준 댄다. 풀코스로 단물을 쪽쪽 빨아먹지 않으면 정신적 피해 보상 등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뭐? 하하하, 진심이야?”

아까까지만 해도 꼬리를 부풀이며 두려워했던 주제에 당당하게 소리치는 오만한 고양이를 보자니 웃음이 터진다. 요국 사람들은 죄다 나사가 하나씩 빠진 건가.

기특해서 구석에서 기다려준 류제는 약탕이 준비되자 질질 끌려가 향이 알싸한 새 탕에 몸을 담갔다. 몸에 잔류한 썩은 진흙 내를 없애는 허브가 지친 마음을 치유했다.

이 약탕이 가장 단단히 굳은 흙을 녹일 것이다. 류제가 탕에 앉아 몸을 불리는 동안 약효가 잘 나게끔 약초망을 흔들어 우려낸 렌은 인간을 경계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렌 지미의 생에 없던 미지의 인간이다. 반쪽 핏줄의 정체성은 궁금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가만히 움직이지 마.”

“내가 개야? 아까부터 기다리라니, 가만히 있으라니.”

“하여튼! 움직이지 마.”

인간은 무섭지만 전문 온천지기라는 자긍심을 되새긴 렌이 인간의 발을 냉큼 잡았다. 약탕을 즐기던 류제는 고양이가 뭘 하나 가만히 살폈다. 그러더니 발바닥이 살금살금 간질간질해졌다.

적신 천으로 발가락 사이사이를 꼼꼼히 닦은 그는 발바닥 중앙을 눌러 굳은 근육을 풀었다. 발꿈치를 들고 걷는 묘족과는 달리 발 전체를 사용하는 인간답게 딱딱한 굳은살이 뒤꿈치까지 박여 있다.

진흙이 박힌 발톱까지 닦은 그는 뒤꿈치는 물론 복숭아뼈의 굳은살을 딱딱한 솔로 긁어냈다. 류제는 간지러운 느낌을 참기 힘들어 한참을 깔깔거렸다.

종아리부터는 드문드문 남은 진흙을 꼼꼼하게 갉아낸 렌은 겸사겸사 가자미근을 마사지했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종아리 근육을 살살 누르는데 그것조차 아픈지 인간은 자꾸만 발을 빼려고 했다. 표정 일그러지는 것 좀 봐. 쌤통이다.

“거기 누르지 마. 아파.”

“엄살 부리긴. 쓴 근육은 좀 풀어. 뭉치면 건강에 안 좋다고.”

“알았으니까 살살 부탁해. 이봐, 고양이. 내 말 듣고 있어?”

손님의 비명이 익숙한 렌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인간도 오래 걸으면 요국인과는 아픈 곳이 같은 모양이다. 고된 여정으로 다리가 부은 손님에게 이 마사지를 하면 처음엔 싫어해도 지명 손님이 늘었다.

쭉쭉 가자미근을 따라 종아리를 마사지하고 허벅지까지 올라온 손에 인간의 몸이 움찔했다.

“보기와는 달리 꼼꼼하구나?”

“인간 주제에 무시하지 마. 난 전문가거든? 겔박의 진흙은 모족에게 취약해서 다 털어내 줘야 나중에 피부병 안 도지고 편해.”

“모족? 묘족이 아니라?”

“묘족은 부족 이름이고. 그것도 몰라? 털이 있는 사람 말이야! 나처럼.”

털? 류제는 탕에 담긴 다리를 꾹꾹 마사지하는 고양이를 이리저리 살폈다. 털이 있다기엔 저 고양이는 귀와 꼬리가 솟은 것 말고는 인간처럼 매끈한 피부를 가지지 않았는가.

요국인과는 영 접점이 없고 요국 의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요국 종족은 여태 구별 못 했다. 인간은 피부색으로 종족을 구별하는데 요국은 그게 아닌 것만 알았다.

“아아, 그래서 단모족이군.”

인간처럼 피부에 짧은 솜털이 있는 종족을 요국에서는 단모족이라고 하는군. 그게 아니라 수북하게 털이 난 종족을 장모족이라 하고. 린족은 뱀처럼 비늘이 있는 종족인가.

“요국 사람들은 신기하네.”

“구경거리 아니니까 쳐다보지 마. 불쾌하게 말이야.”

쌀쌀맞아진 고양이가 하악질했다. 그래도 돈을 준다니 열심히 봉사를 하는 모양새에 류제는 남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요국인들은 마왕의 어떤 발언 이래로 인간을 원수처럼 삼던데 이 요국인은 그 정도로 돈을 벌고 싶은 건가 불쌍했다.

“후, 시원하네.”

긴장했던 나날 동안 굳었던 근육들이 섬세한 손길에 풀어지니 이런 극락도 없었다. 손이 닿지 않던 등도 시원하게 밀어주고 목과 귀 뒤, 어깨까지 눌러준 고양이의 마사지는 그가 근래 받아본 것 중에 최고였다.

아, 자주 들르는 마을에도 이런 마사지사가 있으면 매일 갔을 텐데. 요국은 이번이 마지막이라서 아쉽다. 아니면 ‘그 녀석’한테 대가로 부탁하는 것도 좋지. 임무 끝나면 말해볼까?

“못 들었어? 비누칠을 할 거니까 밖으로 나오라고 했잖아!”

적극적이고 꼼꼼하지만 말하는 싸가지가 들을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류제는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고양이에게 예, 예 대충 말대답하고 욕탕 밖으로 나갔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시꺼멓던 몸이 평소처럼 깔끔해졌다. 뜨거운 약탕에서 받은 마사지 덕분에 몸이 가볍고 피부도 덜 가려웠다.

“이 비누는 민감한 장모족이 쓰는 건데 박피된 피부에 습기를 줘. 엄청 비싼 거야.”

뜯어먹겠다는 야욕을 숨기지 않은 렌은 웃음을 터뜨리는 인간을 무시하고 솔로 살살 비누칠을 시작했다.

염증이 돋아 딱딱하게 굳었던 피부가 마법처럼 벗겨지며 뽀얀 새살을 드러냈다. 사기인 줄 알았더니 값비싼 포션을 들입다 붓는 것처럼 효과가 대단했다.

고양이는 그의 머리까지 꼼꼼하게 감겼다. 두피를 살살 누르며 귀 뒤부터 이마께까지 야무진 손바닥으로 문대는데 없던 두통도 사라질 만큼 기분이 좋았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아, 안 해!”

날카로운 면도날을 꺼내 덥수룩한 수염을 깎아준 렌은 드러나는 인간의 턱이 날렵하고 아름다워서 조금 의외였다. 이어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안면까지 마사지해 주니 심했던 각질이 벗겨지며 인간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예쁜 콧대를 따라 광대를 마사지하는데 소족보다 얼굴이 작아서 파지가 편했다. 거꾸로 보아도 제법 잘생겼다.

약탕의 효과로 생기가 도는 붉은 입술이 탐스럽기까지 하다. 인간 주제에 속눈썹도 참 길었다. 인간의 미의 기준이 묘족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미남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뭐!”

눈을 감은 인간을 관찰하다 지레 놀란 렌이 아닌 척 크게 외쳤다. 인간 주제에 불평은 용서할 수 없다. 내 서비스가 별로란 말인가! 신경질적으로 물으니 류제가 아까부터 거슬리던 곳을 가리켰다.

“여긴 따로 안 해줘?”

그가 가리킨 곳은 제 중심부였다. 비누칠도 여태 이 부분만 안 하고 있지 않나. 요국인에게 맡기기엔 소중한 거시기이니 스스로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안 쓰는 솔을 넘겨받고 싶었다.

“아… 그… 그건……! 할 거야. 주… 중요하니까 마지막에 하려는 거지.”

얼굴이 새빨개진 렌은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냐며 투덜거렸다. 인간은 남이 거기를 만져주는 게 거리낌이 없나?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솔 좀 줄래?”

“풀코스라고 했잖아. 전문가에게 맡겨. 물론 중요 부위는 별도 요금 추가.”

그까짓 것 별것 있냐며 정면에 쭈그려 앉은 렌은 처음 보는 인간의 것을 용기내서 흘겼다. 솔직히 거시기 씻겨주는 요금을 내는 손님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긴장된다.

뭐, 제 것을 씻을 때와 똑같이 하면 되겠지. 침을 꿀꺽 삼킨 렌은 부드러운 천으로 그것을 감쌌다.

“윽, 진짜 해줄 줄은 몰랐는데. 괜찮으니까 놔줄래?”

“얌전히 있어. 뜯어버리기 전에.”

무서운 말을 잘도 한다. 남자의 중요 부위를 적의를 품은 요국인에게 맡겨도 되려나 걱정되려는 찰나 고양이는 침착하게 기둥을 문질렀다.

인간의 몸은 잘 모르지만 공 두 개와 작대기는 남자라면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렌은 납득했다.

“윽, 아니. 진짜, 정말로 괜찮으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부끄러워해서 말만 우렁찰 줄 알았는데. 뜨거운 물에 오래 있어 늘어진 구슬을 귀한 접시 닦듯 문지르질 않나, 사타구니와 허벅지를 잇는 부분까지 마사지해 주니 꼼꼼도 하다.

뒤이어 비누칠된 천으로 육봉을 감싸 문지르는데 요국에 들어오고 몇 달간, 욕구를 풀 개인적인 시간이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피가 몰렸다.

“왜 딱딱해지는 거야? 발정기야?”

요국인은 보통 발정기가 아니면 성적인 욕망이 극소했다. 인간은 상시 발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잠깐 잊은 렌은 이 끔찍한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류제가 얼굴을 감싸자 별일이라며 혀를 찼다.

“뭐 어때. 남자끼린데.”

“대딸도 서비스야? 진심으로 놀라운데.”

“대딸?”

“대신 자위시켜 주는 거.”

“거시기 뜯어버린다. 죽을래?”

이 음란한 인간 같으니. 여기는 유흥업소가 아니란 말이다. 발정기는 알아서 관리할 줄 알아야 진정한 어른 아닌가. 짜증 나게 거시기는 크더만 속은 덜 자란 놈이구만.

하여튼 거시기도 깨끗하게 닦아내자 발기된 그것은 알 바 없는 렌이 천을 휙 던졌다. 그는 개소리를 하려는 인간의 정수리에 뜨거운 물을 사정없이 부었다.

“아뜨……! 뜨거!”

세찬 물에 쓸려나갈 뻔한 류제는 남자에게 발기한 제 것이 수치스러웠다. 한창 젊은 나이인데 몇 달 동안 자위도 못 하고 쌓여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국인, 남자, 하물며 고양이한테 발정하는 건 인간으로서 용납이 불가능한 범위였다.

“야, 손님. 오일 바를 거니까 저기 누워.”

아직도 남은 건가. 값을 두 배로 쳐준다고 했더니 가진 서비스를 모조리 해줄 모양이다. 뭐 상관없지. 오일 마사지라. 아까처럼 몸을 시원하게 눌러주는 거라면 류제는 대환영이었다.

“거긴 안 해줘도 되니까 무리하지 마.”

“아 시끄러!”

얼굴이 시뻘게진 렌이 하악질했다. 손톱으로 팍 긁어버릴까 보다. 투덜거리며 피로 회복에 좋은 고급 향유를 등에 뿌린 그는 아까 다 하지 못한 마사지를 이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던 렌이 뭉친 근육을 풀어내 주니 근육 사이로 피가 돌아 느슨해졌다. 진땀을 빼며 마사지하는 고양이 덕분에 류제는 근래 들어 최고의 휴식을 취했다. 하아, 진짜 좋다. 요국에서 호사를 누릴 줄은 몰랐는데.

가끔 몰래 와서 즐길까. 몸이 달아오르며 여행의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야.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 겔박의 늪에 빠져야 한다면 고민되는걸.

요국 임무는 고생뿐인 여정이다. 그 녀석들하고 함께 있으면 좋은 방들은 다 자기네들만 차지한단 말이지. 허드렛일은 다 나한테 맡기고.

이번에도 봐.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비키 그녀석이 맞다고 고집 부려서 나만 늪에 빠져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잖아. 이번 의뢰만 끝나면 당장에 의절하고 만다.

“거기 좋아. 계속 문질러 줘. 후, 시원해.”

“야하게 말하지 말아줄래? 레라바시아는 야한 서비스 안 하니까!”

“등 근육 말하는 거야. 이상한 놈 취급하지 마.”

인간 주제에 잘생겨 가지고는 좋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내뱉으니 지레 찔렸다. 다 됐다고 등을 찰싹 때린 렌은 그에게 가운을 입혀 스파용 리클라이너에 앉혔다.

“손톱 내밀어.”

보습을 위해 축축하고 향긋한 천을 류제의 얼굴에 대준 렌은 피부가 수분을 머금을 동안 손톱을 정리하기로 했다.

인간은 손톱 관리도 안 했는지 건조해서 깨지고 제멋대로 자라났다. 상식이 있다면 손톱 관리는 기본 중에 기본 아냐?

항상 스크래치로 자기 전에 손톱을 정리하는 렌은 이해 불가능했지만 인간 손톱은 평평한 데다 숨기는 것도 불가능하니 그러려니 한다.

“그게 그러니까…….”

“짧게 잘라줘. 하얀 부분이 잘 안 보이게끔.”

인간 손톱을 어느 정도 관리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던 고양이에게 류제가 친절하게 덧붙였다.

렌은 다 알고 있다며 캭 불평하고는 또각또각 손톱을 잘랐다. 줄을 갈아 발톱까지 모난 곳 없이 정리해 준 렌은 깔끔해진 인간을 보고 만족했다.

인간이든 소족이든 그의 손에 걸리는 순간 겔박 따위 이렇게 정복되는 거다.

목욕을 끝내고 나온 류제는 거울을 보고 감탄했다. 피로와 고된 여정으로 칙칙했던 얼굴에서 반짝반짝 윤이 났다.

“온몸에서 광채가 나네.”

“바로 이 렌 지미 님의 능력이지.”

그 능력은 진짜라서 류제는 심술궂게 반박하지 않았다. 덕분에 깊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본의 아니게 거시기가 발기되었던 아까부터 몸이 좀 달아오르는 것 같긴 한데 그걸 노곤함과 헷갈린 류제는 렌을 따라 객실 화장대에 얌전히 앉았다.

“머리 말려야 하니까 기다려.”

화장대에서 마법으로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원형 통을 꺼낸 렌은 그걸로 류제의 검은 머리칼을 들썩였다. 긴 여정 동안 자르지 못한 머리는 말라가며 얼굴을 반절 이상을 가렸다.

손으로 살살 머리를 풀어 물기를 날리던 렌은 누군가 객실 문을 두드리자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말리라며 요상한 아티팩트를 류제에게 던졌다.

신기한 물건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류제가 버튼을 잘못 눌러 뜨거운 바람이 확 뿜어져 나왔다. 그의 머리가 바람맞은 사자처럼 되었다.

그동안 객실 문밖을 확인한 렌은 중앙에서 객실 투숙객에게 마련해 주는 야식을 건네받았다. 낯선 조류 구이와 두 병의 쌀 증류주였다.

혹시 고양이가 바깥과 내통하여 정체를 까발릴까 일어날 준비를 하던 류제는 트레이에 담겨 나온 거나한 술상을 보고 감탄을 내질렀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막 도축해 양념한 롤랑시를 물이 들어가지 않게 감싼 다음 따뜻한 물에 하루 동안 담가 익혀서 겉 부분만 불로 지진 고기야. 이걸 먹게 되다니 인간 주제에 호사지, 암.”

차려진 진수성찬에 류제도 눈이 돌아갔다. 요국에서의 안락하고 편안한 밤이라니 거듭할수록 놀랍다.

대충 머리를 정리하고 테이블에 앉은 류제는 습기가 정체된 공기 때문인가 방금 목욕을 했는데도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근데 이 방 조금 덥지 않아?”

“목욕하고 나오면 원래 그래, 멍청아.”

손님한테 심한 말을 지껄이는 저 발칙한 고양이를 어째야 할까. 이제는 경계심은 하나도 없고 인간을 10년 지기 친구처럼 구는데 류제는 고양이가 이토록 단순한 동물인지 처음 알았다.

뭐, 요국인은 체온이 높은가 보지. 겉이 바삭바삭 따끈따끈한 조류 요리를 앞에 둔 류제는 손짓을 해서 고양이를 불렀다.

“같이 먹자. 너도 고생했으니 양보할게.”

“알긴 아는구나. 난 사양 안 해. 할인도 안 해줄 거야.”

“괜찮으니까 먹어.”

혹시 먹지 못할 것을 넣었나 확인한 거지만 의심할 줄 모르는 렌은 흔쾌히 다리 하나를 잡아서 맛있게도 먹었다.

시험하지 않은 척 고기를 몇 점 찔러 먹은 류제는 음식보다는 다른 부족한 뭔가가 쿡쿡 하반신을 찔렀다.

“뭐야. 깨작깨작 먹으면 복 달아난다. 술은 안 마셔?”

“취한 사이에 네가 뭘 할 줄 알고?”

장난스러운 태도였지만 류제는 여전히 요국인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태평한 성격인 렌은 류제가 마시지 않는 증류주를 병째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풀코스는 오랜만이라 힘들어 뒤지는 줄 알았는데 비싼 술이 술술 잘도 들어갔다.

“으… 진짜 너무 더워. 왜 이렇게 땀이 나지?”

독한 술을 마셔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는 사람은 렌 지미가 아니라 류제 그였다. 설마 먹을 것에 뭔가를 넣은 건가. 그렇다고 치기엔 저 고양이는 너무 멀쩡해 보였다.

“뭐야. 아까부터 왜 그렇게 헉헉거려? 발정기?”

“넌 안 더워?”

“알딸딸하니 딱 좋은데. 부채라도 부쳐줄까?”

렌은 두 병째 술을 들이켰다. 류제는 근질근질한 기분이 하반신으로 쏟아져서 미칠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하다. 이런 독약은 들어본 적 없다. 야식으로 나온 고기에는 특별한 게 들어가 있지는 않던데.

“제길, 그 약탕에 뭔가 들어있던 게 틀림없어. 그때부터 이상해졌다고!”

몸이 이렇게까지 안절부절 흐트러진 적이 없던 류제가 드디어 그것을 지적했다. 술을 마시다 오랜 연구의 자긍심 덩어리인 수제 약탕을 무시받자 알딸딸해진 렌이 꼬인 혀로 분개했다.

“뭐 이 자식아? 내가 얼마나 신경을 써서 만들었는데. 그 말 취소해!”

“바른 대로 말해. 제길, 요국인과 인간이 차이가 이런 것도 있었나?”

“취소하라고, 망할 인간! 내 약탕엔 피로 회복에 좋은 것만 들어갔어. 시에타나, 홋, 메멕, 장여화, 오일은 최고급 향유인 드레카사민! 네놈이 발정기인 게 왜 내 탓이야?”

그걸 들을 때마다 류제의 눈썹이 찔끔찔끔 미동했다. 세상에 이유 없는 결과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약초들 다 들어본 적 있어. 어느 방면에서 하나같이 이름값 하는 놈들이라 의뢰가 자주 들어오거든.”

“그렇지? 엄청 신경 썼단 말이지. 인간 주제에 영광인 줄 알아. 에헴, 알면 팁이나 더 내놔.”

“뭘 으쓱해 있어? 죄다 정력제 재료잖아, 이 멍청한 고양아!”

진실을 알아챈 류제가 절규했다. 그가 저것들을 아는 이유는 저 약초를 구한다는 의뢰가 보드에 자주 붙었기 때문이다.

모험가들에게 의뢰를 하는 이유는 다 본인만의 사정이겠지만 약초 하나하나 효과가 발군이라고 했다.

가난했던 시절 이것들의 채집 의뢰를 받았던 류제는 만족하는 의뢰인들을 보고 그게 그만큼 효과가 좋나 상상만 했지 직접 써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것 없이도 거시기는 알아서 잘 반응하니 그와 연이 없을 약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즉효성에 성욕 증진 발군이라는 약초를 몇 가지나 쓴 거야? 단순한 고양이 같으니. 좋다고 다 때려 부으면 장땡인 줄 아나!

“냥?”

버럭 지르는 고함에 샐쭉해진 렌은 영문을 모르겠다며 눈을 끔벅거렸다.

국민에 속한 대부분의 종족이 번식을 위한 발정기가 따로 있는 요국에는 인간처럼 정력제라는 개념이 없었다. 멍청하다고 말하는 걸 보니 나쁜 의미인 것 같은데 정력제라고 해도 잘 모르겠다.

“정왕님만큼의 힘이 나는 약이라고? 좋은 거 아냐?”

“정왕하고는 코빼기도 상관없어. 아랫도리 힘이 불끈불끈해지는 약 말이야!”

“불끈불끈? 그게 뭐가 나빠? 힘이 나면 좋은 거잖아. 좋은 게 좋은 거지.”

천하태평하다. 요국인들이란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한다. 위험한 제조물을 무책임하게 만든 렌은 다 떨어진 술병을 탈탈 털어 남은 방울 하나까지 혓바닥에 쏟았다.

“불끈불끈해져서 거시기가 선다고! 원하지도 않을 때 거시기가 서는 걸 누가 좋아해!”

인간으로서 위엄을 세우던 류제는 요국 한가운데에서 발정해 버린 거시기가 통탄스러웠다. 저 망할 고양이.

이것도 날 방심에 빠뜨리려는 계략 아냐? 멍청하게 생겨가지곤 정력제로 정신이 회까닥 나가있는 틈을 타서 밖에 알리려는 걸지도 몰랐다.

“인간은 참 번거롭구만. 안 세우면 되는 걸 가지고. 가라앉는 약이라도 타다 줄까?”

쯧쯔 혀를 차며 손을 내저은 렌은 일을 복잡하게 만든 주모자인 주제에 자기랑 하등 상관없는 일이라며 나 몰라라 했다. 그러면서 야식을 자기 혼자 다 먹어치울 모양새가 소풍 나온 학생처럼 태평했다.

“우냑!”

그 꼴에 왠지 화가 난 류제가 렌을 업어 쳐 침대 위로 던졌다. 정정한다. 그 정도의 머리는 안 굴러가는 것 같고, 풀코스라며 요금을 뜯어내려는 셈인 게 틀림없다.

“뭐 하는 짓이야?”

“가만히 있어. 어차피 또 서비스겠지.”

진심으로 어이없어하는 렌을 아랑곳하지 않은 류제는 하반신에 몰린 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기껏 한 목욕이 아까울 정도로 땀이 흘러내리는데 뭐 대수인가.

더 이상 못 참겠다. 이놈이 떠벌리지 못하도록 감시는 해야겠고, 열을 빼는데 집중하는 동안 아무 짓도 저질러서는 안 되니 류제는 고양이의 배를 방석 삼아 깔고 꾹 눌러앉았다.

렌은 인간의 다리에 갇힌 꼴이 되었다. 인간에게 배를 보이다니 치욕이 따로 없다. 근무 중인데도 당당히 술에 취해 혀가 꼬인 렌이 위엄이라고는 쥐뿔도 없게 투덜거렸다.

“당장 비켜, 이 무례한 인간 자식.”

“네가 자초한 거잖아!”

렌은 반항하고 싶었지만 알딸딸해서 생각이 안 돌아갔다. 어차피 저 인간은 내일까지 그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위협을 가하지 않을 거라 멋대로 치부하는 게 편했다.

이 인간이 뭐 하려나 내버려 뒀더니 돌연 가운 사이로 발기된 그것을 꺼내 들었다. 그제야 식겁한 렌이 털을 바싹 세웠다.

“뭐 하는 거야, 망할 인간! 우리는 그런 가게가 아니라니까!”

여기까지 오면 둔한 렌이라도 의도를 알아차렸다. 인간은 배알도 없는지 남의 몸 위에서 발정하려는 셈이다.

인간의 리얼한 거시기를 두 눈으로 확인한 렌이 하악질 하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이 인간은 무슨 돌덩이라도 되는지 묘족의 몸으로는 꿈쩍도 안 했다.

“그러게 누가 인간한테 그런 걸 쓰래?”

“여기는 인간이 오는 곳이 아니거든, 원래?! 난 하던 대로 했을 뿐이야!”

렌이 반박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류제는 일단 거족들을 상대하기에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욕정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원하지 않는 발정에 짜증스럽게 거시기를 문지르는 그는 해야만 하는 숙제를 처리하는 것처럼 자위를 시행했다.

“이 변태 인간, 제정신이 아니구만!”

하나도 야하지 않고, 그의 취향도 아닌 고양이(수컷)를 내려다보며 자위를 하다니 류제도 세상 끔찍했다.

“시끄러워. 나도 싫지만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건 너 때문이잖아.”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이 교양 없는 야만인아! 더러운 인간 몰래 씻겨줬더니 감히 날 깔고 거시기를 문질러? 약을 가져다준다니까?”

“그 약에 뭐가 들어있을 줄 알고?”

누구 때문이 이 꼴이 됐는데 말본새 보소. 더군다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하나도 안 예쁜 저 망할 묘족은 자기 일 아니니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로 나오니까 더 괘씸해서 봐주기 싫었다.

실컷 괴롭혀서 분풀이를 해야만 이 짜증이 풀릴 것 같았다.

“발정하기 싫은데 하고 있는 내 심정을 알기나 해?”

“알기 싫어. 알아서 뭐 하게!”

고양이가 메롱 혀를 내밀며 얄궂게 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거시기를 붙잡고 손을 움직이는 자기 자신이 화가 난다.

류제가 식식거리며 시끄러운 고양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거리며 버둥거리던 렌은 위에 있는 인간의 뜨거운 숨소리에 다른 의미로 긴장했다.

“으브, 읍……!”

자위에 집중하는 인간의 뜨거운 땀이 렌의 이마께에 떨어졌다. 젖은 앞머리 사이로 그가 감탄했던 아름다운 얼굴이 찡그려졌다.

인간도 처음 봤는데 평생 몰라도 상관없던 발정하는 모습을 목격하다니 이런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았을까. 렌은 시간을 되돌려서 손님을 받으러 칠렐레팔렐레 뛰어가는 자신의 뒤통수를 한 대 딱 때리고 싶었다.

“하아… 후, 제길…….”

시끄러웠던 고양이가 조용해진 동안 집중해서 손을 놀린 류제는 정력제 탓인지 미적지근한 상태에서 한 발 사정했다.

하얀 액체가 렌의 작업복 위에 후두두 흩어졌다. 몸을 부르르 떨며 부족한 쾌감을 좇듯 숨을 멈췄던 그가 눈을 살짝 떴다. 까딱거리는 눈썹이 야했다.

급한 불도 꺼지지 않은 것처럼 부족하다. 헉헉 찬 숨이 잦아들 기미가 안 보였다. 저런 위험한 조합으로 탕과 오일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마왕 그자식도 그렇고, 요국인은 하나같이 위험천만하다.

진정되지 않은 몸을 안타까워하던 중 류제는 아래에 깔린 렌을 흘겼다. 음란한 상황에 얼굴이 시뻘게진 렌은 예의상 류제의 야한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렸다.

“끄… 끝났어?”

도망가서 일러바치지 못하도록 감시만 했지 손도 안 댔는데 섹스하던 사이처럼 수줍게 물으니 어이가 없었다.

덕분에 하나도 안 끝났고, 그냥 해독제나 내놓으라고 하려던 류제는 어쩐지 깔고 앉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딱딱함에 넌지시 만져보았다.

“말은 잘하더니. 너도 흥분했네.”

인간은 발정기 조절도 못 한다는 등 요국인 특유의 우월 의식을 보이며 조롱하더니 사돈 남 말한다. 억지로 발정한 것도 화나 죽겠는데 요망하게 놀려대던 요국인도 발정한 걸 보니까 꼴도 좋다.

류제는 놀릴 겸 딱딱하게 반응하는 그것을 꾹 눌렀다. 초인종처럼 펄떡거리며 반응하는 고양이가 도리질을 쳤다.

“윽, 하… 하지 마!”

“안 세우면 된다며? 잘난 척하더니 요국인이면서 발정기도 관리 못 해?”

“아니, 이건……!”

순혈 묘족이라면 그러겠지만 렌은 인간과 혼혈이었다. 발정기도 따로 있지만 이따금 인간처럼 이유를 알 수 없게 발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나 잠자는 동안 저 혼자서 정자를 내뱉어 발정기 주기가 흐트러진 적이 다분했다. 혼혈이 겪는 병 같은 거였다.

“너도 남의 손에 발정해 봐. 얼마나 기분이 더러운지 잘 알아야 장사도 잘하겠지?”

복수의 의미로 딱딱한 렌의 것도 옷 밖으로 꺼내 든 류제는 인간에게 생식기를 잡힌 독 안에 든 쥐… 아니 고양이를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히익! 이… 인간, 여긴 유… 유흥업소가 아니라니까!”

내가 돈 때문에 미쳤지. 세상이 말세다. 인간이 내 생식기를 쥐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아니, 남이 내 생식기를 쥔다는 생각도 못 해봤는데 하필이면 왜 인간이야? 난 좀 더 이런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었단 말이야. 이런 사고 같은 현장은 싫어!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망할 멍청이 고양아.”

“꺄아악!”

인간은 인정사정없었다. 인간의 손에 발정하다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렌이 죽겠다며 발길질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필사적인 버둥거림은 류제에게 아무런 영향도 못 끼쳤다. 그의 자랑이던 묘족의 날카로운 손톱도 어림없었다.

술 괜히 마셨다. 알딸딸해서 반항을 제대로 못 하겠잖아. 거시기는 왜 또 찌릿하고 난리야.

“어때? 기분 더럽지?”

“아… 알았어. 네 마음을 충분히 알았으니까 그만해!”

거시기를 문지르기 시작하니 발버둥이 잦아들었다. 겁만 주려고 했지 처음에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던 류제는 욕구 불만인가 오랜만에 사람끼리 살갗을 맞부딪혔더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심장이 쿵쿵거리는 게 다 정력제 탓이다. 남자를 상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지도 다 정력제 탓이었다. 이해가 안 가도 포기하면 편했다.

“진짜로 그마안…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으면 좀 도와줘.”

류제는 제대로 발기한 고양이의 것과 자신의 것을 함께 잡았다. 미리 한 발 빼서 질척한 정액과 함께 찌걱거리니 문지르기도 편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봉변당한 렌은 인간들이란 죄다 이렇게 즉흥적이고 변태인 건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종족이 다른 걸 떠나서 인간들은 번식과 상관없이 아무나하고 성행위를 자행하는 건가? 그래서 이렇게 즉흥적인 거야?’라는 요국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렌은 억지로 발정하는 기분에 점점 고양되었다.

인간과 혼혈인 그는 강제로 발정하면 주기가 발정한 기점으로 꼬였다. 안 돼. 발정기가 오는 날에 맞춰서 휴가 냈는데!

“그만해. 더 이상 하면 나… 내가……!”

“기분이 나빠야지. 인간의 손에 뭘 가려고 하고 있어?”

“발정해 버린다구우… 흐냥!”

등을 타고 으스스한 감각이 찌르르 올라왔다. 온다. 오고 있다. 강제로 발정하니 원래 발정기보다 더 심한 호소가 도래했다. 하필이면 인간을 상대로 온몸이 달아오르고 숨이 격해졌다.

당장 내보내고 싶어. 그런 생각이 묘족의 본능을 지배했다. 쾌감을 원하는 꼬리가 빙그르르 류제의 팔을 감쌌다.

“흐냐… 우앗……!”

소름이 으스스 돋더니 고양이의 목소리가 야해졌다. 발정 스위치가 켜진 렌은 류제가 잡은 거시기를 더 비비고 싶었다.

마음이 급해져 커다란 류제의 손을 바깥으로 감싼 렌은 더 해달라며 종용하듯 허리를 비비며 손을 움직였다.

“이 음란한… 고양이가… 아닌 척 느끼긴.”

시각적으로도 흥분한 류제는 온몸으로 느끼는 발정 난 고양이에 발정할 것 같아 울렁거리는 심장을 쏟아냈다. 이다지도 집중해서 상대방을 원하는 감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옹기종기 모인 세 손으로 이루어진 피스톤질이 한창일 때, 쾌락에 약한 렌이 먼저 가버리고 말았다.

“하… 하아… 히… 흐… 바… 발정기… 아… 안 돼애…….”

“멋대로 뻗지 마. 난 아직 안 갔거든?”

“망할 제멋대로 인간! 너 때문에 내 주기가, 휴가가……!”

요즘에는 탕약으로도 억누를 수 있지만 발정기가 되면 하루 종일 거시기가 쑤셔와서 불알이 텅 빌 때까지 내보내고 싶어진단 말이다.

날짜를 세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인간의 손에 다 망가진 데다 전보다 더 발정하다니 이럴 순 없었다.

“우냑!”

한번 갔어도 발정기 때문에 다시 몸이 달아오르려고 하는 때 류제가 렌의 뒷구멍을 예고도 없이 만져댔다.

거기를 써본 적이 없는 렌이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뭔데 부끄럽게 본격적으로 내 다리를 올리고 지분거리는데?

“어디에 손을 넣는 거야, 이 미친놈아! 발정기 약 받아야 하니까 당장 비켜!”

“너도 달아오른 거지? 잔말 말고 협조나 해.”

“충분히 협조했잖아! 이 이상 뭘 더 협조해?”

“부족해. 누구 때문에 안 넣으면 거시기가 폭발해서 죽을 거야!”

넣어? 어디에? 짝짓기라도 하려는 건가? 어리둥절해 있는 것도 잠시, 렌은 억지로 열리는 아랫도리 구멍에 화들짝 놀라 발길질을 했다.

“이 악독한 인간 같으니. 그게 말이 돼? 네 거시기 따위 폭발하든가 말든가!”

“괜찮아. 잘될 거야. 할 수 있어.”

어디선가 남자끼리는 여길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도 같으니 류제는 요국인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었다.

아무리 정력제 탓이라지만 남자 요국인이 상대라니. 정력제가 아니었다면 거들떠도 안 보았을 텐데. 요국 의뢰를 맡게 되면서 굶주리긴 했지마는 인간으로서 안 되는 길을 건너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약기운 때문에 그런 이성적인 고민은 터럭만큼도 진전할 수 없었다.

“꺄아악! 끄악! 아… 제발! 알았어. 알았으니까 천천히 좀 해!”

“안 돼. 당장 안 하면 터질 거야. 하, 너무 뻑뻑한데.”

너무 하고 싶어 애달아 급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던 류제는 침대 옆 테이블에 준비성도 좋게 아까 렌이 오일 마사지할 때 썼던 기름병과 같은 것을 발견했다.

머뭇거림 없이 그것을 집어 든 류제는 코르크로 된 기름 뚜껑을 이로 악물어 퐁 열었다. 그 기름의 정체를 알아차린 렌이 캭 비명을 질렀다.

“그거 쓰면 안 돼. 진짜 비싼 거란 말이야!”

“청구해 둬.”

“내년까지 못 구한다고! 그거 꿍쳐두려고 얼마나 노력을… 히이익!”

쨍알거리는 잔소리에도 류제는 아랑곳없이 렌의 하반신에 기름을 부었다. 저 인간은 적당히라는 게 없는지 비싼 기름을 귀한지도 모르고 펑펑 쏟았다.

아까워 죽겠다는 생각도 잠시, 그 기름으로 구멍에 단번에 가장 긴 손가락 세 마디가 들어오자 렌은 잘난 주둥이를 합 다물었다.

“성능이 발군이네.”

상기된 류제가 입맛을 다셨다. 이것도 설마 미약 재료가 들어간 건 아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래도 좋을 만큼 류제의 이성은 망가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기어코 한마디를 꺼내는 고양이는 텅 빈 기름병을 보며 시무룩해했다.

“내일 아침에 쓰려고 했던 건데.”

“내일 쓰나 오늘 쓰나.”

“나한테 쓸 예정이 아니었다고. 내 완벽한 풀코스 서비스가 엉망이 됐잖아!”

잘난 말을 늘어놓는 걸 보니 손가락 하나는 여유롭나 보다. 손가락을 구부려 빙그르르 돌리며 구멍을 풀어주던 류제는 뜨거운 내벽의 감촉을 만끽하며 거시기를 넣는 상상을 했다.

뜨거운 요국인의 내장이 그의 거시기에 꽉 맞게 휩싸며 최악… 아니 최고로 좋은 쾌감이 그를 휩쌀 것이다.

그러면 이 정력제의 기운도 빠질지도 모르지. 하아… 당장 처박고 싶어. 이 고양이는 어떤 목소리로 앙앙 울어댈까.

“흐냑! 뭐… 으… 버… 벌리지 마!”

“안 된다고 난리를 치더니, 두 개나 들어갔네?”

더 이상 손가락이 들어가면 저 거대한 거시기에 그대로 처박히게 된다는 현실이 렌을 위협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못하는 렌도 인간의 손길이 기분 좋았다. 망할 발정기가 빨리 기분 좋은 뭔가를 해줬으면 바라서 엉덩이를 쑤시는 류제가 구멍에서 손을 빼지 못하도록 꽉 잡는 꼬리가 화가 날 정도였다.

“너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나 봐?”

류제가 자신의 팔을 휘감은 꼬리를 지시하며 사악하게 웃었다. 그야 너 때문에 발정했으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렌이 분해서 하악거렸다.

다 저 인간 때문이다. 인간인 걸 알았을 때부터 당장 내쫓아야 했어. 괜히 조금 불쌍하다 생각해 가지고 이런……! 이런 내 순결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간. 두고 보자!”

“그럼 더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야겠네.”

그 말의 끝과 동시에 류제는 자신의 것을 좁고 미끌미끌한 구멍에 꾹 밀어 넣었다.

여유 없이 애무해 다리를 벌리게 해서 크고 두꺼운 것을 좁은 구멍에 꾹 눌렀지만 유연한 고양이 몸 덕분인가 처음 외부의 것을 받아들임에도 구멍은 빡빡한 것 말고는 무리가 없었다.

“흐냐아앙! 드… 들어가잖아!”

“얼마나 공들여 풀어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겨.”

에라 모르겠다. 고상했던 성벽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정력제 탓으로 돌린 류제는 침입자 인간을 잡으려는 거족들이 도사리는 외국의 한가운데에서 섹스를 하는 이 상황이 스릴 만점이었다.

약기운인지는 몰라도 밑에 깔려 들썩거리는 피스톤질을 따라 냥냥 울어대는 고양이귀 요국인이 썩 귀여웠다.

정력제에 패배해 본능에 몸을 맡긴 류제는 인간의 거시기가 몸 안에 들어왔다는 충격이 덜 가신 고양이의 턱을 붙잡고 츄, 가볍게 입술에 키스했다.

“내 첫 키스!”

그러더니 그 고양이의 얼굴이 더없이 시뻘게지며 좌절로 버둥거렸다. 거시기가 넣어진 것보다 키스가 더 충격적인가. 그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좁은 구멍이 더 조여서 거시기가 끊어질 뻔했다.

“큭, 힘 좀 풀어.”

“내 첫 키스! 첫 키스! 첫 키스!! 이 망할 인간이 내 첫 키스 상대라니 용납 못 해!”

렌은 절규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냄새에 민감한 요국인인지라 인간 혼혈은 특히나 인기가 없어서 평생 함께할 짝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첫 키스만큼은 확실한 소망이 있었다.

이런 무드라고는 코빼기도 없는 사고 현장에서 잃기는 싫었다.

“으흑!”

정력제 약 성분을 빼내는 데에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는 몸짓에 류제가 오만상을 찌푸리다가 거시기를 팍 쳐올렸다. 이만큼 멀쩡해 보이니 몸에 남의 거시기가 처박힌 이물감이 익숙해진 거라고 치면 되려나.

“가만히 있어. 키스 가지고 대수야.”

입맞춤 정도야 류제에게 있어 애무의 일환일 뿐이다. 이 요국인은 성적인 경험이 별로 없는가 본데, 그렇게 보니 귀엽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제멋대로인 건 싫지만 귀여운 고양이는 좋아하고, 위험한 오일로 마사지한 요국인에게 나쁜 의도는 없는 것 같은 데다 감정적으로 유별나게 섬세한 요국인이니 감안해 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마음대로 해버리고 싶지만.”

입맛을 다신 류제는 고양이를 달래줄 겸 상냥하게 애무를 해줬다.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참고 신사적이게 나오는 거 아닌가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납작한 남자 가슴은 별로지만 고양이 특유의 유연하고 부들부들한 피부가 나쁘지 않았다.

손님을 씻겨주며 본의 아니게 약탕에 불렸을 피부는 깐 달걀처럼 매끈했다. 누군가 만진 적 없을 유두는 타인의 손길이 닿자 놀라 섬찟하게 섰다.

“왜… 왜 그런 델 만지고 지랄이야?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끝내!”

“네가 긴장하니까 못 움직이겠잖아. 경험 없는 티가 너무 나네.”

“그럼 내가 경험자겠냐? 내 구멍에 거시기를 처박을 생각을 하는 건 너뿐이야!”

“그래?”

류제가 렌의 고양이 귀를 만지작거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인간은 귀가 성감대라서 그의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 주면 황홀해하며 좋아하는데 묘족은 귀가 다르니 모르겠다.

비죽거리며 비웃는 듯한 입꼬리에서 보이는 자신감에 렌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생소한 상황에 긴장한 건지, 저 인간의 얼굴이 렌의 워너비에 가까워서 그런 건지, 인간과 이런 상황에 처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건지 헷갈렸다.

“뭐 어때. 세상은 네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그건 이런 말을 하는 류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남자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된 김에 안 하던 걸 해보는 게지. 뭐든 류제는 고양이가 쓰다듬어주면 좋아하는 곳들을 스르르 쓸었다. 이를 악물며 부끄러워하는 얼굴과 다르게 솔직한 꼬리 반응을 살피니 공략하는 맛이 있었다.

“역시 여기가 제일 기분 좋지?”

남의 손에 개발되지 않은 몸이라도 인종에 상관없이 남자라면 누군들 흥분한 거시기 문지르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질질 흐르는 기름으로 고양이의 성기를 상냥하게 쥔 류제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두를 붙잡고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문질렀다.

“방금 내보냈는데. 벌써 서다니 건강하네.”

“너 때문에 발정이 된 거잖아. 다 네 탓이라고!”

새빨개진 얼굴로 렌이 반박했다. 요국인의 생리가 어떻든, 류제는 자기 때문에 발정한 고양이를 확인하고 테크닉적 자존감이 올라갔다.

뿌듯해서 히죽거린 류제는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고양이를 들어 껴안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을 듯한 입술에 시선이 가있노라니 질리지도 않고 다시금 살짝 입술을 맞댔다. 역시 거부감은 없었다. 남자라도 요국인이라서 그런가?

“입 벌려봐.”

촉촉 버드 키스를 나누지만 역시 농후한 프리 섹스의 키스를 원한다.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쭉 내미는 고양이도 귀엽지만 슬슬 그 안쪽이 보고 싶었다.

“왜… 왜?”

“나쁜 거 아니니까 빨리.”

마사지할 때도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지 않았는데.

언제 작업복 단추가 벗겨진 건지 가슴팍부터 시작해 맨 살갗이 틈틈이 맞부딪히는 지금, 발기한 거시기는 인간의 복근에 비벼지고 있고 인간의 거시기가 깊게 삽입된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은 무리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처박힌 거시기 감각을 꾹 참으며 힉힉거리던 렌은 빨리 끝났으면 좋겠으니 군말 없이 입을 벌렸다.

“우훕!”

그러자 류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렌의 입술을 먹어치웠다. 혀가 입 안으로 들어오자 놀라 도망가려던 렌의 뒤통수를 류제가 꽉 눌러 그의 입술과 밀착시켰다.

코끝을 피해 살짝 돌아간 고개는 그럼에도 코가 고양이의 얼굴을 살짝 찔렀다.

기름으로 엉덩이를 쑤실 때처럼 음란한 소리가 머리통에서 직접 질척거렸다. 질질 흘리는 침을 훌쩍거리는 소리가 이렇게 야했던가.

송곳니를 스치는 인간의 혀가 기분 좋았다. 인간은 이런 것들도 다 알고 있는 건가. 둘이서 있다면 거시기 말고도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나 많구나.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쾌감이 관통했다.

이런 상황에도 쾌감에 약해 탐구를 원하는 것은 남자의 특기인 것인가.

거시기가 처박혀 있던 상황도 잊을 만큼 키스의 늪에 빠져있던 사이 숨통이 트인 아랫구멍의 압박이 덜해지자 류제가 슬슬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쾌감이 부족했다.

“아, 잠깐, 으, 힉, 아니, 우… 움직… 움직이면……! 흡, 우귭!”

놀라 류제를 밀쳐내 만류하려는데 류제는 집중하라며 다시 밀착 키스를 계속했다. 찔릴 때마다 숨이 엇나가서 억지로 수영을 할 때처럼 벅찼다.

그런데도 기분이 좋았다.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데 언뜻 느껴지는 아래의 이상한 기분과 살금살금 쑤셔오는 거시기가 쾌락으로 치달아 올랐다.

“푸하! 하… 하아. 숨… 숨차 죽겠네.”

“어디지? 제길. 못 찾겠는데. 어디에 있다는 거야?”

처박는데도 반응이 좋아지니, 거시기를 들쑤셔 전립선을 찾으려던 류제가 집중하는 동안 렌은 키스에서 벗어나 간신히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는 처음이라 이 자세로는 찾기 힘들었던 류제가 렌의 다리를 들고 거꾸로 돌려 등을 보이게 해서 얼굴을 침대에 푹 억눌렀다.

“흐냥! 왜… 왜애? 또 뭐어?”

인간이라도 남의 살갗이 기분 좋은 데다 발정해서 손길이 그리웠던 렌은 류제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조금 무서웠다.

“얌전히 있어.”

류제가 유서 깊은 레라바시아 작업복이 방해되어서 냉큼 치워버렸다. 날개 뼈가 도드라진 깨끗한 등이 내려다보였다. 등뼈가 움직임을 따라 뱀처럼 비틀리자 거시기가 움찔거렸다. 이런 게 페티시일 줄은 몰랐는데.

비틀린 거시기 위치를 맞출 겸 허리를 빼서 귀두 끄트머리가 걸릴 즈음 다시 처박은 류제는 그럴 때마다 야한 신음이 터지며 꼬리가 움찔거리는 게 귀여워 피스톤질하며 조금씩 반응을 살폈다.

“아, 힉! 윽! 아니, 드… 들쑤시지… 마!”

“남자는 거기가 기분이 좋다고 분명…….”

이 고양이가 쾌감으로 무너진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처럼 이성도 없이 쾌감만 좇으며 갈구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했다.

긴장하는 고양이의 허리가 들어졌다. 아치형으로 떠오른 등을 푹 짓눌러 고양이 자세를 만든 류제는 아까 조금 스쳤던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던 부분으로 거시기를 향했다.

“도대체 어디를… 흐약!”

어지러웠던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기분 좋은 음성에 새로운 걸 발견한 류제가 악마처럼 웃었다. 뭐가 뭔지 몰랐던 렌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류제가 같은 부분을 또 찔렀다.

“힉!”

“제대로 기분 좋아질 준비는 끝났지?”

“너 이 자식이. 정력제니 뭐니 다 변명이고 그냥 거시기 처박고 싶을 뿐이지?!”

미간에 핏줄이 툭 불거진 류제가 재수 없는 말을 떠벌리는 렌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처박았지만 널 위해 노력하는 거잖아, 이 괘씸한 고양아.”

뒤에서 보니 두개골을 따라 난 고양이귀 뒷부분이 오목하게 튀어나왔다.

어쩐지 그 부분이 귀여웠던 류제는 렌의 머리를 결의 반대로 쓸어 올라가며 귀를 붙잡았다. 그것이 기분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는 신음과 장의 내벽이 말해주었다.

“아, 귀… 귀는 안 돼. 기분이―”

귀의 뒤편을 마사지해 주듯 슬슬슬 쓸어주며 피스톤질을 가속한 류제는 허리를 처박을 때마다 절로 터져 나오는 고양이의 야한 비명을 추임새 삼아 쾌감에 집중했다.

참지 못한 렌은 시트에 비벼지던 거시기를 붙잡고 자위했다.

“혼자 마음대로 가버리면 못써.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왜… 왜애! 갈래. 갈 거야! 못 참아아……!”

첫 키스를 막 빼앗겼다고는 믿기지 못할 정도의 음란함이다. 벌써 한 번이나 갔는데 그와 오랫동안 못 어울려주지 않는가.

거시기를 문지르지 못하도록 양팔을 잡아 누르니 고양이의 허리가 절로 음란하게 들썩거렸다.

정도를 크게 상회하는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콧물과 눈물이 흘렀다. 렌은 자기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거기 말고, 만져주길 바라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만져줄게.”

“으으……!”

류제는 맛보기라며 등뼈를 따라 손끝을 내려 꼬리가 연결된 끝까지 훑었다. 소름이 으스스 돋고 버티던 손이 무너지는 것을 보니 이곳도 좋아하고.

“귀도 간질간질 기분 좋지?”

감미로운 목소리로 귀를 쓰다듬으며 속삭이니 녹아내릴 듯이 질척거렸다.

“입 안에도 많은 감각이 있거든.”

류제는 자신의 손가락을 렌의 입에 넣어 음란하게 휘저었다. 크고 굴곡졌던 손가락은 침으로 질척질척해져서 입 안을 농락했다.

아, 다 기분 좋아. 더 해줬으면 좋겠어. 날 더 어딘가로 끌어당겨서 솟아오르게 했으면 좋겠어.

“뭐… 뭐든 좋으니까 만져줘……! 갈래… 가고 싶어. 가게 해줘……!”

어찌 이리 쾌감에 약한 고양이인가. 정력제를 먹은 그보다 더 발정해 버리면 이런 걸 노렸다고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마는 기분이 풀린 류제는 고양이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엉덩이를 치켜들어 상체를 지지하는 빵 자세를 한 렌의 손을 지지대로 삼아 자위하지 못하도록 한 류제는 고양이끼리 교미하듯 네 발로 짐승처럼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품에 쏙 들어오는 고양이를 감싸 안아 유두를 짓누르고 인간에게는 없는 귀의 털을 혀로 핥으며 다른 손으로는 고양이의 입을 희롱하는, 류제 그야말로 마왕이었다.

“아흐, 아, 익……! 이익! 가… 갈 거야… 가아!!”

수고양이는 교미할 때 무는 버릇이 있는데 이는 묘족에게도 이어지는 본능이었다. 날카로운 이로 류제의 손을 콱 물어버린 렌 때문에 정신이 번뜩 날 정도로 아팠던 류제는 렌이 심술을 부리는 줄 알았다.

“큭, 아파라.”

덕분에 쾌감으로 치달아 가려던 그는 동시에 가지 못했다. 류제가 타박해도 가는 데에 집중하느라 헬렐레 얼굴이 풀어진 렌은 뭔가를 물고 있다는 기분의 충족감에 류제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을 부르르 떨며 사정하니 불알이 텅 빈 것처럼 혼자만 만족했다.

“이런 악독한 송곳니로 물다니. 고양이 주제에.”

손가락이 아파서 빼내려고 하는데 송곳니가 단단히 박혔는지 나오지 않았다. 류제는 움찔거리는 고양이의 몸을 돌려 강제로 입을 벌리게 하려는데 여운에 휩쓸려 있는 고양이는 그의 손을 꽉 문 채 황홀경에 취해있었다.

“우… 우우… 아…….”

“안 되지.”

렌의 볼을 강제로 눌러 입을 벌리게 해 손가락을 빼낸 류제는 피가 뚝뚝 흐르는 자신의 손가락을 핥았다. 구멍이 크게 났던 손가락은 단숨에 회복되었다.

침과 침이 섞이며 선혈의 붉은 피가 렌의 입에도 떨어졌다. 류제는 그것마저 핥으려는 듯 다시 키스했다.

“하… 하아… 으… 기분 좋아아…….”

“예의 없는 고양아, 혼자서만 끝내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그의 것은 여전히 성이 난 상태다. 어중간하게 멈추는 바람에 허리가 달아올랐다. 애무를 할 정신도 없다.

이 이상 참을 만큼 참았던 류제는 이제 막 가서 황홀감을 만끽 중이던 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좋을 대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시기는 이미 가서 반응이 없는데 전립선을 찔러대니 발기는 되고, 분명 정액을 있는 힘껏 다 쏟아낸 것 같은데 몸이 달아오르니 맛본 적 없는 기분에 렌이 비명을 지르며 류제를 밀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 멧돼지처럼 저돌적이게 피스톤질을 하는 인간은 곰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속절없이 구멍이 쑤셔지며 억지로 쾌감을 주입당하는 렌은 아까처럼 뭔가가 올라오는 기분에 발버둥을 쳤다.

“아… 안 돼! 안 돼! 이상해져. 망가져……! 망가져 버린다고!”

온다. 온다, 온다, 온다! 그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뭔가가 또 오고 있었다.

“아, 흐, 히, 아으! 그… 그마안!”

숨을 한껏 참았던 류제는 끌어 올려지는 정액에 꿈지럭거리는 내벽을 집중하며 피스톤 속도를 빨리 했다.

“후… 하.”

가속도가 붙는 피스톤질에 마지막으로 정자를 체내 가장 깊은 곳까지 넣으려는 본능에 따라 류제가 렌의 엉덩이에 깊게 사정했다.

더욱 깊게 사정하고 싶어 마무리로 허리 짓을 하나, 둘, 세 번 깊게 누르며 생성되었던 정액을 모조리 발사해 장에 채워 넣었던 류제는 움찔거리는 내벽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만큼 만족도가 큰 사정은 오랜만이었다.

“이봐, 고양아. 괜찮아?”

류제는 움찔거리는 고양이가 별 반응이 없자 기절했나 싶어서 볼을 툭툭 건드렸다.

질척질척한 배에 쿠퍼액이 줄줄 흘러있는데 이미 텅 빈 불알에서 뭔가를 내뱉는 대신 여자처럼 안쪽으로 가버린 렌은 수그러들지 않는 쾌감에 얼얼한 배 속과 여전히 그 전립선을 누르고 있는 커다란 거시기에 맛이 가서 혀를 헤 내밀고 반쯤 기절해 있었다.

“으냐… 으… 흐앙……!”

류제가 거시기를 쭉 빼내자 움찔거리며 구멍에서 하얀 액체를 뱉어낸 렌은 너무나 커다란 폭풍 같은 쾌감에 이기지 못했다.

“정신 차려봐. 기절한 건가.”

약기운이 빠져 제정신으로 돌아온 류제도 피곤이 몰려왔다. 요국에 온 이후로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는데.

의뢰 때문에 빡센 여정으로 하루 두 시간 수면에 낯선 생활 환경, 주변 경계는 고되고 쓸데없이 이어지는 임무들로 긴장 상태가 몇 달간 이어졌었다.

꾹 참았다가 한꺼번에 터뜨린 이런 거친 섹스에 스트레스가 풀린 것인가, 류제는 고양이의 옆에 털썩 누웠다.

급격하게 피곤해져서 이제 남은 건 아무래도 좋다. 안고 자면 따뜻하게 몸을 데워줄 것같이 부드러운 몸 같은 그것을 끌어안은 류제는 정액과 기름, 땀과 눈물로 엉망이 된 침대에서 꿀 같은 수면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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